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gta      

노란 꽃

소요유 : 2009. 3. 27. 18:17


요즘 산에 오르면 노란 꽃이
아직도 지난겨울을 벗지 못한 누런 숲길을 재치고,
도드라지게 툭툭 솟아난 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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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이,
칙칙한 겨울을 막 지난봄의 숲에
첫 전령으로서 노란 옷을 입은 꽃을 내보내신 까닭은 무엇인가?
가만히 생각해보면 노란색은 가장 명시성(明視性)이 높다.
하니 누군가의 눈에 잘 띄도록 채비한 것이 아닌가 싶다.

산 아랫녘은 개나리가 피어나고 있지만,
조금씩 높이 올라가면 여기 북한산은 노란 생강나무꽃 일색이다.
모두들 노란색으로 봄을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이 충매화(蟲媒花)인지 혹 풍매화(風媒花)인지 내 잘 모르겠지만,
분명 명시도 높은 노랑으로써 무엇인가를 꾀하고 있기에,
한결 같은 색으로 단장하고 있을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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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이 남들처럼 붉은 색으로 피어나지 않는 까닭은 무엇인가?
여느 붉은 색 꽃은 이들보다는 한 발을 늦춰 뒤따라 등장한다.

나는 상상한다.
노란 꽃은 본성이든 생존전략이든 어떠한 사유로 남보다 앞서 봄을 맞이하되,
열매를 맺기 위해선 붉은 색보다 노란색을 택하였으니,
이는 그들의 지혜라고 하여야 할 것이다.
노란색만큼 이 누리끼리 칙칙한 산하에 더 명시성이 높은 것이 어디에 있으랴.

만약 붉은색을 지니고 이른 철에 나타났다면,
필경은 도모하고자 하는 제 뜻을 펴는데 어려움이 많았을 것이다.
저들이 피는 시기를 늦춰 다른 꽃들과 다투지 않고,
무리를 등져 이른 봄철에 꽃을 틔어내고자 할 때,
노란색을 택함은 과히 오묘한 선택이라 할 수 있다.

반면 산하가 녹색 빛이 도는 늦은 철에는 당연 붉은색이 보색대비 효과가 뛰어나니,
남에게 보여 꾀하는 것이 있다면 노란색보다는 한결 효과적이다.
하니 늦은 철 꽃들은 거개가 희지 않으면 붉은색 일색이다.

노란색 꽃들이 늦은 철을 피해,
저들 뭇 붉은색 꽃무리를 등져 출현한 것으로 미루어,
저들은 고독군자가 아닌가 싶다.
무리들과 섞여 다투지 않고,
아직은 춥고 외롭지만,
무리를 비켜나 자신만의 세계를 지키려는 고고한 인사(人士)가 아닌가 싶은 것이다.

비록 남들처럼 붉은 색 꽃을 피지는 않지만,
저들로부터 벗어나 미리 세상을 흠감(歆感)하나니,
그 뜻이 사뭇 고상하여라.
이름하여 노란 꽃이라.

나는 노란 꽃을 보며 산을 내려오다
유유(悠悠) 한사(寒士)
가난한 선비의 곧은 절개를 엿본다.

***

만물은 물 길어 생명이 돋는데,
저기 개구리는 미쳐 봄도 맞지 못하고 계곡 속에 죽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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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어이 저기 나무에 깃들던 벌들은 단 한 마리도 보이질 않는다.
패악질한 인간은 지금 어디매로 흘러들어 있는가?
(※ 참고 글 : ☞ 2009/01/31 - [소요유] - 살아 난 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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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켠에 사람들의 간절한 소망이 돌무더기로 화한다.
(※ 참고 글 : ☞ 2008/06/22 - [소요유] - 성황당(城隍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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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래 새로 만들어진 돌무더기)

지나는데 할머니 할아버지가 벤치에 앉아 음식을 자신다.
종이컵에 흑보석 같은 게 물에 뜬 채 가득 들어 있다.
저게 무엇일까 싶은 찰나 그게 개구리나 도롱뇽 알인 양 싶다.

이미 지나쳤으되,
되돌아가 청하길 나 주십사 할까 싶은 생각이 경각간에 몇 번이고 오간다.
얻어 다시 놓아주련만 ...
소싯적 사람들은 저런 것을 파는 이도 있고,
소주에 타서 마시는 이도 보았음이니,
이 또한 저들의 명수(命數)라 일러야 할 것인가?
저 정도 나이면 세상에 두루 안타까움에 젖은 깊은 정을 낼 때도 되었을 터인데,
참으로 인간이란 갈 길이 멀기도 하다.

금나수(擒拿手) 그물망에 갇힌 중생들이란 얼마나 가여운가?

산 위에서 나는,
내 인기척 소리를 듣고,
고물할아버지네 강아지들이 난리법석이었다고,
마침 그 집앞에서 만난 이웃 아주머니가 말씀하신다.
돼지껍데기가 생겨 강아지에게 주려고 들리셨다 한다.

개구리, 강아지, 들고양이.
노란 꽃 같은 저들이건만,
어이하여 삶의 질곡에 갇혀 있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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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春澤水이얼랑가? 春潭이 사뭇 곱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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