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드킬
며칠 전 밭에 가는 길,
차도 한가운데 쓰러져 누운 강아지 하나를 발견하다.
나는 비상등을 켜고 내리면서,
따르는 차량에게 수신호를 했다.
그리고는 뒤 트렁크를 급히 열어 재꼈다.
한 켠에서 면장갑을 찾아 꼈다.
강아지를 들어 갓길로 내어가니,
저쪽에서 어미 개가 다가온다.
녀석은 상황을 이미 다 알고 있었음이다.
차량이 무서워 제 새끼한테 다가서지 못하고 있다가,
이제야 다가서는 것이리라.
내가 자리를 피해주자 어미는 새끼를 혀로 핥아준다.
하지만 이미 새끼는 절명한 상태다.
어미가 생기를 불어넣어준들,
거긴 암연(黯然)한 침묵 하나가,
선향(線香) 연기처럼 허공을 지나고 말 뿐인 것을.
저 녀석을 위로해줄 틈도 없이 나는 서둘러 차에 올라탔다.
떠나면서 보니 저 어미의 얼굴엔 당혹스런 가운데 슬픔이 번진다.
애별리고(愛別離苦)
사랑하는 것과 이별하는 고통이라니,
아아, 차라리 사랑일랑 하지를 말라.
허나 중생의 삶이란 사랑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것,
때문에 필연적으로 별리(別離)를 하지 않을 수 없고,
이에 따라 고통을 겪지 않을 수 없는 것.
사랑도 하지말고,
미움도 접어두고,
如水如風
물처럼 바람처럼,
이리 살아야 하는데,
중생의 삶이란 어이하여 이리도 집착, 煩惱만 무성한가?
煩惱即菩提
生死即涅槃
과연 번뇌가 보리(지혜)이며,
삶과 죽음이 같은 것인가?
저 어미 개가 이 말을 들으면,
시름을 잊고 해탈이라도 할 노릇인가?
저 암연한 얼굴 앞에서,
煩惱即菩提
이게 씨알이 먹힐까?
이미 더럽혀질 대로 더렵혀진,
인간의 물음과 답이 아니라,
저 어미 개로부터 답을 듣고 싶다.
가슴이란 동굴 깊숙한 곳으로부터 전음 입밀(傳音 入密)되어 올,
그 진실의 떨림을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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