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농 유감(遺憾) 3
내가 여기 시골에 들어와 주변 농민들의 농사짓는 모습을 관찰하면서,
예전에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던 것이 너무 안일하였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최근 유기농은 관행농에 대한 반성으로 여러 사람들이 주목하게 되었다.
흔히 유기농은 관행농과 다르게 화학비료와 화학농약을 쓰지 않아 좋다고들 한다.
하지만 유기농 역시 비료와 농약을 사용함에 있어서는 마찬가지다.
화학비료 대신 유기비료, 화학농약 대신 친환경 농약을 쓸 뿐이지,
유기농이라 한들 비료와 농약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여기서 이야기를 더 잇기 전에 유기(有機)가 무엇인가 대한 이해를 먼저 촉구하고자 한다.
이에 대한 기초가 부족하면 자칫 잘못된 논의의 길로 들어갈 우려가 있다.
하여, 나의 또 다른 글은 글을 소개하고자 한다.
※ 참고 글 : ☞ 유기(有機) 考
오늘은 유기농에 대한 나의 감상을 하나 늘어놓되,
하나의 사실을 들어 접근하고자 한다.
블루베리 유기농을 하는 이들 중 유박을 비료로 주는 이들이 적지 않다.
나는 이제껏 유박을 한 번도 사용한 적이 없지만,
그렇기 때문에 유박을 비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에 입각하여 그 허실에 접근하고자 한다.
유박(油粕)은 기름을 짜고 남은 찌꺼기, 지게미를 의미한다.
가령 깨, 면화, 콩, 피마자(蓖麻子, 비마, 아주까리), 유채 따위의 작물 압축하여 짜내어,
기름을 얻어내고 남은 찌꺼기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에서 유박 비료란 이름으로 유통되고 있는 것은,
대개 수입한 것으로 여러 종류의 유박이 섞인 혼합유박인 경우가 많다.
농민들은 정부 보조를 받아 좀 헐하게 구입을 하지만,
그렇다 하여도 다른 비료에 비해 사뭇 비싸다.
제품마다 다르지만 20kg 한 포에 대략 15,000 ~ 20,000원에 상당한다.
저것이 원재료 가격이라든가, 성분 효과를 고려할 때,
그만한 가격이어야 하는지 아닌지는 차치하고서라도,
내 눈엔 농촌 현실에 비추어 터무니없다고 생각한다.
오늘의 한국 농업은 산업 시대의 조류에 떠밀려 마냥 깨진 물바가지 모양으로 표류하고 있으며,
정부 통제를 벗어나기 어려워 매양 헐한 가격으로 넘겨쳐 지고 있다.
유사이래 권력자들은 먹을거리가 비싸지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낮추기를 꾀한다.
농산물 가격이 오르면,
국민들은 아우성을 치며 울부짖는다.
때문에 가격을 내리눌러, 이들의 원성을 재우는데 재바르다.
오늘날까지 농업, 농부가 사회적으로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숨은 까닭이 이러함이다.
그러한 형편인데 저 정도의 가격이라면,
고무신 신고, 양복 맞춰 입고 허허벌판을 달려 나가는 꼴이 아닌가 싶은 것이다.
내 눈에 마치 허허벌판에 서서, 잔바람에도 우쭐거리는 허수아비처럼 우스꽝스러워 보인다.
게다가 수입품이기 때문에 친환경을 선양(煽揚)하는,
유기농 재배 철학에 비추어도 그리 바람직한 일은 아니다.
외국으로부터 농자재를 가져다 쓰는 일은,
과도한 운반비, 통제할 수 없는 제초제, 농약 성분의 잔류 위험 등을 고려할 때,
결코 친환경, 친자연적이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유박 중에는 위험 성분을 가진 것들이 있어 깊은 주의를 요한다.
가령 면실유(棉實油)를 짜고 남은,
유박엔 가시폴(gossypol, 흔히 고시폴이라 부르기도 한다)이란 독성 물질이 들어 있다.
이것을 정제하고 비료로 공급하고 있는지 나는 지금 확인하지 못하였다.
하지만 이 독성물질에 대하여 좀 알아보는 것이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이 성분은 중국에선 피임제로도 쓰이고,
말라리아약으로도 이용되기도 한다.
하지만, 불임의 위험이 있고,
혈중 저(低)칼륨을 유발하여 극심한 피로감을 일으키거나,
용혈성 빈혈을 일으킨다.
이런 여러 부작용 때문에, 중국에선 1980년대 중반, 실제 피임약 연구를 중단하였다.
또한 피마자박엔 리신(ricin)이란 독성 물질이 들어 있다.
이것이 공기 중에서 녹으면 사린가스가 된다.
옴진리교의 도쿄 지하철 테러사건에 이 사린가스가 이용되었다.
리신은 그 가루가 눈에 들어간다든가, 다친 피부에 닿아 흡수되면, 건강에 좋지 않다.
단백질 합성을 저해하기 때문이다.
한 보고에 따르면 피마자박엔 5%의 리신이 포함되어 있을 수 있다고 한다.
피마자박을 뿌린 밭에서 이를 주어먹은 동물들이 죽는 경우가 종종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반려견이 해를 입은 경우가 보고되고 있으므로,
유박을 뿌린 경우 동물들을 잘 단속하여야 할 것이다.
피마자박은 유박비료에서 30%~100% 쓰이는 중심 재료인즉,
더욱 주의를 기우려야 할 것이다.
유채박(油菜粕)은 glucosinolate란 유독 성분이 들어 있다.
glucosinolate는 현재 70여종의 배당체(配糖體)성분이 알려져 있다.
이 중 특히 BI, PI, OZT는 유채박을 사료화 할 때,
크게 문제가 되고 있다.
glucosinolate는 고추냉이, 양배추, 머스타드 등의 톡 쏘는 맛을 일으키는 성분이다.
식물체는 이 성분을 이용하여 해충이나 질병을 방어하는데 쓴다.
조금 먹을 때는 풍미를 더하는 효과가 있지만,
다량 섭취시 동물이나 인간 모두에겐 나쁜 영향을 준다.
소위 goitrogenic effects라 하여 갑상선종 유발물질로 알려져 있다.
흔히 유기농을 한다는 이들 중엔,
자신들은 친환경 농약을 만들어 쓰기 때문에 인체에 무해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것들이 벌레를 쫓거나 죽이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 아닌가?
그러함인데,
어찌 같은 동물인 인간에겐 유독 아무런 문제가 아니 된다고 확신할 수 있겠음인가?
화학농약이든, 천연, 친환경 농약이든 독임엔 틀림없음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유기물 자재이기 때문에 유박이 안전하다고 주장하는 것도 역시 위험하다.
동물들은 그것을 주어먹고 탈을 일으킨다.
역시 인간에게도 해가 될 개연성은 충분히 높다.
저것들이 작물이나 땅에 뿌려진다고 하여도,
완전히 분해되어 독이 제거된다는 증거가 아직 충분히 제시되지 못하고 있다.
이제, 이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를 말할 차례이다.
유박은 밭에 넣으면 3~4 개월 안에 분해된다.
이 말은 거꾸로 말하자면 속효성 작용 효과를 낼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흔히 말하는 땅심, 지력(地力)은,
토양의 점토량과 유기물 함량에 의존한다.
유박은 언필칭 유기물이라 이르지만,
저것이 땅에 뿌려지고 나서 바로 없어지고 남는 것이 없다면,
결코 지력 증진에 기여하는 바가 없을 것이다.
차라리 흔히 농협퇴비라 이르는 것은 성분 중 톱밥에 의해,
1년이 지나도 토양에 남아 지력을 높이는데 기여한다.
다만 여기엔 축분이 섞여 있기 때문에,
이것을 사용하고서는 유기농 농사를 짓는다 말하기 어려울 뿐이다.
만약 유기농을 짓는다는,
고상한 뜻을 세우거나, 생색(生色)을 내려고 한다면,
현행법 상, 도리 없이 퇴비가 아니라 유박을 사용하여야 한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유박을 넣고 있는 한,
땅의 지력은 아무리 해가 지나도 결코 높아지지 않는다.
높고 거룩한 뜻을 세운 유기농에서,
유박을 주고 있는 한, 지력 향상이 이뤄지고 있지 않다면,
이게 유기농의 근본정신을 훼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러하고서도, 관행농을 비판하고,
때론 짐짓 하시(下視)할 수 있음이더냐?
이에, 저것은 그저 화학비료의 수평 대체재일 뿐이 아닌가?
나는 이런 의문을 강하게 제기하고자 한다.
유박을 사용하는 것이,
다만 화학비료를 사용할 수 없으니까,
하는 짓이라면 이는 유기농(有機農)이 아니라,
그저 유박농(油粕農)이라 불러주어야 한다.
유기농을 짓는다 할 때, 진정 이를 하고자 유기농을 시작한 것이라면,
지력 증진에 어찌 무심할 수 있겠음인가?
유기농을 한다는 부름, 그 이름을 취하기 위해 유기농을 하려 하였다면,
유박이 되었든, 그 무엇이 되었든,
작물이 성장만 많이 하면 별다른 고민도 없이 따르지 않겠음인가 말이다.
이야말로 본말이 전도된 괴이쩍은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음이다.
애초 여린 싹처럼 순정한 녹색 꿈을 품고,
유기농에 나섰다면 지력 증진에 아무런 기여를 하지 못하고 있는,
유박 사용에 대하여 심각한 반성을 하여야 할 것이다.
그 대안적 도리를 찾아내는 것은 저들의 몫이다.
다만, 나는 농약은커녕 비료도 사용하지 않을뿐더러,
풀마저 외려 자라도록 부추기는 농법을 따르고 있은즉,
감히 주제넘은 참견을 하지는 않겠다.
다만 유기농을 넘어 세칭(世稱) 자연농을 지향하고,
땅의 마음을 헤아리고자 한다면,
자연 마땅한 도리가 찾아지지 않을까 싶다.
문제는 욕심이 마음을 어지럽히는데 있다.
화학비료 대신 유박을 사용하고자 함에,
유기농의 참 뜻이 아니라,
기실은 대세적(對世的) 인정을 구하고,
소출 증대에만 목을 맨 것이 아닌가?
하는 근원적인 물음을 일으켜야 한다.
만다라란 소설을 지은 김성동이 옛 스님 지효를 만나 뵈었다.
이에 그 스님이 묻는다.
‘화두는 성성(猩猩)한가?’
환속한 옛 제자에게,
여전히 절 집 중에게 묻는 말로서 그를 대하고 있음이다.
이 부분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다음 글을 참고하면 좋으리라.
(※ : ☞ 끝없는 가출, 종지부를 찍다)
애초 유기농을 하고자 세운 그 뜻을 아직도 성성히 기억하고 있는가?
기실 ‘화두는 성성(猩猩)한가?’라는 물음은,
마치 불교 신자들이 저희들끼리 ‘성불하십시오’라는 인사처럼,
상대를 얕잡아보는 말이다.
아직도 화두를 꿰뚫지 못하였거나, 부처가 되지 못하고 있음을 전제로,
저 말은 성립된다.
(※ 참고 글 : ☞ 성불하십시오' 유감)
하지만 중생은 화택(火宅) 속에 갇혀,
아직도 구슬 놀이에 정신을 팔고 있음이라.
저들 말씀들은 모두 이를 일깨우는 바라,
어찌 사무치는 정이 없다 하랴?
나는 농부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유기농조차 애초 좀 비릿하게 생각하였었다.
하여 전격 무농약, 무비료, 무투입으로 나아갔음이다.
처음엔 좀 질척거렸지만,
바로 마음을 추슬러 내 길을 가고 있다.
비료를 투입하지 않고, 무투입으로 블루베리 농사를 지을 수 있음을 나는 확인하였다.
게다가 이로써 진정한 건강한 작물을 만나고,
맛있는 과일을 마주하게 되었다.
감히 말하거니와,
이 모두는 화두를 성성하니 잃지 않고 지녀서가 아니라,
애시당초 화두를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무엇을 꾀하고자 하지 않았다.
다만 (바른) 내 길을 걸을 뿐이다.
無謀而應
대저 꾀하지 않음에 응하는 법이다.
하느님이,
관세음보살이 계시다면,
저들은 구하지 않는 이에게 절로 이르시는 법일 터.
기실 이 말조차 쓸데없는 구질구질한 말이다.
나는 이들을 의식하지 않고 산다.
不動一心
흔들림 없는 한 마음으로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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