폐주(廢主)
오늘 아침 문득 초령왕(楚靈王)을 생각한다.
그는 본래 차자(次子)라 왕이 될 수 없었다.
하지만 조카인 겹오(郏敖)를 죽이고 왕이 된 인물이다.
나랏 백성들을 돌보지 않고,
사치와 교만에 빠져 질펀하니 놀아나다가 최후를 맞았다.
그는 화려한 장화궁(章華宮)을 지었는데,
가는 허리를 가진 여자를 몹시 좋아했다.
뿐만 아니라, 남자라도 허리가 굵으면 싫어했다.
장화궁이 낙성되자 초령왕은 허리가 가는 미인만을 뽑아서 거처하게 했다.
그래서 장화궁을 일명 세요궁(細腰宮)이라고도 했다.
궁녀들 중에는 초령왕에게 허리를 가늘게 보이려고
음식을 조금씩 먹는 여자가 많았다.
심지어는 허리가 가늘어지기 전에 굶어 죽는 여자도 생겼다.
궁중에서 이 야단들을 하자,
마침내 초나라 모든 백성들 간에도 이것이 유행이 되어,
허리가 굵은 자는 여자나 남자나 모두 무슨 일이라도 난 양,
음식을 조금씩 먹었다.
楚王好細腰,宮中多餓死
“초왕이 가는 허리를 좋아하자, 궁중에 굶어 죽는 이가 많았다.”
자고로 영(靈)자는 포악한 정치를 펴고, 방탕하여
나라 일을 제대로 돌보지 못한 왕에게 붙이는 시호(諡號)이다.
정영공(鄭靈公), 진영공(晉靈公), 제영공(齊靈公), 진영공(陳靈公) 등
영공(靈公) 또는 영왕(靈王)이라 불려지는 왕들은 모두 사치가 질펀하고 정사를 돌보지 않았음이다.
초령왕이 서(徐)나라를 쳐들어갔는데,
때마침 본국에서 난이 일어나고, 따라온 군사들이 모두 등을 돌리게 되었다.
결국 곁에 아무도 남아 있지 않고 다 도망가버려 혼자가 되어버린다.
삼일을 굶으며 쫓기다 백성 하나를 만난다.
신해(申亥)란 이인데,
초령왕을 자기 집으로 모셨다.
신해는 무릎을 꿇고 음식을 바쳤다.
허나, 왕은 입술을 축이지도 못하고 울기만 하였다.
신해는 자기 딸 둘을 방으로 들여보내 시침(侍寢)토록 하였다.
이는 초령왕을 기쁘게 하려 함이다.
왕은 허리띠도 풀지 않고 하룻밤을 슬피 탄식만 하였다.
오경(五更)에 이르자 탄식 소리가 나지 않았다.
두 딸은 방문을 열고 아버지에게 고하였다.
“왕께서 이미 침소에서 목을 매고 자결하셨습니다.”
호증(胡曾) 선생이 이를 두고 시를 하나 읊었다.
茫茫衰草沒章華,因笑靈王昔好奢。臺土未乾簫管絕,可憐身死野人家。
“망망하니 펼쳐진 쇤 잡초가 장화궁을 잠겨놓으니,
영왕의 지난 날 사치를 비웃는도다.
땅도 마르기 전에 젓대 소리 끊어졌으니,
촌사람 집에 죽다니 가련키 짝이 없구나.”
신해는 초령왕이 죽자,
슬픔을 이길 수 없었다.
친히 시체를 수습하여 염하고(殯殮)는,
자기 두 딸을 죽여 순장(殉葬)하였다.
오늘 아침,
난, 사실 이 장면을 특히나 다시 떠올리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후인이 탄하는 시가 여기 있다.
章華霸業已沉淪,二女何辜伴穸窀,堪恨暴君身死後,餘殃猶自及閨人。
“장화의 패업이 이미 무너졌는데,
어찌 두 딸을 무고하니 짝지어 광중(壙中)에 묻었는가?
심히 한스러워라, 폭군이 죽은 후에도,
재앙이 두 처녀에게 미치는도다.”
아주 마땅치 않은 조어(造語)이어데,
어제 속칭 ‘태극기 집회’에 사람이 죽었다 한다.
초령왕이야,
황음무도한 인물이거니와,
그 죽음이 하나도 아깝지 않다.
하지만, 도대체 어제 같은 날,
왜 또 다시 두 딸(二女)이 되길 자처하는 사람들이 나오는가 말이다.
멀쩡한 태극기도, 욕되이,
어제 죽은 이도, 공연히,
죄지은 남의 석둔(穸窀) 무덤에 따라 묻히길 자청하도다.
이 어찌 딱한 노릇이 아니랴?
헌데,
정작은,
우리 시민들이야말로 딱하지 않은가?
박근혜.
지난 대선에서 이이를 뽑은 게,
바로 오늘을 사는 그 국민들 아니었던가?
헌데,
오늘 아침 어느 여론 조사를 보니,
92%가 탄핵 결정에 승복하여야 한다고 생각한단다.
차라리,
신해는 맹목적일지라도 충(忠)에 죽고 살지만,
오늘을 사는 시민들은,
얼마나 어리석기에,
이리들 반복무상(叛服無常) 자반뒤집기를 하는가?
그저 뉴스만 가만히 들여다보아도,
누가 초령왕인지, 누가 박근혜인지 절로 알 수 있음이라.
그저 마음을 비우고 맑게 가지면,
누가 악당인지, 누가 선인인지 단박에 알 수 있다.
내 그 동안 촛불집회에 세 번 빠지고,
모두 참석하였었다.
추위에 떨며 처와 함께 광화문 광장에 서 있자니,
사람들이 한편으론 고맙기도 하고,
또 한편으론 밉기도 하였다.
도대체가,
사람들이 얼마나 어리석으면,
어제 제 손으로 뽑은 이를,
오늘은 제 손으로 끌어내리려 이리 분노하고 있음인가?
꼭이나 찍어 먹어봐야,
똥인지 된장인지 아는가?
사타구니에 뜨거운 국 쏟고 나서야,
좆 데인 것을 안다면,
이 얼마나 딱한가?
내가 이번 박정권으로 인해 가장 원망스러운 것은,
돈 떼먹고, 불통한 것이 아니다.
다만, 세월호 사건 때,
원통하게도,
스러진 저 꽃다히 아름다운 사람들을 저버린 것이 그 하나요.
절통스럽게도,
위안부 소녀를 또 한 번 일본에게 팔아먹은 일이 그 둘이다.
이 둘만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구나.
까짓 돈이야 다시 마련할 수도 있겠지만,
결코 죽은 이들을 다시 살려 낼 수 없으며,
원수에게 다시 팔아재낀 그 욕스러움을 잊기는 어려운 바라.
이 둘로써,
나는 저들을 결단코 용서할 수 없다.
***
寡人殺人子多矣!人殺吾子,何足怪!
“과인이 남의 자식들을 많이 죽였으니,
남이 내 자식을 죽이는 것이,
어찌 괴이한 일이랴?”
반란군이 초령왕의 아들 둘을 죽였다는 보고를 받자,
초령왕은 몸을 침상에서 땅으로 던져, 방성대곡하며,
이리 말했다.
人之愛其子,亦如寡人否?
“사람들이 그 자식을 사랑함이 과연 과인과 다를까?
그러자 정단(鄭丹)이 답하였다.
鳥獸猶知愛子,何況人也?
“새와 짐승도 그 새끼를 사랑할 줄 아는데,
항차 사람이야 더 말할 것이 있겠습니까?”
이 말을 듣자,
그제서야 초령왕이 위에서 말한 듯이 그리 말한 것이다.
寡人殺人子多矣!人殺吾子,何足怪!
천성활란(天城活蘭)으로 개명하였던 김활란도 자신의 친일행위를 의식하여,
한 때 실명위기의 병상에서 이리 말했다고 하지 않았던가?
"죗값으로 눈이 멀어도 달게 받겠다.“
헌데, 박근혜,
이 사람은 과연 鳥獸猶知愛子
조수도 제 새끼를 사랑함을 뒤늦게라도 알 수 있을까?
갖은 전횡을 일삼던 한(漢)의 여태후(呂太后)도,
만년에 병상에 누워 천재지변이 일어날 때마다,
“내 탓이야.”
이리 말했다.
박근혜 이이는 과연 지금쯤이면,
이런 말을 할 수 있도록 변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