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서(窮鼠)
병법에 이르길,
“내가 먼저 적을 칠지언정, 적으로 하여금 나를 먼저 공격하게 하지 마라.” 라는 말이 있다.
兵法 有云 寧可我迫人, 莫使人迫我。
노무현은 엊그제 검찰의 수사가 자신에게 좁혀오자,
미리 선수를 써서 슬쩍 옷자락을 자진해서 들어 올리며 살 한 점을 보여주었다.
앉아서 조여 오는 수사망을 곱다시 그저 맞이할 정도로 한가한 형편이 아닌 것이다.
하여 먼저 나아가 적군을 맞이하는 초식을 선보인 것이라.
살 한 점을 베어 가려면 베어가란 투다.
하지만, '떼어가도 네들은 먹을 수 없다.'
외부인들에겐 결백함을 드러내는 모종의 시위로 비추이길 그는 원했을런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그렇다한들,
그들의 표현대로 제 '집(아내)'을 내놓는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이게 사뭇 구차하니 영 체면을 구기는 짓이라 하겠으니,
그로서는 실로 여간 민망한 노릇이라 아니 할 수 없겠다.
"제가 오늘 딱 말 놓고 하고 싶은 이야기 하겠습니다. 야~ 기분좋다."
그 당시 "야~ 기분좋다."를 듣고 느끼던 바와,
지금 다시 떠오르는 그 말을 앞에 두고 느끼는 바가
왜 이리 묘한 배리(背理)의 관계속에 상호 대치하고 있는가?
나는 가만히 그 뒷자리를 밟아가며 홀로 음미해본다.
하여간, 그의 입장에선,
그렇다고 그냥 일방적으로 당하기엔 돌아가는 판세가 여간 심상치 않은 형편인지라,
그래 ‘옜다 모르겠다!’ 하고 나아가 댓거리 마중하고 만 것일 양 싶은데,
하회(下回)가 어찌 될지는 사실관계의 진위 또는 그들 검객 간의 세력 관계를 알 바 없는
나로서는 그저 먼 산 바라보듯 지켜만 볼 수밖에 없다.
하여,
망중한 중에,
이리저리 떠오르는 생각들을 주섬주섬 늘어놓아 본다.
병법 중에는,
‘내 살을 내주고 상대의 뼈를 취하다.” - 刮肉取骨。
라는 것도 흔히 쓰는 수법이지만,
아무려면 그를 도모할 정도로 여유 만만한 입장은 절대 아닌 것이다.
해서, 우선은 삼십육계(三十六計) 중 제34계인 고육계(苦肉計)를 써서,
물밀듯 쏟아져 들어올 대세의 흐름을 잠시나마 끊는 것이 시급하였으리라.
고육계(苦肉計)는 36계 가운데서도 분류상 패전계(敗戰計)에 속한다.
이미 싸움에서 졌을 때 취하는 궁한 방책이란 말인 게다.
처한 위치에서 보자면 어찌 보면 가장 쉽고도 어려운 전법이니,
이는 가장 고전적인 수법의 전형을 이룬다.
제 편 살을 베어 남에게 넘겨주는 것이니 피눈물 나는 최후의 수단이자,
마지막 승부수이기도 하다.
(※ 참고 글 : ☞ 2008/12/23 - [소요유] - 삼십육계(三十六計))
내 이즈음에 이르러 마침 글 하나가 생각난다.
춘추시대 초(楚)나라와 진(晉)나라가 약국(弱國) 정(鄭)을 두고 다투는 장면이다.
얼핏 그 정경이 작금의 사태와 비견(比肩)되어 잠시 멈추어,
가만히 음미해본다.
초나라 병사는 개개 모두가 용기와 위세가 대단했다.
마치 바다가 노호(怒號)하듯 - 嘯(roar), 산이 무너지는 듯,
하늘이 내려앉고, 땅이 무너지듯 그 힘이 넘쳐흘렀다.
반면 진나라 병사는 꿈에서 막 깨어난 듯, 크게 취했다가 깨어난 듯,
동서남북을 구별 못하고 정신이 오락가락했다.
혼쭐을 놓은 이가 어찌 정신이 또렷한 이를 당적할 수 있으리오?
진병은 일시에 그물에 쫓기는 고기와 같고 탄환에 쫓기는 새와 같았다.
혹은 오이 쪼개지듯 채소 이파리 찢어지듯 초병에게 마구 죽임을 당했다.
사분오열되어 십중 칠팔은 죽고 말았다.
楚兵人人耀武,個個揚威,分明似海嘯山崩,天摧地塌。
晉兵如久夢乍回,大醉方醒,還不知東西南北。
“沒心人遇有心人”,怎生抵敵得過? 一時魚奔鳥散,被楚兵砍瓜切菜,亂殺一回。
殺得四分五裂,七零八碎。
결국 진군(晉軍)은 대패하여 황하(黃河)를 건너 도망을 가게 된다.
이 때 배는 적고 건널 병사는 많자,
병사들이 엉켜 배들이 전복되며 아수라장이 되고 만다.
그러자,
배 위에서 장수 선곡은 군사들에게 명한다.
“뱃전에 매달리는 놈들의 손을 칼로 쳐라!”
이를 보고 옆에 늘어선 배들도 모두 그 짓을 따랐다.
손가락들이 마치 꽃잎처럼 편편 허공을 날아 배안으로 떨어졌다.
배 안의 병사들은 그것들을 쉴 새 없이 긁어모아 황하에다 던졌다.
先穀在舟中喝令軍士;“但在攀舷扯漿的,用刀亂砍其手。”
各船俱效之。手指砍落舟中,如飛花片片,數掬不盡,皆投河中。
“뱃전에 기어올라 타려는 자기 편 군사들의 손가락을 잘라 자신의 명(命)을 구하다.”
어쩌랴,
만약 그냥 놔두었으면 배가 뒤집혀 모두 황하의 물고기 밥이 되었으리니.
나는 생각한다.
검찰의 수사가 봉하를 향해 더욱 옥죄 오게 되면,
우군끼리 저마다 살려고 발버둥을 칠 것인즉,
이때에 이르러서는 자중지란(自中之亂)이 벌어져,
아마도 서로를 부정하고 배반하게 되지 않을까 싶은 것이다.
베드로도 새벽 닭이 울기 전 예수를 세번 부정하지 않았던가?
如飛花片片
얼마나 처연하니 비장미(悲壯美) 넘치는 표현인가?
꽃처럼 허공중을 날아 오르는, 잘린 손가락이라니.
하지만,
궁서설리(窮鼠齧貍)라,
궁한 쥐도 막다른 골목에선 살쾡이를 물려고 덤빌 수 있음이니,
저편도 마냥 몰아세울 수는 없을 터인데,
관건은 상호 거래(?)할 만한 약점의 총량,
그리고 그 경중(輕重)에 달렸다 할 것이다.
손자병법(孫子兵法)을 보면 이 국면에서 음미할만한 대목이 나온다.
세상사람 그 누구라도 손에 칼을 잡고 신이 나서 상대를 궁박할 때,
반드시 떠올려야 할 천하의 명구다.
故用兵之法,
高陵勿向,背丘勿逆,佯北勿從,銳卒勿攻,餌兵勿食,歸師勿遏,圍師必闕,窮寇勿迫,
此用兵之法也。
고로 용병하는 법은 이러하다.
높은 곳에 자리한 적을 향해 공격하지 말 것이며, 언덕을 등진 군대를 거슬러 공격하지 마라.
거짓 패한 척 도망가는 적을 쫓지 마라. 예기가 날카로운 군대를 공격하지 마라.
병을 꾀어내는 적군을 가벼이 상대하지 마라. 돌아가는 군대를 막지 마라.
포위된 군사는 필히 도망갈 구멍을 터주며, 궁지에 몰린 적을 몰아 핍박하지 마라.
이것이 용병하는 법이니라.
圍師必闕,窮寇勿迫
궐(闕)이란 결구(缺口)라 즉 포위할 때 구멍 하나를 남겨두고 쫓으란 말이다.
손자병법에선 궁서(窮鼠) 대신 궁구(窮寇)니 구(寇)는 도적 또는 적군을 이름이니,
예서는 적병이 되겠다.
‘궁지에 몰린 적병을 핍박하지 마라.’
- 잘못 하다가는 되물리느니, 결구(缺口) 하나를 남겨 두고 몰아대어야 하느니라.
하지만 칼자루 쥔 이들 앞에 서서,
맨 손인 채, 상대의 검광(劍光)에 온 몸을 드러낸 저들의 운명은 오죽하랴.
내가 앞에서 지적한 퇴임 당시 그의 변(辯) "야~ 기분좋다."를 음미하였다 함은,
바로 이 장면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다.
장차, 설혹 (저편에서 부러 짐짓 내준) 개구멍으로 쫓겨나와 목숨을 건진다한들,
앞으로 얼굴값 하기는 틀렸음이니,
어즈버 세상 사람들의 명예와 오욕의 부침을 그 누가 알랴.
본시 노무현은 영남 지역 내에서는 정치적 비주류이거니와,
이를 도운 곁두리 사업가들도 그 지역에서는 비주류에 속한다.
일정분, 이제 지난 5년간 음지에서 한참 수욕(受辱)하며 참았던,
주류파들의 한판 설치(雪恥), 한(恨)풀이가 벌어지고 있는 것으로 아니 새겨 볼 까닭이 없다.
이것을 단순히 한 정치집단의 비리를 단죄하려는 공명정대한 것이라고만 보는 것은,
저들간 알력(軋轢)의 삐거덕 거리는 소리 높이를 깊이 알지 못하는 처지로서는
가히 온당치 못하다 할 것이다.
원래 무리를 짓고 세(勢)에 기대어 작당(作黨)하게 되면,
필연 주색(酒色)이 따르고 명리(名利)를 구하게 되노니,
종국엔 무리가 따르고 부정부패(不正腐敗)하게 되는 것이 정한 이치다.
이게 주류든 비주류든 빗겨가지 않는 것이 세상 이치니,
무릇 정치하는 자들은 특히나 경계할지니.
요즘엔 인맥(人脈)짓기라 하여,
천하인이 이를 당연시 하고 있다.
필부라한들 이를 따르지 않는 이가 없음이니,
거세(擧世) 오탁(汚濁)
과시 까마득하니 아득한 세태라 하겠다.
(※ 참고 글 : ☞ 2008/12/22 - [소요유] - 씹 팔아서 비단 팬티 사 입을 수는 없다.)
굴원(屈原)은 그러하여 내가 사뭇 가슴에 새겨 모시는 인물이니,
천세만고(千歲萬古) 오직 그만 홀로 독작(獨酌), 독성(獨醒) 의연하고뇨.
그는 아직도 멱라(汨羅)가를 서성이고 있을런가?
(※ 참고 글 : ☞ 2008/12/23 - [소요유] - 청수(淸水)와 탁수(濁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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