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못 속 고기를 잘 보는 자
진(晉)나라에 흉년으로 기근이 들었다.
그래서 도적이 일었다.
순림부(荀林父)는 나라에 널리 도적 잘 잡는 이를 찾아,
하나를 얻었다.
그는 극씨(郤氏) 일족으로서 이름은 옹(雍)이라 했다.
극옹은 남의 거짓 속을 잘 알아 맞혔다.
언젠가 그가 시장을 거닐었다.
그는 홀연 한 사람을 가리키면서 도적놈이라고 했다.
이에 사람들이 그를 잡아 심문해보니 과연 진짜로 도적이었다.
순림부가 물었다.
“어찌 도적인줄 알았는가?”
극옹이 답했다.
“내가 그자의 미첩지간(眉睫之間, 눈썹과 속눈썹 사이)을 살피니,
그가 물건을 보매 탐욕하는 기운이 비쳤으며,
사람을 대할 때는 부끄러운 빛이 떠올랐습니다.
또한 내가 가까이 가니 두려운 기색이었습니다.
이것으로 그가 도적임을 알았습니다.”
내 이 장면에서 잠깐 멈추어 선다.
그리고 이제 시작하여 미쳐 채 익지 않은 공부인 관상학,
미첩(眉睫) 부분을 일컫는 소위 전택궁을 기억해내고,
다시 음미해보기로 한다.
眼爲田宅。最忌赤脈侵睛,初年破盡家財。陰陽失陷,到老無糧可屯。
眼如點漆,終身產業興隆。鳳目高眉,稅置三州五縣。昏暗神露,財散家傾。
詩曰:眼爲田宅主其宮,眼秀分明一樣同,
若是陰陽枯再露,父母家財總是空。
時晉國歲饑,盜賊蜂起,荀林父訪國中之能察盜者,得一人,
乃郤氏之族,名雍。此人善於億逆,嘗遊市井間,忽指一人爲盜,
使人拘而審之,果真盜也。林父問:“何以知之?”
郤雍曰:“吾察其眉睫之間,
見市中之物有貪色,見市中之人有愧色,聞吾之至,而有懼色,是以知之。”
評
이 글의 핵심어는 貪(탐할-탐), 愧(부끄러울-괴), 懼(두려워할-구)다.
중국의 바둑 高手인 마융(馬融)은 이리 말했다.
怯者無功 貪者見亡(겁자무공 탐자견망)
“겁 많은 자는 공을 못 이루고 욕심이 많은 자는 망하고 만다.”
마융은 비록 바둑이지만, 전쟁터와 다름없는 곳,
즉 욕심과 두려움이란 도산검림(刀山劍林)을 지나온 사람이다.
욕심과 두려움은 인간이 외물(外物)과 접하여,
불안한 심리상태에 놓여 있을 때 발하여지는
양극단에 놓인 감정의 전형(典型)들이다.
광대가 절벽을 가로 질러 매어 놓은 줄타기를 하려고 한다.
손에다 긴 장대 하나를 거머쥐고 서 있다.
그는 좌우로 몸이 기울 때마다 장대 끝을 반대로 움직여 균형을 잡는다.
재주가 뛰어난 광대는 장대를 잘 이용하여,
절벽 밑으로 추락하지 않고 용케 대안(對岸)으로 건너간다.
욕심과 두려움은,
마음이란 그 끝을 헤아릴 수 없는 장대 양편으로 길 나눠 갈라 달려간다.
만약 어떤 사람이 하나 있어,
욕심에 눈이 멀어 이를 끝까지 추구한다면,
한쪽으로 장대가 기울고 말리니 어찌 절벽 밑으로 추락하지 않을 텐가? (見亡)
마찬가지로 두려움 역시 그 감정에 한없이 빠져들면,
종내는 하나도 이룸이 없을 것이다. (無功)
이 양자는 심리적 추발(抽拔-tapering)을 일으킨다.
즉 무엇인가 도모하는 일을 차츰차츰 한편으로 이끌거나 잡아 멈추는
양대 추동(推動) 세력의 핵심을 이룬다.
광대 짓이든, 바둑이든, 주식투자든, 사업이든, 또는 정치든 …….
혹은 그것이 무릇 어떠한 것이든 간에,
일에 임하여 무엇인가를 도모하고자 할 때는,
반드시 이 양자를 제대로 통어(統御)할 수 있어야 한다.
감정의 노예가 아니라,
그들을 주체적으로 거느려(統) 제어(御)할 수 있어야 한다.
누군가 지금 서 있는 자리에서,
이 양단의 감정을 극단으로 오가고 있다면,
그가 도적이건 또는 어떤 이이건 간에 아직 손이 익은 자(熟手)는 아닌 것이다.
극옹이 제 아무리 관심술(觀心術)이 뛰어난들,
도척(盜跖)같이 큰 도적은 감히 알아낼 수 없었으리라.
무릇 도적이 되려면 도척이 되어야 한다.
작금의 노무현이 생각난다.
그는 제후였었던가, 도적이었던가?
차라리 도척을 진작 제대로 연구할 노릇이지,
어이하여 극옹에게 들켜 봉욕(逢辱)을 당하고 있음인가?
한편, 괴(愧)는 탐(貪), 구(懼)와는 다르다.
괴(愧)는 양심(良心)에 뿌리를 두고 있다.
수오지심 의지단(羞惡之心 義之端)이라 하지 않았던가?
마땅함.
마땅하지 않은 일에 부끄러움을 느낌이 곧 의(義)이다.
도적이 괴(愧)를 느끼고 있다면,
이 자는 도적치고는 아직 양심이 살아 있는 자다.
아래에 나올 양설직의 말씀이 설 자리가 있게 된다.
그 후 극옹은 매일 도적을 수십 인씩 잡았다.
하니, 시정(市井) 사람들은 모두 두려워했다.
그런데 잡으면 잡을수록 오히려 도적은 많아졌다.
대부 양설직(羊舌職)이 순림부에게 말한다.
(※ 양설직 참고 글 : ☞ 2008/09/02 - [소요유] - 시불망보(施不望報))
“나는 원수가 극옹을 임용해서 도적을 잡는다는 소문을 들었소.
하지만 도적을 다 잡아 들이기 전에 극옹이 먼저 죽을 것이오.”
순림부가 놀라 묻는다.
“어째서 그러하단 말이오?”
郤雍每日獲盜數十人,市井悚懼,而盜賊愈多。
大夫羊舌職謂林父曰:“元帥任郤雍以獲盜也。盜未盡獲,而郤雍之死期至矣。”
林父驚問:“何故?”
양설직이 답하여 가로대,
“주(周)나라 속담에
‘연못 속 고기를 잘 볼 줄 아는 이는 상서롭지 못하며,
남의 비밀을 잘 헤아려 알아내는 사람은 재앙이 닥친다.’란 말이 있지요.
극옹 한 사람의 힘만으로는 도적 떼거리들을 다 잡아낼 수 없습니다.
오히려 도적떼들이 힘을 합쳐 극옹을 제압하고 말 것이오.
그러하니 어찌 극옹이 죽지 않으리오.”
羊舌職對曰:“周諺有云:‘察見淵魚者不祥,智料隱慝者有殃。’
恃郤雍,一人之察,不可以盡群盜,而合群盜之力,反可以制郤雍,不死何爲?”
이 말을 하고 나서 3일이 되던 날 극옹이 교외에 나갔는데,
도적 무리 수십 인이 그를 공격해 극옹의 머리를 잘라 달아났다.
이 소식을 접한 순림부는 울화병이 나서 죽고 말았다.
未及三日,郤雍偶行郊外。
群盜數十人,合而攻之,割其頭以去。荀林父憂憤成疾而死。
진경공(晉景公)이 양설직의 이런 사연을 듣고는 그를 불러 물었다.
“그대의 예언대로 극옹이 죽었다.
그럼 어찌해야 도적을 없앨꼬?”
양설직이 답하여 아뢴다.
“무릇 꾀로서 꾀를 막는 것은 마치 돌로써 풀을 눌러 두는 것과 같습니다.
풀은 반드시 틈을 비집고 자라나고야 맙니다.
폭력으로서 폭력을 금하는 것은 마치 돌로써 돌을 치는 것과 매한가지입니다.
두 개의 돌은 결국 다 깨어지고 맙니다.
그러므로 도적을 없애는 방책은 그들의 마음을 교화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염치를 알게 하여야 합니다.
도적을 많이 잡는 것만이 능사가 아닌 것입니다.
왕께서는 신하들 중에서 어진 사람을 택하여,
백성들에게 착한 길을 밝히도록 하십시오.
착하지 못한 자들이 스스로 감화를 받을 것입니다.
그러면 어찌 도적들을 걱정하실 것이 있겠습니까?”
晉景公聞羊舌職之言,召而問曰:“子之料郤雍當矣!
然弭盜何策?”羊舌職對曰:“夫以智禦智,如用石壓草,草必罅生。
以暴禁暴,如用石擊石,石必兩碎。故弭盜之方,
在乎化其心術,使知廉恥,非以多獲爲能也。君如擇朝中之善人,
顯榮之於民上,彼不善者將自化,何盜之足患哉?”
경공이 다시 묻는다.
“그러면 현재 우리 진나라에 어진 사람 중 으뜸은 누구인가?”
양설직이 답하여 아뢴다.
“사회(士會)를 따를 사람이 없습니다.
그 사람 됨됨이를 보자면,
신용 있는 말을 하며, 의로운 행동을 하며,
너그럽되 아첨하지 않으며,
청렴하되 고지식하지 않으며,
강직하되 반항하지 않으며,
위엄이 있으되 사납지 않습니다.
왕께서는 필히 그를 쓰십시오.”
景公又問曰:“當今晉之善人,何者爲最?卿試舉之。”
羊舌職曰:“無如士會。其爲人,
言依於言(言依於信),行依於義;
和而不諂,廉而不矯;直而不亢,威而不猛。
君必用之。”
그 후 사회(士會)가 오랑캐 적적(赤狄)을 평정하고 돌아왔다.
진경공은 주(周)나라에 적적 포로를 바쳤다.
그리고 이가 모두 사회의 공임을 아뢨다.
주정왕(周定王)은 사회에게 불면(黻冕-고대 예복과 관)을 하사하고,
상경의 벼슬을 허락했다.
마침내 사회는 순림부를 대신해서 중군원수(中軍元帥)가 되었다.
아울러 태부(太傅)를 겸했다.
또한 범(范) 땅에 봉했다.
이로써 그는 범씨(范氏)의 시조가 된다.
사회는 도적 잡는 법률을 모두 삭제해버렸다.
그리고 오로지 백성들에게 착한 것을 권하고 교화에 힘썼다.
그러자 간악한 무리들은 모두 진(秦)나라로 도망가 버리고,
도적이 하나도 없게 되었다.
진(晉)나라는 크게 다스려졌다.
及士會定赤狄而還,晉景公獻狄俘於周,以士會之功,奏聞周定王。
定王賜士會以黻冕之服,位爲上卿。遂代林父之任,爲中軍元帥。
且加太傅之職,改封於范,是爲范氏之始。士會將緝盜科條,
盡行除削,專以教化勸民爲善。於是奸民皆逃奔秦國,
無一盜賊,晉國大治。
(※ 양설직에 대한 참고 글 : ☞ 2008/09/02 - [소요유] - 시불망보(施不望報))
評
그런데 과연 그러할까?
이 이야기의 배경시대는 춘추시대(春秋時代:BC770~BC403)이다.
후에 이어지는 전국시대(戰國時代:BC403~BC221)는 춘추시대보다
더욱 혼란이 극에 다다른 시대이다.
이때야말로 봉건제도는 완전히 허물어지고 각국 간 약육강식이 횡행했다.
사회(士會)가 말한 예법(禮法)은 온데간데없고,
천하 만민은 전쟁의 도탄에 빠졌다.
나중 진(秦)나라의 천하통일은 예(禮)에 의해서가 아니라,
실인즉 무력, 외교술(합종연횡)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 초석은 앞서 상앙(商鞅), 이사(李斯) 등 법가(法家)들에 의해 닦였다.
게다가 묵가(墨家)와 같은 기술, 법률, 행정가 무리들이 대거 몰려들었다.
무릇 나라가 크려면, 울을 터서 천하의 인재를 받아들야 한다.
(※ 참고 글 : ☞ 2008/02/23 - [소요유] - 황희-일리-삼리)
나는 생각한다.
천하를 다스리려면,
어찌 사회(士會)만 필요할까?
극옹(郤雍), 상앙(商鞅), 이사(李斯) ... 모두 제 할 일이 있을 터.
다만 이들을 적재적소 쓰임껏 부림이 요긴할 노릇이리라.
'소요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주관적 역사 (0) | 2009.04.20 |
---|---|
용병하는 법 (0) | 2009.04.14 |
성황당 가는 길 (0) | 2009.04.13 |
궁서(窮鼠) (2) | 2009.04.10 |
대통령님, 죄송합니다 ? (3) | 2009.04.08 |
수사불패(雖死不敗) (1) | 2009.04.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