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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 정경(情景)

농사 : 2008. 10. 23. 14:05


작년에 잡초 뽑느라 하도 지쳐서, 예초기를 하나 장만했습니다.
그 때만 하여도, 이제는 잡초를 어느 정도 제압할 수 있겠거니 했습니다.
하지만, 주말에만 가는 형편이기도 하지만,
여러 사정이 겹쳐, 이내 그 생각이 엉터리임이 드러나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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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인지 풀밭인지 구별이 가지 않는 상태입니다.
빨간 예초기가 마치 수레바퀴를 향해 대드는 사마귀처럼 안쓰럽군요.
- 당랑거철(螳螂拒轍)
초원에 덩그란히 홀로 남겨진 저 예초기의 외로운 모습을 보고 있자니,
불현듯 서글픔이 가슴을 아스란히 번져갑니다.
다만, 빨간색만이 장렬한 기개가 아직 한 줌은 남아 있음을 증거하고 있군요.

저 밭에 콩을 심었었는데,
고라니가 거지반 뜯어 먹었고,
풀은 예초기를 비웃듯 온 밭을 점령하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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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들깨만은 고라니가 건드리지 않는군요.
해서 내년에는 들깨를 조금 더 심어볼까 합니다.
들깨, 이게 wild sesame로 풀어 쓰는 게 가능하다면,
그야말로 야생 깨이니 풀하고 다투는 데도,
그리 어리보기는 아닐 것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사전을 방금 찾아보니 들깨는 perilla로 나오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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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밭 모습입니다.
콩은 보이지 않고, 누런 풀잎들이 이곳이 자신들의 영역임을 준엄히 선포하고 있습니다.
태초에도 이런 모습이었을 것입니다.
거기 뒤늦게 등장한 인간들의 안간힘이 차라리 걱정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농약, 제초제, 유전자변형 작물 ...
저 누런 풀잎들의 위용 앞에,
잠시나마 멈춰서서,
머리 숙여 묵도(默禱)를 올립니다.

지금 그런대로 성한 곳을 잠깐 소개하자면,

2년째 자라고 있는 더덕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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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추밭입니다.
배추벌레의 공격이 제법입니다.
잎사귀가 잘린 것도 눈에 띕니다.
혹여 이게 고라니 짓이 아닌가 여겨져,
슬그머니 걱정이 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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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추밭 아래에 심은 알타리와 갓입니다.
가뭄이 심하여, 주말마다 가면, 물동이 날라 이들에게 물 대주느라,
여간 노역이 아닙니다.
좌상단 고추는 지난 주말에 수확을 끝냈습니다.
병해도 거의 없고, 매번 소출하는 재미가 제법 그럴듯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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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밭에는 물이 없습니다.
해서 이웃 밭에서 얻어다 쓰는데,
이게 제법 송구한 노릇이군요.

어제, 오늘 비가 나리십니다.
보슬보슬 내리는 비의 음조(音調)가
가을노래가 되어,
우리 밭, 그리고 저의 가슴을 아슴아슴 흘러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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