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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장지(徒長枝)

소요유 : 2023. 6. 9. 12:43


도장지(徒長枝)

이장 출신 농부가 올린 유튜브 영상을 보았다.
거기 도장지에 대하여 설명을 하는 가운데 그는 도장지를 일러 도둑 가지라 하더라.
순간 이것 순 엉터리라 생각하였다.
徒長枝란 한자의 본래 어의에도 어긋나거니와,
사물을 대하는 태도도 그르다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徒長枝에서 徒란 본디 空에 가까운 말이다.
비다, 헛되다, 무용하다란 뜻에 가닿아있다.
식물이 자라는 데는 다 스스로의 뜻이 있으련만,
사람들은 자신의 소용에 닿느냐 아니냐에 따라 판단한다.
따라서 도장지가 실인즉 헛된 자람의 가지인지 아닌지는,
기실 식물에게 묻기 전에는 함부로 말할 수 없다.

오늘날 현대 농법에서, 특히 과수 농사를 짓는 사람에게 도장지는,
공연히 웃자라 양분만 축내는 몹쓸 것으로 여겨 처단의 대상이 된다.
과수 농부는 식물 동체를 키우는데 용을 쓸 일이 아니라,
열매를 맺고 키우는데 자원이 배분되기를 원한다.
하여 이를 영양성장과 생식성장으로 나눠 관리한다.

헌데 식물 본체의 입장에선 열매를 다는 것도 중요하지만,
햇빛을 받고, 물을 먹으면서 동체를 한껏 키우며 생을 만끽하는 것도,
그들이 사는 보람이 아니라 할 수 없다.

하지만, 사람들은 과수를 키우면서 열매 소출에 집중하기에,
저들이 마냥 자유롭게 자라는 것을 달가와 하지 않는다.
최대한 자람을 억제하고 열매를 많이 달리게 하여,
수확시 돈을 많이 벌기를 원한다.

따라서 도장지에서 도장을 도둑이라 푸는 인간도 나타나지만,
따지고 보면 식물 입장에선 인간이야말로 도둑이라 할 수 밖에 없다.
나의 이전 글인 ‘기립지물(氣立之物)’ 에 실은 사진을 다시 끌어내 본다.

아아, 쓰러진 가운데서도 굴하지 않고 약동하는 저들 생명의 의지와 환희를 보라.
그대 당신들은 한껏 하늘을 향해 생을 발양하는 저 모습이 경이롭지도 않은가?
하지만, 아마도 저것이 과수 농부 눈에는 도장지로 보이며,
전정 가위 들고 자르고 싶은 충동을 느끼고 말 것이다.

내가 어제 본 영상 하나가 여기에 있다.

고추 묘목에 재주를 부려 저 땅꼬마 고추나무에 엄청나게 많이 고추를 달리게 하였다.
아마 저 고추나무는 사는 게 사는 게 아닐 것이다.
모처럼 태어나 한껏 생의 기쁨을 누려야 할 것이로되,
나오자마자 아기 고추를 팔에도, 겨드랑이에도, 배꼽에도 온 몸 구석구석 달아놓았으니,
더 이상 사는 보람을 느낄 새가 있으랴?

이는 마치 목축업자들이 단미(斷尾), 단이(斷耳), 단각(斷角), 단치(斷齒), 절훼(切喙,부리 자르기), 절조(切爪,발톱자르기), 코뚫기(鼻穿孔), 화두낙인(火斗烙印), ....
좁은 울타리, 항생제, 성장촉진제, ....
갖은 행악을 다 저지르고,
급기야 24시간 불을 켜두어 잠까지 방해하는 것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 하겠음이다.

어느 날 내가 동네 길을 걷다,
조그만 강아지 하나를 보게 되었다.
뱃가죽이 축 늘어지고, 젖퉁이가 퉁퉁 불은 채 달려 있었다.
주인은 내게 자랑하듯 이게 강아지가 아니고 어미인데,
지금까지 몇 배까지 새기를 낳았다 자랑이 늘어진다.

내 그대 당신들에게 묻는다.
아직도 도장지가 도둑 가지로 생각되는가?

물론 과수 농사를 하면서 과일을 수확하지 못하면, 
농사짓는 보람을 찾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한들 삼감이 없다면,
흉악한 괴물이 되고 말 것이다.
단미(斷尾), 단이(斷耳), 단각(斷角) 하는 흉측한 마음보처럼,
식물의 자람을 한껏 죄악시 하고, 
과일 소출을 위해 무슨 짓을 다 저질러도 되는가?

그대들 과수 농장 한 가운데에 서서 걸어보아라.
저들이 내지르는 단말마의 비명이 들리지 않는가?
문득 머리를 돌리면, 
거기 자신의 그림자가 나무 가지에 걸린 채 울고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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