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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밀 조류 퇴치기 제2세대 개발 완료

농사 : 2017.06.18 23:38


을밀 조류 퇴치기 제2세대 개발 완료


예전에, 제2세대 조류 퇴치기를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여기에 밝힌 적이 있다.

구상이 끝난 지는 사뭇 오래 전이지만,

개인 사정으로 좀 지체가 된 폭이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도 포기하지 않고,

틈나는 대로 제작을 하여왔는데,

이번에 이것을 완성하여 밭에다 설치를 하였다.

설치한지 좀 되었는데 제법 효과가 있었다.


앞으로 한 철 더 시험을 한 후,

최종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제1세대 을밀 조류 퇴치기를

을밀 조류 퇴치기 UTS라 명명하고,

이번에 개발한 제2세대 을밀 조류 퇴치기를

을밀 조류 퇴치기 VIB라 명명하기로 하였다.

나는 VIB 개발 당시부터 제3세대 을밀 조류 퇴치기를 아울러 고안하고,

준비를 게을리 하지 않았는데,

이것 역시 오늘로서 부품 수배가 끝났다.

조만간 제작에 들어갈 예정이다.

이것은 을밀 조류 퇴치기 ACG라 명명할 것이다.

(※ 참고 글 : 을밀 조류 퇴치기(v1.1.2.1) - 방조(防鳥) 시스템)


나는 생명을 해치는 것을 꺼린다.

하여 아무리 농작물에 해를 끼치는 것이라도,

살생을 하지 않고 다만 밭 바깥으로 쫓아내기로 하였다.

때문에 조류 퇴치기뿐이 아니라 두더지 퇴치기 역시 이런 생각 아래 고안을 하였다.


조류 퇴치기가 필요한 분께 함께 공유할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니로되,

무제한으로 이것이 퍼져나가는 것을 원치 않는다.

만약 그리되면 새들이 돌아갈 곳(歸處)을 아지 못하게 되리니,

이는 실로 끔찍한 사태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헌즉 어진이(仁者)에게만 한정하여 나누기로 한다.


얼마 전 사과 농사를 짓는 분께서 조류 퇴치기에 대하여 문의를 해주셨는데,

혹 이글을 보시게 되면 연락을 해주시기 바란다.


제1세대 UTS는 공력이 제법 들어간 것으로,

이는 특정 프로그램(util)이 없으면 따라 하기 어렵다.

하지만 제2세대 VIB는 비교적 단순한 방법으로,

이치만 알게 되면 누구라도 따라 할 수 있다.

다만 기기를 원격 조정하는 방법에 대하여는 나의 조력을 필요로 할 것이다.


기실 UTS는 제작, 운영에는 일정 분 기술적 배경 능력 갖고 있어야 한다.

나는 이번엔 이와는 정반대로 단순한 방법으로 접근하기로 하였다.

그런데 이것이 의외로 효과가 발휘되고 있다.

나는 이 사실에 조금 흥분되어, 지금 저으기 고무되어 있다.


이 제2세대 VIB와, 제1세대 UTS 그리고 제3세대 ACG와 함께 연대하여 운용한다면,

아마도 조류 퇴치에 있어 9成에 도달할 것이 기대된다.

내가 앞서 30년 작정하고 조류 퇴치기를 개발하겠다고 하였는데,

요행이 시간이 좀 앞당겨진 폭이다.


다만 제3세대 ACG는 형편 상, 

세상에 내놓기에 극히 꺼려지는 즉,

공개를 하지 않을 예정이다.

하지만 제2세대 VIB만으로도 웬만큼 성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저들 새들은 목숨을 걸고 밭을 습격하고 있다.

그런고로 어지간한 방책으로썬 저들을 막아내기 힘들다.

또한 시간이 지나면 내성이 생겨,

아무리 우수한 퇴치기라도,

최초 효과를 제대로 유지하기 어려워진다.


때문에 여러 퇴치기를 복합적으로 운용하여 효과를 배가시키고, 

유효 퇴치 지속 시간을 연장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따라서 나는 개발(開發) 기기들을 체계적으로 복합 운용하여,

시너지 효과를 제고하고자 노력하였다.
어차피 수확철에만 가동되므로,한 달 보름 정도만 효력이 유지되면 족하다.
외려 수확철이 아니라면,

새들의 방문은 환영할 일이다.

게다가 저들도 먹어야 살아갈 것인즉,

일정분 블루베리를 저들과 나눠 먹기를 바란다. 

(※ 참고 글 : ☞ 참새를 마냥 미워하지 마라)


때문에 이들 주력 장비 외에도,

단방(單方)으로 간단한 장비를 속속 발표할 예정이다.

지금도 두엇 고안한 것이 있는데,

시간이 나면 제작하여 이 자리에 발표할 예정이다.


아마도 이런 장비를 함께 채비하면,

충분치는 않아도 어지간한 수준에서는 기대를 충족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론,

내가 다소간 흥분만 하고 있을 형편도 아님을 이내 깨달으며 스스로 경책하고 있다.

장주(莊周)처럼 두문불출은 하지 못할망정,

흥분마저 가라앉히지 못한다면,

나란 사람은 얼마나 못난 것인가?


지난날, 염천지절 새들이 입을 벌리며, 헐떡이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러면서도 저들은 간단(間斷)없이 밭 위로 날아다니며 블루베리를 쪼아 먹었다.

아, 저들은 명을 부지하기 위해,

저리도 힘겹게 살아가고 있구나.


한편, 나는 한켠에서 블루베리를 지키기 위해,

가여운 저들을 훠이 하며 쫓기도 하였으나,

도대체가 쫓고 쫓기는 이게 무슨 놀음인지, 

산다는 것은 도무지 혼란스럽기 짝이 없구나.


莊周遊乎雕陵之樊,睹一異鵲自南方來者,翼廣七尺,目大運寸,感周之顙而集於栗林。莊周曰:「此何鳥哉?翼殷不逝,目大不覩。」蹇裳躩步,執彈而留之。睹一蟬方得美蔭而忘其身;螳蜋執翳而搏之,見得而忘其形;異鵲從而利之,見利而忘其真。莊周怵然曰:「噫!物固相累,二類相召也。」捐彈而反走,虞人逐而誶之。

莊周反入,三月不庭。藺且從而問之:「夫子何為頃間甚不庭乎?」莊周曰:「吾守形而忘身,觀於濁水而迷於清淵。且吾聞諸夫子曰:『入其俗,從其俗。』今吾遊於雕陵而忘吾身,異鵲感吾顙,遊於栗林而忘真,栗林虞人以吾為戮,吾所以不庭也。」


“장주가 어느 날 조릉(雕陵)의 번(樊)이란 곳에 가서,

이상스레 생긴 까치가 남방에서 오는 것을 보니,

날개 너비가 7척, 눈은 1치로 장자의 이마를 스치고는 밤나무 숲으로 날아간다.  

장주가 말한다.


“이게 새인가? 

날개가 커도 제대로 날지 못하고, 눈이 크다한들 잘 보지 못한다.”


옷자락을 걷어붙이고는 뛰어가서는 탄환을 집어 들고는 잠깐 지켜보았다. 

그 때 매미 하나가 자기 몸을 잊고는 그늘에서 쉬는 것을 보았다. 

당랑(사마귀)이 이를 덮쳐잡으려고 자신의 형체를 잊었다. 

까치는 따라 이를 잡으려고 자신 역시 장주에게 잡히려는 그 진짜 처지를 잊었다. 

장주가 추연히 말한다.


“아! 모든 물건은 서로 얽혀 두 가지 利와 害를 부르고 있구나.”


하고는 탄환을 버리고 달아났다. 

그러자 산지기가 따라오며 꾸짖는다. 


장주가 집에 돌아와서는 3개월간 뜰에 나오지 않았다. 

인차(藺且)가 이를 물었다.


“선생님은 어찌하여 근래 뜰에 나오지 않으셨습니까?”


장주가 말한다.


“나는 생을 지키기 위해 몸을 잊었다. 

마치 탁수를 보다가 푸른 못에 미혹된 바와 같다. 

또한 나는 선생에게 들었노라. ‘시속에 들어가면 시속을 따르라.’ 

그런데 나는 雕陵에서 내 몸을 잃었고, 

까치가 내 이마를 스치므로 따라가, 

밤나무 숲에서 내 천성을 잊었으며,

밤나무 산지기는 나를 보고는 죽일 놈이라고 욕을 해대었다. 

나는 그런즉 뜰에 나오지 않았음이라.”


나는 서울에 있으면 북한산을 틈나는 대로 오르곤 한다.

내가 거기서 겪은 일을 글로 남긴 적이 있다.

이제 여기 이 자리에서 다시금 상기해본다.


***


북한산엔 오리가 산다.

나는 짐작하기를 이 녀석들이 거의 텃새가 되지 않았는가 싶다.

아주 추운 한 겨울을 빼고는 거의 년중 저들을 본다.

올해는 새끼도 8마리나 낳았다 한다.

나는 겨우 서너 마리만 남겨졌을 때 보았는데,

제대로 본 사람은 말하길 원래는 8마리나 되었다 한다.


계곡 물에 암수 어미 두 마리가 가만히 몸을 담그고는 꼼짝도 않는다.

저들이 이번 추석을 제대로 쉬지 못하여 신세 한탄을 하고 있음인가?

아니면 뒤늦게 제 애비어미에게 차례라도 지내고 있는 참인가?

이리 지켜보고 있는데, 지나가던 거지반 할머니 가까운 아낙 둘이 멈추어 서서는 말한다.


“쟤네들 때문에 물고기들이 다 죽어.”


그러자 막 올라오던 할아버지 한 분이 되받아 말한다.


“들고양들이 오리를 다 잡아 먹었어.

들고양이를 잡아야 해.”


나는 저들에게 한 마디 뱉어낸다.


“저들이 이리 돌아온 것은 인간의 손때가 타지 않아서다.

들고양이가, 오리가 문제가 아니라,

정작은 인간이 문제다.”


인간을 여기 북한산에서 솎아낼 수만 있다면,

아마도 만사가 제 자리로 돌아갈는지도 모른다.


내려오는 내 손엔 쓰레기봉투가 들려 있다.


배즙, 포도즙을 산에서 먹었음인가?

아, 신선한 공기 마시면서 산에 올라 먹어야지 하고는 가지고 올라왔을 것이다.

그리고는 비닐 팩을 바로 약수터에다 버렸다.

웬 약봉지, 캡슐은 또 그리 많이 버려져 있는가?

필경은 태반이 노인들의 소행이다.

그것도 추석 언간에 버린 것이다.


저 정신으로 차례를 지내었단 말인가?

한 해 가장 크고 아름다운 달을 보고도,

산에 올라와 차마 저 짓을 할 수 있음인가?


저것 먹고 장수하겠단 심산이다.

고약한 노릇이다.

저들이 늘 올라와 신세지는 이곳 산하를 더럽히고,

그리고도 욕심 사납게 제 몸뚱이는 꽤나 오래들 살고 싶단 말인 게다.

사뭇 게걸스럽다,

천박하다.


이곳에선 정갈한 노인네를 뵙기가 어렵다.

입성이 아니라 마음의 매무새가 개결(介潔)한 이를 뵙고 싶다.

저문녘 아직도 욕망에 찌든 추레한 혼들, 과시 흉타.


이러고도 들고양이를 탓하고, 오리를 탓하고 있음인가?

내 말이 차디 찬 동지섣달 자릿끼 물처럼, 

그들 정수리에 확 끼얹어졌기를.


“천부당만부당(千不當萬不當)!

오리, 고양이라니,

저들 탓이 아니란 말이다.

정작은 바로 인간 탓이다.”


들고양이, 오리를 탓하고 있는 저들 상(相)통이 은근히 밉상으로 보인다.

미욱하다.

청수폭포를 지나면서 헤엄치고 있는 버들치를 보고는 된장 풀어 확 잡아 끓이면 좋겠다며,

킥킥거리고 돌팔매질 하며 자발떠는 것, 역시 저들 인간들이 아니던가 말이다.

거의 년중 행사이다시피 잉어를 계곡에다 몰래 버리곤 도망가는 것도 저들 인간이 아니던가?


제 의론 따라 분분하던 자리가 내 말 한 마디에 아연 조용해진다.

그저 차분하게 내던진 말인데도 나의 기운이 전해진 까닭인가?

저들도 명색이 인간인지라 헤아려 알아들을 귀는 얼추 갖추었단 말인가?


나는 저들을 떨치고 내려오면서,

사탄하(蛇呑蝦),

그리고 당랑규선(螳螂窺蟬)의 고사를 동시에 떠올린다.


하나도 잘 난 것이 없는 나.

그 앞에 내가 서있다.

나는 내게 묻는다.

나 역시 장주처럼 3개월 정도 두문불출 하여야 할까?


내 등 뒤에서 나를 엿보는 자는 누구인가?

하늘인가?


까짓 3개월이 대수랴 3년일지라도 안거(安居)를 못할쏜가?

하지만, 그럼 3개월 이후는 나돌아도 다녀도 허물이 되지 않는단 말인가?

일없이 물러나 숨은 안거가 대수가 아니라,

실인즉 이 물음에 먼저 답해야 한다.


그러자니,

시인 강은교의


“가장 큰 하늘은 언제나 

그대 등 뒤에 있다.”


이 범상치 않은 말씀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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