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gta      

무하유지향(無何有之鄉)

농사 : 2019.04.01 18:43


오늘날의 사과나무를 보면,
대부분 지지대에 묶인 채, 소위 세장방추형으로 키워지고 있다.
가지는 유인줄에 묶이거나 E자 클립, 유인추에 속박 당하기 일쑤다.

저것은 도대체가 평화로운, 자연스런 사과나무가 아니다.
외발로 곧추 서서, 마치,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 형상을 하고 있지 않은가?
빨간 사과에 눈을 팔 일이 아니다.
저리 기둥에 꽁공 매어 옴짝달싹도 하지 못하고 있는 가련한 처지가 보이지 않는가?

(출처 : 농진청)


농부들은 다수확에 명줄을 걸기에,
밀식재배를 넘어 초밀식재배도 마다하지 않고 있으며,
사진에서 보듯이 땅에다 은박지나, 타이벡을 깔아,
조사(照査) 광량을 늘려 광합성을 늘리고자 꾀한다.
마치 악동들이 거울로 여선생 치마 밑을 비추듯,
과일들도 부끄러움과 수치심을 느끼지나 않을까 싶다.

도대체 어둔 땅에서도 빛이 나오니,

식물이 어찌 편안히 살아갈 수 있으랴?

아랫도리는 은밀한 곳에 숨겨, 이로써 곱고 깊은 덕을 기름이라,

헌데, 이리 깨어 일으켜 세우며 광합성을 하라 채근하며, 몰아세우니,

어찌 식물이 숨돌릴 틈이 있겠음인가 말이다.  

이리 시설재배로 나아가자,
과수 농사에서 설혹 수확량이 늘어난다 할지라도,
투자비용과 노동력 투하량도 덩달아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가령, 사과농사는 아직까지는 수입이 만만하여,
신규 참입자가 늘어나, 재배면적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이에 따라 과일 가격이 떨어지니, 
더욱 시설 투자에 집중하여 경쟁력을 높이려 부심하고 있다.

(출처 : sericulum)

위 사진은 실생재배를 통하여 기른 사과나무다.
오늘날의 사과처럼, 지지대나, 유인줄에 시달리지 않고,
본래의 제 품성대로 자라면, 저리 풍성하고, 의젓한 자태로 자라게 된다.

다른 과수도 마찬가지지만,
오늘날 과수원은 고단위 시설 채비를 갖추고,
다량의 비료가 투하되고 있다.
이에 따라 수확량이 늘어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럴수록 농민들의 투자 비용이 늘어나,
한시도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한 채, 영농행위를 이어가고 있다.
공장에서 일하나, 밭에서 일하나,
톱니바퀴에 치여 돌아가는 것은 매한가지다.

사과나무는 수령 60년이 되어도 잘 자라고,
위 사진과 같이 여유로운 모습으로 제 품위를 지킨다.
저 아름다운 사과나무 밑을 지날 때,
어찌 감탄사를 발하지 않을 사람이 있으랴?

하지만, 오늘날은 대부분 작업의 편리성을 꾀하고자,
왜성(矮性) 나무를 지향하기 때문에,
유인, 과도한 전지를 자행하기에 생리, 경제 수명이 급격히 떨어져,
15년 정도면 뽑아내고 다시 식재를 한다.

나무에 전지를 하면,
나무를 건강하게 한다고 말하는 이도 있으나,
이 모두 엉터리 말이다.
전지는 나무를 건강하게 할 목적보다,
소출을 증대하기 위한 것이라,
외려 자연스런 본성을 거스리고,
외형을 변형시키며, 쥐어짜내는데 혈안이 되어 있다.
하기에 나무들은 쉬이 노화되어,
저처럼 15년 만에 잘라버리지 않으면,
더 이상 농부가 만족할 만한 수확을 할 수가 없게 된다.
그 누가 있어,
전지가 나무를 건강하게 한다고 말하고 있는가?

전지를 하지 않으면, 시장의 소비자 욕구를 충족시키기 어렵다.
소비자는 크고, 맛있는 것만 추구한다.
(그런데, 과연 크고 맛(단 것)있는 것이 좋은 것인가?
이에 대하여는 저 아래에 다시 한번 논할 것이다.)
하여, 농부들은 꽃눈을 마구 제거하고, 가지를 잘라내며,
나무에 무리가 가는 짓을, 거리낌없이 자행한다.

(나의 경우 죽은 가지를 정리하거나,
수지상(樹枝狀)이 너무 복잡하여 엉키는 경우,
이를 적절히 정리하기 위해 개입하는 등,
제한적으로 전지를 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게다가, 농장내 일부 구역은,
나무가 스스로 자라도록 그냥 내버려 두기도 한다.)

이는 마치 오늘날 50일 정도 키우고는,
바로 도축하는 병아리와 무엇이 다른가?
닭은 본디 10여년은 너끈히 자라며,
경우에 따라서는 20~30년 수명을 유지한다.

도대체 50여일만에 생을 마감 당하고 말다니,
이 얼마나 끔찍하고, 무서운가?
닭의 경우엔 좀 덜하다지만, 돼지, 소 등엔,
성장호르몬을 투하하여 단기간에 성체를 만드는 짓을 꾀하기도 한다.

이런 종류의 약제는, 
열매 과일이나 소채에도 투하된다는 것은,
알만한 사람은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다.
게다가 일부 과일에 착색제도 뿌려지고 있으니,
삿되고도 삿되구나.

(※ 참고 글 : ☞ 성장촉진제)

식물에 대하여는 사람들이 직감적 감수성을 느끼지 못하여 그렇지만,
내가 농부가 되어 유심히 관찰하여 보니,
축산 동물들에게 행해지는 흉악한 짓들이,
여축없이 식물들에게도 자행되고 있다.
동물들에게 가해지는 단미(斷尾), 절훼(切喙,부리 자르기)는,
식물의 전지와 거의 같으며,
성장호르몬, 착색제, 항생제 투여 역시,
동식물 간 아무란 차이가 없이 자행되고 있다.

채소나 과일의 함유 영양 성분에 있어,
과거와 현재 사이엔 큰 차이가 있다는 연구 결과는, 국내에 일부 알려져 있다.
이제, 이 부분에 대하여 조금 자세히 검토를 해보며,
큰 것, 단 것만을 찾는 소비자 기호에 대한 반성적 성찰을 촉구하고자 한다.
아울러 생산자인 농부들 역시 관행을 무작정 좇지 말고,
윤리적이며, 건강한 농산물 생산을 조금씩이나마 모색하길 바란다.

시비(施肥)에 따른 연구 결과,
수확량과 미네랄 함유량 사이엔 역의 비례관계가 있음이 밝혀졌다.
이를 희석효과(dilution effect)라 부르는데,
여기 재미있는 연구 자료 하나를 소개한다.

(출처 : Declining Fruit and Vegetable Nutrient Composition)

인을 토양에 투입한 경우 8개월 후, 
아니 그런 경우에 비해 확실히 인의 양은 증가하였다. 
하지만, 그외의 성분 함량은 외려 줄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대저, 세상일이란 일득일실(一得一失), 일실일득(一失一得)인 게라.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고,
하나를 잃으면 하나를 얻게 되는 법이다.

(출처 : Declining Fruit and Vegetable Nutrient Composition)

밀의 경우, 6가지 미네랄을 측정하였다. 
백년에 걸쳐 해마다 이들 성분은 0.20%~0.33%/yr 감소하였다
그러니 결국 백년 동안에 20%~33% 감소한 폭이다.

과연 그렇다면, 그 동안 밀의 품종개량은 다 무엇이란 말인가?
허울만 좋았을 뿐, 실질 밀의 영양성분은 대폭 감소하였으니,
이야말로 사람을 속이는 짓이라 하겠다.

惠子謂莊子曰:“吾有大樹,人謂之樗。其大本擁腫而不中繩墨,其小枝卷曲而不中規矩,立之塗,匠者不顧。今子之言,大而無用,眾所同去也。”莊子曰:“子獨不見狸狌乎?卑身而伏,以候敖者;東西跳梁,不辟高下;中於機辟,死於網罟。今夫斄牛,其大若垂天之雲。此能為大矣,而不能執鼠。今子有大樹,患其無用,何不樹之於無何有之鄉,廣莫之野,彷徨乎無為其側,逍遙乎寢臥其下?不夭斤斧,物無害者,無所可用,安所困苦哉!”
(莊子 逍遙遊)

혜자가 장자에게 말한다.

“내게 큰 나무가 하나 있는데, 사람들은 그를 가죽나무라 부르네.
그 큰 줄기는 울퉁불퉁하여 먹줄을 매길 수가 없고,
작은 가지는 말려 구부러져 있으니 자로 잴 수도 없다.
  (※ 繩墨 ... 規矩 ... : 
      規矩準繩 : 컴퍼스, 자, 수평, 먹줄을 뜻한다.
      예전 목수들은 이 네 가지 도구로 목재를 재고 마름질 했다.)
길가에 서 있다한들 목수가 쳐다 보지도 않네.
크지만 소용이 없으니, 
세상 사람들은 모두 하나같이 지나치고 만다네.”

장자가 답하여 말한다.

“그대는 살쾡이를 본 적이 없는가?
몸을 낮춰 엎드리고는 어슬렁거리는 짐승을 살펴 기다리지.
동서로 날뛰고, 높고 낮은 곳을 가리지 않다가,
덫에 치이거나 그물에 걸려 죽는다.
대저 서우(斄牛)는 커서 마치 하늘에 드리운 구름과 같다네.
그렇지만, 크다한들 쥐 한 마리도 잡지 못하지.
이제 그대가 큰 나무를 가지고도 쓸모가 없다고 걱정한다면,
어째서 탈속한 곳이나 드넓은 광야에 심고,
그 곁에서 무위 자재하니 거닐고, 
그 아래 누워 소요유(逍遙遊)하지 않나뇨?
그 나무는 (쓸모가 없으니) 도끼로 잘리지 않고,
무엇이든 해치지 않는다네.
소용되는 바가 없으니,
어찌 곤경에 처하거나 괴로움이 있을손가?”

전지하면 나무가 건강해진다든가,
비료를 주면 나무가 잘 자란다라는 말 따위는,
인간의 관점에서 쓸모가 있다라는 것을 지적하는 것일 뿐,
나무가 진정 이를 달게 받아드린다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저 장자에 나오는 가죽나무는 쓸모가 없음으로써,
인간에 의한 폭력에 시달리지 않고 제 품성을 장구히 지킬 수 있다.
하지만, 오늘날 사람들은 도대체가,
인간에게 쓸모가 없는 것을 그냥 내버려 두지 않는다.
조금이라도 쓸모가 있을 양 싶으면,
최대한 쥐어짜내서 네 욕심을 채운다.
아마 저 가죽나무도 현대인을 만나면,
없던 쓸모도 억지로라도 새로 쓸모가 있게 변용되며,
갖은 시달림을 당하며 곤욕을 치루게 될 것이다.

1960~1970년대는 소위 녹색혁명이 일어나,
비약적으로 곡물 생산량이 늘었다.
하지만, 곡물의 영양성분 함량이 매년 낮아지고 있다면,
곯는 배를 양적으로는 채웠지만,
그 대가로 영양 구성이 열등한 것을 먹고 있었단 말이 된다.
오늘날 현대인에게 만연한 성인병은,
실로 이러한 식품의 질적 열악화 (경향傾向) 때문에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은 아닌가?

곡물, 과일, 채소는 품종 개량이 이뤄진다하더라도,
일차적으로 소출 증대에만 집중하기 때문에,
희석 효과에 의해 영양 성분의 감소가 지속적으로 일어난다.
건량 기준으로 이들 소출 결과물의 80~90%는 탄수화물이다.
품종 개량의 목표 역시 탄수화물의 증량에 집중된다.
따라서 주요한 영양 성분은 상대적으로 더욱 줄어들게 된다.

공연히 쓸데없이 과도하니 큰 것을 탐하지 말지라.
(※ 참고 글 : ☞ 성장촉진제)

혹 영양 성분을 주목한다 하더라도,
개량시 단일 성분 위주에 초점이 맞춰지기 때문에,
영양 성분 감소 경향을 저지하지 못하고 있다.

가령 사과를 예로 들자면,
소비자들이 단(糖) 것 위주로 찾자,
시장에서 신(酸) 품종들은 자취를 감추게 되었고,
자연스레 재배지에서도 단 품종만이 키워지고 있다.
그러함이니, 희석효과에 따라, 점점 다른 영양 성분 함량은 대폭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출처 : Historical changes in the mineral content of fruits
and vegetables - Anne-Marie Mayer)

20 종의 채소와 20종의 과일,
1930년대 비 1980년대 미네랄 함량 평균 비율.

오직 물만이 1.0을 넘었다.

지금 현대 농업을 두고 최첨단 운운하지만,

이 자료를 보면 허울만 좋은 짓인 것을 알아 챌 수 있을 것이다.

(출처 : Historical changes in the mineral content of fruits
and vegetables - Anne-Marie Mayer)

 

1930년대 비 1980년대 미네랄 함량 평균 비율

채소의 경우엔 Ca, Mg, Cu, Na,
과일의 경우엔 Mg, Fe, Cu, K가 유의미하게 줄었다.
Cu는 채소의 경우 1/5로 대폭 줄었다.
P만이 큰 변화가 없을 뿐이다.
과일의 경우 수분은 크게 증가하였으며,
건량은 대폭 줄었다.

(출처 : Historical changes in the mineral content of fruits
and vegetables - Anne-Marie Mayer)

1930년대만 하여도 화학비료는 사용되지 않았다. 
똥이나 퇴비가 비료로 사용되었을 뿐이다. 
전후에 큰 변화가 생겨 농부들은 화학비료와 농기계에 의지하기 시작하였다.
토양은 경반화되었고, 여기 다시 경운을 반복하였다. 
이에 따라 미네랄이 적은 식재료가 생산되었다. 
이는 또한 토양 구조, 생태 환경을 변화시켰다. 
토양 미생물과 식물 뿌리 사이에서의 당, 미네랄 교환 작용이 일어난다. 
토양 미생물이 흡수할 수 있는 인이나, 질소화합물이 현격하게 줄어들었다.
토양의 염류집적, 잔류 농약 등으로 토양은 오염되었고,
결과적으로 채소나 과일에 미네랄 함유량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못 생긴 나무가 산을 지킨다.”

이젠 세상 어디를 가서 찾아도 못 생긴 나무가 없다.
모두 인간의 욕심에 의해 쓸모있는 것으로 동원되고 있다.
온세상이 그 잘 난 나무로 채워지고 있다.
물론 이는 인간의 관점이지,
저들 나무가 이를 원한다 할 수 없다.

게다가, 과연 저것이 인간에게도 쓸모가 있는 것인가?
아니면 돈을 만드는데만 필요한 것이 아닌가?
상인들에게만 소용이 되는 것이 아닌가?
단 것, 큰 것만을 추구하는 소비자들의 욕망을 만족 시킬 뿐,
결코 건강을 담보하지는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못난 나무가 사라진 세상.
이제 산은 누가 지킬 것인가?

무하유지향(無何有之鄕)

장자(莊子)가 말한, 
그 어떠한 인위도 없는 자연(自然)의 고향은 이젠 찾고자 하여도,
세상에 남아 있지 않다.


다만, 내 마음 속의 고향, 
그리고 여기 연천의 을밀 블루베리 농장은 無何有之鄉,廣莫之野일지니, 
내 예서 소요유(逍遙遊)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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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9.04.05 21:25 PERM. MOD/DEL REP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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