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gta      

북두갈고리

생명 : 2009. 7. 5. 21:47


새벽 잠결에 어디선가 강아지 짖는 소리가 들린다.
동네 개들 짖는 소리는 그가 누구인지 내가 모르는 것이 없다.
예전 짓는 소리가 비슷비슷했던 아이들 중 일부는 지금은 사라져버렸다.
남은 아이들 중 잘 짓는 아이는,
사찰에서 기르는 털북숭이와, 고물할아버지네 장군이 정도이니 모를 바가 없다.

그런데, 이 소리는 사뭇 낯설다.
작은 강아지가 불안한 듯 괴로운 신음 소리를 토해내고 있는 것이 역력하다.
나는 순간 이게 고물할아버지가 또 새로 개를 들여놓은 게 아닌가?
왈칵 이리 불길한 의심이 몽롱한 내 의식 갈피를 뭉긋뭉긋 진물처럼 번져간다.
(※ 참고 글 : ☞ 2008/07/29 - [소요유] - 새벽 신음 소리)
그 자는 그러하고도 남을 위인이 아닌가 말이다.
그리고는 전일 밭에서 돌아온 뒤끝이라 내처 까무룩 잠 속으로 빠져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
밀린 일을 처리하고는
산중(山中) 약속이 있어 일찍 집을 나선다.

지나는 길목,
강아지들을 보살피려 고물할아버지집을 들리자니,
저쪽 마당 한구석에서 깽깽하고 짖는 소리가 내 귀를 때린다.
새벽 잠결에 들었던 바로 그 목소리다.
그것은 차라리 북소리,
그래 이내 북소리가 되어 내 심장을 둥둥 두드린다.
그 떨림은 암울한 무늬를 드리우며 온몸을 좌르르 훑고 지난다.

나는 나를 진정시키려고 짐짓 모른 척,
태연하자고 스스로를 타이른다.
그리고는 새로 온 그 강아지를 쳐다보지도 않고,
기존 아이들을 챙긴다.
스킨십을 해주고는, 물그릇 청소하고, 사료를 나눠준다.
이리 평소하던대로 무연히 낯 선 길을 걷듯 일을 마친다.

까마득 먼 나라에서 흘러나온 옛날이야기처럼,
나는 여기 마당가에서 몸.짓.이 지어내는,
파문(波文)을 그저 망연히 듣는다.
결코 끝이 나지 않을 가련한 내 몸짓,
그리고 강아지들, 그 불안한 영혼의 서성거림들.

이런 업상(業相)을 나는 내 것이 아닌 양,
그저 우두망찰 저만치 서서 지켜보는 것이다.
만약 내 것이라는 것을 들켜버리면,
차마 이겨낼 수 없으리란 불안이,
이리 자기최면을 스스로에게 걸어버린다.
내 것이면서 내 것이 아닌 낯 선 것으로 대하기.
나는 이리 세상을 고독하니 건넌다.

하지만,
그도 잠시,
이젠 마주해야 한다.
외면한다고 피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어차피 벌어진 일이니 돌아갈 수 없다.
때로, 골목길을 막아선 깡패처럼 현실의 완력은 되우 무섭다.

털을 새로 깎았을 터이다,
행색이 깨끗한 것이 바로 주인 곁을 떠난 것이다.
아마도 주인은 마지막으로 털을 깎이고는,
고물할아버지에게 명줄을 넘겨주었을 것이다.
채무를 떠넘기듯,
그 자는 어느 날 그리 음습한 기도(期圖)를 꾀하였을 것이다.

하루아침에 절락(絶落)된 강아지 한 마리.
그렁그렁한 눈물이 고였음인가 눈가에 슬픔이 어려 있다.
허리를 활처럼 팽팽하니 댕긴 것이 잔뜩 긴장된 모습이나,
저 조그만 녀석은 그예 두려움에 발발 떨고 있다.

‘아 산다는 것은 너무나 아픈 일이다.’

명운(命運)이 어찌 이다지도 기구하기에,
여기 이곳 이 험한 구렁에 떨구어졌단 말인가?

도대체 고물할아버지,
이 자가 사람인가?
이러고도 인간임을 자임할 수 있음인가?

당신이 비록 고물수집을 하지만,
자손도 많고 내왕이 잦아 고립된 형세도 아니며,
생활 형편이 그리 곤궁한 축도 아니다.

그러함에도,
수년간 이리 악행을 스스로 택하여 지어갈 수 있음인가?
나에게 약속하기를 다시는 강아지를 들이지 않겠다고 하고도,
이리 저 무서운 업보를 자청하여 짊어질 수 있음인가?
돈 몇 푼에 제 영혼을 팔아넘긴 저들은 도대체 무엇인가 말이다.
(※ 참고 글 : ☞ 2008/04/29 - [소요유] - 낮달)

살아 있는 한 생명을 두고,
몇 푼에 채무를 넘기듯 거래를 할 수 있음인가?
수년간 한 이부자리에서 뒹굴며 웃고, 울던 저 가여운 강아지들을,
하루아침에 나찰 지옥으로 떨구어버릴 수 있음인가 말이다.
차마.
모질다!

‘아 사람처럼 무서운 것이 어디에 또 있음인가?’
‘나는 사람이 정말 무섭고 두렵다.’

도도처처(到到處處)
왼 세상이 바로 지옥이다.
인간세(人間世)는
영락(零落)없이 동물들의 지옥이다. 

먹이 하나,
물 하나도,
챙기지 않는 저 모진 고물할아버지,
그 북두갈고리 같은 흉수(兇手)에 이제 도합 3마리의 강아지가 갇혀 있다.

매트릭스에 갇힌 저들.
거미줄에 걸린 나방 세 마리가,
제게 남은 잔명(殘命)을 세어가듯 파드득, 파드득 거리는 환영을 나는 보고 만다.

부처는 이를 고해(苦海)라 하였음이니,
온 천하가 거미줄이라 하고 있음이 아닌가 말이다.
도대체 어느 구석으로 피하여 면할 수 있음인가?
지장보살 백천, 기만이 나선들 저들을 구할 수 있음인가?
유마가 오신들 이 천라지망(天羅之網)을 벗어날 중생이 있겠는가?

지장보살은 그저 명부전에나 계시올 뿐,
유마는 아직도 앓아 누워 계실 뿐,

이 예토(穢土)엔 천만 슬픔이,
예나 저나 그저 강물처럼 흥건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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