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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덕비

소요유 : 2009. 4. 1. 12:00


내가 다니는 북한산 내(內) 약수터가 작년 10월경에 훼손되었다.
당시 나는 당국에 정비하여 줄 것을 요청하였다.
(※ 참고 글 : ☞ 2008/09/30 - [소요유] - 낮도깨비)

애초에 국립공원 측을 접촉하였으나 소관이 아니라한즉,
이리저리 맴을 돌다 최후에 담당관서가 구청임을 확인하였다.
하지만 저들은 애매한 태도를 보이는 등,
결국 정비해줄 의사가 전혀 없는 눈치였다.
나는 당시 차선으로 수질검사를 요청했는데,
요행 저들은 그리하겠다고 답하였다.

나는 안전을 확인할 수 없어 그 후 그 약수터를 이용하지 않다가,
달포 전부터 다시 사용하기로 했다.
하지만, 그 때까지도 저들이 하기로 약속한 수질검사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기에,
최근 저들에게 다시 확인을 구하였다.

저들이 금년 03.16 내게 보내온 답변 내용은 아래와 같다.

“xxx 약수터 수질검사와 관련 해당구청인 xx구청에 확인한 바, 2008년 10월 기 답변드린대로 구청에서 11월에 수질검사는 하였으나 검사결과 게시를 하지 않았음을 알려드립니다.
선생님께 답변드린대로 검사결과를 게시하지 않은 사실에 대하여 진심으로 사과드리오며, 금월중에 다시 수질검사를 하여 반드시 검사결과를 게시하도록 xx구청에 통보하겠으니 이점 양지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선생님이 건의하신 사항이 미흡하게 처리된 사실에 대하여 다시 한 번 진심으로 사과드리며, 추후 이런 일이 없도록 관리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며칠 후, 구청 담당자가 직접 유선으로 전화를 주면서
앞으로는 분기별로 수질검사를 하겠다고 연락을 주었다.
나중에 약수터에 올라가 보니,
수질검사표가 약수터 근처 말목 판에 걸려 있었다.
근 5개월 만에 민원 하나가 가까스로 처리된 것이다.
그런데, 이 수질검사표가 며칠도 되지 않아 없어져버렸다.
어떤 인간이 궁하여 책받침이라도 하려고 떼어간 것인가?

그런데,
며칠 전 사진처럼 약수터 위에 턱하니 못 보던 철말뚝이 세워져 있더니만,
없어졌던 검사표가 다시 붙어 있는 게 아닌가?
게다가 그 옆에는 가까이에 있는 배드민턴 회원 명의의 알림판이 세워졌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저들을 내 알지 못하니, 짐작할 수밖에 없지만,
수질검사표를 혹 저들이 보관하고 있다가,
이번에 게시판을 제작하면서 내어 붙인 것이 아닌가도 싶다.
구청 측에서 게시판을 만들었어야 옳겠지만,
수질검사를 한 것만도 그 주제에 비추어,
심히 기특한 노릇이라 그러려니 그냥 참은 것인데,
배드민턴 회원들이 저리 게시판을 제작하였다니,
그들의 평소 행태로 미루어 아연 제법이다 싶었다.

그런데, 그 옆 게시판 내용을 읽어보니 이게 영 그르다 싶은 것이다.
거기엔 이런 요지의 내용이 적혀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얼마 전 수질검사시 부적합 판정으로 인하여 잠시 폐쇄되었으나,
회원들의 수질 향상 노력으로 재검사시 적합 판정 통보를 받았습니다.”

이 글을 읽으니 이게 참으로 맹랑하다.
여기는 십 수 년 전부터 한 번도 수질검사를 한 적이 없다.
그러하니 도대체가 적합이니, 부적합이니 따질 겨를이 없다.
그러한 것을 회원들의 노력으로 재검사시 적합판정을 받았다고 하고 있질 않은가 말이다.
깎고 보태는 수작이 반지르하기가 마치 기름집 됫박 같다.

내가 아직 총기를 잃을 형편도 아닌즉,
구청 직원이 이번에 수질검사표를 이곳에 걸어두면서,
내게 전화 주기를 ‘적합’으로 나왔다 하였음이 분명하다.
내가 바로 당사자임이니 내가 나를 기억 못하랴.
그리고 이때가 십 수 년 만에 이곳 약수터에서 처음으로 수질검사를 한 시초인 것이다.

저 게시판엔 도합 세 가지 거짓말이 꾸며져 있다.

하나는 며칠 전엔 수질이 부적합하여 폐쇄되었다는 것,
둘은 그러한 것을 회원들의 관리 노력에 따라 적합으로 바뀌었다는 것,
셋은 마치 이러한 것이 저들의 주도로 이루어졌다는 것.

어느 날 수질검사표가 떡 하니 붙은 것을 기화로,
저들 배드민턴 회원들이 작문을 그럴 듯이 지어 붙인 것이로되,
요게 맹랑한 짓이지만 한편으론 제법 재롱떠는 것이 귀엽기도 하여 피식 웃고 말았다.

***

나는 내려오면서 요 조그만 바닥에서도 저리 명리(名利)를 탐하는데,
정치판은 얼마나 살벌하게 돌아가겠는가 어림짐작이 되기도 하고,
예전 공덕비는 또 오죽하였을까 싶었다.

사또가 직(職)을 내놓고 마을을 떠나게 될 시,
갖은 토색(討索), 수탈을 일삼던 오리(汚吏)라한들,
그동안 곁불 쬐며 덕을 보던 아전 나부랭이나 토호들은 금은덩이를 헐어내고,
백성들은 없는 형편임에도 불구하고 저들 핍박에 떠밀려,
만부득 미포(米布)를 내어 공덕비(功德碑)를 마을 어귀에 세우게 된다.
저 놈이 가는 날까지 기어이 껍데기를 벗기자는 수작임이다.

일컫기를,
비석을 세우는 일을 수비(竪碑)라 한다.
수비가 끝나면, 그 앞에서 비를 세우게 된 까닭을 사뢰는 의식을 치르게 되는데,
이를 고유제(告由祭)라고 한다.
이후 비로소 비석 거죽에 씌운 광목천을 벗기게 되는데,
이를 제막(除幕)이라 이른다.
이 때 비석에 쓰인 글을 한 사람이 크게 읽는데,
죽 둘러 선 이들은 손뼉을 치며 감복(感服)하게 된다.
이를 관비(觀碑)라 한다.

실인즉 공덕비는 수비로 의식의 뜻을 일으켜 모으고,
관비에 이르러 비석 주인공의 공덕을 새기며 함께 감복하는 것이니,
의식의 가장 중요한 절정을 이루는 부분은 바로 여기라 하겠다.

현대에는 이런 것을 잃고,
xx 제막식이라 하여,
비석에서 천을 벗기는 행위 자체에 집중하여,
이 때 우르르 박수를 쳐대며 즐거워 하다가 그냥 싱겁게 흩어지고 만다.
마치 조루(早漏)환자처럼 하얗게 벗긴 문전에서,  
흥(興)이 다하고(盡) 정(精)이 파(破)하고 마는 것이다.
미처 품고 교합(交合), 교정(交情)할 사이도 없이 제풀로 사위고 만다.
사뭇 멋대가리 없는 경박한 세태의 풍속이라 하겠다.

관비(觀碑)없는 제막(除幕)이란,
문전(門前) 실족(失足)하고 마는 풋내기들의 사랑 놀음처럼,
조급하기만 할 뿐, 골짜기의 그윽한 암향(暗香)을 즐길 새가 없다.

뜻이 아니라 거죽 외양에 기대어,
화르르 감정을 불사르고 그치고 마는 것이니,
현대인은 거개 양식주의자(樣式主義者, stylist)에 가깝다고 나는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구태여 이를 나무랄 까닭은 없다.
때론 양식이라는 게 내용 못지않게 중요하기도 하니까.

다만, 정작 중요한 관비(觀碑)는 없고 제막(除幕)에만 집중하는
공덕비란 얼마나 공허한가 싶어 차제에 짚어두고 싶을 따름이다.

공덕비는 송덕비(頌德碑)라고도 하는데,
개중에는 참말로 떠나는 사또 도포자락이라도 부여잡고 말리고 싶을 정도의 어진 이도 있으련만,
거개는 가렴주구(苛斂誅求) 학정(虐政)을 펴던 이가 대다수라,
제대로 이름 하자면 공덕비는커녕 패악비(悖惡碑)라고 하여야 할 것이로되,
세상엔 이름을 믿지 못할 사연이 어디 이런 돌비석뿐이랴.

한즉, 후대엔 모든 공덕비를 일단 의심부터 하고 보게 되니,
그야말로 곤강(崑岡)에 불이 나니 옥석구분(玉石俱焚)인 격이 되었다 할 것이다.

원래 공덕이란,
적공누덕(積功累德) 즉 공을 쌓고 덕을 거듭 더하여 오랜 시간 한결 같음으로 이루는 것이니,
어느 날 단발로 이룬 성과를 이름 하는 게 아니다.
또한 이룬 공덕을 널리 여러 사람에게 돌리는 일,
즉 중생회향(衆生回向)이 따라야 실(實)답다 할 것이다.
이게 나아가 불교에서 이르는 무공덕(無功德) 즉 공덕의 과보를 구하지 않는 경지에
이르게 되면 공덕비나 송덕비라는 것이야말로 실로 싱겁기 짝이 없는 짓거리가 된다.

어느 날 문득 붙여진,
수질검사표 앞에서,
저리 부산을 떨며 남의 공덕을 훔쳐 한바탕 쇼를 벌인 저들은 무엇이란 말인가?
작금에 일어나듯 기십억 뇌물 수수하며 농탕질 친 것이 아닌즉,
그저 허허롭게 웃으며 지나칠 수도 있다.
한가로운 산중엔 역일(曆日)이 없음이다.
(偶來松樹下 高枕石頭眠 山中無曆日 寒盡不知來 -- 太上隱者答人詩)

하지만,
내가 걱정하는 것은 개구장이 어른들의 이런 귀여운 재롱 따위가 아니다.

저들이 모여 노는 배드민턴장은 약수터 바로 윗편 가까이에 있다.
주변에 운동기구를 몇 점 갖다 놓았는데,
그 주변 터를 닦느라고 산림을 훼손하고,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곤 하여 그게 바닥에 묻히곤 한다.
게다가 모여 왁자지껄하며 떠들 때는 골짜기가 흡사 장터를 방불한다.
나는 저들을 수년전부터 지켜보고 있지만,
이런 모습은 하나도 변하지 않고 늘 여전하다.

진심으로 산을 염려한다면,
공연히 철봉 박고, 게시판 세우고 우쭐 거릴 까닭이 없는 것이다.
나는 산속에 이런 시설물 자체가 싫다.
그저 자연 그대로 소박하니 조촐한 그대로가 좋다.
사진에는 잘 보이지 않지만,
이들 철물에 페인트칠을 하여 그 작업 흔적이 땅바닥에 떨어지고,
시멘트 기초를 박고하는 행위가 나는 다 공연한 헛짓거리로 보여지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말이다.
숲에 들어와 무슨 공덕을 내세우려 함이며, 명리를 구하려 함인가?
저들 배드민턴 회원들은 새벽부터 나오는 모양이던데,
산중에 들어와 마음이나 정갈히 닦을 노릇이지,
무엇을 더 탐할 것이 있단 말인가?

다 부질없음이니,
다른 것은 만사 다 좋으나,
다만 저들 놀이터 주변에 쓰레기나 버리지 말았으면,
내 그저 감지덕지(感之德之)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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