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 밭에 서서
농장엔 텃밭이 두어군데 있다.
이제껏 나 홀로 농사를 지을 때는 비닐 멀칭을 하지 않았었다.
헌데 처가 올해 비집고 들어오는 바라,
텃밭 농사는 일임을 하다시피 하였다.
비닐멀칭을 하지 않으면 잡초 때문에 농사짓기 어려우니 이를 깔겠단다.
내가 자연농법을 지향하고 있는데, 그럴 순 없다 일렀다.
옥신각신하다 한군데는 비닐멀칭을 하고,
나머지는 민땅으로 하기로 하였다.
과연 비닐멀칭을 한 곳은 풀에 치이지 않아 그런대로 잘 자라주었다.
하지만 이게 작물이 심겨진 빠끔히 뚫린 구멍 말고는 도무지 물이 들어가지 못한다.
답답하기 그지없는 일이다.
풀과 등을 진 작물도 결코 마냥 편안하지는 않을 것이다.
가뭄이 자심한 이 때,
물이라도 자주 주지 않았다면,
아마 열통이 터져 모두 화병(火病)으로 제 풀에 제 기를 어저지 못하고 자진(自盡)하고 말았 것이다.
내 이를 보다 못하여,
며칠 전 비닐을 북북 찢어 숨통을 틔어주었다.
이젠 작물이 어느 정도 자랐기에 풀이 자라도 문제가 되지 않을뿐더러,
풀이 자라지 않는 땅은 도시 미덥지 않다.
한편 비닐멀칭을 하지 않은 텃밭은 처음엔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차츰 풀이 자라자 어린 작물이 치이기도 한다.
이것을 가끔씩 적절히 다스려주었는데,
무엇보다도 물 주기가 편하고,
풀이 자람으로써 작물과 함께 경합하고, 상조(相助)하며,
어우러져 자라기에 건강하게 큼이 자랑이다.
게다가 풀이 나는 땅을 보면,
내 마음이 편안해지니 설혹 소출이 적어도,
까짓것 아무런 문제가 되지 못한다.
天地與我並生,而萬物與我為一。
(莊子)
“천지는 나와 더불어 같이 살아가며,
만물은 나와 더불어 하나니라.”
여인들은 왜 하나 같이 풀을 뽑아내는 일에 악착같이 대드는가?
저들을 두고 깔끔하다느니, 깨끗한 것을 좋아한다 하며,
사내 녀석들은 더럽고 지저분하다 이르는 까닭은 무엇인가?
내 진작 이에 대하여 소론을 편 적이 있는데,
최근에도 이에 대하여 새로운 생각을 키운 적이 있다.
이는 또 다음에 틈을 내어 적기로 한다.
(※ 참고 글 : ☞ 주리(主理)와 주리(主利) - 남녀의 code
텃밭엔 토종 식물이 많이 자라고 있다.
토마토, 가지, 오이, 참외, 호박, 동아박, 고추, 갓끈 동부, 조선파, 담배 상추, 너브내 상추 ....
이 모두 토종 일색이다.
나는 요즘 막 피어나는 가지 꽃에 이끌려 묘한 경지로 들어가는 경험을 한다.
가지는 꽃뿐이 아니라 몸체도 보랏빛이 도는데,
이게 보통 아삼삼한 것이 아니다.
보라색은 보통 욕망을 상징한다고 하는데,
아직도 욕심이 많이 남아 있는 것일까?
아니면 늙음을 서러워하며 옛 정취를 그리워함인가?
마치 선경(仙境)에 빠진 듯 선 채로 넋을 놓아버리고 마는 것이,
선사들이 좌탈입망(坐脫立亡) 한다고 하는,
바로 그 경지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저들이 해탈을 합네 하며 요란뻑적지근하게 엄살을 떠는데,
우리 같은 속인들이 보기엔,
보랏빛 우주 속으로 풍덩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싶다.
저들이 一切法自在悅樂을 느끼든 말든,
나는 오늘 내 조그마한 가지 텃밭에서,
보랏빛 열락(悅樂)에 빠지고 만다.
내 이를 선사 열둘의 좌탈입망 법열(法悅)하고도 바꾸지 않으리.
올 봄 토종 씨앗을 은퇴를 앞둔 한 분에게서 수십 종 받았다.
한 카페에, 애초 토종 씨앗 두엇을 구한다 청을 넣었는데,
이 분께서 몇 차례이고 자진하여 수십 가지 토종 씨앗을 보내주셨다.
매번 씨앗 봉투를 가지런히 열을 지어 백지에 붙여 보내주셨는데,
그 정성이 나 같은 얼치기 농부에겐 실로 막감당이었다.
이 분께선 나 같은 이라면 얼마든지 더 나눠주고 싶었다고 하셨다.
그 너른 마음에 축복이 있으시이라.
이 분께 조만간 블루베리 한 상자를 보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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