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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요우(逍遙遊)

AI : 2023. 3. 31. 15:24


영상을 보라.

연합뉴스에선 '머스크 등 IT 거물들 "첨단 AI 위험…개발 일시 중단하자" 일제히 서명'이란 제하로,
생성형 AI (Generative AI) 개발을 중단하자는 여론이 일고 있음을 보도하고 있다.

아직 AI를 맞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들이 많음을 알 수 있다.
혹은 이에 적극 대응하기엔 두려움이 앞서는 사람 역시 적지 않은 것이다.

나는 이게 기우(杞憂)라 생각한다.
열자(列子)엔 하늘이 무너질 것을 걱정하는 사람 이야기가 나온다.

杞國有人,憂天地崩墜,身亡所寄,廢寢食者。又有憂彼之所憂者,因往曉之,曰:「天,積氣耳,亡處亡氣。若屈伸呼吸,終日在天中行止,奈何憂崩墜乎?」其人曰:「天果積氣,日月星宿不當墜邪?」曉之者曰:「日月星宿,亦積氣中之有光耀者,只使墜,亦不能有所中傷。」其人曰:「奈地壞何?」曉者曰:「地積塊耳,充塞四虛,亡處亡塊。若躇步跐蹈,終日在地上行止,奈何憂其壞?」其人舍然大喜,曉之者亦舍然大喜。長廬子聞而笑之曰:「虹蜺也,雲霧也,風雨也,四時也,此積氣之成乎天者也。山岳也,河海也;金石也,火木也,此積形之成乎地者也。知積氣也,知積塊也,奚謂不壞?夫天地,空中之一細物,有中之最巨者。難終難窮,此固然矣;難測難識,此固然矣。憂其壞者,誠為大遠;言其不壞者,亦為未是。天地不得不壞,則會歸於壞。遇其壞時,奚為不憂哉?」子列子聞而笑曰:「言天地壞者亦謬,言天地不壞者亦謬。壞與不壞,吾所不能知也。雖然,彼一也,此一也。故生不知死,死不知生;來不知去,去不知來。壞與不壞,吾何容心哉?」
(列子 天瑞)

이리 침식을 폐하고 걱정을 하자,
이를 걱정한 한 사람이 그에게 가서 말한다.

“하늘은 기운이 쌓여 있는 것이니 무너져 떨어질 걱정이 없소.”
“하늘이 과연 기가 쌓인 것이라면, 해와 달과 별들이 떨어지기 마련 아니오?”
“그것 역시 기운이 쌓인 것이며, 설혹 떨어진들 맞아서 다칠 일이 없소.”
“땅이 무너지는 것은 어찌합니까?”
“땅이란 흙덩이가 쌓인 것으로, 사방 빈곳에 꽉 차서 없는 곳이 없소. 하니 걱정할 바가 없소”

(※ 출처 : 다큐 프라임 - 동과서 제1편 명사로세상을보는서양인,동사로세상을보는동양인 (2009))

이 때, 그 사람은 비로소 시원한 듯이 크게 기뻐했고,
그를 깨우치려는 사람 역시 크게 기뻐했다 한다.

보통은 이 정도까지 알려져 있다.
하지만 정작 그 다음 이야기들이 중요하다.

장려자(長慮子)가 그 이야기를 듣고 다음과 같이 말한다.

“무지개, 구름과 안개, 비바람 등은 기(氣)가 쌓여 하늘에서 이루어지는 현상이다.
산, 강, 바다, 쇠와 돌 등은 형체가 모여 땅에서 이루어진 덩어리이다.
기가 모이는 것을 안다면 덩어리가 모인 것을 알 것이니,
세상의 어느 것이 덩어리가 아니겠는가.
천지라는 것은 존재하는 것 중에 가장 큰 것인지라 그 종말을 예측할 수 없다.
무너질 것이라고 걱정한 사람은 너무 먼 미래의 일을 걱정한 것이고,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며 달랬던 사람도 옳은 것은 아니다.
천지가 무너지지 않는 본질을 갖추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결국은 무너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것이 무너질 때가 된다면 어찌 걱정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주인공이 이 장려자의 말을 들었다면,
그는 다시 전전긍긍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으리라.

이제 열자가 이 말을 듣고는 웃으면서 말한다.

“하늘과 땅이 무너질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잘못이지만,
하늘과 땅이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역시 잘못이다.
무너질지 무너지지 않을는지는 우리로서는 알 수가 없는 일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저리돼도 한가지요. 이리돼도 한가지인 것이다.
그러므로 출생할 때에는 죽음을 알지 못하고,
죽을 때에는 출생을 알지 못하며, 올 때에는 가는 것을 알지 못하고,
갈 때에는 오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무너지고 아니 무너지는 데 대하여 내 어찌 마음을 담아 두겠는가?”

이 열자의 태도에 이르러서는 천지인 간 주, 객이 분리되지 않고 있다.
즉 열자가 갖는 生.死.去.來를 알지 못하겠노라 하는 회의는 不知를 고백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는 生.死.去.來로 나눌 수 없다라는 언표로 해석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렇듯, 거기엔 관객과 연출자로 이분되는 질문이 원천적으로 발생할 여지가 없는 것이다.
그러니, 이 우주를 창조한 신과 피조물간의 대립을 고민할 까닭도 없다.
이게 노장철학의 무위자연(無爲自然) 철학의 본질이 아닐런지?
自然, 제 홀로 스스로 생성하고, 변화하는 것일 뿐인 것이다.

사람들은 낯선 것을 보면 곧잘 두려움을 일으키고,
나아가 창, 칼을 들고서는 막아서며 울 밖으로 쫓아내곤 한다.
위 예에선 멀쩡한 하늘까지 무너질 것을 걱정하는 인간까지 나타나고 있다.

늘 말썽을 일으키고 있는 학교 폭력이라는 것도,
그 원인을 가해자의 잔인성으로 푸는 경우가 많은데,
나는 인간에 내재한 낯선 것에 대한 두려움의 작동으로 본다.

보통의 인간은 두려움이 일면 피해 가지만,
학교 폭력 가해자는 창, 칼을 들고 이 낯선 존재에 맞서,
차별하고, 격리하고, 급기야 폭력을 휘두른다.

적기조례(赤旗條例) 역시 그 이면엔 두려움이 내재하여 있다.
(※ 참고 글 : ☞ 암호화폐와 적기조례 그리고 멸절사태)

그리고 그 두려움은 기실 따지고 보면 하나로 돌아간다.
그 하나는 바로 이해상관(利害相關)이다.
내게 보탬이 되느냐 아니냐?
이 판별기준에 따라,
자기 영토를 방어하고, 상대를 무찌른다.

하지만, 세상의 진보를 낙관하고,
가슴을 열며 미래를 열어가는 사람들은,
낯선 것으로부터의 두려움을 극복하고, 
새로운 역사의 지평을 연다.

(다시) 하지만, 열자의 마음은, 무엇을 꾀하려는 의도를 넘어,
담담히 사물을 관조하고,
유유자적(悠悠自適)할 뿐이다.
일찍이 장자는 이 경지를 소요우(逍遙遊)라 하였지.

(출처 : 圖片來自網絡)

彼一也,此一也。故生不知死,死不知生;來不知去,去不知來。

그렇다 하더라도 저리돼도 한가지요. 
이리돼도 한가지인 것이다.
그러므로 출생할 때에는 죽음을 알지 못하고,
죽을 때에는 출생을 알지 못하며, 올 때에는 가는 것을 알지 못하고,
갈 때에는 오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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