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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 성장

소요유 : 2020. 10. 7. 11:29


폭풍 성장


어떤 이가 있어,

자신이 기르는 식물이 폭풍 성장하였다고 자랑이 늘어진다.


어항에다 수경재배(水耕栽培)를 하는데 그리 되었다는 것이다.

수생식물(水生植物)도 아니고, 일반 식물을 물에 꽂아 키운다는 것이다.


여기서 용어 정리를 좀 하여야겠다.


수생식물은 연꽃, 수련처럼, 태생부터 물에서 자라는 식물을 뜻하는 것이다.

반면 수경재배란 본디 흙에서 자라는 식물을,

물에다 띄어 뿌리를 내려 키우는 농법을 말한다.


요즘 사람들이 영악스럽다 하여야할까?

욕심이 하늘 끝까지 치달아 그리 된 것일까나?

별별 요망스런 짓거리들을 벌이고 있다.


hydroponics

aquaponics 

aeroponics


따위가 그것들인데,

hydroponics는 수경재배 또는 양액재배(nutriculture)에 해당되고,

aquaponics는 아직 적당한 역어를 찾지 못하였다.

이는 aquaculture(수산양식)과 hydroponics(수경재배)를 합친 말인데,

한 편에서 물고기를 기르고, 그 똥물을 적당히 여과, 산화시켜,

식물 재배 베드로 돌리는 농법이다.

aeroponics는 뿌리를 노출시키고 간헐적으로 양액을 분무하는 방식이다.

이들은 모두 흙을 배제하고,

작물의 뿌리를 허공이나 물속에서 자라게 하는 것이다.


이외에도, 기술적으로 변형된 여러 방식이 개발되고 있다.

게다가 요즘엔 LED 발광원을 이용한 농법도 나타나고 있다.


나는 토경재배를 제외하고,

그 어떠한 방식도 요살스런 짓거리라 여긴다.

모두다 악덕(惡德)의 농법이라 생각한다.


저것들이 혹, 인류가 폭싹 망하여, 우주로 탈출한다 하자.

이제, 우주선 안이나 척박한 다른 별에서 살아가야 할 때,

혹 축적된 저런 연구 자료가 도움이 될 수는 있을까나?


수 만년 땅에서 자라던 것을,

이리 모진 곳으로 몰아 인간의 욕심을 채우고 있는 것이다.

아시는가?

개들을 좁은 울에다 가둬키우는 개백정 이야기들을.

그 좁은 울 바닥은 철망으로 되어 있다.

하여 배설물이 바닥으로 떨어지니 관리 품이 덜어진다.

하지만 평생 거기 갇혀 지내는 개 또는 닭들은,

발가락이 뒤틀리고, 굽어지는 등 변형되어,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니다.

저들은 그저 빨리 생을 마감하고 싶은 심정이리라.


허나, 저 개백정들은 말하리라.

사료를 조금만 주어도 살이 많이 찌고 잘 자라.

폭풍 성장한다고 기염 토하는 이과 무엇이 다르랴?


저 흉악한 물건을 뜬장이라 한다.

이들 농법 역시 뜬장 농법이 아닌가 말이다.

(※ 참고 글 : ☞ 뜬장 농법)


아아, 

살아 생지옥을 겪고 있음이니,

저를 꾸민 인간이란 얼마나 악독한가?


식물이라고 다르랴?

흙속에서 자라던 것이,

뿌리를 물속이나 허공중에 노출된 채,

과연 행복하게 산다 할 수 있으랴?


흙은 삼상이라 하여,

마냥 단단한 것만이 아니라,

액상, 기상, 고상의 세 가지 형태의 구조상을 이루고 있다.

이중 기상이란 토양엔 공극이 있어 공기가 품어져 있는 상태를 지칭한 게다.

물속엔 공기가 녹아있으나, 그 양에 있어 결코 토양을 따라 갈 수 없다.

하여 장마가 오래되어 작물이 물에 잠기면,

호흡을 하지 못하여 뿌리가 죄다 썩어 죽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헌데, 물속에서 키운다니 얼마나 무리가 따르겠음인가?

따라서, 저들 농법에선 물속에 공기를 불어넣거나,

용존 산소량을 높인 물을 공급하는 등 요란을 떨게 된다.

때로는 일부는 공기 중에 노출 시켜 호흡이 가능하도록 조치를 하기도 하지만,

물에 잠긴 뿌리가 과연 건강하겠음인가?


게다가, 앵약재배에선 적절히 프로그램된 처방에 따라,

화학 비료를 물에 녹여 정기적으로 공급한다.

이는 마치, 축생에게 겸자로 아가리 벌리고,

영양분이 적절히 처방된 사료를 강제로 투입하는 장면이,

연상되어 마음이 편치 않다.


우주의 뭇 생물은 함께 중생(衆生)임이라,

모두는 함께 살아가고 있음이라,

인간 외의 생명이라 저리 함부로 대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들 농법이, 첨단이니, 현대적이니, 과학적이니,

요란스레이 나팔을 불며 떠들어대지만,

식물의 고유 생태 환경을 거슬렸기 때문에,

이를 극복하기 위한 갖가지 교묘한 술수를 펴며,

저리 가여운 생물을 괴롭히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게다가, 저런 무리한 짓을 하기 위한 시설을 마련하느라,

엄청난 자본이 투하되어야 한다.


이런 무리한 짓엔 반드시 댓가가 따른다.

돈도 많이 들지만, 결코 생산물 가격이 싸지도 않다.

게다가 영양학적으로 충분함이 보증되지 않는다.


그런데, 이는 모두 저 짓을 저지른 인간이 감당하여야 할 것이니,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하지만, 저들 패악질에 스러진 중생은 무슨 죄가 있는가?

살생을 하면 팔열팔한지옥(八熱八寒地獄)에 빠진다 하였음인데,

저들은 이 말씀을 귀 열고 들어야 하리라.


이야기가 옆구리로 새었다.

폭풍성장 말을 잇자.


폭풍 성장하였다고 기염을 토하는 이가,

곧 수경재배라 하였음이니,

이리 이야기가 늘어졌다.


폭풍처럼 잘 자랐다?

어림없는 소리다.


물고기 배설물이나 분비물은 대개 암모니아다.

이게 박테리아에 의해 아질산염, 질산염으로 산화된다.

물론 이 과정엔 수 십일의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저 좁은 어항에선 작물이 분해된 질삼염에만 노출되지 않는다.

아직 분해되지 않은 암모니아는 그저 식물에겐 독(毒)일뿐이다.

(※ 참고 글 : ☞ 블루베리를 풀과 함께 키우는 기본 이치 ⅲ (질소 순환 - 화학식))


헌즉 일시 질산염을 흡수하여 돌발적으로 자랐다한들,

이것은 잘 자란 것이 아니고 웃자람 즉 도장(徒長)되었을 뿐인 것이다.

게다가 독성 물질을 흡수하였을 터이니,

저것은 인간이 섭취하였을 때,

외려 건강을 해칠 우려까지 있는 것이다.


저이가 아니더라도,

폭풍성장 운운하며 즐거워하는 농부가 적지 않다.

이는 아주 언짢은 현상인 것이다.


폭풍성장의 원인은 거지반 질소 과잉 섭취에 따른 결과일 뿐이다.

비료를 과도하게 뿌렸다든가,

저 문제의 경우처럼, 물고기 똥오줌에 바로 노출되어,

일시 과도 성장할 수가 있다.


이는 모두 위험한 것이다.

내 누차 이야기한 것이로되,

전작의 글을 다시 새겨본다.


채소나 과일 속에서 질산염(nitrate)의 형태로 축적이 되고,

이게 인체에 들어가면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이 화합물은 그 자체가 발암물질은 아니지만,

입 속의 침과 장의 박테리아에 의해서 아질산염으로 변화되며,

이것은 다시 몸속에 있는 물질과 결합하여 나이트로소어민이라고 불리는 화합물을 생성한다.

(※ nitrosoamine (=nitrosamines)

    미국[naitróusouəmìːn, -æmìn]

    영국[naitróusouəmìːn, -æmìn])


음식 속에서, 나이트로소어민은 아질산염(nitrites)과 이차적 아민(amines)으로부터 생성된다.

그런데 이는 어떠한 조건이 맞아야 한다.

가령 강한 산성 조건, 즉 인간의 위(胃) 속 같은 상태 조건을 만났을 때 생긴다.

그리고 높은 온도, 예컨대 튀김 같은 경우도 나이트로소어민 생성을 증가시킨다.

산성조건하에서 아질산염은 아질산(HNO2)을 형성한다.
아질산은 양성자(H+)를 받아 물과 니트로실 이온으로 나뉜다.


H
2
NO+
2
 → H2O + NO+.


니트로실 이온은 아민과 함께 반응하여 나이트로소어민을 만들어낸다.


1956년 두 명의 영국 과학자,

즉 John Barnes, Peter Magee는 디메틸나이트로사민(dimethylnitrosamine)이,

실험쥐의 간에 종양을 만들어낸다는 것을 보고하였다.

연구 결과는 나이트로사민 화합물의 90%가 암을 일으킨다고 본 것이다.


아아, 그러함이니,

그 누가 있어 폭풍 성장한다 자랑하면,

뒤도 돌아보지 말고, 그 자리를 떠나야 한다.


멀쩡한 식물을 물에다 키우겠다 하고,

이로써 떼돈을 벌겠다 한다면,

그를 경계하여야 한다.


혹, 그가 그로써 돈을 많이 벌 수는 있겠지만,

그로써, 죄 없는 중생이 갖은 고통에 시달리는 것은 용서할 수가 없는 것이다.


여기 시골 동네에도 아주 몹쓸 녀석이 하나 있다.

그 동안 강아지를 몇이나 결딴을 내더니만,

근래 또 한 마리를 들였다.

마당에다 그냥 묶어 두었는데,

강아지가 툭하면 하늘을 향해 목을 길게 빼고는,

엉엉 울어대고 있다.


아, 기러기 울어 예는 하늘처럼,

정말 너무도 처량하고나.

녀석의 절규는 애간장을 녹인다.


필시 누군가로부터 받아온 것이리라.

제대로 건사를 하지 않아 한데에 버려지다시피 방치되어 있다.

겨울엔 사람이 살지 않아,

강아지는 그 매서운 바람을 혼자 받으며,

생지옥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


참으로 녀석은 흉악한 놈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도저히 인간으로 보아줄 수 없다.


아마도 녀석이 다닌다는 교회의 교인들로부터 넘겨받았을 것이다.

넘기는 이는 손을 털고 한가로워지겠지만,

그리고 받는 녀석은 이로써 낯을 챙겨, 한껏 생색을 낼 수 있겠다.

하지만, 한데 버려진 강아지는,

도대체 왜 저리 모진 고통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가?


사마천(司馬遷)은

사기(史記)의 백이열전(伯夷列傳)에서 이리 말했다.


余甚惑焉,儻所謂天道,是邪非邪?

(※ 邪 : 보통은 '간사할 사'로 새기지만, 여기서는 '그런가 야'로 새기며, 耶와 통용된다.)


“나는 심히 헛갈린다.

천도(天道)는 과연 옳으냐 그르냐?”


도대체, 저리 패악(悖惡), 패덕(悖德)질을 하고도 사람 노릇을 할 수 있음이더냐?


문득 떠올린다.

이 둘은 매 한가지가 아닌가 말이다.

고물 할아버지 이야기가 여기에 있다.


☞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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