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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

소요유 : 2020. 12. 18. 10:38


자살


코로나19로 인해,

나라 경제는 물론이지만,

개인의 생활도 나락으로 떨어진 이들이 적지 않다.


형편이 어려워지면,

견디다 못해, 생을 스스로 마감하는 이들이 나타나게 된다.

최근대사에, 요즘처럼 환란(患亂)이 일어난 예는,

IMF 구제금융 사태를 들 수 있다.

그 때는 환란(患亂)이긴 하지만, 

환란(換亂)이라 하는 게,

더 옳을지도 모르겠다.


당시에 비하여,

지금 자살 소식은 아직 많이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임계점을 넘으면,

그와 못지않게 쏟아져 나오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있다.


아, 이게 아니다.

통계를 살펴보면,

매년 자살률은 IMF 당시보다 추세적으로 높아만 갔다.

현재 우리나라는 자살률이 OECD 1위다.

이제는 IMF 당시의 자살률을 훨씬 넘은 채,

태연히 잘도 살아들 가고 있다.

그러니, 새삼 코로나19로 인해 자살이 늘어난다한들,
새로운 충격 정보가 되지도 못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대한민국의 인구 10만명 당 자살률
연도
10만 명 당 자살률
총 자살자 수(연도별)
정부
비고
1983년
8.7 명
3,471 명
12대 정부
(전두환 정부)
1984년
8.7 명
3,498 명
1985년
9.3 명
3,802 명
1986년
8.6 명
3,564 명
1986년 서울 아시안 게임
1987년
8.2 명
3,425 명
1988년
7.3 명
3,057 명
13대 정부
(노태우 정부)
1988 서울 올림픽
1989년
7.4 명
3,133 명
1990년
7.6 명
3,251 명
1991년
7.3 명
3,151 명
1992년
8.3 명
3,628 명
1993년
9.4 명
4,208 명
문민 정부
(김영삼 정부)
1994년
9.5 명
4,277 명
1995년
10.8 명
4,930 명
1996년
12.9 명
5,959 명
1997년
13.1 명
6,068 명
12월 3일 IMF 사태
1998년
18.4 명
8,622 명
국민의 정부
(김대중 정부)
IMF 사태
1999년
15.0 명
7,056 명
2000년
13.6 명
6,444 명
2001년
14.4 명
6,911 명
2002년
17.9 명
8,612 명
2003년
22.6 명
10,898 명
참여 정부
(노무현 정부)
OECD 1위
카드 대란
2004년
23.7 명
11,492 명
2005년
24.7 명
12,011 명
2006년
21.8 명
10,653 명
2007년
23.7 명
12,174 명
2008년
26.0 명
12,858 명
17대 정부
(이명박 정부)
대침체
2009년
31.0 명
15,413 명
2010년
31.2 명
15,566 명
2011년
31.7 명
15,906 명
전세계 3위
2012년
28.1명
14,160명
2013년
28.5명
14,427명
18대 정부
(박근혜 정부)
2014년
27.3명
13,836명
2015년
26.5명
13,513명
2016년
25.6명
13,092명
13년간 OECD 회원국 자살률 1위
2017년
24.3명
12,463명
19대 정부
(문재인 정부)
OECD 자살률 2위로 하락
2018년
26.6명
13,670명
다시 OECD 회원국 자살률 1위
2019년
26.9명
13,799명

(출처 : namu.wiki)


내 경험으로는 그 때보다 지금의 상황이 더 엄혹하다 생각한다.

우선 오늘의 사태는 전지구적이라,

그 재해 타격의 범위가 넓고, 깊다.

빈부격차도 심화된 상태라,

사회경제적 약자들의 삶은 더욱 피폐(疲弊)되어 있다. 


문득 IMF 구제금융 요청(1997년 12월 3일 ~ 2001년 8월 23일) 당시를 생각하였다.

당시 프레시안 뉴스를 통해 자살자 급증 소식을 들은 적이 있다.

하여 관련 기사를 찾아보았다.


IMF위기후 단지 '죽고 싶다'고 생각했을뿐 아니라 실제로 많은이들이 자살을 행동에 옮겼다.

대검에 따르면, 1998년 1월부터 3월까지 석달간 2천2백88명이 자살을 했다. 하루 평균 25.4명이 자살을 한 셈이다. 이는 같은 기간의 교통사고 사망자 2천38명을 앞지르는 숫자였다. 자살자가 교통사고 사망자 숫자를 앞지른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출처 : pressian)


실제, IMF 환란 직격탄을 맞은 해인 1998년 한 해 자살자는,

남자 8911명, 여자 3547명 등 1만2458명으로 1987년에 비해 36.7% 증가했다.

위 기사는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시작된다. 


김대중대통령이 16일 막내 아들을 검찰로 출두시켰다. 김홍걸씨가 28억원의 자금수수를 시인한만큼 금명간 구속될 게 확실하다. 아들을 감옥에 보내는 김대통령은 지금 이 순간 대통령이기에 앞서 한사람의 아버지로서 많은 인간적 회한과 아픔을 느낄 것이다. 

...


헌데, 참으로 흥미롭게도,

오늘날에도 김홍걸의 활약은 여전하다.


김 의원은 지난 4.15 총선 전 재산공개에서 처 명의의 10억원대 상가 대지와 처 명의의 상가와 아파트 임대보증금을 누락한 혐의를 받고 있다. 김 의원은 이를 "실수"였다고 강변했으나 더불어민주당은 그를 만장일치로 제명됐다.

(출처 : viewsnnews)


김홍걸은 박근혜 탄핵 정국 당시,

여기저기 면판을 들이밀며,

그럴싸한 논리로 한참 의로운 양,

세상을 논(論), 아니 농(弄)하였다.

그리고는 2020년엔 더불어시민당(더불어민주당와 합당) 소속 국회의원이 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최근, 허위 재신신고 의혹을 이유로,

시민단체의 고발이 있었고,

검찰은 그를 기소하였다.


三年狗尾 不爲黃毛란 속담이 있다.


개꼬리 삼년을 묻어둔다한들, 

황모(족제비 꼬리)가 못 된다 하였는데,

도대체 사람들은 어이하여,

어제를 그리 쉬이 잊고,

그를 다시 소환하여 국회의원으로 만들고 있었던 것인가?


내 이러하니,

사람을 마냥 믿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소상공인, 자영업자들은 지금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져 있다.

헌데, 이들을 보듬고 살펴야 할 위정자들은,

권력놀음에 빠져 있으니,

저들은 외롭게 한쪽 귀퉁이로 구겨진 휴지처럼 버려져 있다.


자강자애(自彊自愛)


사람이란 고독한 존재다.

나라에 의존할 일 아니다.

그렇다 하여 가족에 기댈 것도 없다.

자강자애.

각자는 각자의 길을 갈 뿐인 것을.


그렇다 하여,

자신만을 챙길 일도 아니다.

自愛不自貴라,

자신을 아낄 뿐, 자신을 귀히 여기지 않는다 하였던가?


이것 자칫 해석하는 이에 따라서는,

不自貴를 自愛의 수단 조건으로 새기기도 한다.

그러니까 외부에 자신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인상을 주어야,

자기를 지켜낼 수 있다는 식으로 푸는 이가 적지 않다.


도덕경이란 책을 처세술로 대하면,

기실 얼마든지 이리 풀어낼 수도 있다.


是以聖人自知不自見;自愛不自貴。故去彼取此。


여기 원문의 마지막 부분 故去彼取此를 보면,

더욱 그러하다.

즉 저것을 버리고 이것을 취한다 하였은즉,

自貴를 버려야, 自愛를 얻을 수 있게 되는 폭이다.

하니까 不自貴가 自愛란 목적을 위해,

짐짓 밖으로 꾸며 펼쳐내는 짓거리로 기능한다.


藏之於內라,

노자의 도덕경엔 이런 기술적 장치가 전편에 걸쳐 깔려 있긴 하다.

내심을 숨기고는,

짐짓 아닌 척,

타자를 속임으로써,

실질 목표 가치를 획득해나간다.


(※ 혹자는 이를 두고 實事求是의 한 측면으로 이해를 하기도 한다.

물론 노자 전편이 모두 自愛不自貴식으로 暗謀 術手를 가르친다 할 수는 없다.

다만, 인용한 부분을 앞에 두면, 

나의 해석처럼 術이 道를 넘고 있는 현장을 바로 목격할 수 있을 것이다.

바로 말한다면, 노자엔 이 양자가 다 아우러져 있다 하겠다.

헌즉 마냥 道 일변으로 이 책을 대할 일은 아닌 것이다.

이를 경계하고자 한다.)


허니, 여기로부터 병가(兵家)가 나오지 않을 수 없다.

兵者,詭道也。

여긴 아예 노골적으로 천명하고 있다.

저들은 속이는 짓을 본령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실로, 노자는 병가의 시원(始原)이라 할 터.


노자는 道가 아니라, 

실인즉 詭道를 한껏 노래하고 있는 게 아닌가?

道法自然이라 하지만,

과연 도가 자연을 본으로 삼는 것인가?


人法地,地法天,天法道,道法自然。


人이 地를 본받고,

地가 天을 본받고,

天이 道를 본받고,

道가 自然을 본받는다 하였으나,

실인즉 자연이 아니라,

道法人이라,

인간의 법칙을 말하고 있는 게 아닌가 말이다.

그럴싸하니 천지, 자연을 끌어들이고 있으나,

기실 인간 욕망의 법칙을 그려내고 있는 게 아닌가?

故去彼取此。

그러니까,

저것을 버리고 이것을 취하고자,

셈판을 가슴 속에 숨기고 매양 수를 헤아릴 수밖에.


다시 돌아와 선다.

그래 그리 그렇게, 실질 효과가 나오는 게 현실일 수 있다.

하지만, 그리되면, 세상은 아사리판이 되고 말 것이다.

만인은 그리 자신을 거짓으로 꾸며 밖으로 드러내며,

제 획득 가치를 위해 타자를 속이고 말 것이다.


自愛不自貴


하지만, 自愛와 不自貴를 대등 실현 가치로 이해한다면,

不自貴는 결코 수단적 존재로 전락하지 않고,

당위의 지평 위에서 우리를 불러냄과 동시에,

실천 현장에서 장미꽃을 피워내고 있을 것이다.


‘여기 장미가 있다. 여기서 춤춰라.’

(Hic Rhodon, hic salta)


헤겔의 이 말을 앞에 두면,

마르크스가 뒤이어 차용하여,

‘여기가 로드스다 여기서 뛰어라.’라 외친 것보다는,

사뭇 혈관이 뜨겁게 달궈져 오른다.

내친 김에, 나는 슬그머니 自愛不自貴를 自貴不自愛로 도치시키고 만다.


자살은 유형에 따라서는 自愛의 표현 행동일 수 있다.

즉 사회적 통합에서 소외된 개인이,

자살을 통해 자신을 적극 구원하는 의식일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不自愛(不自殺)함은,

곧 自貴를 지키는 일이 될 것이다.


한편, 자살은 외적 표상 형식으로 보자면,

不自愛不自貴의 결정 행동으로 보인다.

사회적 결속도 깨지고, 가족도 와해된 차가운 겨울바람 앞에서,

외로운 이들이 용기를 잃지 말고 모쪼록 自愛自貴하게 되길 빈다.


‘여기 장미가 있다. 여기서 춤춰라.’


그대는 여전히 찬란히 빛나는 장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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