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gta      

칼살판

소요유 : 2009. 4. 3. 21:07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없다.”

누군가 저리 말했다.

나는 오늘 이 말에 빗대어,
이런 말을 떠올린다.

“날개가 없기에 추락한다.”

얼핏 양자는 같은 말인 듯싶지만,
내 해석을 따르면 전혀 다른 것임을 알 수 있다.

전자는 결과에 집중하고 있지만,
후자는 원인에 중점을 두고 있다.

전자는 날개를 갖추었음을 기정 사실 조건으로서 전제하고 있다.
즉, 마땅히 있어야 할 날개도 없는 것이 날자니 추락한다는 것이다.
하니 추락하는 것을 보고 날개도 없는 것이라고 비아냥거린들,
벌어진 결과 앞에 부끄러움을 감출 도리가 없다.

후자는 원래부터 날개가 없는 주제 또는 형편인데,
어떤 사정에 의해 추락하게 되었다는 '피동적 또는 불가피함', 이런 뜻이 숨겨져 있다.
원인 요소의 결여 때문에 벌어진 사실에 대한 담담한 증언으로 나는 해석하고 싶은 것이다.

예컨대, 길짐승(走獸)은 애초부터 날개가 없다.
그러하니 날려고 한들 날 수 없다.
그런데도 어떤 한 까닭에 허공을 향해 나아갔다면 당연 추락하고 만다.
가령 자기보다 더 큰 짐승에 쫓겨 벼랑으로 몰리다,
급기야 몸을 허공으로 날리게 되었다 하자.

이를 두고 누군가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없다.”
이리 말했다면 매정하니 모질다고 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날개가 없기에 추락한다.” 라고 말했다면,
얼핏 핏기 하나 없이 매몰찬 말로 새겨들을 수도 있지만,
사실에 대한 건조한 보고 또는
운명현실에 대한 담담한 독백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나는 지금 마지막 뜻에 기대어 말을 이어가고자 한다.
우리 집 뒷동산에 절 하나가 있다.
사찰측에서는 거기 절터 위에 산을 깎아 주차장을 내었고,
그 윗단에는 다실(茶室)을 하나 더 지어내었다.

오늘,
사고 현장에 모인 사람 중 어느 한 분의 증언에 의하면,
주차장을 구르던 차 하나가,
그대로 전진하여 경사 법면(法面)을 굴러 쳐 박혔다는 것이다.
(정확한 사고원인은 확인하지 못하였음. 아마도 단순 실수에 따른 사고가 아닐까 추측됨.)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진상 사건과 본문內 특정 내용간 의미 상관 관계 없음.)

다행이 더 이상의 곤두질을 하지는 않고  언덕 위에서 보자면,
참(站)에 해당하는 하단 통행로에서 머리를 박고 멈추었다.

몇 해 전에는 사진 상 맨 우측 지점에서,
밑으로 승용차 하나가 굴러 떨어진 적도 있다.
당시 나는 쿵 하는 소리가 들려 밖으로 나온 적이 있는데,
사람 키 서너길 넘는 시멘트 옹벽 밑으로 굴러 떨어져 사람이 크게 다친 적이 있다.

당시 남자는 스스로 기어 나왔는데,
동승한 여자는 그대로 기진하여 엎어진 채 움직이지 못하였다.
이번 경우엔 운전자가 여성이었던 모양인데,
제법 충격이 큰 모양이다.

나는 이를 동시에 생각해내며,
“날개가 없기에 추락한다.”란 말을 스스로 지어내고는 뇌어 보았던 것이다.

길짐승이 날개가 없듯이,
자동차 역시 날개가 없음이다.

날개가 없으면서 허공을 향해 달리면,
필경은 곤두박질을 치게 된다.

저들 자동차가 부러 허공을 내저었겠는가?
일진이 좋지 않아 잠깐 새 실수로 저리 되었을 것이다.

나는 속으로 가만히 되뇐다.

“날개가 없기에 추락한다.”

이 말은 또 하나의 함의(含意)가 있다.

날개가 없음에도,
자진하여 허공을 날아 추락한다.

하기에,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없다.”란 말 대신 나는
“날개가 없기에 추락한다.” 이 말을 떠올린 것이다.

IMF 경제신탁통치시대.
내가 사는 아파트에서는 이웃 분들이 고공에서 투신하는 일이 몇 차 있었다.

날개가 없음에도,
자진하여 허공을 날아 추락한다.

“날개가 없기에 추락한다.”

외양 자진(自進)이란 형식을 빌렀지만,
실상은 피치못할 사연에 떠밀리렸다고 함이 오히려 더 적실(的實)하리라.

“날개가 없기에 추락한다.”라는 말은 그러하기에 모종의 슬픈 정조(情調)가 흐른다.
하지만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없다.”라고 흔히 쓰는 말에는 조소(嘲笑)가 깔려 있다.

이 말을 고쳐 되새기는 뜻이 그러함이다.

그녀에게,
날개가 있었다면,
어찌 허공중에 몸을 던져 추락함을 꿈꾸었겠는가 말이다.

사당패들의 땅재주를 살판이라고도 부른다.
내가 한국 작가 중에 으뜸으로 꼽는 김주영 씨의 소설을 보면,
심심치 않게 사당패들이 등장한다.
그의 화척(禾尺)이란 소설을 보면

“자칫했으면 미주알에 똥을 달고 숭어뜀을 할 뻔 하였네.”

이런 말이 등장하는데 여기 ‘숭어뜀’이란 말은
남사당패의 땅재주 놀음 중 11번째 재주를 말한다.
12번째 재주는 ‘살판’인데,
여기서 유래한 것으로,

“잘하면 살판. 못하면 죽을판.”

이란 유명한 말이 있다.

재인(才人=acrobat)들은 곤두질을 하여도 잘하면 ‘살판’이 되는데,
정신을 잠깐 놓으면 아차 하는 순간에 ‘죽을판’이 되고 만다.

자동차는 날개가 없다.
사람도 날개가 없다.

어느 날 날개가 없음에도 허공중에 몸을 던지신 분들을 생각해본다.
저 허공중을 달린 자동차처럼 그 분들은 정녕 날개가 없기에 추락하신 것인가?

“잘하면 살판. 못하면 죽을판.” 이다.

재주 '살판'을 재인들은 몸뚱아리 던져 펴며 한 생을 살아간다.
저들에게 어찌 자칫 실수로 '죽을판'이 아니 일어나랴.
하지만,

자동차에 날개가 없듯이,
사람도 날개가 없음에도,
기어이 스스로 허공을 나는 사람들이 있다.
이승에서 영원히 '죽을판'을 아파트 뒷뜰에 펴고,
넋을 꽃처럼 떨구시고 가신 고인을 삼가 떠올린다.

오늘,
추락한 자동차 앞에서,
그들을 가만히 생각해본다.

지금,
산에는 한창,
'칼살판' 진홍빛 진달래가 앞 다투어 피고 있다.
(※ 칼살판 : 손에 칼을 들고 껑충껑충 뛰다가 몸을 틀어 공중 돌기를 한 뒤에 바로 서는 남사당 놀이)

같은 곤두질일지라도,
칼을 들고 나서야 비로소 애오라지 더 갈채받는 '살판'이 되고마는
남사당패들의 삶이란,
얼마나 진달래꽃처럼 피빛으로 붉은 아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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