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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오강호(笑傲江湖)

소요유 : 2020. 5. 7. 12:57


소오강호(笑傲江湖)


소오강호는 김용(金庸)의 소설 중 대표적인 작품이다.

이를 기초로 영화, 드라마로도 여러 번 제작되었었다.

나 역시, 이를 여러 번 대하였다.

내게 시간이 많이 남아 있다면,

김용의 신필(神筆)이 펼치는 그 기기묘묘(奇奇妙妙)의 세계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

그와 함께 노닐고 싶다.


(笑傲江湖)


오늘은 소호강호 작품에 자체 대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소호강호가 무슨 뜻인지는 먼저 살펴두고 본론으로 들어가고자 한다.


강호(江湖)란 말은 원래 장자(莊子)가 그 출전이 되겠다.

여러 곳에 나타나는데, 그 뜻을 처처에 따라 달리하고 있다.


지금 소호강호를 앞에 두고 있는 즉,

장자 가운데, 그 뜻을 밝힐 대목을 꺼내 들고 다시 음미하고자 한다.


市南宜僚見魯侯,魯侯有憂色。市南子曰:「君有憂色,何也?」魯侯曰:「吾學先王之道,修先君之業,吾敬鬼尊賢,親而行之,無須臾離居,然不免於患,吾是以憂。」

市南子曰:「君之除患之術淺矣。夫豐狐文豹,棲於山林,伏於巖穴,靜也;夜行晝居,戒也;雖飢渴隱約,猶旦胥疏於江湖之上而求食焉,定也。然且不免於罔羅機辟之患,是何罪之有哉?其皮為之災也。今魯國獨非君之皮邪?吾願君刳形去皮,洒心去欲,而遊於無人之野。南越有邑焉,名為建德之國。其民愚而朴,少私而寡欲;知作而不知藏,與而不求其報;不知義之所適,不知禮之所將;猖狂妄行,乃蹈乎大方;其生可樂,其死可葬。吾願君去國捐俗,與道相輔而行。」


君曰:「彼其道遠而險,又有江山,我無舟車,奈何?」市南子曰:「君無形倨,無留居,以為舟車。」

君曰:「彼其道幽遠而無人,吾誰與為鄰?吾無糧,我無食,安得而至焉?」市南子曰:「少君之費,寡君之欲,雖無糧而乃足。君其涉於江而浮於海,望之而不見其崖,愈往而不知其所窮。送君者皆自崖而反,君自此遠矣。故有人者累,見有於人者憂。故堯非有人,非見有於人也。吾願去君之累,除君之憂,而獨與道遊於大莫之國。方舟而濟於河,有虛船來觸舟,雖有惼心之人不怒;有一人在其上,則呼張歙之;一呼而不聞,再呼而不聞,於是三呼邪,則必以惡聲隨之。向也不怒而今也怒,向也虛而今也實。人能虛己以遊世,其孰能害之!」

(山木)


“시남의료(市南宜僚)가 노나라 왕을 뵈었을 때,

노왕은 근심의 빛을 띄었기에 시남자가 여쭈었다.


‘왕께서는 근심의 빛이 계시오니, 무슨 까닭이오니까?’


노왕이 말했다.


‘나는 성왕의 도를 배웠고,

선군의 공을 닦으면서,

귀신을 공경하고, 현인을 존중하며, 

친히 행하면서, 잠시도 떠나지 않았음에도,

환난을 면치 못하고 있으니, 

그래 근심하고 있는 것이오.’


시남자가 말했다.


‘왕께서는 환난을 없애버리는 방법이 너무 얕으십니다.

저 털이 복실한 여우나, 무늬가 아름다운 표범이,

산림에서 깃들고, 바위 구멍에 엎드려 있음은,

고요함을 지키기 위함입니다.

밤에 돌아다니고, 낮에 가만히 있음은, 

조심하기 위함입니다.

비록 굶주리고, 목이 마르고, 괴롭더라도,

외려, 멀리 떨어진 강호에 나가 먹을 것을 구하는 것은,

정해진 바입니다.


그런데도, 또 그물, 덫의 환란을 면치 못하니,

이것이 어찌 죄가 있어서 그런 것이겠습니까?

그 가죽이 재앙을 만드는 것입니다.


지금 노나라는 왕의 가죽이 되고 있지 않습니까?

원컨대, 왕은 형체를 깨뜨리고 가죽을 버리며, 마음을 씻어 욕심을 버린 채,

사람이 없는 들에서 노니소서.

.......’”


강호(江湖)의 뜻을 이리 적실하게 새긴 것은,

장자의 이 대목이 압권이라 하겠다.


아무리 고요함을 지키고, 조심하면서 살려 하여도,

갖은 술수가 난무하고, 위험이 도사린 강호로 나아가,

먹을 것을 구할 수밖에 없는 살아있는 생명들의 명운(命運)이라니!

본문에선, 이를 그저 단순히,

定也。라 표현하였다.

번역도 ‘정해진 바’라 짧게 하였지만,

이것은 실로 상당한 무게를 가진 말이다.

벗어날 수 없는 숙명을 일컫고 있음이기 때문이다.


이 강호에는 표범의 아름다운 무늬가 그려진 가죽을 취하기 위해,

그물과 덫이 겹겹이 펴져 있다.

강호에 든 이는, 굶주림과 허갈로 고통 속을 헤맨다.

헌데, 이를 면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욕심이 일어,

필요 이상으로 타자의 가죽을 취하려 혈안이 되어 있다.


이런 실상의 세계가 바로 강호(江湖)다.


내가 앞서 인용한 글을 모두 다 번역하지 않았는데,

나머지 부분도 천하의 명문이다.

갈 길을 가야하기에, ‘강호’가 나오는 전후만 새겼을 뿐,

모두 다 소개하지 못하는 것이 유감이다.


그런데, 왜 하필 강산(江山)이나, 산야(山野)도 아니고, 강호(江湖)일까?

강호(江湖)는 강(江)과 호(湖)의 합성어다.

강과 호수.

협의로는 장강(長江)과 동정호(洞庭湖)를 지칭하기도 한다.

소호강호에서 강호는 천하에 있는 강과 호수를 뜻하며,

(※ 중국엔 강과 바다처럼 너른 호수가 적지 않다.)

더 나아가 이것들이 있는 세상 전체를 아우른다.


강호를 주남틈북(走南闖北), 유리표박(流離漂泊)하며,

그래, 그리, 온 세상을 떠돌며, 

사람들은 갈등 때리고, 번민하며, 은원(恩怨)을 잣는다.

그러다, 저녁 땅거미가 짙게 내리면, 한 잔 술로 시름을 달래기도 한다.


강호에선, 장사치가 설치고, 풍물 마당이 펼쳐지며,

노래하고, 비럭질 하는 등 온갖 일이 벌어진다.

그야말로 말 그대로,

형형색색(形形色色), 각행각업(各行各業), 삼백육십행(三百六十行)이,

이뤄진다.

이런 현장이 바로 강호(江湖)인 것이다.


자 그럼 소오(笑傲)는 무엇인가?

그저 소(笑)가 아니고 소오(笑傲)인 게다.


여기 오(傲)자는 오상고절(傲霜孤節)을 떠올리면,

그 자의(字意)를 잘 건져낼 수 있다.

이 글자는 오만하다는 뜻도 있지만,

불굴의 뜻을 세워,

절개를 굽히지 않고,

자신의 길을 걷는 모습을 연상하면,

이제 여기 등장하는 소오의 뜻을 바로 읽어낼 수 있다.


옛날 중국 무협 배우인,

왕우(王羽)를 기억하는가?

영화 외팔이(獨臂刀)의 주인공인 그 말이다.

그의 비웃는 듯한 미소를 기억한다.

냉소적 웃음은, 세상을 깔보는 듯하지만,

거기엔 깊은 우수가 깔려 있고,

홀로 명리(名利)에 초연한 기개와 자존(自尊)을 엿볼 수 있다.


(1976, 獨臂拳王勇戰楚門九子)


소오(笑傲) 역시 마찬가지다.

강호를 그저 교만하여 비웃는 게 아니다.

이 어지럽고, 일그러진, 욕망으로 가득한 세상.

홀로 오상고절 매화처럼 굿굿하니 절개를 지키자니,

저 비열한 이들을 향해,

손으론, 잡은 칼을 휘둘러, 응징하거니와,

얼굴엔 분노조차 없고 미소만이 흐른다.

분노를 보이는 것조차 저 악마구리들에겐 아깝다.

허나, 그 미소엔, 독존(獨尊)의 추상같은 기상이 서려 있음이다.

이게 바로 소오(笑傲)가 품은 함의(含意)다.


내가 최근 세제를 연구하게 되었다.

헌데, 제품 하나가,

거죽으로는 그럴싸하니 적혀 있지만, 의심이 들어 좀 세밀히 조사하여보았다.

가령 천연xx 100% ...

이런 문구가 있다할 때,

아, 얼핏 이거 좋은 것이구나 여길 수 있다.

그런데, 이게 영 엉터리인 것이,

천연 물질 100%란 말은 맞는다 처도,

제품 총 용량을 기준할 때, 가령 그 선전 성분이 고작 1%만 들어 있다 하면,

이것은 100%가 아니라, 1%만 들어 있을 뿐이다.


블루베리 음료도 매한가지다.

블루베리 엑기스 100%

이런 문구를 앞세워 선전하고 있으나,

기실 총 용량 기준으로 따져, 그것이 다만 1%만 섞인 것에 불과하다면,

저게 무슨 의미가 있겠음인가?

나머지는 구연산, 펙틴 등 식이섬유(食餌纖維)로 다 채워져 있기 일쑤다.


모두 사기질 치기에 여념이 없는 것이다.

100을 앞세워 1짜리가,

잔뜩 폼을 잡으며,

거드름 펴며,

온 세상 사람들의 가죽을 벗기려 하고 있는 것이다.


도대체, 식약청, 소비자 시민단체들은 무엇을 하고 있음이더냐?

하기사 식품 GMO표기도, 정부 당국이 나서서 막아내고 있는 실정이 아니던가?

2003년 그 뜨거운 열기를 기억하는가?

시민들의 열화와 같은 지지로 당선된 노무현.

그는 대통령이 되자,

권력은 시장에게 넘어갔다 이리 말하며,

그는 싸우기도 전에 창을 거꾸로 돌렸지 않았던가?

두어라.

우리가 사는 곳은 강호이지 않은가 말이다.

허나, 

아무리 그렇다한들,

소오강호(笑傲江湖)

이리 강호를 굿굿히 걸어가는 이가 어찌 없으랴?


사과 묘목은 다른 과수도 비슷하지만, 더욱 접목묘(椄木苗)가 일반이다.

실생묘를 심으면, 수확 시기가 길어지고, 알이 작아진다.

그러함이니 요즘엔 실생묘(實生苗)를 심는 농부를 찾을래야 찾을 수 없다.

(실생묘 : 씨앗을 틔워 얻은 묘)


사과묘를 두고, 실생묘라 하여, 내 기대를 하고 있었다.

한데, 실생묘라 이르는 묘목을 앞에 두고 보자하니,

접목 끈이 보인다.

하여 이게 어찌 실생묘인가 물으니,

대목이 실생이라는 것이다.

사과의 경우 대개 대목은 Mxx로 나아가는 것을 주축으로 삼되,

이것은 삽목으로 키워내진다.

헌데, 저것은 대목이 삽목으로 키워내진 것이 아니라,

실생으로 키운 것이란 뜻이다.

필요 접수(椄穗)를 접붙이는 것은 매 한가지다.


허니, 저것을 실생묘라 부른다는 것이다.

정확히 하자면, 실생대목(묘), 이리 일러야 옳을 것이다.

물론 업계 내에서 저 말이 언어경제절약 차원에서,

저리 유통된다 할지라도,

저것은 분명 하자 있는 말이라 하겠다.


나중에 저것이 뿌리를 깊게 내리게 되면,

말 뿐이 아니고, 문서화될 것이다.

그러자면, 거짓인 것이 참말을 대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기 힘들 것이다.

이리 되면, 업계를 불신하는 단초가 되고 말 것이다.

사뭇 경계하여야 할 노릇이라 생각한다.


세상은, 강호는, 대개 욕심쟁이들이 차고 넘친다.

豐狐文豹라,

털이 촘촘히 자란 여우 가죽, 

얼룩덜룩 아름다운 표범의 가죽을 노리고,

罔羅機辟이라,

그물 치고, 기관 설치하여,

타자의 멱을 따고, 살을 훑고, 뼈를 가르고, 가죽을 취한다.


아, 이제, 여럿 생각이 떠오르는 가운데,

정명론(正命論)을 생각한다.

나는 이에 대한 글을 여러 편 적은 적이 있다.

우선 그 중 하나를 다시 이끌어 둔다.

☞ 정명론(正名論)


故析辭擅作名,以亂正名,使民疑惑,人多辨訟,則謂之大姦。其罪猶為符節度量之罪也。


“그런고로 말을 분석하여 제 마음대로 설명을 만들어 이름을 혼란시키고, 

사람들을 의혹하게 하고 쟁송을 일으키는 것을 대간(大姦)이라 하는 것이니, 

이것은 부절이나 도량형을 속이는 죄와 같다.”


이름을 실질과 다르게 부르는 일을 두고,

순자는 부절이나 도량형을 속이는 죄와 같다 하고 있다.

이름으로써, 실질을 속이고, 사람들을 미혹에 빠지는 짓을 일러,

대간(大姦)이라 한다.

천하의 간사함이란 얼마나 그 죄가 무거운가?


유기농 재배를 한답시고,

잔뜩 폼을 잡지만,

슬그머니 화학 비료 넣고, 제초제 뿌리는 인간을 나는 안다.

자연재배라고 하지만,

진짜배기로 보이는 자를 만난 적이 거의 없다.

여기는 강호니까.


나는 이들을 일러 대간(大姦)이라 부른다.

나만은 소오강호(笑傲江湖)를 논할 수 있다.


何不樹之於無何有之鄉,廣莫之野,彷徨乎無為其側,逍遙乎寢臥其下?


無何有之鄉에 나무를 심고,

그 옆에서 산보하거나,

그 아래 그늘에 누워,

소요유할 뿐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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