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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법과 강아지

생명 : 2009.08.11 23:44


고물할아버지 집에 새로 들어온 강아지 한 마리.
(※ 참고 글 : ☞ 2009/07/05 - [소요유] - 북두갈고리)
달포를 훨씬 지나고 있는데도 여전히 종일 짖어댄다.
이제는 포기하고 말테지 하였는데도 허공을 향해 깽깽 울곤 한다.

낯을 익히기에 충분한 시간인데도,
내가 그 집안에 들어서도 이제껏 꼬리조차 흔들지 않는다.
하다못해 마주쳐다보며 짖기라도 할 터인데,
내가 다가가는 동선과 직각으로 서서는,
나를 외면하고는 허공을 향해 짖는다.

가만히 머리를 쓰다듬어 주어도 표정 하나 변함이 없다.
영 곁을 주지 않는 녀석을 가만히 생각해본다.
전 주인을 잊지 못해서인가?
이리 영락(零落)해버린 자신의 처지가 못내 서러워서 그럴까?
성격이 까탈스러워 맺힌 마음을 쉬이 내려놓지 못하는 것일까?

그 동안 오른 쪽 눈에 눈곱이 끼어 며칠 약을 주었었다.
지난 일요일에 개집 안에 앉아 있는 녀석의 눈곱을 떼주려고,
휴지를 꺼내들고 손을 들이밀자 덥석 물어버렸다.
아차 하며 손을 오므리자 피가 뚝뚝 떨어진다.
그러지 않아도 개집 안에 들어 있는 녀석을 다룰 때는 조심스러웠다.
자신의 영역 안으로 들어온 외부 물체를 적대시 하거나,
더 이상 피할 곳이 없어 경계심을 잔뜩 품게 되기 쉽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밖에 나오게 되면,
고립무원이라 한결 반항심이 저상(沮喪)된다.
이 이치를 알고는 있으나 저 녀석을 밖으로 유인하는 것이 번거로워,
그냥 개집 안으로 손을 넣은 것인데 불상사가 생겼다.

무릇 사람이든 동물이든,
제 집 안에서는 뒷심 받아 기(氣)가 승(勝)하니,
한 수 접고 대해 주어야 한다.
그러하지 않으면 가끔 낭패를 당할 수 있다.

모든 병법서에서도 하나같이,
진(陣)을 치려면 배산(背山)하라고 가르치고 있는 것,
역시 뒷심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예컨대 울료자(尉繚子)란 병법서에 나오는
‘背水陣爲絕地,向阪陣爲廢軍。’란 뜻도 그것이다.
즉 ‘물을 등지고 진을 치면 절지(絕地)가 된다. 언덕을 향하여 진을 펼치면 폐군이 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위 인용문에 나오는 주무왕(周武王)의 경우도 그러하지만,
한신(韓信)의 배수진(背水陣)이란 것은 이의 역수(逆手)를 친 것인데,
이는 당시 그가 거느린 부대가 자기가 훈련한 군사들이 아닌 민간인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러하기에 저들을 오히려 절지(絶地)로 떨어뜨려 뒤를 끊어버리고는,
필사적으로 싸우지 않을 수 없게 몰아세운 것이다.
이게 주효하여 조군(趙軍)을 크게 무찌른다.

궁서설리(窮鼠齧貍)라 하지 않았던가?
궁지에 몰린 쥐가 살쾡이를 물려고 덤빈다는 이치인 것이다.
이 때 수(水)는 이내 판(阪)이 된다.
수(水)든 판(阪)이든 내 등 뒤에 있는 것이,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으로 기능하는 순간,
그것은 모두 배후의 산(山)이 되고 신(神)이 된다.

시인 강은교는 이리 노래했다.
“가장 큰 하늘은 언제나
그대 등 뒤에 있다.”

나는 그 녀석 뒤에,
큰 하늘이 있는 것을 알고도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였으니,
틈을 내어 다시 병법서를 숙독해보아야겠구나!

공교롭게도 지난 토요일 내 처는 밭일을 하다가 낫에 손가락을 베어 병원에 가서 꿰매기까지 했다.
그 다음 날 나도 덩달아 손가락을 물리고 말았다.
그래서 젖은 일을 할 때는 고무장갑을 끼고 임한다.
마침 어떤 분이 얄따란 수술용 고무장갑을 수십 켤레 선사한 것이 있어,
요긴하게 쓰고 있다.
그 분은 공작(工作)에 취미가 있으셔서 이 때 사용하려고,
손가락 움직임이 편한 이 고무장갑을 많이 사다놓으셨다 한다.
언젠가 그것을 덜어 내게 주신 것이다.
이것을 개밥그릇 닦을 때 끼고 쓰다보니, 벌써 댓 켤레째 이르고 있다.

부부가 거의 동시에 손가락을 다쳤으니 우스운 노릇이다.
나다닐 때 짝으로 손가락 들고 다니면 가관이겠다.

함께 있는 커다란 시베리안 허스키는 처음엔 잿빛 눈으로 되쏘는 것이,
무서워 쉽게 접근하기 어려웠는데,
알고 보니 녀석은 천성이 아주 착하다.

맛있는 것을 손에 쥐고 입가에 갖다 대면,
그 큰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입술로 가볍게 내 손을 슬쩍 맞춰대어,
겨냥을 한 후 부드럽게 혀로 끌어들여 가져간다.
그 동작이 아주 은근하여 녀석이 내 손을 다치지 않게 하려고,
내심 제법 조심을 하고 있음을 충분히 감지할 수 있다.
착하고 영리한 녀석이다.

팔자가 기구하여 이리 살고 있으나,
좋은 주인을 만나 사랑을 받으면,
아주 훌륭한 명견으로 행복하게 살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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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푸른여우 2009.08.12 21:30 PERM. MOD/DEL REPLY

    이 무더운 날에 어서 두분 손가락에 새살이 돋기를 기원합니다..

    그래서 개들에게 있어 개집은 중요한 것이라 하더군요..
    동굴로 은신하던 습성이 있던 개가 자신의 몸을 감추고 쉴 수 있는 곳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개집의 입구를 사람이 안보이는 쪽으로 돌려놓으면 더 안심할 수 있겠지요.

    묶여있으면 적의 공격에 도망칠 수도 없으니 더욱 불안해 짓는다 하고요..

    물론 사람에 대해 믿음이 없어 경계하는 개들은 더 하겠지요.

    마지막에 조심스레 음식을 받아먹는 허스키 이야기도 공감이 많이 됩니다.
    개들이 상처를 주지 않으려고 조심하는 모습.. 참 사랑스럽지요^^
    대부분의 개들은 평화주의자입니다..

    요즘 길고양이들을 관찰하는 사람들이 말 하기를,
    대장도 어미와 새끼 고양이들에게는 먹을 것을 먼저 먹게 양보하고,
    또 어떤 고양이들은 어미 고양이가 도망가자 새끼들을 잘 돌본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걸핏하면 사람들은..
    짐승같다느니.. 정글과 다름 없다느니.. 하면서
    동물의 세계는 약육강식과 폭력과 잔인함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용자 bongta 2009.08.12 23:03 신고 PERM MOD/DEL

    개들은 내일이 아닌 바로 현재를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하기에 사람보다 몇 곱은 더 오늘에 충실합니다.

    내일 걱정에 오늘을 희생하기 바쁜 우리 인간이 어떤 때는,
    참으로 미련하기 짝이 없어 보이기도 합니다.
    유예된 행복, 예정된 미래를 위해서라는 명분하에,
    현재를 방기하며 평생 자신을 채찍질하며 미래로 미래로 몰아갑니다.

    저 고물할아버지 개들을 보면 저리 열악한 처지임에도,
    순간순간을 즐기는 듯 매번 영기 발랄한 표정으로 저를 맞습니다.
    저들은 샘물처럼 늘 새롭습니다.

    만약 개들을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절대로 ‘개새끼’, ‘짐승 같은 놈’이란 욕을 쓸 수 없습니다.
    이게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진작 알기 때문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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