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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 순번 시스템

소요유 : 2017.03.09 12:14


어제 이장님으로부터 온 전화를 받았다.

농업경영체 조사가 있으니 참여하란다.

이것 제법 성가시다.


예비군 훈련도 한 번도 빠짐없이 받았지만,

그리고 지각 한 번도 하지 않았지만,

솔직히 이것 힘들고 귀찮다.

끝날 때 사전에 소집해지와 관련된 아무런 연락도 없이,

그저 소집영장이 나오지 않아 내가 빠진 질 알았을 뿐이다.


내 당시 처에게 말했다.

그동안 수고하였다고 하다못해 수건 한 장이라도 돌렸으면,

덜 섭섭하였을 게다.

군대 삼 년, 그리 수 십 년 예비군으로 동원하며,

뼈다귀까지 악착같이 욹어 먹었는데,

일없다 내칠 때는 인사 하나도 제대로 차리지 않는구나.

국가라는 것이 이리 염치없을 수 있는가?


사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가?

예비군 소집이 다하자,

이젠 농부가 되자니,

다시 고삐 뚫린 가축이 되어,

국가의 부름에 휘둘리고 있는 것이라.


내, 세상의 온갖 구속으로부터의 자유를 꿈꾸며

하늘의 아들, 땅의 딸이 되고자 농부가 되었는데,

국가란 마수(魔手)는 예까지 미치고 있음이라,

귀신이 되기 전에,

천라지망(天羅之網) 저들의 손아귀를 벗어날 수 없구나.


오늘 농업경영체 조사 장소에 아침 일찍 나섰다.

예년과 다르게 번호표를 나눠준다.

전엔 주르르 의자에 앉았다가,

되는대로 처리 담당자에게 달려드니,

도착한 순서가 무시되고 마구잡이로 처리가 되었었다.

이번엔 제법 연구를 하였구나 싶다.

하지만 즉각 의문이 드는 것은,

건네준 번호표를 어찌 체계적으로 불러들일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번호표는 무시되고,

그저 나선대로 처리를 하고 만다.

내 그래 직원들을 향해 외쳤다.


‘나는 (다만) 번호순대로 일을 마치고 싶다.’


그러자 지원 나온 읍사무소 직원이 급히 나서며,

농민들 표를 확인하며 정리를 한다.


나중에 보니, 농업경영체 담당부서 사람 하나가 마이크를 들고,

대기 번호를 호명하며 정리를 하고 있었다.


은행의 고객 대기 처리 시스템을 가져다 놓으면 확실하겠지만,

이게 좀 비용 부담이 될 수는 있으리라.

하지만 이 정도 대기 순번 처리 시스템은,

간단한 프로그램 하나만 랜상에 띄우면 해결될 수 있다.

이것 전산부서의 협조만 받으면 일순간에 채비할 수 있음이다.


내가 직원에게 이를 지적하면,

차후엔 이를 준비하는 것이 좋겠다는 조언을 하였다.


번호표를 만들어 놓으면 뭣하나,

이를 운용할 시스템을 갖추지 않았음이니,

이는 마치 병풍에 그린 닭 꼴이다.

도대체가 새벽이 되어도 아침을 알릴 수 없지 않은가 말이다.


‘나는 (다만) 번호순대로 일을 마치고 싶다.’


내가 오지랖이 넓어 이리 외친 것이 아니다.


먼저 온 사람이 먼저 일을 마치고,

나중에 온 사람은 나중에 일을 처리 받아야 한다.


이게 아니 되면,

기다리는 내내 선참자는 불안하고, 불만이 쌓이며,

후참자는 빨리 앞서고자 꾀를 부리게 되고,

호시탐탐 욕심을 내게 된다.

이리 되면 모두 사람 꼴을 유지하지 못하게 된다.


은행의 대기 순번 시스템이 정착하자,

사람들은 더 이상 불안하지 않으며,

욕심을 내지 않게 되었음이다.

(※ 참고 글 : ☞ 시스템)


不失其法然後治

무릇 법이 제대로 마련되고, 집행되고서야 다스림이 생기는 것이다.

사람이 덕화(德化)되거나, 인격이 닦여 그리 된 것이 아니라,

다만 합리적인 시스템이 마련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무엇보다 먼저 인심(人心)을 잘 살펴서,

이를 공정하게 잘 처리할 제도를 만들 일이다.

이것이 국가 행정을 담임하는 사람들의 책무인 것이다.

땅이 몇 평이다, 무엇을 재배하는가?

이것을 조사 기록하는 것만이 업무의 모든 것이 아니다.

이를 넘어서 행정처리 절차에 관해,

문제의식을 갖고, 처리 효율을 제고하고,

공정한 대민 봉사 시스템을 갖추려는 노력을 마저 다하여야 한다.


그나마 내가 나서 저 직원이 마이크를 잡으며 질서를 잡고 있는 것이다.

잠시 환담을 하던 곁에 있는 읍사무소 직원이 내게 말한다.


‘저리하니 한결 나아 보이네요.’


내가 그에게 말하였다.


‘저런 시스템이 도입되고서야,

공정성이 담보되고, 사람들의 불만이 사라진다.’


저리 방대한 조직과 맨 파워를 가진 기관이,

매 년 되풀이 되는 이런 판에 박힌 일에 임하여,

왜 합리적이고 체계적인 시스템을 마련치 못하고 있는가?

이런 의문이 드는 오늘 아침 하루이다.

물론 전에도 여전히 가졌던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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