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화교역(金火交易)
지난 주말께 며칠 몸살을 앓았다.
한 이틀을 견뎠는가 싶은데, 덩달아 컴퓨터도 고장이 나버렸다.
내가 비록 제왕도 아니오, 돈 많은 귀신(錢鬼)도 아닌데,
한낱 무정물인 기계 덩어리가 주인과 더불어 영욕(榮辱)과 성쇠(盛衰)를
함께 하려 함이 아니었던가?
“아, 장(壯)히 기특코뇨.”
주종(主從)이 이리 애틋하니 침석(枕席)을 같이 하여 혼몽(昏懜)하니,
너부러져 꿈결을 거닐고 있었으니, 이제 와 돌이켜 보니 이 또한 기이한 노릇이로되,
그 가운데 몇가지 소식이 짚어졌으니 이 또한 마냥 흘려보내기 섭섭하노니,
이에 몇 자 남겨 두고자 함이랴.
풀로 붙인 꼭두각시 물에 빠진 양, 팔다리 마디가 절절히 풀리고,
정신이 오락가락하노니, 닻줄 풀린 일엽편주 장강(長江)을 제 멋대로 떠내려가듯,
나 역시 그저 그 물결 따라 넋줄을 놓은 채, 따라 갈 수밖에 더하랴.
옛날 초소왕(楚昭王)이 오나라 오자서가 일으킨 난을 피해 달아났다 다시 복귀할 때,
대강(大江)이란 곳을 배로 지났다.
왕이 배 난간을 의지하고 경치를 감상하고 있던 차,
물 위에 이상한 물건이 떠있었다.
크기가 말(斗)만한 선홍색 물건이었다.
주위에 일러 건져내고,
“이게 도대체 무엇일까 ? 혹 아는 사람이 있나뇨?” 이리 물었다.
하지만, 아는 이가 아무도 없었다.
초소왕이 칼을 빼어 그것을 두 조각냈다.
그 속은 오이 비슷했고 먹어 보니 맛이 좋았다.
귀국 후, 초소왕은 사신을 노나라 공자(孔子)에게 보내 이 과일의 내력을 묻는다.
“그 과일은 평실(萍實)이라 부르는 것으로 뿌리 없이 물에 떠다니는 것이오.
그것이 어쩌다가 서로 만나 엉키고 엉키어 열매를 맺소.
그러나 천년이나 백년에 한 번 열매가 열릴까요?
초왕이 그 평실을 얻었다는 것은 흩어졌던 것이 다시 모이고,
쇠잔한 것이 다시 일어난다는 징조요.”
나 또한 혼몽한 중에 외(瓜)를 얻었음인가 ?
자리를 털고 일어남과 함께 세가지 깨우침이 있었다.
그 중 둘은 비교적 사적인 일이니, 약하거니와,
나머지 하나를 우스개 소리 삼아, 이 외(瓜)에 비견(比肩)하며 내쳐 놀아보고자 한다.
***
내 금화교역을 떠올리며, 어떤 이에게 금화교역을 혹 들어 보았느냐 하고 물었더니,
답하여 이르길, 어느 무역회사냐 ? 상장회사인가 ?
이리 말하여,
허물없는 사이인즉 함께 홍소(哄笑)를 터뜨린 적이 있다.
일언이폐지(一言以蔽之)하여 그림으로 대(代)한다.
그림A
그림B
이게 각기 좌선(左旋)하여 상생(相生)하는 오행상생도(五行相生圖),
우선(右旋)하여 상극(相克)하는 오행상극도(五行相克圖)다.
우선 그림A를 보자.
화살표 방향 따라 동-남-서-북을 쫓아도 되지만,
이를 바꿔 봄-여름-가을-겨울로 바꿔 추상(抽象)하여도 좋다.
형(形)이 아니라 상(象)을 따지는 것이 오행의 본령이니
오행(五行)이 아니라 오방(五方)이면 어떻고 오시(五時), 오색(五色) ...이라한들 어떠리.
내가 몸살이 난 까닭은 실은 땡볕에 무리하게 밭일을 한 결과다.
비록 2년 차에 불과한 돌팔이 농군 주제지만,
그 혼몽한 중에, 오행을 빌어 식물의 생활사(生活史)를 비춰보게 되지 않았는가 싶다.
얼추 5년간일지라도 흙을 만지지 않고는 감히 농사를 논할 주제가 아니 된다고
생각함에는 변함이 없지만, 이번 주제는 농사가 아니라, 어설피나마 철리(哲理)에
관련된 것이니 생각난 김에 정리해두고자 하는 것이다.
사계절의 순환을 생각할 때, 보통은 봄 다음에 여름이 오고, 여름 다음에는 가을,
가을 다음에는 겨울, 겨울 다음에는 봄, 이리 연이어 순돌아감을 의심할 여지도 없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 보면
그림A의 좌반부인 겨울-봄-여름과, 우반부인 여름-가을-겨울 이 두 국면은 성질이 다름을 알 수 있다.
이제 식물 입장에서 각 계절을 어떻게 지나는가 하는 점을 염두에 두고 생각해보자.
전자는 생명 현상의 발현에 집중하는 국면이요,
후자는 당대의 생을 마감하고 다음 세대에 역할을 넘겨주려고 바삐 준비하는 국면이다.
전자는 divergence(발산,發散)하는 phase요, 후자는 convergence(수렴,收斂)하는 phase다.
한즉 양자의 발전 양태상 진행 방향은 서로 반대이다.
그런즉, 특히나 여름에서 가을로 건너가는 길목은 그리 간단하지가 않은 것이다.
국면의 방향이 완전히 반대로 뒤집히는 순간이니 그러 할 수밖에 없다.
오행상으로 보아도 겨울에서 봄으로 감은 수생목(水生木)이니,
식물로 치자면 씨앗이 겨울을 보내고 봄을 맞아 순, 가지를 내며 활발히 자람과 같다.
겨우내 온축된 생명의 원기가 양기운을 받아 소소 잠이 깬다.
봄에서 여름으로 감은 목생화(木生火)이니,
식물이 잎을 내어 한껏 광합성 작용을 하게 된다.
이 때를 흔히 치성(熾盛)하다고 하니 이는 불꽃처럼 이파리들이 무성함을 이름에 적합하다.
그러하니 식물의 잎을 오행상 화(火)에 배대(配對)함은 실로 그럴 듯하다.
그런데, 불은 허장성세로 세차게 타오르지만, 그 실(實)이 없으니, 속은 텅텅 빈 가스에 불과하다.
마찬가지로 이파리 역시 온 산을 푸르게 푸르게 요란하게 장식하지만,
그 형(形)을 보면, 얄팍하니 종이장 같지, 그 몸통인 실체는 별 것이 없지 않은가 말이다.
설명의 편의상,
이제 하나 건너 띄어 가을에서 겨울로 감은 금생수(金生水)이니,
가을에 장만된 씨앗은 오행상 금(金)에 해당된다.
하지만, 가을 씨앗은 본시 겉껍질만 단단하지 아직 내부에는 화기(火氣)가 남아 있으니,
겨울을 맞이하여 생명의 원기를 잠재워 익혀야 한다.
실제 대부분의 씨앗들은 겨울을 나지 않으면 싹이 틔지 않는다.
예컨대, 씨앗을 따뜻한 곳에 둔 채, 겨울을 나면 발아가 되지 않는다.
이는 씨앗(金)은 겨울의 세례를 받아야 생명의 기운을 온축(蘊蓄)시킬 수 있음을 증거한다.
그런데, 이제 부러 남겨논 하나 여름에서 가을로 감은 어떠한가 ?
그림A 오행도를 보면 여름 火가 가을 金으로 바로 갈 수가 없음이다.
앞에서 보았듯이, 다른 국면을 보면 모두 앞 계절이 뒷 계절을 상생(相生)하는 관계이로되,
유독 여름에서 가을은 화극금(火克金)이니 외려 상극(相剋)의 관계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divergence(발산,發散)하는 phase가, convergence(수렴,收斂)로 바뀌는 것이니,
당연 양 국면간에는 잔뜩 긴장이 흐르고, 갈등이 때려지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오행으로 보면, 생각처럼 여름에서 바로 가을로 건너갈 수가 없는 것이 명확해진다.
살모사(殺母蛇)란 무엇인가 ?
제 어미를 잡아먹는 뱀이란 말인가 ?
실제는 그러하지 않다고 하지만, 나는 지금 어의(語義)에 집중한다.
살모(殺母)라 어미를 죽이고, 살아(殺子)라 자식을 죽이는 관계인가 ?
내가 살자면 어미고, 자식이건 상대를 죽여야 한다.
실로 그러한가 ?
왜 아니겠는가 ?
어미가 비록 자애로 아이를 젖먹인다한들,
한참 자랄 때는 어미 젖을 파고 들어 어미가 볼이 다 홀쭉해지기까지 한다.
아이는 이리 어미를 축내며 자신을 기른다.
잎에 해당하는 화기(火氣)는 무엇인가 ?
씨앗으로부터 가지(木)를 내고 여름을 맞이 하여 자신의 생명을 아낌없이 불 질러 질러,
태움으로서 생명 본연의 원기를 연소시킨다.
연소시킴으로서 생명의 존재 의의를 찬란히 펼쳐내는 것이다.
허지만, 거죽으로는 화려하나, 속으로는 원기를 소진하고 있는 것임이니.
가을로 갈수록 이파리는 허장성세(虛張聲勢)의 극에 이르러 드디어 조락(凋落)하지 않던가 ?
“끝 모르는 질주”
“맹목적 생의 의지”
이것이 火가 추상하는 바다.
이 때 가을로 건너 가기 위해서 비로소 土가 등장한다.
왜, 비로소인가 ?
오행상 토는 원래 중재자, 조절자, 중화자에 속한다.
실인즉, 위 각 국면에서도 뒤에 숨어서 국면이 전환될 때, 조절자로서 역할 한다.
이렇듯, 土가 사상(四象)을 중재, 중화, 조정해 가는 과정을 토화작용(土化作用)이라고 한다.
하지만, 여름에서 가을, 즉 火에서 金으로 넘어가는 시절에는 이젠 도저히 은밀히 뒷전에서만
숨어 있는 것으로 제 역할을 다 할 수 없다.
(火-金의 관계는 다른 국면에서 보이는 상생관계가 아니다.)
때문에 전면에 등장하여 본격적으로 개입하게 된다.
앞 그림A에서 보면 중앙 토를 징검다리 삼아,
화생토(火生土) -> 토생금(土生金)의 우회로를 그리고 있다.
이리, 한 순환 고리를 옆길로 bypass 시키는 것이다.
土는 실제 식물의 경우 꽃에 해당하니,
꽃을 피워 다음 차, 열매를 예비하는 것이다.
한즉 이 때, 여름 즉 火국면에 해당하는 줄기, 잎(火)을 적절히 따주는 것은
중재자인 꽃에 갈 영양분을 늘리는 것으로, 종국엔 장차 열매로 갈 힘을 비축하는 것이다.
그림A와 그림B의 차이는 金과 火의 위치가 바뀐 것인데,
이를 금화교역(金火交易)이라 부른다.
이 상태에서 각기 좌선하면 상생, 우선하면 상극의 관계를 드러내게 된다.
금화가 교역함으로서 상생<->상극관계가 서로 바뀌듯,
간혹 계절이 바뀌는 것을 모두 금화교역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좁혀 여름-가을간 변화에 한정하여 사용함이 좋으리라.
***
내가 농사 지으면서 배운 것중 그래도 두드러진 것은 지금까지 딱 두가지에 불과하다.
“모종은 마지막 서리 지난 후에 밭에 내야 한다.”
“순따기, 순지르기 따위로 부르는 소위 적심(摘心), 적아(摘芽)”
그런데 적심(摘心)은 많이 듣기는 하였지만,
그 의미하는 바를 제대로 요해를 잘 못하겠다가,
요번에 금화교역을 생각하며,
이게 위에서 흝어본 이치가 그러하지 않겠는가 이리 짐작하게 되었다.
즉 火가 주책없이 홀로 잘났다고 제 멋에 겨워
그리 제 생명의 잔치를 벌이는데 집중하면,
어느 명년에 다음 세대에게 바톤을 넘겨 줄 수 있는가 하는 게다.
여름 지나면 대자연에는 필경 서리가 내린다.
한로(寒露), 상강(霜降) 절기를 어찌 푸른 잎 달고 날 수 있겠는가 ?
하니 적절한 삼감이 필요한 것이니,
이는 열매를 크고 튼튼하게 만드는 요체가 된다.
그러하니, 적심(摘心)이란 바로 통어력을 잃고 질주하는 식물(잎, 줄기)에게
가을 서리의 무서움을 일러주며, 절제의 미덕을 일깨우는 덕이 아니겠는가 ?
물론 이는 인간 위주의 변명이 될 수도 있겠지만,
식물 입장에서 보더라도 결과적으로 제 팔 하나 베어내 제 목을 지키는 공덕이 있다.
즉 잎, 순을 적절히 따주면,
통풍이 잘되고, 공연한 영양 손실을 방비하여,
열매를 맺음에 충실하게 되는 소이를 이룬다.
무릇 가을은 이리 욕심이 끝내 된서리 맞는 계절이니,
여름날을 지나는 객은 삼가며 절제하는 덕을 미리 길러야 할 것이라.
오늘 날, 이명박은 욕심만 등천(登天)하여
온 천하를 파헤치고, 천하인을 왼통 욕심에 부역시키고자 동원에 혈안이다.
만고 청청할 줄만 알고, 이파리만 디립다 키워내는
“맹목적 생의 의지들”의 행진과 무엇이 다를 것인고 ?
이러고도 그는 감히 소천지(小天地) 신기지물(神機之物)임을 자임할 수 있으랴 ?
그는 진정 가을을 모르는 인사인가 하노라.
***
정리하자면,
1.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일은 다른 국면과 다르게 간단치 않다.
2. 거기 土가 등장하여 중재자 역할을 한다.
3. 이 때 삼감의 미덕, 절제의 미학이 필요하다.
농사하는 입장에선 이 때 비로소 튼튼한 가을 열매(金)를 영글릴 수 있다.
농사를 다른 말로 토화(土化)라고도 한다.
이는 오행설에서 말하는 토화작용과도 맥이 닿는다고 할 수 있으니,
농사를 영위하는 인간이 기립지물(氣立之物)인 식물에 개재(involved)하여,
인간의 요익됨을 꾀하는 노력이라 하겠다.
하기사 식물이 아무리 기(氣)가 세워져 성립된 기립지물이라한들,
인간이 농사라는 이름을 빌어,
잡초라 하여 뿌리째 뽑고,
작물이라 하여 가지 자르고, 순 따고, 농약 치고, 멀칭하는 등,
온갖 잔 재주를 피우는 짓거리를 기꺼워할까 싶은 의문은
언제나 가시지 않고 있음이니,
신기지물의 으뜸이라 자부하는 사람이란 모름지기
토화란 이름에 값하는 중용지덕을 잃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이는 가을을 심평(審平)이라 부르는 뜻에도 부합되니,
숙살지기(肅殺之氣) 그 삼엄한 심판의 칼날 앞에 떳떳함을 기르련 즉,
진즉 삼가고 절제하는 적심((摘心)의 덕을 길러야 할지니.
듣는가 ?
이명박 類는.
요즘은 글만 쓰면 이명박을 탓하고 마니,
영 이런 내 모습도 탐탁치 않을새라.
참으로 언짢고 흉한 세태다.
그런데, 정작 나는 어떠한가 ?
금화교역이니 상생, 상극을 논하고 있지만,
밭에 나가면 아직 오이와 참외 잎도 구별하지 못하고 있는 숙맥불변지객(菽麥不辨之客)이니,
실로 부끄럽고 가소로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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