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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디우스의 매듭과 옥련환(玉連環)

소요유 : 2008.10.08 16:52


골디우스(Gordius or Gordias)라는 프리기아 왕, 그리고 알렉산더대왕을
연결고리로 하여 전해지는 소위 골디우스의 매듭이란 이야기가 있다.
 
프리기아에서 왕의 선출문제로 분란이 일어났다.
당시 신탁은 마차를 타고 들어오는 자가 왕이 된다고 예언되었다.
마침 골디우스는 아무 것도 모른 채, 마차를 타고 고향인 프리기아로 들어왔다.
그는 신탁대로 왕이 된다.

그 후 그는 마차의 굴레에 복잡한 매듭(an intricate knot)을 매어두었다.
이는 마차를 보존하려는 단순한 보안장치에 불과하였으나,
후에 알렉산더 측의 선전술에 의해 교묘히 포장되고 만다.
즉, 그들은 매듭을 푸는 사람이 아시아 전체를 지배하는 왕이 된다는 소문을 확산시켰다.
이런 정치 선동술을 펴는 한편,
알렉산더는 매듭 중간을 칼로 잘라 버리는 멋진 연출을 행한다.
그리고는 그 누구도 풀지 못하는 매듭을 내가 풀었다.

“나야말로 아시아의 왕이다.”

이리 외친다.

***

동양에도 이와 유사한 이야기가 있다.
하지만, 소재는 비슷하지만, 이야기의 향취(香臭)는 영 다르다.
누구나 골디우스 매듭 이야기는 안다.
하지만, 우리와 사뭇 가까운 이런 이야기는 아는 이가 거의 없다.
우리네 교육의 현실이 이리 균형을 잃었다는 증거다.

진(秦)은 재상 범수(范睢)의 헌책에 따라 원교근공책(遠交近攻策)을
국가의 기본 국제정치전략으로 삼는다.
(※ 오늘날에도 곧잘 말하여지곤 하는 원교근공책은 바로 범수로부터 기원한다.)

범수가 진소양왕(秦昭襄王)에게 아뢴다.
“신이 듣건대 제(齊)나라 왕후 태사씨(太史氏)는 현명하며, 지혜가 있다고 하옵니다.
마땅히 제나라로 사신을 보내어 제나라 왕후 태사씨에게 옥련환(玉連環)을 선사하고,
이러 이러히 시험해봅시오.”
(※ 옥련환 : 옥을 고리로 이어서 만든 목걸이)
(※ 제나라는 동쪽 끝, 진나라는 서쪽 끝이니 양나라는 서로 가장 멀리 떨어진 사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출처 : http://www.gmw.cn/content/2008-09/10/content_820370.htm)

이에 진나라 사신은 제나라에 가서 왕후 태사씨에게 옥을 바쳤다.
그리고 사신이 왕후 태사씨에게 진소양왕의 말을 전한다.

“제나라 사람으로서 능히 이 옥련환을 풀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 진나라는 제나라를 더욱 공경하겠소이다.”

왕후 태사씨가 아랫사람에게 분부한다.

“쇠망치를 가지고 오너라.”

왕후 태사씨는 쇠망치로 단번에 옥련환의 고리를 끊었다.
왕후 태사씨가 진나라 사신에게 말한다.

“그대는 돌아가서 노부(老婦)가 이미 옥련환을 풀었다고 진왕에게 전하오.”

사자는 돌아와 보고했다.
범수가 아뢴다.

“태사씨는 과연 여중호걸입니다.
범하기 어렵습니다. 제나라와 결맹하옵고 서로 침략하지 맙시오.”
그 후로 제나라는 평화가 지속됐다.
(※ 이상은 이하의 원문 대비 의역임.)

範睢謂秦王曰:“吾聞齊之君王后賢而有智,當往試之。”乃命使者以玉連環獻于於君王后曰:“齊國有人能解此環者,寡人願拜下風!”君王后命取金錘在手,即時擊斷其環,謂使者曰:“傳語秦王,老婦已解此環訖矣。”使者還報。範睢曰:“君王后果女中之杰,不可犯也。” 于是與齊結盟,各無侵害,齊國頼以安息。

골디우스의 매듭이든, 태사씨의 옥련환이든,
그들은 그 문제를 직접적으로 해결한 것은 아니다.
모두 문제 자체를 무화(無化) 시켰을 뿐이다.

알렉산더의 경우에는 정치적인 쇼에 가깝다하겠다.
측근들이 나서서 신화를 빙자하여 그럴듯한 분위기를 조성한 후,
알렉산더가 그 이야기 무대의 가운데로 등장하여선,
떡하니 칼을 뽑아 자신이 매어 논 매듭을 스스로 푸는 연출을 한다.
이게 사실이라면 여간 고약한 게 아니다.

뭐 이런 정치적 쇼는 양(洋)의 동서(東西)를 가릴 바도 없고,
시대의 고금(古今)을 나눠 살필 것도 없이 비일비재하다.
화우지계(火牛之計)로 유명한 제(齊)나라의 전단(田單) 역시,
갖은 기략을 써서 대중을 동원했다.
그 이야기는 차후로 미룬다.

하지만, 태사씨의 경우는 남이 낸 문제이니 알렉산더와는 입장이 다르다.
태사씨는 강국 진나라로부터 시험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賢而有智’

과연 현명하게도 그는 문제 자체를 아예 외면하고 마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그 누구라서 연환(連環) 고리를 풀 수 있는가?
이거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이러한 것을 문제라고 내놓은 사람이 더 문제가 아니겠는가?
문제가 아닌 것을 문제라고 떡하니 내놓는 것은 폭력이거나,
진지한 의도가 숨어 있을 터.
선종(禪宗)의 화두(話頭)라면, 깨달음을 촉발하고자 하는 방편이겠지만,
강국이 약한 나라에게 툭 던지는 이따위 도발은 무례하기 짝이 없다.

물음이 아닌 것을 묻고 있음이다.
(※ 참고 글 : ☞ 2008/10/08 - [소요유/묵은 글] - 물음을 물을 수 없는 물음)
따라서 이러한 경우 문제를 푸는 유일한 길은,
그 문제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그러하지 아니하고 저 고리 옥을 이리저리 만지작거리며,
어찌 풀어볼까 하며 고개를 외로 꼰들,
절대 풀릴 까닭이 없다.
옥련환(玉連環)을 풀기는커녕,
정작은 풀려는 이가 연환쇄(連環鎖), 즉 고리자물쇠에 갇혀 영원히 미로를 헤매게 된다.

'냉장고 안에 코끼리 넣기'
'병 속에 든 새 꺼내기' ...

이런 따위의 문제라 칭해지는 것은 기실은 모두 문제가 아닌 것을 문제라고 여기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이 길에 든 이들은 모두 하나같이 족족 스스로 택하여 연환쇄(連環鎖)에 갇히게 된다.

옥련환을 부셔버린다.

그 순간 문제 자체가 없어져 버리는 것이다.
문제가 풀린 것이 아니라,
애시당초 있지도 않은 문제상황이전으로 복귀하는 것이다.
옥은 비싸다.
더욱이 상대국 왕이 보낸 귀물(貴物)인즉 조심스럽다.
그런 것을 주저없이 금추(金錘)로 즉각 깨뜨리는 장면은
활연(豁然)히 밑터지듯 여간 시원한 것이 아니다.
애 밴 어미가 열달 품은 아이 천신만고(千辛萬苦) 산고(産苦) 끝에 내놓았다한들 이리 시원할까?
염천지절(炎天之節) 섣달 냉골에 두었던 자리끼를 마신 양, 오장육부가 뻥 뚫린 듯하지 않은가?

이건 상대국의 무례를 엄하게 되물어 책()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 이 장면에서 무릎을 치며 안이하게,
문제를 해결했다라는 비릿한 이용후생(利用厚生)(?)에 그쳐서는 참으로 딱한 노릇이다.
깨달아야 할 것은 당당한 자존심의 회복에 있는 것이다.

“우리 제나라는 바보가 아니다.
감히 넘보지 마라!”

이런 불같은 선언,
그러면서도 가을 물처럼 차가운 이성(理性)이 여여(如如)히 빛나지 않는가?

우리가 장기를 둘 때 수가 막힐 경우(stalemate)가 있다.
이 때 어떤 이가 있어, 곰곰이 생각하여 해결책을 찾았다면,
그 경우는 본래의 의미의 수막힘이라고 할 수 없다.
수막힘도 아닌 과제상황을 수막힘이라고 잠시 여겼을 뿐이다.
하지만, 진정한 의미의 수막힘 상태에서는 그저 패자가 될 수밖에 없다.
이럴 경우 그 실패 당사자가 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판을 뒤집어엎는 것이다.
그리고 심술을 피우고, 적당히 구실을 대며 ‘이 판은 무효다’라고 우기는 것이다.
이 때 상대가 약자라, 완력이 통한다면 그는 내기에서 지지 않게 된다.

또 하나는,
승복(承服)하고,
다시 새 판을 짜서 맞붙는 것이다.
그리 다음을 기약하는 것이다.

그가 진정 게임의 룰을 존중한다면,
수막힘 상태에서 더 이상은 이길 수 없다.
깨끗이 패배를 인정하고,
동일한 게임의 규칙下에서, 다음 새 판을 맞이하여야 한다.
내일엔 내일의 태양이 떠오른다.
 
그런데,
장기나 바둑이라면 차라리 이리 다음을 기약할 수 있으련만,
인생살이에서도 다음을 기약할 기회가 있을까나?

승자독식(勝者獨食)의 신자유주의가 팽배한 한국 땅에서,
과연 밑바닥 대중에게 내일은 있는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란 영화에서
스칼렛 오하라는 이리 말한다.

“타라, 오 내 고향,
타라에 가자.
거기에 가면 그이를 되찾을 방법이 생각날 거야.
결국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떠오를 테니깐.”
(After All Tomorrow Is Another Day)
 
그런 희망이 있는가?

나는 언제 어디선가 이리 말했던 적이 있다.

"시인의 말처럼 바람은 늘 첫 페이지를 열어 자신을 써나아갑니다.
저 역시 첫 페이지를 어디선가 열 것입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란 영화에서
스칼렛 오하라는
내일은 또 다른 태양이 떠오른다.(Tomorrow Is Another Day)라고 말하였지요 ?

그녀는 자신의 고향 타라로 갑니다.
희망을 찾아.

하지만, 과연 희망은 있을까요 ?
희망을 기대해도 좋은가요 ?
희망이란 제 의지에 밝히는 가녀린 등불같은 것이 아닐런지요 ?

저는 희망하지 않습니다.
희망은 비릿한 열정,
자신이 자신한테 등 토닥이며 격려하는 안타까움인 것.

저는 진작에 희망을 놓아 버렸습니다.
그저 바람과 함께 사라지고 싶은 것입니다.
그리하기에 바람은 늘 첫 페이지를 만납니다."

(어느 고별(告別)의 자리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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