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사슬
금년 봄에 처음으로 밭에 나가니,
고춧대를 누가 거지반 다 훔쳐 갔다.
주말에만 농사를 짓는 형편인고로 밭 한 켠에 쌓아두었던 것인데,
인사치례(?)로 조금만 남겨두고 누군가 다 가져가 버렸다.
몇 주 후엔 밭에 트럭을 대고는 흙을 퍼간 흔적이 보인다.
밭 안쪽에 차량 바퀴 자국이 어지럽게 그어져 있고,
서너 군데 웅덩이가 파진 모습이 트럭을 대고 흙을 파간 것이 역력하다.
이것을 보자하니 이번엔 화가 확 솟아오른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사뭇 많이 보유하게 된 고춧대를,
지난해엔 어차피 다 사용할 만큼 농사를 많이 지을 여력이 없은즉,
쓸 만큼만 남겨 두고 이웃 두 집에 각기 100개씩 나누어 주기까지 했다.
당시 비록 고춧대를 누군가 훔쳐 가져갔어도 그저 참을 만했으나,
흙까지 퍼간 것을 보자하니 이젠 도리없이 부아가 나는 것이다.
그 동안 근 20년 동안 돌보지 않은 사이 매년 흙을 퍼갔으리란,
심증도 가히 억측이 아닌 것이 그 사이 밭둔덕이 사뭇 낮아졌고,
한 때는 밭 한가운데 커다란 참호 같은 구덩이도 파졌던 적이 있다.
나는 진문공의 고사를 떠올리며,
(※ 참고 글 : ☞ 2008/03/29 - [소요유] - 신념, 신화, 광신, 그리고 빠)
대책을 세우기로 작정하였다.
흙이란 그리 가벼이 대할 상대가 아닌 것이다.
그러하기에 나는 농사를 시작한지 3년 이래,
내내 밭에 흘려진 비닐 조각을 일일이 손으로 주어내고 있다.
앞 전 수십 년간 이웃에 빌려 준 후,
저들이 소홀히 하여 소여물 썰어 넣듯, 갈갈이 찢어 밭에다 내흘려둔,
비닐을 나는 업보처럼 엎드려 주어내고 있는 형편이다.
짐작하건데, 지금과 같이 주말마다 밭에 올 사정이라면,
추단컨대 앞으로 수십 년을 주어내어야 원상회복 되지 않을까 싶다.
아마, 그 전에 농토는 다른 용도로 바뀌고 말 공산이 더 크지만,
나는 이곳이 농토 본연의 역할을 하고 있는 한,
이리 돌보기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러한 것인데 남의 밭을 무단히 범접하여 흙을 훔쳐낸 것을,
어찌 용서할 수 있겠는가?
일견 남우세스런 짓이란 생각이 아니 드는 것이 아니나,
주말에만 한번 오는 형편이라 밭을 온전히 돌볼 수 없은즉,
부득이 입구를 쇠사슬로 쳐두르기로 했다.
쇠줄을 쳐놓고 보니,
이게 여느 농토가 아니라,
울로 에둘러쳐진 사유지(私有地)임을 강퍅하니 애써 표상(表象)하고 있질 않은가 말이다.
농토 그 순연한 위상을 잃은 현장을,
쇠사슬은 강잉히 손에 손잡고 번(番)을 서듯 경계하고 있다.
이 현장에 서서,
착잡한 심정을 가다듬을 길 없으매,
나는 외려 어겨다 초항기(招降旗)인 양,
‘접근금지’란 깃발을 짐짓 더 심술부려 내달기로 한다.
옛 동화에서처럼 3년 고개에 한번 넘어지면 3년의 餘命이라면,
10, 20, 30번...의 넘어짐이면 그리 횟수에 3년이 더 보태 더해지는
그런 심사로 하나, 둘, 셋 .... 이리 마냥 달기를 시도해보련다.
무당네 당집에 걸린 깃발처럼 하나, 둘 .... 내걸리며,
이 현세를 한껏 조롱하고 희화화(戱畵化)하듯,
한편으론 면구스럽고,
또 한편으론 왠지 쓸쓸해진 넋이,
깃발 하나 더 보태질 때마다,
덩달아 따라, 다소간이나마 달래지길 기대해 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