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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쇠의 배움

소요유 : 2008. 8. 14. 09:48


나는 앞에서
지식과 지혜에 대하여 잠깐 애기를 한 적이 있다.
(※. ☞ 2008/04/23 - [소요유] - 지식과 지혜)

오늘은 진(晉)나라 조쇠(趙衰)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삼고,
그 보론(補論)을 잠시 펴고자 한다.

당시 진(晉)은 춘추오패의 하나인 진문공(晉文公)의 시대였으니,
바야흐로 새로운 기운을 일으켜 천하의 패권을 잡으려고 꿈틀대었다.

진문공은 이제 조(曹), 위(衛)를 치고자 마땅한 원수(元首)를 내세우고자,
조쇠에게 그 인물을 물었다.

조쇠(趙衰)가 서슴지 않고 대답한다.

“대저 장수란 것은 용기보다 지혜가 있어야 하며,
지혜보다는 배운 바가 많아야 합니다.
만일 주공께서 지혜와 용기 있는 장수를 구하신다면 별로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그러나 배운 바가 많은 장수를 구하신다면
신의 소견으로는 오직 극곡(郤穀) 한 사람이 있을 뿐입니다.
극곡은 나이 50여 세지만 학문을 좋아하여 항상 예악(禮樂)을 말하며
시서(詩書)에 능통하고 있습니다.
대저 예악과 시서는 선왕의 법이며, 덕(德)과 의(義)의 바탕이로소이다.
대저 민생(民生)은 덕의(德義)로써 근본을 삼고
병사는 백성으로써 근본을 삼습니다.
오직 덕의가 있어야만 능히 백성을 도울 수 있고,
능히 백성을 돕는 자라야만 능히 군사를 지휘할 수 있습니다.”

조쇠의 말 가운데,

“용기보다 지혜가 있어야 하며,
지혜보다는 배운 바가 많아야 합니다.”

이 말이 인상적이다.

용기보다 지혜가 낫다라는 말은 자주 하는 말이지만,
지혜보다 배운 바가 많아야 한다는 말은 그리 흔히 듣는 얘기가 아니다.

“배움이 아무리 많으면 무엇하나 지혜가 있어야지.”라는 투의 이야기는
일상에서 가끔 하는 말이지만,
“지혜보다 배움을 우선시”하는 말은 비록 2600 여년전의 이야기지만,
예사롭지 않은 것이다.
(※. 晋文公 在位 : 기원전 635 ~ 628)

물론 당시 조쇠가 극곡을 추천한 이유는 정치적인 역학관계의 소산이기도 하다.
당시 중이(重耳) 즉 진문공은 정쟁에 휘말려 고국에서 도망나와, 19년간 망명 생활을 했었다.
귀국후 왕에 올랐으나, 아직 충분히 정국이 안정됬다고 할 수는 없었다.
그러니, 망명파인 조쇠와 국내파인 극곡은 서로 묘한 갈등관계에 있었다.

조쇠는 오히려 극곡을 끌어안아, 정치를 안정시킬 헌책으로서 그의 중용을 제안한 것이다.
결국 극곡은 삼군중 가장 중요한 중군(中軍)의 대장이 된다.
반면 망명파인 호모가 상군(上軍) 대장으로 한 단계 양보하여 자리를 맡게 된다.
망명파와 국내파의 적절한 안배를 도모한 조쇠의 안목과 충정은 과히 놀랍다.

이런 정치적인 이해타산은 그렇다 하여도,
조쇠의
“지혜보다는 배운 바가 많아야 합니다.”라는 말은
사뭇 주목을 끈다.

앞 글에서도 말했지만,
지혜라는 것을 별도의 능력으로 볼 것이냐,
아니면 학문, 지식 등으로부터 닦여지고 길러지는 것이냐? 라고 할 때,
조쇠의 입장은 후자를 특히 강조하고 있음이다.

학문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내가 군에서 일등병으로 있을 때,
이등병인 후배 하나가 물었다.

“학문이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지식의 체계화된 집적물이다.
앎의 단순한 축적이 아니라, 갈래 짓고, 분별하여 체계적으로 조직해논,
‘삶, 사물에 대한 이해’, 또는 ‘그리 이해하는 태도’가 아닐까?
그러하기에, 학문을 닦은 사람은 감히 상대하기 버겁다.
왜냐하면, 누천년 선인들의 각고심려(刻苦深慮)의 결정물을 체득하여,
당대의 현실, 바로 오늘에 임하는즉 어찌 녹록하리.
그러하니, 사람은 모름지기 죽을 때까지 공부하여야 한다.”

나는 대충 생각나는대로 이리 말해주었다.

조쇠는 말한다.

“극곡은 나이 50여 세지만 학문을 좋아하여 항상 예악(禮樂)을 말하며
시서(詩書)에 능통하고 있습니다.
대저 예악과 시서는 선왕의 법이며, 덕(德)과 의(義)의 바탕이로소이다.”

시서(詩書)는 교양, 다시 말하면 당대라는 시대를 건너기 위한 덕성을 기르는 바탕이다.
반면, 예악(禮樂)은 구체적인 실천행을 말한다.
그 시대가 요구하는 모랄에 기초한 것인즉 조쇠는 이를 선왕의 법(法)이라고 말하고 있다.
물론 그 모랄이란 것이 요순, 주(周)로 거슬러 올라 상고(尙古)한 것이긴 하되.

조쇠의 “지혜보다는 배운 바가 많아야 합니다.”
이 말에 이어,
나 역시 하나 더보태 말한다.

“배움보다 더 중한 것은 행이다.”
“百文, 百聞, 百問 내지는 百言이 不如一行이다.”
“만학불여일지행(萬學不如一枝行)”

인터넷이 대중화 되면서,
천하의 지식이 웹에 널부러져 있다.
조각난 생각은 또한 얼마나 쓰레기더미처럼 허공중에 흩뿌려져 있는가 말이다.
그저 키보드에 손가락 까닥 움직이면,
덤프트럭이 쏟아내듯 온갖 망상까지 부려진다.

하지만,
단, 바늘 하나(一針) 만큼의 행(行)도 쉽지 않다.

“용기, 지식, 지혜” 이게 문제가 아니다.

구체적 행(行)으로서 말해야 한다.
단, 한 조각일지언정.

오늘 아침의 생각이 이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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