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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고라니 2

농사 : 2008.07.29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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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다. 자세히 보면 웅크린 자세의 몸통 일부와 오른쪽 귀가 보인다. 까만 눈도.)

고라니 눈을 보았습니다.

예초기를 돌리는데, 앞쪽에서 풀떡 놀라는 소리가 납니다.
옅은 초코렛색 아기 고라니였습니다.
껑충 뛰어 달아나더니만, 멀리 가지도 못하고
저 앞 일단의 풀무더기 속으로 급히 숨습니다.
거의 가슴께까지 자란 풀무더기는 긴 타원형을 이루고 있었는데,
저 먼쪽 끝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어깨에 매었던 예초기를 끄고는 가만히 다가갔습니다.

조그마한 아기 고라니가 몸통을 풀숲 안쪽을 향한 채, 앉아 있습니다.
하지만 고개는 밖으로 재껴 저를 쳐다보는 자세가 안쓰러운 가운데 귀엽습니다.
풀이 발처럼 앞을 가려 제대로 알기는 어렵습니다만,
필경은 팽팽히 몸을 활 시위처럼 당겨 긴장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와 거리는 채 3m도 되지 않습니다.
고라니는 미동도 하지 않습니다.
서로 한동안 쳐다보았습니다.
황갈색 고라니 몸통은 차라리 저 진녹색 풀보다 더 푸르르 생생합니다.
머루처럼 까만 눈만 깨어 밖을 쳐다봅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런가 ?
저 작자가 내게 위해를 가하지 않을까 얼마나 오금을 져리며,
가슴을 쓸며 떨고 있을까 ?
저 천진스런 눈동자에 순간 안타까움과 두려움이 촉촉이 젖어 흐르는 양 싶습니다.

네가 별나라에서 유배된 아가 요정이라면,
나는 지구에 붙박이로 자란 흉측한 인간이라 부르는 물건임이라,
기어히 제가 견디지 못합니다.
가만히 불러봅니다.

“아가야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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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튕기듯 벌떡 일어나 달아나더군요.
그 뒷 태를 따라 금싸라기 같은 서러움이 후두둑 떨어져 뒹굽니다.
풀잎엔 빗물이, 고라니 등짝엔 서글픔이 햇빛을 받아 반짝입니다.
그날 오후 1:44:52 현재, 풀밭,
한 인간의 바짝 메마른 가슴에도 잠깐 물기가 흐릅니다.

최근 동물 때문에 해결하여야 할 과제가 두가지가 생겼습니다.
그 중 하나는 다행히 얼추 해결하였습니다.
(※. 참고 글 : ☞ 2008/07/29 - [소요유] - 새벽 신음 소리)
하지만, 이 고라니는 어찌 할 것인지 제법 고민이 됩니다.

원래 제대로 하자면 콩순을 일일이 잘라 주어야 하는데,
고라니가 잘라먹어 그럴 필요가 없을 지경입니다.
우리 밭이야 결단난들 얼치기 농꾼 주제인즉 대수롭지 않습니다만,
이웃 밭에 행여라도 피해가 갈까 여간 염려가 되는 게 아닙니다.
다행이 아직은 이웃 밭에는 가지 않는 모양입니다.
왜냐하면, 사진에서 보시다시피,
우리 밭은 그냥 거의 풀밭을 방불하기 때문입니다.
고라니가 제법 예민하여 은신처가 없으면
위험을 불사하고 이웃 밭으로 접근하지 않을 것이란 생각입니다.

거의 '고립된 섬' 형국인 이곳까지 어떻게 들어왔는지 모르지만,
이곳은 다른 곳보다 홀로 높아 언덕을 이루기 때문에 외부에 노출의 위험성이 큽니다.
고라니 자신의 앞 일을 위해서도 보다 안전한 곳으로 옮겨가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해서 풀을 다 깍아 버리는 것이 어떨까 하는 의견이 하나 있습니다.
그러면 숨을 곳이 없어지며, 외부 시선이 번잡하니
다른 곳으로 이동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이 방법도 풀이 얼마나 빠르게 자라는지,
예초기로도 감당할 수 없는 속도로 금방 온밭을 점령해 들어갑니다.
풀들의 생명력은 정말 경이롭습니다.

또 하나는 더 자랄 때까지 일부 은신처를 내버려두어,
차라리 이곳에 머무르게 하여, 이웃 밭으로 가지 않게 붙잡아 두자는 의견입니다.

저로서는 소견이 적어,
아직 마땅한 해결책을 꾀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해서, 제법 고민이 되고 있습니다.


※. 참고 글

☞ 2008/07/23 - [농사] - 아기 고라니
☞ 2008/08/19 - [농사] - 8년 만에 돌아온 뱀
☞ 2009/07/19 - [농사] - 아기 고라니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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