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gta      

주관적 역사

소요유 : 2009.04.20 21:46


역사에 대한 단상

역사란 무엇인가?
역사를 학문적으로 배우는 사람들이야,
실증주의 또는 상대주의적 역사관 운운하며 갈래를 나누어 의론을 펼 것이로되,
그러한 것은 그들 역사학도에게 맡겨 두기로 하고,
여기 잠깐 며칠 전 일어난 생각의 실타래를 쫓아 몇 자 적어두고자 한다.

우선, 언젠가 앞에서 적어둔 동호지필의 고사를 다시 음미하면서,
이야기를 잇기로 한다.


(※ 참고 글 : ☞ 2008/12/10 - [소요유] - 명적(鳴鏑) - 우는 화살)

…….
그 뿐이랴,
잠깐, 돌아보자.
동호지필(董狐之筆 or 董狐直筆)은 무엇인가?

진(晉)나라 영공(靈公)은 황음무도(荒淫無道)했다.
조돈이 누차 간언하였으나 도리어 조돈을 죽이려고 했다.
조돈은 요행이 도망을 갔다.
도망 길에 그의 조카인 조천(趙穿)을 만나,
그의 제안대로 일단 국경지방에 머물며 정세를 살펴보기로 한다.
서로 헤어진 조천은 궁으로 가서 영공을 죽여 버리고 만다.
조돈은 이에 다시 도성으로 돌아왔다.

이 때, 사관(史官)인 동호(董狐)는 조돈살기군(趙盾弑其君)이란 기록을 남겼다.

“조돈이 그 군주를 시해했다.”라는 말이니,
조돈은 자연 심중이 언짢았다.
조돈은 변명해 말하길,

“영공을 죽인 것은 조천이지 내가 아니다.”

그러자 동호가 말하여 가로대,

“당신은 진나라의 정경(正卿)이다.
비록 도망하였다 하되 국경 밖을 벗어난 것은 아니다.
돌아와 조천을 죽이지 않았다.
한즉 당신이 군주를 모살한 것과 다름이 없다.
어찌 억울함이 있으리오.”

어찌 관용과 엄벌이 겸하여 베풀어질 수 있음인가?
군주 시해 기록은 단 한자도 고쳐지지 않았다.

공자(孔子)는 이 일을 춘추에 남겨 평하되, 이리 했음이다.

“동호는 훌륭한 사관이니, 기록하는 법을 지켜 사실을 숨기지 않았다.
조돈은 훌륭한 대부니, 법을 위해 오명을 받다.
애석타.
국경을 넘었으면 역적의 오명을 면하였을 텐데.”

공자가 조돈을 훌륭한 대부로 평한 까닭은
후에 국정을 엄격히 잘 수행했기 때문이다.
비록 조돈은 역사에 오명을 남겼지만,
국가를 위해 갈심진력(竭心盡力)하여,
공자로부터 좋은 평을 들었으니,
한 가닥 건진 건더기가 남겨졌음이라.


조돈시기군(趙盾弑其君).
영공(靈公)을 직접 죽인 것은 조천(趙穿)이로되,
사관(史官) 동호(董狐)는 당시 최고 실력자인 조돈(趙盾)의 책임을 물어,
단호히 그가 죽인 것으로 규정한다.
가히 서릿발처럼 엄정한 태도라 하겠다.

시(弑)란 살(殺)과 다르다.
하살상왈시(下殺上曰弑).
즉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죽인(殺) 경우를 일컬어 시(弑)라 한다.

신살군(臣殺君), 자살부모(子殺父母).
이런 경우를 시(弑)라 특칭 한다.
그런즉, 이를 제대로 쓰자면 시군(弑君), 시부(弑父), 시모(弑母)인 것이다.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라 할 때,
군(君)은 나라의 아버지요,
사(師)는 정신적 아버지,
부(父)는 육신의 아버지인즉,
이들을 죽인다는 것은,
천명(天命) 또는 천륜(天綸)이 위에서 아래로,
즉 상이하(上而下-downstream) 하는 것으로 볼 때,
이는 명백히 하극상(下剋上)인즉 천명을 거스르는 것이 된다.

그러니, 그저 단순히 살(殺)이라 하지 않고 시(弑)라 함이니,
즉 하살상(下殺上)이고,
이에 의지하여 동호는, 비록 황음무도한 왕이 살해당한 것이지만,
조돈시기군(趙盾弑其君) 즉 신시군(臣弑君)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공자 역시 동호의 태도를 훌륭하다고 이르며 동일한 역사관을 견지하고 있다.
그런데, 맹자(孟子)의 태도는 아연 다르다.

齊宣王問曰 湯放桀 武王伐紂 有諸 孟子對曰 於傳有之 曰臣弑其君可乎
曰賊仁者謂之賊 賊義者謂之殘
殘賊之人謂之一夫 聞誅一夫紂矣 未聞弑君也

제선왕(齊宣王)이 맹자에게 물었다.

“탕왕은 걸왕을 내쫓았고. 무왕은 주왕을 정벌했다는데,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맹자가 답하여 가로대,

“전해지는 바, 그런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신하가 그 임금을 시해하는 것이 옳은 일인가요?”

“어진 것을 해치는 것을 도적이라 하고,
의로움을 해치는 것을 잔악하다고 이릅니다.
이렇듯 잔악하고 도적질하는 사람을 일러 그저 일개 필부라 합니다.
그런 필부에 불과한 주(紂)를 주살해버렸다는 말을 들었긴 합니다만,
임금을 시해했다는 이야기는 들은 바 없습니다.”
 
맹자 이전까지 이제까지 살(殺)과 시(弑)의 구별은
오로지 상살하(上殺下)이냐 하살상(下殺上)이냐에 따른다.

하지만 맹자는 상하가 아니라, 인의(仁義)를 기준으로 따지고 있음이다.
하살상(下殺上)이라도 그게 인의를 바로 세우는 것이라면,
그저 주살(誅殺)에 불과한 것이다.
죄 지은 자를 책(責)하여 쳐서 벌함에 왕일지라도,
일개 필부와 하등 차이를 두지 않고 있음이다.

***

맹자라면 동호를 두고 공자처럼 양사(良史-바른 史官)라고 결코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동일한 역사현실을 두고 이리 다른 태도를 보일 수 있음은 무엇인가?
과연 역사라는 것이 실증주의자의 생각처럼 객관적인 인식이 가능하겠는가?

역사를 외부에서 들여다보는 자들의 인식 태도 즉 사관(史觀)이,
객관주의와 주관주의로 나뉘어 대립할 수도 있지만,
역사 앞에 서 있는 즉, 역사주체들의 태도도 역시 이런 구별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역사현장에서 비바람 맞으며 바로 역사를 구현하고 있는,
즉 역사행위의 순간에 그들의 역사관에 따라 각기 다른 행동이 나타날 것이다.
(이것은 역사관이라고 해도 좋고 달리 인생관이라 해도 좋다.)

예컨대 동호가 맹자의 사관을 따르고 있었다면,
그가 어찌 조돈시기군(趙盾弑其君)이라며,
조돈을 청죽(靑竹)에 오명지사(汚名之士)로 남겼을 것인가?
오히려 열혈지사(熱血志士)로 방명(芳名)을 새겨 넣고 말았으리라.

또한 조돈 역시 스스로 탄식하며 어찌 승복하였겠는가?
대의를 폄이니 오히려 떳떳하게 임하였으리라 싶다.

吾十有五而志于學, 三十而立, 四十而不惑, 五十而知天命,
六十而耳順, 七十而從心所欲, 不踰矩

공자가 15세에 학문에 뜻을 두고, 40세에 이르러 비로서 불혹(不惑)하였다 함은,
그 때까지 곧 객관의 세계를 두루 탐력(探歷)하며 공부를 한 시기란 뜻이겠다.
하지만 그가 이후 지명(知命), 이순(耳順), 종심(從心)의 단계로 나아갔다는 얘기는
그가 이제 저만의 주관을 확립했다는 말씀에 다름 아니다.
이게 종국엔 객관의 세계와 계합(契合)되리라 짐작되지만,
나로서는 자신만의 주관의 세계를 찾아내고 확립했다는 점에 유의하고 싶다.

남이 지나간 자취로서의 역사에 대한 해석이거나,
내가 써가는 역사이거나 그 무엇이건대,
나는 역사란 주관적 관점에서 통찰하고 행동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거기엔 책임이 따른다.
하지만, 외부를 향한 책임은 차라리 부차적이다.
그것은 종국엔 나의 양심을 향한 책임일 터이고,
이를 의식하며,
역사현장에서 내 몸으로써 비바람 맞고,
내 귀로써 천둥소리를 듣고,
내 목소리로 외치는 태도라야,
역사가 제대로 설 수 있으리란 생각이다.

나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이런 태도로 저마다의 역사를 담임(擔任)할 때라야,
굳이 있다면, 비로소 객관적인 역사가 총화(總和)로서 이름지어질 수 있다.
이러할 때라야 온전히 주관과 객관이 서로 조응(照應)하고,
투합(投合)하는 관계가 되리니,
이는 일즉다(一卽多), 다즉일(多卽一)의 상즉상입(相卽相入)하는 경지와 같다.

맹자는 이를 앞의 예에선 인의(仁義) 나아가 호연지기(浩然之氣)로 표현한 것이 아니겠는가?
나는 항상 올바른 일을 향하고 있다는 자신감,
그리고 그를 키워 종국에 그 기운이 하늘 사이에 충만한다는 호연지기.
그렇다고 하여도 그것이 성급하게 재촉한다 하여 길러지는 것이 아니다.
의연히 도(道)를 따르고,
의(義)를 길러 수양하는 가운데 배양이 되는 것이다.

그것은 결코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내 안에서 의기(義氣)를 길러 새벽 샘물처럼 고이는 것이다.

저마다,
도와 의에 의지하며 자신을 기르는 가운데,
역사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뿐인 것을.

그러하기에 자기에게 책임을 지는 것이,
곧 남에게도 책임을 지는 것이다.
내가 이곳 블로그에 남의 잘못을 적지 아니 지적하는 바는,
오직 하나의 기준에 따른다.

“남에게 폐를 끼치지 마라.”

그 외는 그가 겨울에 여름옷을 입고 나타나든,
도포 입고 논을 갈든 나와는 무관사(無關事)다.

하지만, 세상사는 오히려 이런 일에 애써 참견하여 분주할 뿐,
막상 공적인 공간을 더럽히고 어지럽히는 악인에게 무심하다.
(내 말이 하나도 거짓말이 아니다.
포틀 사이트를 열어보라,
웬 년의 연예인 치마 길이가 짧으냐, 기냐,
입은 팬티가 핑크빛이냐 흰색이냐 따위로 날을 지새우고 있다.)
내겐 이 모두 역사를 외면하고,
엽기(獵奇)를 쫓고, 소리(小利)만을 도모하기 때문에 그리 된다고 본다.

혹여, 외부의 어떤 훌륭한 사람을 기다린다든가,
어떤 객관적 사태 변화로 나의 발전을 구한다면,
그것은 내가 쓰는 역사도 아니요,
종국엔 사회 전체에도 기여하는 바도 적을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주관이 확립되지 않으면,
더욱 주관에 매몰되니 공도(公道)를 무시하고, 자신의 이해에 복무하는,
길을 추구하게 된다.
이 때 ‘불안(anxiety)’이 싹튼다.

객관적 역사가 별도로 있고,
내가 이를 상대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한,
그가 쓰는 아니 의지하는 역사는 언제나 불안할 수밖에 없다.

불안한 한,
조급해지고, 욕심이 일어난다.

왜 그런가?

나의 세계가 확립되어 있지 않기에,
자아는 부단히 외부를 의식하고 시시 때때로 갈등하게 된다.
시의(時宜)에 영합(迎合)하여 나를 그리로 맞추고자 하는 한,
겨냥이 늘 맞을 수 없고 자주 빗겨간다.
혹여 알과녁을 맞추었다한들,
그게 항구히 그러할 것이란 믿음을 보증하지는 않는다.
당연 불안하지 않을 수 없다.

射者中,弈者勝 (사자중, 혁자승)
활을 쏘는 자는 과녁을 노리고, (투호놀이)
바둑을 두는 자는 이기려 한다.
  (※ 출전 : 취옹정기(醉翁亭記) - 구양수(歐陽修) )

과녁이 바깥에 있는 한,
놀이라면 한 때 즐겁겠지만,
해는 넘어가고, 달도 비추이지 않는 어둑어둑 저문 날,
과녁이 빗겨가고, 상대에게 연판 지게 될 때,
불안이 몽글몽글 솟는다.
이게 다 과녁이 바깥에 있는 소이(所以)다.

하지만, 가만히 따지고 보면 과녁이 되었든, 불안이 되었든 그 실체는 없다.
있지도 않은 객관적 실체를 상정하고 이를 추수(追隨)하려고 하는 상태가 불안이다.
그런즉 실인즉 내가 역사의 주체가 되면 편안해진다.
차라리 내 전체가 하나의 커다란 과녁 자체가 되어야 한다.
그것도 곡적(鵠的), 정곡(正鵠) 즉 과녁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개개인이 모두 이런 역사의 주인이 될 때,
우리는 그 때 이를, '그리 부를 이유도 없고, 새삼 구차한 노릇이지만,'
굳이 이름한다면 비로소 객관적 역사라 부를 수 있다.

만약 혹자가 있어, 그가 불안조차 의식하고 있지 못하다면,
그는 광신도이거나 예컨대 노빠, 노뽕, 황빠, 명빠 등의 소위 빠, 뽕에 매몰되어,
자기를 스스로 던져 넣고 있는 자라 하겠다.
그들은 어디에 자신을 던져 넣는가?

그 어둡고 깊은 미망(迷妄) 속으로 자신을 꾸겨 넣어 영원히 자신을 잊는 게다.
해서 나는 빠流를 슬픈 존재 형식이라고 말하곤 한다.
비겁하다.
남이 아닌 제게.

역사를 제대로 쓰려면,
모름지기 살불살조 살부살모(殺佛殺祖 殺父殺母)해야 한다.
하여 모두 시역(弑逆) 대죄인(大罪人)이 되어야 한다.
구족(九族), 십족(十族)이 참(斬)해지는 대역죄인이 되어야 한다.
마땅히.
동호 따위가 증언하는 역사라면 백천번이라도 기꺼이 악명(惡名)의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

這弑君的記錄一字不改(저시군적기록일자불개)

동호가 목을 걸고 “단 한자도 바꾸지 못하겠다.”고 외친다면,
응당 즐거이 그리하라고 대꾸해야 한다.
동호 따위와 내가 굳이 싱갱이 하며, 거래할 까닭이 없음이다.

역사는 나의 붉은 피로써 쓰여져야 한다.
때로 그래서 역사현장에서 맞는 바람은 더욱 차다.
하지만 그러하기에 외려 나의 피는 한결 붉다.
바닷가 노을에 비추인 홀론 핀 해당화만큼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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