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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그릇

생명 : 2011. 5. 21. 19:47



농원 바로 앞에 개들을 키우는 집이 있다.
두 해 전부터 키우기 시작하더니만 이게 재미가 붙었음인가?
한 차례 전부 처분하자마자 또 순번을 더해 입식을 했다.
지난해 어미 개와 함께 강아지 네댓 마리를 구해,
기존의 개들 댓 마리에 보태 본격적으로 키우는 양 싶었다.

나는 이 모습을 보고는 그만 온갖 정이 다 떨어졌다.
전처럼 이들 강아지들을 간간히 돌보는 것이 저이의 개 사육을 부조(扶助)하는 것이니,
영 꺼림칙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냥 나 몰라 외면하자니 이것은 또 저 강아지들이 마냥 안쓰럽기 짝이 없다.
홀로 전전긍긍할 뿐 별 뾰족한 대책이 없다.
참으로 산다는 것은 난사(難事) 중의 난사인 게라,
그런 가운데 죄업을 더하고 있으니 이 얼마나 어리석고 딱한가 말이다.

그런데 불과 일주일 전 일이다.
어느 날 그 집 앞 농원 둔덕을 지나면서,

“백구야~”

이리 불러보았으나 아무런 기척이 없다.
순간 불길한 정적이 개를 가두어둔 철망 사이에 갇혀 얼어 붙어있다.
저것이 성긴 철망이로되 거긴 죽음처럼 검은 어둠의 얼음 장막이
세상을 원망하듯 차단하고 있다.
인간이라는 종자를 꾸짖듯,
그날 오후의 빛살은 거꾸러져 동지섣달 그믐밤처럼 시꺼먼히, 그리 차갑게도 오연(傲然)하였다.

아뿔싸, 올 것이 오고 말았구나.

제대로 살펴주지도 못한 강아지들이 환영처럼 떠오르며,
나는 자책으로 가슴이 멘다.
바로 뛰어가 보니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다.
문을 따고 들어가 보니 구석 뜬장에 한 마리 백구가 떨고 있다.

슬픔은 늘 분노를 동반한다.
그저 생각 같아서는 이곳을 폭파해버리고 싶다.
강아지들이 갇혀 있던 우리 안은 가득 개똥으로 채워져 있고,
통로 바닥은 물론 울 넘어 도로변까지 똥이 넘쳐나고 있다.
지난해 거기 창고를 빌려 공작일을 하던 일꾼 하나는,
냄새가 너무 심해서 근처엔 가지도 못하겠다고 내게 말했다.

도대체가 똥을 치우지 않는다.
게다가 개 먹이는 있지만 물그릇이 보이질 않는다.
물은 아예 줄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이런 천벌을 받을 노릇이 있는가?
(※ 참고 글 : ☞ 2009/11/15 - [소요유] - 불한당(不汗黨))
아, 정말 흉하고나.
인심이 이리 흉측하고서도 감히 사람 노릇을 한다고 말할 수 있음인가?

내가 물 그릇을 만들어 가득 떠주자,
그는 허겁지겁 벌컥벌컥 들이킨다.

아, 우리네 삶은 참으로 모질고도 모질고뇨.

둘레를 살펴보니 버려진 몽당 삽 하나가 나뒹군다.
나는 남아 있는 강아지가 갇혀 있는 철창문을 열고,
그 삽으로 바닥에 나뒹구는 똥을 처리하였다.
이게 얼마나 치우지 않았으면 돌처럼 굳어있으랴.
나는 수차 곡괭이질 하듯 삽을 내리치며 긁어내었다.
그리고는 그 집 주변을 둘러본다.
주인은 노가다 일을 하기에 폐자재가 널려 있다.
맞춤 알맞은 발포수지로 만든 패드를 찾아내었다.
남의 것이지만 나는 주저 없이 이를 재단하여 강아지 집 바닥에 깔아주었다.
이젠 이 강아지 똥을 치우는 것은 내 일이 되고 말 터.
이 강아지가 갇힌 울안에도 물그릇은 없다.
역시 물 공급도 내가 당번이 되어야 한다. 

우리네가 밖에 나갔다 돌아오면 자연 물 한 잔이 먹히운다.
그러하다면 제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
아니 저들에겐 그저 먹이 던져주고 살 올려 이내 팔아버릴 물건과 다를 바 없겠지만,
그래 설혹 그렇다한들,
단 일초라도 물러나 생각하면 피가 돌고 숨을 쉬는 것임을 쉬이 알 수 있음이다.
내 목마름의 단 만분지 일을 덜어 저들의 목마름에 비출 수 있다면,
그 타는 고통을 정녕 어찌 모를 수 있음인가?
차마 어찌 이리도 무정할 수 있음인가?
과연 이러고도 우리가 사람 노릇을 할 수 있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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