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gta      

가장 큰 하늘은 언제나

소요유 : 2011.10.12 09:11


사랑법 

- 강은교

떠나고 싶은 자
떠나게 하고
잠들고 싶은 자
잠들게 하고
그리고도 남은 시간은
침묵할 것

또는 꽃에 대하여
또는 하늘에 대하여
또는 무덤에 대하여

서둘지 말 것
침묵할 것

그대 살 속의
오래 전에 굳은 날개와
흐르지 않는 강물과
누워 있는 누워 있는 구름
결코 잠깨지 않는 별을

쉽게 꿈꾸지 말고
쉽게 흐르지 말고
쉽게 꽃피지 말고
그러므로

실눈으로 볼 것
떠나고 싶은 자
홀로 떠나는 모습을
잠들고 싶은 자
홀로 잠드는 모습을

가장 큰 하늘은 언제나
그대 등 뒤에 있다.

***

우리 풀방구리를 풀어두면 밭일을 하는 게 쉽지 않다.
껌딱지처럼 발치에 묻혀 졸졸 따라다니기 때문이다.
해서 험한 일을 할 때는 묶어두지 않을 수 없다.
내가 밭에 나가면 한참을 짖다 그도 지치면 저리 누워 나를 기다린다.
꽁무니를 내가 나간 방향으로 잔뜩 틀고,
머리를 돌려 밖을 주시한다.

바로 앉아 기다리면 좀 더 편할 텐데,
저리 몸을 틀어 단 한 치라도 내게 가까이 향한다.

그의 등 뒤엔 내가 있음이다.

문득,
시인 강은교의

가장 큰 하늘은 언제나
그대 등 뒤에 있다.

이 범상치 않은 말씀을 떠올린다.

그렇다면,
내 등 뒤엔 누가 계신가?
과연 하늘이신가?

장자의 당랑규선(螳螂窺蟬)에선,
‘사물은 서로 얽혀 서로를 두 가지(이해상반)로 불러내고 있다.’고 했다.
‘物固相累,二類相召也’
(※ 참고 글 : ☞ 2009/10/08 - [소요유] - 엿보는 자)

장주는 3개월간 두문불출했다.
강은교는 침묵하라 했다.

그런데,
그는
‘실눈으로 볼 것’
또한 이리 말하고 있다.

입은 침묵으로,
눈은 실눈으로.

이게 무엇인가?
부처의 모습이 아닌가 말이다.

“가장 큰 하늘은 언제나
그대 등 뒤에 있다.”

이 말에 이르르면,
기독교도들은 필경 자신이 믿는 신을 연상할 것이다.

하지만,
침묵, 실눈은
부처상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엷은 미소를 머금은 침묵,
그리고 뜬 듯, 만 듯한 실눈.

그런데 이게 부처에게만 전속된 것인가?

‘또는 꽃에 대하여
또는 하늘에 대하여
또는 무덤에 대하여

서둘지 말 것
침묵할 것’

여기 등장하는

꽃, 하늘, 무덤

이것은 곧 행주좌와어묵동정(行住坐臥語默動靜) 가림 없는 나의 몸짓, 얼짓이 아닌가?
또는 생(生)과 사(死)를 모두 아우르고 있다.

여기 침묵할 것,
실눈을 뜨고.

사람들은 이런 것을 명상 또는 선이라고 부르곤 한다.
하지만 시인은 이런 말들이 갖는 일상과의 간격, 한계를,
단 몇 줄의 싯귀로 구원(救援)한다.

“가장 큰 하늘은 언제나
그대 등 뒤에 있다.”

이 말씀을
침묵과 실눈으로 가만히 받으면,
이내 다음 말을 맞이하게 된다.

큰 하늘은 언제나,
우리 안에 계시다.

풀방구리 뒤에 내가 있기도 하고,
정작은 그 안에 내가 있기도 한 것을.

내 뒤에 하늘이 계시기도 하고,
실인즉 내 안에 모시고 있음이기도 한 것을.

동학교도들은,
이 소식을 시천주(侍天主)라 한다.
내 안에 모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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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은유시인 2011.10.14 03:06 PERM. MOD/DEL REPLY

    풀방구리 참 귀여운 아가지요.
    제게도 풀방구리 못잖게 제 발 밑을 파고드는 어여쁜 강아지 예삐가 있습니다.
    녀석만 보면 인간에 대한 혐오감도 잊고 웃음이 얼굴에 번져나갑니다.

  2. bongta 2011.10.14 19:58 PERM. MOD/DEL REPLY

    무당엔 강신무(降神巫)와 세습무(世襲巫)가 있습니다.
    세습무는 어미 일을 대물려 잇습니다만,
    강신무는 어느 날 무병(巫病)을 앓아 멀쩡하던 이가 무당이 됩니다.
    무병이 찾아오면 예컨대 산속 어디론가 달려가 땅을 팝니다.
    땅 속엔 대개 요령, 신칼 따위의 무구(巫具)가 묻혀 있게 됩니다.
    이들 신물(神物)을 인증 표식으로 삼아,
    날 받아,어미 무당을 모시고 새끼 무당으로 입무(入巫)하게 되지요.

    가을이 되면 저에게도 저들의 무병(巫病)같은 가을 병을 앓습니다.
    저리도록 아프고, 시리도록 사무치는 가을 병은 때론 달콤하기까지 합니다.
    최근엔 사랑하고 존경하는 분을 잃어 더욱 가을이 아프고 시립니다.
    저희 밭 언덕에 오르면 달이 차오르며 애잔한 은빛 가루를 지상으로 흘립니다.
    예초기로 베어 누렇게 바랜 풀 더미 위에 떨어져 톡톡 튀기며 사라지는,
    달빛 파편을 쫓아 무연히 서 있다보면 이내 스렁스렁 풀바람 소리로 번져갑니다.

    제가 풀방구리를 안고 밤 산책을 나서면,
    잠깐새 여기 풀밭은 필시 아득하니 먼 태곳적부터 달려왔을,
    연무(煙霧)가 자욱하니 깔립니다.
    안개 숲을 헤치고 한 발자국 한 발자국 걸으며,
    떠난 님을 그립니다.

    풀방구리 몸을 끌어안으면,
    전해오는 따스한 온기만큼이나,
    그의 부재가 시려옵니다.

    무량수(無量壽),
    무량광(無量光)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부처님 명호를 가만히 허공중으로 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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