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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우와 청계천 상가

소요유 : 2020. 2. 4. 23:53


한우와 청계천 상가


한우 가격이 너무 비싸, 

이것 서민들이 먹기 어려울 지경이다.


왜, 이리 비싸졌는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여긴 잘못된 축산 정책이 제일 크다고 생각한다.

농업도 마찬가지지만, 축산업도, 

소농은 없애버리고, 대농 위주로 판을 짜려는 정책 기조가,

관리들의 마음에 꽉 채워져 자리 잡고 있다.

이에 따라 소농은 설 자리를 잃고,

농지에서 떨어져 나가고, 쫓겨나고 있는 실정이며,

자본이 들어와 속속 접수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하방 가격 탄력성이 낮아져,

도무지 한우 가격이 한 번 오르면 내려갈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사정에 대하여는 내가 전에 쓴 글이 있으니,

다시 재론치 않기로 한다.

(※ 참고 글 : ☞ 큰 놈)

아울러 다음 글은 이 주제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의 길로 안내할 것이다.

(※ 참고 글 : ☞ 소농, 이것이 진짜 혁명이다)


박원순이 청계천 상가를 재개발한다고 밀어붙이자,

다시 갈등이 일어나고 있다.

그 무지막지한 삽질 이명박이 재림이라도 한 것인가?

재개발은 백년대계의 준비가 없다면, 신중하여야 한다.

무엇보다, 지주, 입주 상인이 배제된, 

외부 시행사에 의한 개발은 나는 더욱 반대다.


나는 어려서부터 이곳을 이용하였다.

대학교 1학년 때, 동기 하나는 이곳을 능숙하게 돌아다니며,

부품을 수배하여 멋진 앰프를 조립해내었다.

쫓아다니긴 하였으나, 나는 아는 바가 하나도 없어, 지켜만 보았을 뿐이다.


후에, 이력이 붙자 나는 이곳을 자주 이용하였다.

회로를 설계하여, 아트워크(artwork)를 만든 후, 

전문 점포를 찾아, 프린트 기판을 주문하기도 하였다.

써니전자는 수정 진동자(crystal oscillator)업체인데,

당시 나는 실험용으로 이 역시 세운상가 점포를 통해,

설계한 주파수대로 깎아줄 것을 부탁한 경험이 있다.

실험에 쓰이는 트랜스포머(transformer) 역시 이곳에서,

bridge diode, capacitor 등 부품을 사서,

여러 개를 직접 제작하여 사용하기도 하였다.

일본 oki에선 당시 첨단 음성합성(voice, speech synthesis)칩을 만들어내었는데,

나는 이 또한 입수하여, 음성만으로 통제 가능한 제어기기를 구축하기도 하였다.

이는 청계천 그 조그만 점포가 없었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 외에도, seven segment, infra red diode, logic, microprocessor ... 등등

필요한 부품을 불편없이 구입하여 연구를 하였다.


이런 추억이 깃든 곳이 재개발이 되면,

필경은, 재벌들이 싹쓸이를 하여 거대한 빌딩을 짓고 말 것이다.

지금 종로통을 가보라.

오목조목한 건물들이 다 쓸려 나가고,

이젠 괴물과 같이 큰 빌딩이 위압적으로 서있다.

그 빌딩은 이젠 감히 접근하기도 주저될 정도로,

자본을 뽐내며, 소시민을 내리 굽어보고 있다.


3~4평에 불과한 소규모 점포들은 그저 단순한 경제 단위가 아니라,

수십 년 기술이 축적된 생태환경의 기초 단위인 것이다.

이들을 싹 쓸어내고 큰 빌딩을 짓는다면,

시행자인 재벌들은 돈을 벌 수는 있겠지만,

자생적 기술 생태환경은 완전히 파괴되고,

소규모, 그러나 고재(高才) 기술 인재들은 거친 황야(荒野)로 쫓겨나버리고 말 것이다.


마치, 단일 품종 재배를 위해,

전 밭에 제초제로 풀을 제압하고,

비료를 쏟아 붓고, 농약을 퍼부어,

단 하나의 식물 외엔, 모두 축출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로써, 땅엔, 생물 다양성이 파괴되고,

단일 작물만이 인간의 욕망을 위해 사육 당하고 만다.

이 어찌 흉측한 노릇이라 하지 않을 수 있는가?

이에 대하여는 내가 이미 여러 번 글을 쓴 적이 있다.

그 중 하나를 여기 되새겨둔다.

(※ 참고 글 : ☞ 흉장만상(胸藏萬象))


욕망의 폭주 열차를 탄 이들은,

새로운 것은 얼마든지 만들어낼 것이지만,

오래된 것은 한 번 없애버리면, 다시는 되살려낼 수가 없는 법.


溫故而知新,可以為師矣。

(論語)


여기 溫은 따뜻하다는 뜻 외에 익히다 학습하다는 뜻을 갖는다.

그런즉 溫故란 옛것을 익힌다는 뜻이다.

익히려면, 그 온전한 이치를 다 꿰뚫어야 한다.

그리한 후에라야, 새 것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때라서야 스승이 될 수 있다 하였다.


古今不知,稱師如何?


“고금을 모르는데, 어찌 선생이라 이를 수 있겠음인가?”


그러함이니, 옛 것을 무시하고서,

과연 스승이 있다 할 수 있음인가?


옛 것이라 무작정 깔아뭉개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이는 역사를 허무는 짓이요, 앎의 토대를 잃어버리는 짓임을 알아야 한다.

나아가 제 본성을 돌보지 않는 일인즉,

어찌 새 것이 제대로 들어 찰 수 있겠음인가?


아아, 그러나,

이미 온고지신하는 이는 싹조차 남아 있지 않고,

덕을 아는 자 역시 찾아보기 힘든 시절이 아니런가?


박원순은 점점 초심을 잃더니만,

이젠 급속히, 권세와 돈에 마음을 앗기고 있다.

그 역시 가짜에 불과하였는가?

그의 각성과 개심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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