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깻잎과 칼

소요유 : 2020. 10. 1. 15:59


깻잎과 칼


내가 농장 아랫녘에 이르자 문득 눈앞에 깨밭이 펼쳐지고 있었다.

결코 깨를 심은 적이 없지만, 매년 절로 맺고 뿌려져 (들)깨가 자랐다.

블루베리가 심어져 있기에 적당히 다스리기에, 그저 한 움큼 자랄 뿐이었다.

헌데, 올해엔 긴 장마로 인하여 미처 돌보지 못하였는데,

얼마 전 가보니, 놀라울 정도로 무성하여,

제법 너른 깨밭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잎은 작은 칼처럼 줄기마다 빼곡히 달려 있었는데,

겉으로 보기에도 단단함이 느껴질 정도로 빳빳하였다.

마침 바람이 살랑 불자,

서로 부딪혀 쨍그랑 쇳소리가 난다.

처음엔 은방울 소리 같더니만,

바람이 급해지자,

기어이 칼날 소리가 나고 만다.


아, 일순(一瞬),

깻잎과 칼이란 탄식을 절로 내지르고 말았다.


루스 베네딕트(1887~1948)가 지은 ‘국화와 칼’은 우리 때는 전공을 하지 않는 이라도,

교양 필수 도서로 읽고는 하였다.


그가 국화와 칼을 대비시키며,

이 상징 지시어를 빌어 일본인들의 이중적 심리, 문화 상태를 그려냈듯이,

나는 여릿하게 부드러운 잎을 두고 뜬금없이 칼을 연상하고 있음이다.


일반 밭에서 기르는 들깻잎은 크기도 크지만,

벌레가 잎에 구멍을 숭숭 내놓고 있다.

비료빨로 큰 이들이라, 성체가 굳굳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 들깨 밭의 잎은 하나도 벌레 구멍이 난 것이 없다.

이제껏 한 번도 비료를 준 적이 없으니 씨앗은 필경 작게 열릴 것이다.

하지만 기(氣)가 충만하여, 과히 일당백이라, 

시중에 나도는 깨알이 아무리 크고 기름이 많이 나온다한들,

이 들깨의 강건함, 신성함에 결코 견줄 수 없을 것이다.


잠시 생각해본다.

혈기(血氣)가 좋다 하면, 

그저 건강이 좋다든가, 기운 찬 모습을 그리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血과 氣는 다른 개념어이다.

(※ 참고 글 : ☞ 영혈(營血)과 위기(衛氣))


한의학적으로 이 양자는 조금 혼동을 주기는 하지만,

정밀히 공부를 하다보면, 완연 그 차이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氣主煦之,血主濡之。

(難經·二十二難)

난경에 보면 이 양자에 대한 아주 함축적인 말이 나온다.


氣는 주가 따뜻하게 하는 것이고, 血은 주가 축축하게 하는 것이다.


이게 무슨 말인가?

氣는 기능 활동으로,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신진대사(新陳代謝)를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

신진대사란 낡은 것을 갈아 치우고, 새것을 펼친다는 뜻이다.

영양분을 에너지로 변환시켜 신체 곳곳에 운반하는 작용을 생각해보자.

엔진에 연료를 공급하고 이그니션 코일에 전기를 통하여 스파크를 일으키면,

연료가 타면서 에너지를 얻게 되고, 이내 열이 난다.

이 에너지로써, 피스톤을  왕복시키고, 크랭크축을 돌리니, 

이 일련의 전달, 변환 운동에너지가 궁극적인 기계적 목표 활동을 수행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생명체 내에 영양분을 태우면 에너지가 나오며, 열이 나게 된다.

(세포내 미토콘드리아 담당)

氣는 바로 이 에너지에 상당하니 氣主煦之란 표현이 참으로 적실하다 하겠다.

반면 血은 그 영양원으로써, 기질(基質)이 되니,

연료에 상당한다 하겠음이라, 

血主濡之로 표현한 것 역시 상당히 그 이치에 근리(近理)하다 하겠다.


(출처 : 網上圖片)


氣為血之帥、血為氣之母


하기에 氣는 血의 장수요, 血은 氣의 어미란 말이 나오는 것이다.

한의학에선 氣를 두고 血과의 관계를 보통 4가지로 나눠 설명하곤 한다.

生血, 行血, 攝血, 血為氣之母 

이 넷이 그것인데,

氣는 피를 만들고, 움직이며, 포섭하며,

거꾸로 血은 기의 어머니라는 것이다.


나는 오랫동안, 이 원리를 기초로,

남녀의 운동생리라든가, 나아가 심리학적 차이를 연구하였으며,

블루베리를 키우되, 비료 없이 재배가 가능한 이치를 궁구하였다.


오늘날의 현대 농법은 대개 血에 치중되어 있다.

하기에 늘 식물에 영양을 어떻게 하면 많이 흡수케 할까를 걱정한다.

특히 자본에 포섭된 현대인들은,

언제나 물량을 키우고, 돈을 취할 궁리에 여념이 없다.


허나, 이를 알 리가 있는가?

血屬陰而主靜。血液不能自行임이라,

즉 血은 음에 속하여 정적인 것임이라, 스스로 움직일 수 없는 것이다.

그러함이니, 血(영양, 비료)이 아무리 넘친다한들,

氣가 부족하면, 혈행(血行)이 제대로 일어날 수 없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폐기(肺氣)가 기를 널리 펴서 퍼뜨리고,

간기(肝氣)는 이를 정밀하게 흐르게 한다.

그런즉 氣가 부족하면 추동력이 약화되어, 

혈행(血行) 역시 지연되고 느려지게 된다.


氣가 체하면,

血 역시 뻑뻑하니 굳어 소위 어혈(瘀血)이 되고, 혈적(血積)이 쌓이게 된다.

오늘날 과잉 비료 투하로 인해,

식물체에 아질산염이 축적되어 건강에 위해가 됨은 바로 이 이치와 매 한가지다.

이에 대하여는 내가 기왕에 누차 언급한 적이 있다.

(※ 참고 글 : ☞ 블루베리를 풀과 함께 키우는 기본 이치 ⅳ (유기농의 허실))


陰血陽氣라는 말이 있듯이,

여자는 血이 主가 되고, 남자는 氣가 주가 된다.

그러하기에 여자는 살이 많고, 남자는 뼈가 세고 굵다.

한편, 여인네들은 월사(月事)로 인해,

피를 밖으로 쏟아낸다.

血이 脈중에 순환하고, 밖으로 유출이 되지 않는 것은,

氣의 섭혈(攝血) 작용 때문이다.

만약 기가 허하면(氣虛), 이 섭혈 작용도 약해져,

외려 각종 부인병이 생기게 된다.


오늘날 현대인들은 말단만을 추수(追隨)하기에 바빠,

사내 녀석들은 氣를 돌보지 않고, 血을 취하는데 욕심이 극왕(極旺)하니,

모두들 많이 먹어 암퇘지처럼 혈적(血積) 상태에 놓여 있다.

거꾸로 계집사람들은 血을 돌보지 않고, 다이어트에 목숨을 거니,

모두 혈허(血虛) 상태로 비실거리고 그저 입만 동동 떠 살아 있을 뿐이다.

게다가 일삼아 칼로 뱃살을 저며 내고, 뼈를 깍아내기에 바쁘니,

거죽은 자루 귀신같으나, 속은 수수깡 밭의 허깨비가 되고들 있음이다.


血과 氣가 적절히 조화와 균형을 이뤄야 하지만,

오늘날엔 넘치는 물자로 인하여,

영양 부족이 아니라, 과잉섭취로 각종 질병에 시달리고 있다.

이는 모두 과혈(過血)의 문제를 일으키는 근본원인이 되고 있다.

현대농법 역시 어혈빈기(瘀血貧氣)로 치우쳐,

내 눈엔 영 천박하기 짝이 없는 말단으로 치닫고 있어 보인다.


소위 탄소농법이라는 것도,

탄소만 강조하는 한, 한편으로 치우쳐 편협될 우려가 크지만,

오늘날처럼 질소 일방으로 심히 치우친 환경하에선,

외려 저런 편급한 태도가 덕이 되고 있는 실정이다.

(※ 질소-血, 탄소-氣)


하지만,

내가 직접 탄소농법의 요의를 캐가며,

여기 우리 밭에서 오랫동안 실험한 바,

저것은 결코 편급한 것이 아니라,

실로 도법자연(道法自然)이라,

‘도가 자연을 본받는’ 참된 모습의 하나란 깨우침에 도달하고 있다.


내가 우리 들깨 밭에서,

섬뜩하니 칼을 바로 떠올린 것은,

바로 저 작은 잎사귀에 서리는,

작렬하는 氣의 약동을 느꼈기 때문이다.


천기(天氣)를 오롯이 받아,

야무진 칼날을 벼려내어,

저리도 푸르게 빛을 발하고 있는 것이다.


장(壯)하다.


아, 그러함이나,

범인(凡人)들은 이 앞에 서도 이를 미처 알아보지 못할 것이다.

작고 볼품도 없으며, 

들깨를 짜봐야 기름도 별반 나올 것 같지 않으니,

이내 등지고 헤어져 발걸음을 돌릴 것이다.


염악도광(斂鍔韜光)


칼날을 감추고,

기백(氣魄)을 숨겼음이니,

천지간 나 홀로 저 아이들의 품격을 알아볼 뿐이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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