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gta      

북두갈고리

생명 : 2009. 7. 5. 21:47


새벽 잠결에 어디선가 강아지 짖는 소리가 들린다.
동네 개들 짖는 소리는 그가 누구인지 내가 모르는 것이 없다.
예전 짓는 소리가 비슷비슷했던 아이들 중 일부는 지금은 사라져버렸다.
남은 아이들 중 잘 짓는 아이는,
사찰에서 기르는 털북숭이와, 고물할아버지네 장군이 정도이니 모를 바가 없다.

그런데, 이 소리는 사뭇 낯설다.
작은 강아지가 불안한 듯 괴로운 신음 소리를 토해내고 있는 것이 역력하다.
나는 순간 이게 고물할아버지가 또 새로 개를 들여놓은 게 아닌가?
왈칵 이리 불길한 의심이 몽롱한 내 의식 갈피를 뭉긋뭉긋 진물처럼 번져간다.
(※ 참고 글 : ☞ 2008/07/29 - [소요유] - 새벽 신음 소리)
그 자는 그러하고도 남을 위인이 아닌가 말이다.
그리고는 전일 밭에서 돌아온 뒤끝이라 내처 까무룩 잠 속으로 빠져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
밀린 일을 처리하고는
산중(山中) 약속이 있어 일찍 집을 나선다.

지나는 길목,
강아지들을 보살피려 고물할아버지집을 들리자니,
저쪽 마당 한구석에서 깽깽하고 짖는 소리가 내 귀를 때린다.
새벽 잠결에 들었던 바로 그 목소리다.
그것은 차라리 북소리,
그래 이내 북소리가 되어 내 심장을 둥둥 두드린다.
그 떨림은 암울한 무늬를 드리우며 온몸을 좌르르 훑고 지난다.

나는 나를 진정시키려고 짐짓 모른 척,
태연하자고 스스로를 타이른다.
그리고는 새로 온 그 강아지를 쳐다보지도 않고,
기존 아이들을 챙긴다.
스킨십을 해주고는, 물그릇 청소하고, 사료를 나눠준다.
이리 평소하던대로 무연히 낯 선 길을 걷듯 일을 마친다.

까마득 먼 나라에서 흘러나온 옛날이야기처럼,
나는 여기 마당가에서 몸.짓.이 지어내는,
파문(波文)을 그저 망연히 듣는다.
결코 끝이 나지 않을 가련한 내 몸짓,
그리고 강아지들, 그 불안한 영혼의 서성거림들.

이런 업상(業相)을 나는 내 것이 아닌 양,
그저 우두망찰 저만치 서서 지켜보는 것이다.
만약 내 것이라는 것을 들켜버리면,
차마 이겨낼 수 없으리란 불안이,
이리 자기최면을 스스로에게 걸어버린다.
내 것이면서 내 것이 아닌 낯 선 것으로 대하기.
나는 이리 세상을 고독하니 건넌다.

하지만,
그도 잠시,
이젠 마주해야 한다.
외면한다고 피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어차피 벌어진 일이니 돌아갈 수 없다.
때로, 골목길을 막아선 깡패처럼 현실의 완력은 되우 무섭다.

털을 새로 깎았을 터이다,
행색이 깨끗한 것이 바로 주인 곁을 떠난 것이다.
아마도 주인은 마지막으로 털을 깎이고는,
고물할아버지에게 명줄을 넘겨주었을 것이다.
채무를 떠넘기듯,
그 자는 어느 날 그리 음습한 기도(期圖)를 꾀하였을 것이다.

하루아침에 절락(絶落)된 강아지 한 마리.
그렁그렁한 눈물이 고였음인가 눈가에 슬픔이 어려 있다.
허리를 활처럼 팽팽하니 댕긴 것이 잔뜩 긴장된 모습이나,
저 조그만 녀석은 그예 두려움에 발발 떨고 있다.

‘아 산다는 것은 너무나 아픈 일이다.’

명운(命運)이 어찌 이다지도 기구하기에,
여기 이곳 이 험한 구렁에 떨구어졌단 말인가?

도대체 고물할아버지,
이 자가 사람인가?
이러고도 인간임을 자임할 수 있음인가?

당신이 비록 고물수집을 하지만,
자손도 많고 내왕이 잦아 고립된 형세도 아니며,
생활 형편이 그리 곤궁한 축도 아니다.

그러함에도,
수년간 이리 악행을 스스로 택하여 지어갈 수 있음인가?
나에게 약속하기를 다시는 강아지를 들이지 않겠다고 하고도,
이리 저 무서운 업보를 자청하여 짊어질 수 있음인가?
돈 몇 푼에 제 영혼을 팔아넘긴 저들은 도대체 무엇인가 말이다.
(※ 참고 글 : ☞ 2008/04/29 - [소요유] - 낮달)

살아 있는 한 생명을 두고,
몇 푼에 채무를 넘기듯 거래를 할 수 있음인가?
수년간 한 이부자리에서 뒹굴며 웃고, 울던 저 가여운 강아지들을,
하루아침에 나찰 지옥으로 떨구어버릴 수 있음인가 말이다.
차마.
모질다!

‘아 사람처럼 무서운 것이 어디에 또 있음인가?’
‘나는 사람이 정말 무섭고 두렵다.’

도도처처(到到處處)
왼 세상이 바로 지옥이다.
인간세(人間世)는
영락(零落)없이 동물들의 지옥이다. 

먹이 하나,
물 하나도,
챙기지 않는 저 모진 고물할아버지,
그 북두갈고리 같은 흉수(兇手)에 이제 도합 3마리의 강아지가 갇혀 있다.

매트릭스에 갇힌 저들.
거미줄에 걸린 나방 세 마리가,
제게 남은 잔명(殘命)을 세어가듯 파드득, 파드득 거리는 환영을 나는 보고 만다.

부처는 이를 고해(苦海)라 하였음이니,
온 천하가 거미줄이라 하고 있음이 아닌가 말이다.
도대체 어느 구석으로 피하여 면할 수 있음인가?
지장보살 백천, 기만이 나선들 저들을 구할 수 있음인가?
유마가 오신들 이 천라지망(天羅之網)을 벗어날 중생이 있겠는가?

지장보살은 그저 명부전에나 계시올 뿐,
유마는 아직도 앓아 누워 계실 뿐,

이 예토(穢土)엔 천만 슬픔이,
예나 저나 그저 강물처럼 흥건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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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금연자 2009.08.12 12:45 PERM. MOD/DEL REPLY

    어휴~~ 진짜 답답하네요...

  2. 사용자 bongta 2009.08.12 23:02 신고 PERM. MOD/DEL REPLY

    구미호가 제 꼬리를 감추려고 재주를 넘듯,
    답답한 것을 삼세번 참고 참으면,
    인디언 추장처럼 거의 무표정한 얼굴이 됩니다.
    그게 작금의 저의 모습입니다.

    하룻저녁에 앞산 뒷산 다 태울 정도로 분심이 일기를 수차례 …….
    지금은 돌아와 거울 앞에선 누님처럼,
    그저 묵묵(黙黙) 제 길을 걸어갑니다.

  3. 은유시인 2010.02.11 23:27 PERM. MOD/DEL REPLY

    표현이 물흐르 듯하여 강아지의 변고를 달래주는 듯 보입니다.
    강아지가 글을 안다면 얼마나 위안이 되겠습니까?

    고물할아버지...
    죽을 때가 다 되었을텐데
    지옥을 믿지 않는 모양입니다.
    천국은 몰라도 지옥이란게 반드시 있었으면 합니다.
    개 싫어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더군요.
    제 친구 가운데 더러 우리 강아지를 보면 된장 찍어 먹자는 놈이 있습니다.
    그 한마디 말로 온갖 정이 다 떨어지더군요.
    제가 도덕군자도 성인군자도 아니지만,
    내 소유물(?)에 함부로 말 던지는 꼴은 역겨워 못지나칠 지경입니다.
    지가 가진 물건의 흉을 내가 본들 저 또한 좋은 기분일 수 있겠습니싸?

    사용자 bongta 2010.02.12 20:46 신고 PERM MOD/DEL

    저 역시 저 세상에 대하여 알지 못하고,
    천국, 지옥을 염두에 두지 않고 살고 있습니다만,
    지옥만큼은 정녕코 저 세상에 요청되어져야 하는 게 아닌가 이리 의심하곤 합니다.

    좀 전에 고물할머니를 만났습니다.
    제 집 현관 눈을 쓸고 있더군요.

    시베리안 허스키가 한데 웅크리고 앉아 떨고 있기에,
    집으로 가려다 언덕 아래로 내려가 빈 박스와 부대를 주어,
    다시 재우쳐 올라 그 사이 나온 할머니를 만났던 것입니다.

    울컥 화가 납니다.
    눈밭을 지나 걸머지고 내려온 약수물이 든 12kg 배낭이 무겁기 짝이 없는데,
    고물집이 있는 언덕을 다시 오르자니 숨이 차오르고 있었지요.
    그런데 그 짬에 살짝 나와 제 집 현관만 깔짝깔짝 비로 쓸고 있는 모습이
    여간 밉상으로 보이는 것이 아니더군요.
    그간 수없이 그런 모습을 보아왔지만,
    이 추운 날씨에 헐벗고 있는 제 집안 동물들을 위해서는
    고물 북데기 하나 깔아주지 않는 저 무정철한을 대하자니,
    새삼 힘이 배로 드는 것이었습니다.

    “혈관에 따듯한 피가 도는 생명이 아닙니까?
    그러한데 이 추운 날씨에 하등 아무렇지도 않습니까?”

    “나는 개를 좋아하지 않아서 ...”

    “개를 좋아하고 아니하고를 떠나,
    저 아이가 따뜻한 피가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십니까?”

    제가 박스를 깔고 있는 틈에,
    그 할머니는 제 집 안으로 쏙 들어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개만 보면 된장 얘기를 꺼내는 사람들이 있지요.
    제 딴에는 호기를 잔뜩 부리는 품세지만,
    얼마나 천박한 짓거리인줄 저들은 과연 알기나 알까요?

  4. 은유시인 2010.02.13 02:08 PERM. MOD/DEL REPLY

    그 할머니가 죽어 극락 가도록 기도해 드려야 겠습니다.
    염라대왕은 없는가 봅니다.
    그러니 지옥은 없어도 천국만 있나 봅니다.


    ***


    어제 저를 진정한 열 명 말고도 두 사람이 새로 추가되었답니다.
    하여튼 어디서 용케 제 적들만 찾아내는지...
    제 추측에는 정보 형사 하나가 고놈들한테 잘 대접받고 사냥개인지 정찰견인지로 나선 모양입니다.
    그리고 연초에 실적이란걸 딴엔 올리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구정 지나서 경찰서에 또 출두하게되면
    이명박한테도 5억 뜯었다,
    조경태 국회의원한텐 1억3천 뜯었다,
    현기환 국회의원한텐 2억8천 뜯었다,
    구청장한텐 4천 뜯었다
    그래야겠습니다.
    발칵 뒤집어지게끔.....
    물론 조사해보면 말짱 거짓말이지요.
    수사관이 고문해서 허위자백했다고 또 거짓말할까요?

    사용자 bongta 2010.02.13 21:03 신고 PERM MOD/DEL

    작패(作悖)가 자못 심하군요.
    이럴수록 자중자애(自重自愛) 정신을 맑고 차갑게 하여,
    사태에 임하시길 바랍니다.

    저의 경우엔 일이 벌어지면,
    통상 유사한 관련 고사(故事)를 떠올리며 생각을 정리합니다.
    게다가 극렬한 경우엔 병법을 뒤적거리기도 하지요.
    연전에는 36계를 외우기도 했습니다만,
    그저께 눈 오는 산에 올라 이를 다시 되뇌어 보니 그 새 많이 까먹어버렸더군요.
    이게 늙어가는 증좌라,
    이제는 아무리 외어도 잘 외워지지 않고,
    늘 새롭더군요.
    ( ※ 삼십육계 http://bongta.com/431 )

  5. 은유시인 2010.02.14 00:47 PERM. MOD/DEL REPLY

    뭐 삼십육계는커녕 조용히 글만 썼습니다.
    아무 걱정도 없고요.
    지은죄 없으니 겁날 것도 없고,
    또 죄를 뒤집어써서 감옥 가더라도 즐거운 마음으로 다녀올 겁니다.
    감옥과 관련된 글이나 여러편 완성해서 나오렵니다.

    사용자 bongta 2010.02.14 18:19 신고 PERM MOD/DEL

    사마천은 불을 발기우고 발분하여 사기를 지어내었고,
    신영복 선생은 감옥에서 한학을 배우기도 하였지요.

    뇌옥(牢獄)이라는 것이 세상과 절연되어,
    한 칼로 썩 베어내듯 숨겨진 긴 시간을 확보하는 계기가 되는 즉,
    뜻만 있다면 무엇인가 도모할 수도 있겠네요.

    그러하지만, 부러 옥에 갈 필요는 없겠지요.
    아무려면 사기를 지어내려고 궁형(宮刑)을 자청한다든가,
    학문을 이루기 위해 옥에 갇히길 원한다면,
    이는 조금 특수한 경우라 하겠습니다.

    먹고 살길이 없어,
    부러 죄를 짓고 감옥에 들어 공짜 밥이라도 먹기를 원하는 경우도 있다지요.
    오죽하면 그러할까 싶습니다만,
    그런 정신을 잘 추슬러 이쪽에서 원하는 바를 도모할 방책을 구하는 것이
    한결 수월한 노릇이겠지요.

    그리고 옥에 들어가시면,
    그 강아지는 누가 돌보게요? ㅎㅎ
    저는 지금 아파도 미처 아플 틈이 없습니다.
    새로 들어온 강아지가 도통 집안에서는 오줌을 누지 않아,
    하루에도 몇 차례나 데리고 나가야 합니다.

    군대에 있을 때, 영창을 여러 차례 갖다온 동기 녀석이 있었습니다.
    그가 말하길 한번은 갈 볼만한 것이지만, 두 번 이상은 절대 가지 말라고 하더군요.
    제가 그래서 되물었지요.
    그럼 네가 애초 처음에 영창에 가지 않을 처지라 해도,
    한번 경험을 위해 부러 들어가겠느냐 물었지요.
    그랬더니만 ‘아니 절대 들어가지 않지!’
    갔다 왔으니 그런 말을 하지,
    가지 않은 사람이 부러 들어갈 사람은 없지요.
    하지만 기왕에 들어갔다면 나름 배워 오는 것이 왜 아니 없겠습니까?

    군대 역시 사내라면 갔다 와야 사람 구실한다고 말합니다만,
    대개는 가능한 한 가지 않으려고 기를 씁니다.

    문제는 군대든 감옥이든 가지 않으려 하는 것은,
    치뤄야 할 기회비용이 너무 크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그렇다고 가지 않아서 확보된 기회를 충분히 활용한다고만은 할 수 없지만,
    그것은 그것대로 잘못이지 아무려면 그리 가서 얻은 것 만치,
    이쪽에서 노력하면 얻을 것이 그만 못하겠습니까?

    정녕 자료 수집 차 감옥에 들어가겠다는 뜻이 있어 그리한다면 모를까,
    아니 갈 수도 있다면 아니 들어가는 도리를 취하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그러하니 선생님께서도 가급적 곧은 승벽(勝癖)만을 내세우지 마시고,
    당신께서 아무리 옳다고 하시더라도 마땅히 좋은 도리를 찾으시길 부탁드립니다.

    걱정이 되어서 주제넘은 참견 말씀 드렸습니다.
    용서하시길 바랍니다.

  6. 은유시인 2010.02.15 01:21 PERM. MOD/DEL REPLY

    제가 공연한 걱정거리를 드렸나 봅니다.
    한 가지를 믿는 바 있어 그렇습니다.
    즉,
    진짜 죄를 지었다면 겁이 났을 겁니다.
    그렇지만, 죄를 짓지 않았다면
    남들의 중상모략 따위나 감옥 따위는 겁이 나질 않습니다.
    물론 기분은 엿같겠지요만,,,
    그리고 아무리 법원 판사나 검사가 엉터리라도
    세번의 재판기회가 있습니다.
    그리고 아득바득 결백을 증명하면 악귀라도 겁을 먹게 되더군요.

    한번은 제가 14억의 부도를 냈을때 고의부도가 아님을 줄기차게 주장하여
    무죄방면 받았습니다.
    20년 전이라 당시 그 금액이면 감옥 가고도 남았을 겁니다.
    또 한번은 카드사에서 연대하여 고소당했을때 벌금 500만원 받았습니다.
    마찬가지로 재판걸어 결백을 증명하니 벌금형이 철회되었고요.
    또 한번은 2004년 4.15총선때 선거법위반 벌금형도 대법원에 가서 무혐의 받았습니다.
    그게 골아프다며 순응했거나 귀찮아 대응 않했더라면 무죄처분이 불가능했을 것이고
    범죄자의 낙인이 찍혔을 겁니다.
    죄가 없다면 끝까지 따지고 싸워야 합니다.
    목숨을 걸고서 말이지요.

    이번 사건은 사건도 아닙니다.
    타협할 여지도 없고,
    돈이 있어도 변호사 쓸 까닭도 없습니다.
    그저 혼자서 변호하고 헛소리하는 판사나 검사 호되게 야단치면 됩니다.
    아무 걱정 마십시오.

    어쨌든 죄송합니다.

    사용자 bongta 2010.02.15 22:08 신고 PERM MOD/DEL

    2년 전에 아주 재미있는 일이 있었습니다.
    북한산에 오르는데 노인네들이 라디오를 크게 틀어놓고 놀고들 있었습니다.
    저는 산에서 라디오를 트는 인간들을 아주 혐오합니다.
    유원지도 아닌 명색이 국립공원 안에서 저리 염치없이 굴면 아니 되지요.
    공원엔 차분히 등산을 즐기려는 사람도 있고,
    명상하며 생각을 정리하려는 사람도 있을 터,
    서로 삼가며 이용해야지요.
    정릉쪽 북한산만 하여도 하루 천오백명이 다녀간다고 하는데,
    저마다 저리 안하무인으로 놀면 산이 이내 엉망이 되지요.
    저들은 불한당들입니다.

    ‘소리 좀 줄여 주세요.’

    이리 주문하였더니,
    이 작자가 대뜸 삿대질을 하면서 욕을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제 딴에는 할머니를 앞에 두고 재롱을 피우는 중이었고,
    제 일행도 두어 명 되니 그 빽을 믿고 호기를 부린 것이지요.

    바로 관리사무소에 전화를 했습니다.
    신고를 받고 내려온 직원한테,
    ‘반드시 의규(依規) 처리하라.’
    그랬더니만 20만원인가 벌금이 나왔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3개월 정도 지나자 상대가 고소를 했다고 경찰서에 출두하라고 연락이 왔습니다.
    적반하장도 유만부동이지 이 작자가 제 친구들을 증인으로 내세워,
    제가 욕을 했다고 모욕죄로 저를 고소한 것입니다.

    조서를 받는데,
    상대가 횡설수설하니까,
    나중엔 형사도 어이가 없는지 상대를 나무라기까지 하였습니다.
    이 작자가 얼마나 한심하냐 하면,
    형사가 그 자 보고 제게 욕을 한 것이 맞느냐 물으니까,
    그렇다고 시인을 하더군요.
    그러니 이게 얼마나 웃기는 상황입니까?
    저는 욕을 한 기억이 없다고 이르고 있는데,
    정작 그 자는 자기는 욕을 했다고 시인을 하고 있으니,
    이미 게임은 끝난 것이 아닙니까?

    이 자가 자기는 국민(초등)학교도 제대로 나오지 못했다고 토로를 하며,
    갈지자로 버성기니 이젠 외려 제가 답답해질 지경이더군요.

    형사한테 무고죄로 이 자를 내가 다시 고소를 하면 어떻겠느냐 물었더니,
    형사가 말리더군요.
    이긴다 하여도 몇 개월간 이리저리 불려 다니고,
    시달리니 그냥 참는 게 났다는 것입니다.

    상대와 그의 친구들이라는 이들의 행색을 보자하니,
    마치 물 끓여놓고 잡으려다 놓친 닭새끼가 싸리나무 울 위에 홰를 치며 놀라 떨고 있듯,
    오종종 모여 어깨를 움츠리고 추레하니 고물거리고 있지 않겠습니까?
    사는 게 도대체 무엇이관대?
    저리 누추한 형용(形容)으로 악을 쓰면서 살고들 있는가?

    그러자니 이 자가 갑자기 가여워지기까지 하는 것입니다.
    필시 없는 형편에 20만원 벌금을 맞자 삼혼칠백(三魂七魄)이 냅다 떠서,
    기함(氣陷)을 하고 만 것일 터.
    이 또한 마음이 편치 않고 말입니다.

    얼마 전 관정 업자 소개시켜 주는 일을 맡은 이의 경우,
    제가 끝을 내려다가 참은 이유 중의 하나도,
    일편(一便) 비겁한 사람들을 상대하는 제가 밉고,
    그 자가 문득 가엽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갑자기 사람 사는 일이 도무지 싱거워지더란 말입니다.

    논리적으로 치고 들어가 따져 조지는 일은
    제가 평생 그런 일에 관여하였기에 훈련이 제법 되어 있는 셈입니다.
    제가 아무런 허물이 없는 마당이겠다.
    저이의 약점을 아는 데 이를 궁박하는 일이 뭣이 어렵겠습니까?

    하지만, 조금 진행하다가 그냥 그치고 말았습니다.
    사람 사는 게 너무 싱겁고 허허(虛虛)로워져서 말입니다.

    제가 사회 초년생 시절엔 직장에서 순번을 정해 정신훈련소에 보냅니다.
    뭣 같지도 않은 해병대 퇴물들을 교관으로 내세워,
    조리를 돌리며 다 큰 사람들 얼차려를 시키듯 닦달하는 것으로,
    소임을 다했다고 우쭐대는 그런 프로그램이 당시는 횡행하였지요.

    그 때 어느 과목 시간에 논리 퀴즈를 강사가 열 문제 내었지요.
    제가 자랑이 아니라 열 문제를 다 맞춘 이는 기백명 중에,
    오직 저 하나뿐이었지요.

    제가 잘 난 것이 아니라,
    당시로서는 제게 이런 일이 조금 익숙하였을 뿐입니다.

    시시비비(是是非非) 가리고,
    문죄추달(問罪推撻) 하는 이치는 매한가지라 생각합니다.
    사정이 이러한데,
    제가 다 이긴 게임에 무엇이 어렵다고 사리겠습니까?

    나이 들어 늙으면,
    느는 것은 눈물과 회한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이게 또 그리 나쁘지만도 않습니다.
    눈물로써 사랑하고,
    회한으로써 집착을 거둘 수도 있겠거니 싶어지는 것입니다.

    이향봉 스님의 ‘사랑하며 용서하며’란 책이 떠오릅니다.
    정다운, 이향봉 스님은 형제간이었지요.
    저는 매끄럽고 윤기 있는 정다운 스님의 글 보다,
    투박한 듯하면서도 진솔한 이향봉 스님의 글이 더 성향에 맞았지요.
    그래서 이향봉 스님의 책을 쫓아다니면 챙기곤 하였는데,
    다 아련하니 잊혀지고,
    지금까지 ‘사랑하며 용서하며’란 책명만은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사실 바로 얼마전까지도,
    ‘용서할 수 없다.
    내게 해를 가한 자는 대가를 치루게 하겠다.’
    이리 악심을 품고 살기도 하였는데,

    이즈음엔,

    ‘두어라 그저 놔두어라.’

    이런 생각들이 맘 속에서 스믈스믈 번져나가더란 말입니다.
    이것을 사랑은 아니더라도 용서라고 할 수는 있을는지?
    얼추 용서까지 아니어도 don't care 정도의 문턱까진 넘은 것 같습니다.

    이런 생각들이 조금씩 마음 한 구석을 침윤하여,
    축축하니 젖어들니,
    아마도 이게 필시 늙어가는 증좌인가 싶습니다.

  7. 은유시인 2010.02.16 17:57 PERM. MOD/DEL REPLY

    그렇습니다.
    세상은 참는 사람을 너그럽게 보는 것이 아니라 어리석게 보는 겁니다.
    저를 고발한 사람이 열두명으로 두 명 더 늘었는데
    다 똑같은 사람들입니다.
    보기엔 제가 좌충우돌하는 성격으로 많은 사람들과 원한관계를 맺었거니
    생각하실 수도 있겠습니다.
    허나 그들과 원한관계를 맺은 일도 없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원망한 적도 없고요.
    다만 다대경제발전협의회장이란 자가
    저를 여러방면으로 이용해먹고 열몇대씩 저를 후려갈겼는데
    그걸 어찌 그냥 놔둘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폭행으로 고소한 겁니다.
    나머지 사람들은 그저 충동질에 둘러리 섰을 뿐이고
    그들마저 저로부터 광고비를 떼먹은 전력밖엔 없는 후암무치들 뿐입니다.

    이번 다툼도 그저 어이없게 끝나리라 봅니다.
    몇몇 놈들은 벌써부터 괜한짓이라 하더라고요.
    은근슬쩍 발을 빼려는 눈치였습니다.

    사용자 bongta 2010.02.17 16:02 신고 PERM MOD/DEL

    만약 말입니다.
    나이 쉰이 넘은 사람을 두고,

    ‘xx는 착한 사람이야.’

    이리 이른다면,
    이게 칭찬이겠습니까?
    아니면, 비꼼이겠습니까?

    선한 것이야 좋은(好) 것이겠지만,
    (※ 好에 대한 참고 자료 http://bongta.com/623 )
    정작 선하다는 말처럼 이 시대에 어리석은 것은 없지요.
    왜냐하면 선한 것이 곧 이익이 되지는 않기 때문이지요.
    이 시대의 코드 곧,
    자본, 돈, 이익을 벗어난 것으로 귀한 대접을 받는 것은 드물지요.
    그러한즉,

    ‘xx는 착한 사람이야.’

    라는 말은 곧,

    ‘xx는 돈이 없는 사람이야.’

    이런 말로 환치될 수도 있지요.

    기실,

    ‘xx는 착한 사람이야.’

    이런 말을 뱉은 사람은,
    속으로는

    ‘xx는 가난하다.’

    라는 말을 이미 내부적으로 한 접 깔아두고 있는 것이지요.
    이런 언술 구조란 참으로 편리합니다.

    상대를 거죽으로는 한껏 추겨 세우는 양 싶지만,
    속으로는 바닥으로 깔아 재끼고 있는 것이지요.
    이 복선의 말씀을 빌어,
    화자(話者)는 두 가지 이(利)를 취합니다.

    그게 무엇이겠습니까?

    외적 표상(表象)으로 드러내는 관대(寬大)함,
    그리고 내적으로는 자기충족적인 교만(驕慢)함이지요.

    상대를 치켜세우는 형식을 빌어,
    결국은 내용상 자기만족을 얻게 되지요.
    결국 곱장사를 하게 됩니다.

    외부로 아무런 마찰적 저항을 초래하지 않고,
    어둠 속에서 자존(自尊)을 챙기는 이러 언술 구조는 지극히 간단하면서도,
    큰 비용을 들일 것도 없이 세상을 향해 의뭉스럽게 부려질 수 있습니다.

    때문에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선,
    바로 이 선(善)하다는 말씀은
    늘 하수상한 것이지요.

    의심, 회의로 마주해야 겨우 진의가 건져 올려지는,
    이 말씀은 그래서 이젠 헤진 옷, 남루(襤褸)한 언사(言辭)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정녕 착한 것이 남루한 것이라면,
    남루야말로 한 점 부끄럼이 없는 정(淨)한 것이 아니올런지?

  8. 은유시인 2010.02.17 19:03 PERM. MOD/DEL REPLY

    착하고 선한 사람이 대접을 받아야 하는데
    세상이 그렇지 못하지요.
    착하다 하면 이용해 먹으려 합니다.
    돈 빌려달라느니 보증 서달라느니...
    그래서 이제는 거짓말 안 하는 것만으로도 존경 받아야 마땅하다 봅니다.

    전 조선족 영감님 한 분을 2년 전부터 알아왔습니다.
    그 분이 입에 든 것까지 제게 빼줄 정도로 제게 잘해줘서도 그렇지만,
    본디 선하고 착한 분입니다. 때론 아타까울 지경으로...
    올 연말에 남해에 들어갈 땐 함께 가서 살기로 약조하였습니다.
    주위 사람들은 제가 어리숙한 영감님을 일부려 먹으려 데려간다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분은 실제로 굳고 험한 일을 저 대신에 많이 했습니다.
    지금 비자만료로 중국 가셨는데 7월에 다시 돌아옵니다.

    전 그 분 때문에 한동안 사람을 신뢰 못했다가 조금은 신뢰하게 되었습니다.
    그 분을 생각하며 수필 한 편을 써놓은 게 있는데 시간 나면 읽어주십시오.
    너무 길어서 대충 읽으셔도 좋습니다.

    *********

    [수필]

    조선족(朝鮮族)영감님

    - 은유시인 -



    사람관계는 지극히 상대적이다. 예컨대 사람이 누군가를 가리켜 ‘좋다, 나쁘다’라고 판단하는 기준은 여러 가지이겠으나 보편적으로 자신에게 호의적이고 도움을 주었을 경우엔 좋은 사람이라 판단할 것이고, 반대의 경우엔 나쁜 사람이라 판단하기 마련이다.
    아무리 사회적으로 지탄받는 흉악범일지라도 제 자식에겐 더할 나위 없이 자상하고 관대하다면, 그는 그 아이에게 있어 좋은 아빠요, 더 나아가 훌륭한 아빠인 것이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21평에 방 세 개짜리 서민아파트 전세보증금 5백만 원도 실상 내 돈이 아니다. 조선족영감님 돈이다. 그렇지만 영감님은 내게 수차례에 걸쳐 ‘그 5백만 원은 내가 김 동무에게 쓰라고 조건 없이 줬기 때문에 당연히 전세보증금의 권리는 김 동무한테 있다’라며, ‘5백만 원은 형편이 어려우면 갚지 않아도 된다. 아니, 갚을 필요도 없다’라고 하였다.
    이 5백만 원은 영감님이 한동안 힘든 일을 하여 받아온 월급과 잡다한 일을 처리하고 푼푼이 받아 쥔 돈을 모은 것으로 영감님에게 있어 전 재산이라 할 수 있는 돈이다.
    작년 겨울, 내가 전세보증금이 없어 방을 구할 도리가 없자 영감님이 내게 자청해서 건네줬던 돈이고, 나와 영감님을 잘 알고 있는 주위사람들이 ‘전세계약서를 내 이름으로 하면 항차 그 돈을 내가 떼어먹을 것’이라 우려하여 반대를 심하게 했었기에, 전세보증금을 집주인에게 건네고도 열흘 지나도록 계약서를 작성하지 못했었다.
    따라서 나 또한 불편한 심기로 ‘그들 가운데 재산도 제법 있고, 또 믿을만한 사람이름으로 전세계약을 하자’며 한동안 내 이름으로 전세계약 작성하기를 거부했었다. 영감님은 주위사람들의 경우 없는 간섭에 역정까지 냈고, 결국 영감님의 뜻대로 내 이름으로 전세계약을 했던 것이다.
    내가 저들에게 돈을 빌렸다거나 신용에 손상될만한 짓거리를 하지 않았음에도, 단지 내게 방 한 칸 얻을 돈조차 없다는 이유만으로 나를 ‘세상물정 모르는 조선족영감님을 상대로 금품이나 갈취하려드는 인간’취급하려든 것에 대한 굴욕감 때문에 한동안 나로서는 분한 마음을 삭히기가 힘들었었다.
    그 외에 영감님은 자신이 폐지나 헌 박스 등을 모아 그걸 팔아 생긴 돈도 무조건 내게 갖다 주면서 쓰라했다. 뿐만 아니라 과일이며 떡이며 먹을거리가 생겨도 자신은 전혀 입에 대려하지 않고 내게 가져다주는 것이었다. 하다못해 내가 마땅히 해야 할 힘들고 궂은일마저 낚아채어 대신 해주곤 했었다.
    그렇다고 내가 영감님께 돈을 꿔달라든가 그 어떤 일을 대신해달라고 요구한 적도 없을뿐더러 돈을 쥐어줄 때마다 수중에 돈이 없어도 ‘돈이 있다’라며 거짓말하고 몇 번씩 거절해도 끝내 악착같이 쥐어주는 것이었다.
    그와 내가 피와 살이 섞인 혈육도 아니요, 특별하다 할 인연이 있었던 것도 아니요, 내가 그에게 특별한 은혜를 베푼 적도 없었으니, 그와 나를 익히 알고 지내왔던 주위사람들은 일방적으로 그가 내게 도움을 주는 것에 대해 나를 ‘그를 등쳐먹는 질 나쁜 사람’으로 볼 수도 있을 테고, 반대로 그를 ‘세상물정을 전혀 모르는 어수룩한 멍청이’로 볼 수도 있을 테다.

    나는 한때 부산에서는 내로라하는 광고회사를 운영하여 남부럽지 않을 만큼 큰돈도 벌었으나 손아래동서로부터 사기피해를 당해 엄청난 액수의 부도를 겪었고, 이후 여러 가지 정기간행물을 발행해오면서 완전히 거덜이 났다. 또 그로인해 10년 전부터 가족들과 헤어져 살아야 했다.
    쉰이 넘은 나이로 마땅히 취업하기도 어려웠지만, 그렇다고 노가다를 할 만한 체력도 지니지 못했다. 그래서 두문불출하고 글쓰기를 작정했던 것이고, 그로인해 적잖은 위로를 받았으며, 많은 작가들로부터 글을 잘 쓴다는 평가를 받기에 이르렀다.
    그렇지만 글이 당장 돈이 되는 것은 아닌지라 가끔씩 인쇄디자인편집관련 일거리를 맡기도 하지만, 그 외엔 별다른 수입이 없다보니 그게 영감님 눈에는 퍽이나 안쓰러웠던 것이다.
    내가 영감님이라곤 하지만 실제론 영감소리를 들을 만큼 나이가 듬직한 것은 아니다. 나보다 다섯 살 위니까 올해로 예순둘이다.
    평소엔 형님으로 호칭하지만 편의상 영감님으로 소개하곤 한다. 얼굴에 잔주름이 그득하여 마치 십년세월을 훌쩍 더 뛰어넘은 얼굴마냥 쪼글쪼글해 뵈기 때문에 처음 뵀을 땐 나이가 꽤 많으려니 하여 영감님으로 불렀고, 본인도 속으론 어떤지 몰라도 그런 호칭을 굳이 마다하지 않았다.

    영감님, 그러니까 ‘한상렬(韓祥烈)’이란 자그마하고 마른 덩치에 약간은 꾸부정한 사내를 처음 만난 것은 다대1동에 소재한 기영빌딩 3층에 사무실 겸 주거공간을 임대하여 입주해 있을 때인 2006년8월경이었다.
    조선족 2세인 그는 중국 심양이 고향으로 평생 농사나 짓고 양어장을 하면서 물고기를 길렀던 전형적 시골사람이다.
    그는 3년 전 딸을 서울에 사는 한 청년에게 시집보내면서 그 결혼식에 참석차 국내에 입국했다가 중국에 되돌아갈 마음이 없어 일자리를 구하고 눌러앉았다. 잠시 경기도 모처의 목재소에서 궂은일을 했었고, 그러다 우연히 알게 된 조선족여자의 소개로 기영빌딩의 잡부로 취직되어 부산 다대포로 내려온 것이다.
    건물 내 계단과 화장실청소는 물론 온갖 허드레 일들도 모두 영감님 몫이었다. 그렇게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쉴 새 없이 불려 다니며 종살이보다 더한 일을 해오면서도 몸을 사리거나 게으름 피우지 않고 늘 묵묵하게 일만 해왔기에 주위사람들의 신뢰를 쌓을 수 있었다.
    얌체 없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아 건물 내 입주 사무실사람들도 걸핏하면 영감님을 임의로 불러다가 부려먹곤 했는데, 그렇다고 수고한 것에 대해 별도의 사례를 하는 것도 아니었다. 한번은 7층 사무실의 뭐가 잔뜩 든 무거운 캐비닛을 가파른 계단위로 옮겨주려다가 계단에서 굴러 발목을 크게 다치기까지 했다.
    내가 오히려 크게 분노하여 7층 사무실 사장에게 따지려드는데 ‘캐비닛을 끌어안고 계단 밑으로 굴렀음에도 죽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며 말리기까지 했다.
    모두가 우리말이 서툰데다 순박하고, 게다가 단기비자로 입국한 조선족이란 이유로 영감님을 은연중에 깔보는 탓이었다.
    영감님은 매달 고정적으로 받는 급료 1백만 원 외에, 건물 내에서 버려진 물건들이나 박스 등을 수집하여 고물장수한테 넘겨 그로인해 자그마한 부수입을 올렸다. 매달 두 차례씩 그렇게 모은 폐지나 고물로 3만원이나 5만원의 수입을 올렸던 것이다.
    영감님은 그렇게 번 돈 천여만 원을 중국으로 보내어 아들이 집을 사는데 보탰고, 또 서울 딸네 아파트 구입하는데도 천여만 원을 보탰다.

    영감님이 내게 처음 돈을 준 것은 2006년12월 중순이었다.
    11월30일 내 사무실이 입주해있던 기영빌딩 주인 이 사장이 느닷없이 불과 보름후인 12월15일까지 사무실을 비우라는 통보를 해왔다. 보증금도 걸지 않고, 그렇다고 월세마저 제대로 준 것도 아닌지라 주인 말대로 비워줄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사무실을 옮기려면 5백이든 1천이든 전세보증금도 있어야 하고, 적게는 몇 십만 원이란 이사비용도 문제였다. 짐이 예사 짐이 아니었던 것이다. 디자인 전문서적이라 무게가 여간 아닌 책들이 수천 권이 넘는데다, 책상이며 책장이며 사무집기 또한 2톤 트럭으로 세 대분은 족했다.
    그리고 설상가상으로 다음날인 11월31일엔 이웃집과의 전기사용료에 따른 불화로 차단기가 있는 그 쪽에서 전기마저 일방적으로 끊었다. 전기가 끊기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컴퓨터도 사용 못하고 텔레비전도 볼 수 없었다. 뿐인가, 아무리 추워도 전기장판이고 전기난로고 아무 쓸모가 없는 것이다.
    춥고 썰렁한 사무실에서 대책 없이 시간을 보냈다. 긴 롤 전깃줄을 이용하여 2층 화장실 콘센트에서 전기를 끌어다가 책상 위의 자그마한 조명등으로 주변을 밝히고, 전기난로를 피워 그 앞에 웅크리고 앉아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꼼짝 않고 지냈으니, 내가 나를 돌아봐도 미련하고 아둔하기론 곰과 다를 바 없었다.

    나는 그런 상황에서도 신춘문예에 도전하기로 했다. 구질구질하게 돈을 빌리러 다닐 바엔 상금 타서 그 돈으로 사무실보증금을 맞춰주는 게 더 나으리란 생각에서였다.
    연전 ‘평사리토지문학상’중편소설에 도전하고자 써놓은 소설 ‘동지(冬至)’가 있었다. 소설의 무대는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경남 함안일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었다.
    나는 가끔 사무실을 기웃거리던 영감님한테 그 소설을 읽어주었다. 그때까지는 그저 일 열심히 하고 순박하기 이를 데 없는 조선족영감이라는 정도로만 알고 있을 뿐이었다.
    영감님은 진지한 표정으로 들으면서 ‘아직 한국말을 잘 몰라 10분지1밖엔 이해를 못하겠다’라고 밝혔고, ‘김 동무는 아주 훌륭한 사람임엔 분명하다’라는 존경심을 표했다. 그러면서 사무실문제가 그 지경에 이른 것을 안타깝게 여기면서, 그런 상황에서도 전혀 걱정 따위를 내색하지 않는 나를 의아하게 생각했다.
    “이 동지라는 소설은 배경이 함안이란 곳인데, 함안은 아직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어요. 사투리표현도 현지사투리가 맞는지 확인도 해야겠고……. 이참에 생각도 좀 할 겸, 여행 삼아 소설의 무대가 된 함안산청지역을 한번 둘러보고 왔으면 좋겠네요.”
    소설을 다 읽어주고 나서 지나가는 얘기처럼 한 마디 했던 것이다. 수중엔 단 한 푼도 없던 상황이라 가까운 거리라도 하루 이틀 머물려면 최소 10만원은 있어야 했다.
    영감님은 온다 간다 말없이 사라지더니, 잠시 후에 꼬깃꼬깃한 만 원권 열 장을 내 손에 쥐어주었다.
    “딴 생각 말고 이 돈으로 여행을 다녀와요. 이 돈은 내가 그냥 드리는 거니까 갚을 생각 마시고…….”
    한사코 마다했지만, 억지로 쥐어주기에 그 돈으로 함안산청을 이틀 다녀왔었다. 기대와는 달리 별 수확은 없었어도 그 최악의 상황에서 여행이란 걸 다녀왔던 것이고, 영감님으로부터 처음 돈을 받아 쓴 것으로 기록되었던 것이다.
    함안산청을 다녀오고 나서 그 다음날인 12월18일 건물주 이 사장의 요구에 의해 내 사무실 짐을 모두 같은 건물 내의 창고로 옮겼다.
    버리자니 아깝고 지니고 있자니 여간 골치를 앓게 하는 것이, 제대로 늘어놓으려면 30평은 족히 차지할 엄청난 분량의 짐들이었다. 그리고 임시거처로 5층의 기영빌딩 직원들 전용숙소에 끼어들었다. 영감님은 자신의 방까지 내게 양보를 했다. 그렇게 며칠 남지 않은 2006년 연말을 영감님과 함께 보낸 것이다.

    새해를 넘긴 2007년1월3일, 건물주 이 사장이 ‘마침 공짜나 다를 바 없는 도개공임대아파트가 하나 빈 게 있다’라며 내게 입주하라는 것이었다.
    “열두 평짜리 도개공아파트인데, 전세보증금 50만원이면 당장 입주할 수 있는데 들어갈란교?”
    비록 작은 영세민아파트지만 아파트를 통째로 사용할 수 있다는데, 나로서는 군말할 여지가 없었다. 오히려 횡재가 아니고 뭐란 말인가.
    ‘방이 두 개짜리니, 방 하나를 작업실로 사용할 수 있으렸다.’
    직원숙소에 공연히 끼어들어 낚시매장 직원들 눈치가 보이던 터라 대뜸 들어가겠노라 했다.
    그런데 2~3일 내로 당장 입주하지 않으면 그 아파트가 다른 사람 손에 넘어갈 수밖에 없노라 했다. 그런 긴박한 상황임에도 막상 50만원을 빌릴 데가 없었다. 운에 맡겼다기보다 그저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태연할 수밖에 없었다.
    이틀 후인가, 영감님이 50만원이 든 봉투를 내게 건네었다. 낚시매장에서 빌린 돈이라며, 대신 차용증을 써줘야 한다는 것이었다. 낚시매장 주인이자 건물주인 이 사장에 대한 서운한 감정도 그렇고, 또 나를 거지 취급하던 낚시매장 직원들에 대한 괘씸한 감정으로 나는 그 돈을 거절했다.
    “아파트에 들어가는 게 급선무지, 그깟 종이 한 장 써주는 게 뭐가 문제요?”
    영감님은 나를 설득했다. 그러나 나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아파트 못 들어가는 한이 있어도 그 사람들한테 차용증까지 써줘 가며 돈 빌리고 싶지 않아요.”
    보는 이에 따라 참으로 억지라도 그런 억지가 없었을 것이다.
    ‘쥐뿔도 없는 놈이 자존심만 내세우는 꼴이라니…….’
    그렇지만 조막만한 자존심을 꿰차고 있던 나로서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아무리 아쉽더라도 굴욕적인 모습을 그 누구에게도, 하물며 내 자신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내가 이 사장한테 가불한 돈이니, 이 돈 받아요. 차용증은 안 써도 돼요.”
    결국 영감님은 엉뚱하게도 당사자인 나보다 영감님 자신의 속이 더 탔던지, 그 돈으로 얼른 아파트계약하고 입주하라며 봉투를 내 손에 꼭 쥐어줬던 것이다.
    도개공아파트로 이사하고 나서도 영감님은 한 달에 두어 번꼴로 나를 찾아왔다. 그리고 잠시 엉덩이를 붙였다간 5만원, 또는 10만원을 내놓고는 되돌아갔다. 돈이 있다고 아무리 안 받으려 해도 막무가내였다.
    “담배 사 피워요.”
    어느 땐 영감님이 그리 주고 간 적은 금액의 돈도 꽤 요긴할 때가 많았다. 담배가 떨어졌을 때도 그렇고, 쌀이나 부식 또는 내가 아파트로 옮기면서 기르기 시작했던 강아지 예삐의 사료가 떨어졌을 때도 그랬다.
    도개공아파트에서 다시 이 사장의 제안으로 기영빌딩으로 거처를 옮기기까지 거의 1년3개월간을 오로지 글만 쓰며 지냈다.

    2008년4월 중순부터 기영빌딩에 머물다가 2008년12월10일 지금의 대건아파트에 입주했다. 그리고 2009년5월 중순 그동안 멍에처럼 짊어지고 다녔던 사무실 책이며 온갖 비품 모두를 고물상에 헐값으로 넘김으로서 사무실을 완전히 정리했다.
    전세계약서는 내 이름으로 했으나 그날 이후 거의 6개월간 영감님은 기영빌딩 외에 올해 들어 그 빌딩에 입점해있던 식당일도 거들었으나 두 군데에서 월급은커녕 가불이란 것을 전혀 해주질 않았다.
    대건아파트에 입주하면서 줄곧 나와 함께 생활해 온 영감님에게 ‘월급이나 가불을 해주면, 그 돈이 결국 내 생활비로 담뱃값으로 사라질게 뻔하다’라는 것이었다. 그 때문에 내가 푼푼이 벌어들인 돈으로 임대료니 관리비니 등 월 1백만 원 가까이 드는 생활비를 해결해야 했다.
    그들은 6월경 영감님이 중국 들어갈 때 한꺼번에 계산해주겠다고 약속했다지만, 막상 영감님이 중국에 들어갈 땐 약속과는 달리 단 한 푼도 마련해주지 않았다. 그땐 ‘돈을 주면 내가 그 돈으로 영감님 따라 중국에 갈까봐 그렇다’라는 핑계를 댔다.

    영감님은 결국 돈 한 푼 없이 한 달 전인 6월말 중국으로 돌아갔다. 3년 기한의 비자가 만료되어 어쩔 수 없이 중국으로 되돌아간 것이다.
    원래 계획은 월급을 정산 받으면 영감님 중국 갈 때 나도 함께 중국에 따라 갔다가 20일쯤 중국에 머문 다음 돌아올 생각이었다. 그 20일 동안 천진과 심양을 오가며 중국 기행도 하고, 나중에 글을 쓸 때 요긴한 자료로 활용할 계획이었다.
    영감님과 나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사이지만, 이젠 결코 남남이 아니다. 그가 내게 ‘내 아들딸보다도 김 동무한테 더 정이 가고, 김 동무에겐 뭐든지 해주고 싶다’란 말을 여러 번 들려줬지만, 그 때문만이 아니다. 이 각박한 세상에서 그가 나를 실제 친동생 이상으로 여기고 있듯이, 나 또한 그를 실제 친형님 이상으로 여기고 있다.
    한 달 전 중국으로 건너간 영감님은 이후에도 내게 수시로 전화를 걸어 나더러 중국으로 건너오라 했다. 가장 싼 항공요금이 중화항공으로, 인터파크 예매를 통해 왕복비행기표를 20만원에 구입할 수가 있다.
    영감님은 먹고 자는 것은 자신이 책임질 테니 걱정말라했으나 영감님 집에만 머물 것도 아니고, 중국 몇 군데 구경이라도 할라치면 교통비며 여관비며 식사비며 그 돈도 만만찮을 것이다.
    그리고 영감님은 1년 후인 내년 7월경에 한국에 다시 들어올 것이다. 아직까지 월급이 정산되기 않았기에 돌아오자마자 월급부터 정산 받을 것이라 했다. 그때 월급을 제대로 정산해주지 않을 것 같으면, 그땐 내가 나서서 그들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라 다짐했다.

    아무리 세상인심이 흉흉하기로 영감님처럼 남이 깔보는 사람을 상대로 인정을 베풀려는 사람을 어리석은 사람으로, 나같이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인정을 받아들이려는 사람을 남의 등골이나 빼먹는 후안무치로 몰고 갈 수 있으랴.
    게다가 영감님을 위한답시고 ‘감 내놔라, 배 내놔라’ 한껏 주장해왔던 사람들이, 왜 또 남에게 일 시켰으면 당연히 줘야 할 그 알량한 월급 따위나 떼먹으려드는 그런 경우 없는 짓을 저지르려는지…….



    2009/07/30

    사용자 bongta 2010.02.17 23:20 신고 PERM MOD/DEL

    그런 아름다운 인연을 짓고 계시군요.
    과시 활불(活佛) 같은 분을 만나셨습니다.
    모쪼록 두 분의 가연(佳緣)이 오래도록 이어지도록 축원 드립니다.

    저 분을 또한 귀인이라 이른다 한들 모자람이 없을 것입니다.
    본디 귀인이란 귀인 당자를 만난 선연(善緣)과 함께,
    자신의 덕행이란 선인(善因)이 아우러져야 인연이 이루어지지요.
    (※ 귀인 참고 글 : http://bongta.com/714 )

    그러하니 정작 귀인은 그 이름을,
    베풀어 도움을 받는 자로 인해 되레 얻게 되는 것.

    한 마음 밭에, 한 마음의 씨앗이 떨어져 꽃이 피니,
    과연 아름답군요.

    내내 복(福) 짓고 편안하시길 빕니다.

  9. 은유시인 2010.02.18 01:15 PERM. MOD/DEL REPLY

    감사합니다,.

    저도 3월중에 중국에 들어가 10여 일간 함께 지내기로 했습니다.
    7월경에 한국에 다시 들어오기로 했는데
    11월말 남해에 갈 때 저랑 함께 가겠답니다.

    사용자 bongta 2010.02.18 23:25 신고 PERM MOD/DEL

    친구 사이의 절친함을 상징하는 예는 고사에 적지 아니 등장합니다.
    관포지교(管鮑之交), 문경지교(刎頸之交) ...
    이 둘은 찾아보면 제 글 어딘가에 등장합니다만,
    관포지교엔 장래를 두고 하는 정치적 흥정이 개재되어 있지요.
    실제 이를 주제로 관중과 포숙아의 포부, 믿음, 정치적 배석관계 등을 그려낸 글도 있지요.
    반면 문경지교는 사나이들의 배려, 승복이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여기 등장하는 인상여란 인물을 흠모하여,
    그의 행적을 따라 그가 한 말을 따로 외우기도 하였지요.
    비록 지금은 다 잊어버렸지만, 그 의기의 내용은 잃지 않고 있답니다.

    반면 백아절현(伯牙絶絃)의 고사는 참으로 애잔하니 심금을 울립니다.
    이 역시 제 글에 등장합니다.

    범수라는 진나라 재상은 애자지원필보(睚眦之怨必報)라고,
    은원(恩怨)을 다 보갚아버리지요.
    반면 양설힐의 시불망보(施不望報) 고사는 이와 정반대입니다.
    보갚음을 넘어서고 있지요.
    이 둘 역시 제 글에 동명의 제명(題名)으로 등장합니다만,

    선생님께서는 중국교포와 사귐에선,
    앞으로 또한 어떠한 모습으로 나투게 되실는지?
    모쪼록 내내 돈독한 우정을 더하시게 되시길 빕니다.

    저의 경우엔,
    서로들 관포지교라고 자인하며 사귀던 친구가 있었습니다만,
    어느 날 근 30년 지기인데 부끄럽게도 서로 갈라서고 만 적이 있습니다.
    제 부덕의 소치겠거니 여깁니다.

    길 한 치 앞에 무엇이 있는지도 모르고,
    사람 서치 가슴 속에 무엇이 있는지도 모르는 인생살이.

    그렇기에, 어제 이리 하였음입니다.

    연회 놀이 가운데 짐독(鴆毒)이 있고,
    담소하는 가운데 창과 방패가 숨겨져 있으며,
    방안에도 호랑이와 표범이 있으며,
    길거리엔 오랑캐 놈들이 있음이다.

    그러나 저러나,
    君子之交 淡如水 小人之交 甘如蜜
    군자의 사귐은 물과 같이 담담하다고 하였는데,
    꿀같이 달디 달 때 그 사귐에 어려움은 없는가 돌아볼 수가 있을런가?

    그 날 이후,
    저의 화두가 된 마음가짐입니다.

  10. 은유시인 2010.02.19 15:55 PERM. MOD/DEL REPLY

    친구를 잃는다는 것이 나의 부덕함 때문일 수도 있겠으나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으리라 봅니다.
    사람은 극히 상대적이라 내게 서운하면 거부하게 마련이고 내게 살가우면 좋아하게 마련이지요.
    상대가 좋으면 무조건 베풀려고도 하지만, 싫으면 꼴보기조차 싫게 마련입니다.

    이해가 닿으면 친구가 되었다가 별 이득이 없다 여겨지면 가차없이 떠납니다.
    세상이 그러하니 굳이 우정이란게 존재할른지요.
    모르겠어요.
    그저 가난한 것을 업으로 여기고 어우러진 사람들 끼리라면....

    사용자 bongta 2010.02.19 21:33 신고 PERM MOD/DEL

    사람 사귐에 있어,
    위험할 때라야 진면목이 나타나며,
    이(利)를 앞에 두고서야 의(義)를 가늠할 수 있습니다.

    또한 빈한할 때라야,
    그의 숨겨진 본심이 잘 드러나지요.

    그러한데 위험하고 빈한할 때에야 진상을 알게 된다면,
    아닌 것보다야 천만 다행이라 하겠지만,
    짧디 짧은게 인생인데,
    정작 편안할 때,
    서로 사귈 틈은 충분히 남겨져 있는 것인가요?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칠석날 딱 한번 밖에 만나지 못하는 견우직녀처럼,
    슬픈 노릇이 아닐까요?
    하기사 인간들은 이런 별님의 사랑을 애틋한 만큼이나,
    그렇지요, 그러하기에 더욱 즐기고 있는 것이 아닌가요?

    견우직녀의 사랑이 남의 사정이 아니라,
    바로 내 형편이 그러하더라도 즐길 수 있겠습니까?

    이야기 속의 구조가 아닌데도,
    업이라 하심은
    그게 남이 아닌 자신의 이야기 때문에,
    진실되기 때문인가요?
    아니면 무욕 때문이신가요?
    ....

    이런 물음은 정작은 선생님에게 드리는 것이 아니라,
    제가 저에게 해보는 독백이로군요.
    제가 지금 약간의 취기가 있은즉,
    혹여 글로 죄를 지을까 두렵군요.
    나중 밝은 날, 잘못이 있으면 고치도록 하겠습니다.

  11. 은유시인 2010.02.20 00:40 PERM. MOD/DEL REPLY

    술을 즐기시나 봅니다.
    남자라면 모름지기 술도 즐길 줄 알아야 하는데
    저는 술을 전혀 못합니다.
    그러니 배포도 좁은가 봅니다.

    글이란게 선생님 말씀처럼 독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 경우도 몇번 당해봤고요.
    그렇지만,
    글을 쓰는 즐거움에 비하면
    글로인한 낭패감도 곤혹도 견딜만하다 여겨집니다.
    앞으론 더욱 신중하게 글을 써야 한다는 것을 배워갑니다.

    사용자 bongta 2010.02.20 14:14 신고 PERM MOD/DEL

    댓글을 쓰다 보니,
    글을 밖으로 쑥 내밀어 두어도 무관하다 여겨지고,
    그리 크게 나무라지도 않을 듯 싶어,
    본글로 따로 빼두겠습니다.
    ( http://www.bongta.com/847 )

    은유시인님은 나름 저의 개별적인 댓글이라 여겨주시길 바라며,
    나머지 손님은 사정을 잘 모르실 터이니 그저 여느 본글과 다를 바 없이 대하실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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