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바위 환술(幻術)
지금은 보기 힘들지만,
내가 어렸을 때는 유원지나 시장바닥에서,
야바위꾼들이 오곱, 박보장기, 카드놀이 등을 펼쳤다.
소싯적 뚝섬유원지를 거닐자면,
거기 박보장기판이 마치 성좌도(星座圖)처럼 좌악 펼쳐지며,
바둑알 또는 장기알들이 초롱초롱 별빛으로 반짝였다.
이게 어찌나 신기했던지.
그 유년의 추억을 잊지 못해서 그랬던 것일까?
나는 한 때,
청계천 헌책방을 뒤지며 박보(博譜), 바둑잡지 따위의 책을 수집하곤 했다.
해서 특히나 진귀한 장기 책을 여러 권 보유하였었다.
나중에 늙으면 느티나무 정자에 모인 노인네들 앞에서
이 책들을 몰래 앞장 세워 호령이나 해볼까나 싶었는데,
아내의 애꿎은 성화에 책들이 이리저리 산일(散逸)되어,
지금 찾아보니 두어 권 남아 있을 뿐이다.
수십 년 전 옛 이야기다.
언젠가 세운상가 위를 거니는데 사람들이 모여 웅성거리고 있었다.
힐끗 엿보니 야바위꾼이 카드놀이판을 벌이고 있었다.
이런 자리는 단 몇 분만 지켜보면 같은 패거리들이 이내 눈에 띄게 된다.
카드 패를 돌리는 주역, 그리고 바람잡이 두엇이 그럴 듯이 주고받으며,
노는 모습이 바로 눈에 익어온다.
보기에도 촌티가 물씬 풍기는 이가 하나 걸려들었다.
그도 낌새가 이상했는지 한참 뜯긴 채, 그만 돌아갈려는 찰나,
바람잡이 하나가 카드 패돌이를 욕까지 해가며 크게 나무라더니만,
촌부 허리춤을 거머쥐며 대차게 외친다.
“여기다 걸어!
이 뻔한 것을 못한단 말야!”
그는 카드 하나를 손가락으로 꾹 누르며,
꼼짝 말라는 듯 눈을 부라리며 카드 패돌이를 윽박지른다.
이 때 패돌이가 잔뜩 주눅이 든 표정으로 말한다.
“돈을 걸지도 않고 이러시면 안돼요!”
그러자 바람잡이가 게거품을 물며 날뛴다.
“아 참, 나는 돈이 없지만,
여기다 걸면 틀림없는데,
아, 정말 미치겠네!”
촌부는 잡혀 있다시피 하여 엉거주춤 거리고 있는데,
바람잡이는 촌부를 연신 충동이질 하며,
한 발 더 질러 나간다.
“그럼, 연습이다 치고 패를 까봐!
내 말이 틀리는가?”
그리고는 눈을 부릅뜨며 패돌이를 겁박(劫迫)한다.
패돌이는 마지못해 응한다는 듯 패를 깐다.
까뒤집힌 카드 패는 동그라미가 선명히 그려져 있다.
과연 바람잡이 말대로 바로 맞췄다.
의기양양 바람잡이는 촌부를 몰아붙인다.
“이리 뻔한데, 못한단 말야,
바보야 정말!
내가 찍어 줄 테니까 마지막으로 딱 한 번 다 걸어봐.
잃은 것은 찾아야 될 것 아냐?”
촌부는 울상이다.
그냥 돌아가자니 잃은 것이 억울하고,
더하자니 찜찜하다.
이 때 패돌이는 연신 손장난을 펴며 몇 차 패를 돌린다.
좌중을 둘러선 자들에게 거저 찍어보라고 권한다.
바람잡이로 보이는 또 다른 이가 썩 나타나 패를 맞추는데,
이건 백발백중이다.
그러자 애초의 바람잡이가 촌부를 크게 꾸짖으며,
이런데도 하지 않으면 천하의 졸장부라며 몰아간다.
그 바람잡이가 카드 하나를 다시 찍으며 이게 틀림없다고,
촌부를 몰아치듯 충동질 한다.
그런데, 내가 보아도 그게 맞는 것 같다.
마침내 촌부가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라,
씨근거리더니만 나머지 가진 돈을 전부 그 찍어준 패에 걸었다.
그런데,
아뿔싸,
패를 까뒤집으니 카드엔 아무 것도 그려져 있지 않다.
꽝인 것이다.
촌부가 돈을 다 털리고, 망연자실 서 있는데,
그 다음 장면이 그야말로 전광석화처럼 펼쳐진다.
바로 이 부분이 중요하다.
집중하자.
패돌이가 재빨리 카드 패를 다시 새로 돌리는가 싶더니만,
어디선가 나타난 제3의 바람잡이로 보이는 이가 카드 하나를 찍어
벼락같이 바로 거금을 건다.
그러자, 패돌이 역시 콩 튀듯 마주 패를 깐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새로 등장한 바람잡이가 이긴 것이다.
패돌이는 생각할 틈도 없다는 듯, 주머니까지 까뒤집으며,
자기 돈을 몽땅 바람잡이에게 시원스레 던져준다.
사태가 이리 흘러가자,
이미 촌부는 활극이 벌어지는 마당 한가운데에서 주역 자리를 벗어나고 만다.
좌중 사람들이 어안이 벙벙 아연실색하고 마는데,
순간 판돌이는 조립식 카드 판을 재빠르게 접더니만,
“오늘 장사는 다 털려 그만 둡니다.”
하며, 자리를 뜨려든다.
촌부는 거의 죽을상이 되어,
판돌이를 온몸으로 막아서는데,
판돌이가 핏대를 세우며 외친다.
“이거 왜 이래,
나도 오늘 일진이 나빠 다 털리고 말았단 말야.
당신도 보았지 않아!
시비를 걸려면 내 돈 따먹고 도망가는 저 놈을 붙잡아!”
하지만,
바람잡이 갑, 을, 병은 이미 팔랑개비처럼 현장을 이미 떠나버리고 말았다.
촌부가 돈 따고 이미 사라진 바람잡이를 찾으려고 한 눈을 파는 순간,
때는 이 때다 하며,
판돌이는 나 몰라라 줄행랑을 치고 만다.
이 장면을 나는 아직도 선명히 기억하고 있다.
타깃을 돌려 잡히는 기막힌 연출 수법.
그리고 팔랑개비처럼 흩어지는 저 갈가마귀들의 둔주(遁走).
목표가 하나가 아니라 두 개가 되는 순간,
이미 승부는 되돌이킬 수 없는 미궁으로 빠져들어 가고 만다.
전투기를 향해 쏴진,
적의 열 감지 유도탄을 오도하기 위해,
엔진 배기 열을 급속 냉각시키거나,
별도의 열원을 허공중에 방출하는 기술을 쓴다.
야바위꾼의 이 기막힌 수법은 이와 같이,
상대의 공격 포인트를 지워버리는 것이 그 핵심이다.
도무지 공격을 하려도 주적이 없는 바임에랴,
어디에다 대고 공격을 하고, 하소연을 하리.
나는 최근에 이런 장면을 다시 경험했다.
하여 야바위꾼의 이 기술을 다시 상기해보는 것이다.
이제 그 이야기를 간단히 해보련다.
그렇다.
‘간단히’ 해보려는 것이다.
너무 세세히 다 하기엔 내 마음이 지치기에,
그저 ‘간단히’ 하기로 한다.
야바위놀음은 상관없는 이가 구경하기에,
대단히 실례되는 말씀이나, 혹여 털리는 이가 있다한들 일응 흥이 솟는 경우도 있지만,
내가 할 이야기는, 흥은커녕 그저 씁쓸하니 허무할 뿐이기에.
고물할아버지가 강아지를 새로 들였다는 것은 앞에서 말했다.
(※ 참고 글 : ☞ 2009/07/05 - [소요유] - 북두갈고리)
그 이튿날 고물할아버지를 만나게 되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노릇인가?
이 강아지는 왜?, 또?
여기에 와 있게 되었는가?”
그 비루한 인간은 늘 그렇듯이 요령부득, 중언부언 말을 질질 흘려놓는다.
마치 자신의 구각(口角)께에 덕지덕지 붙은 게거품 흐르듯.
나는 그에게 강아지 주인 연락처를 아느냐고 물었다.
필경은 말하여 주지 않을 것으로 짐작했는데,
의외로 순순히 알려준다.
그는 자신 역시 강아지가 밤새도록 짖고, 지저분하고, 경제성도 없다며,
도로 가져가기를 원한다고 말한다.
그는 '경제성 없다'라는 말을 즐겨한다.
자신은 그리 비루하지 않고, 제법 점잖은 인간이란 말인데,
이게 더욱 그를 슬프게 희화화(戱畵化)한다.
이것은 무엇인가 숨겨진 사연이 있는 게다.
가져다 놓고, 바로 후회할 짓을 저 위인이 할 까닭이 있겠는가?
어쨌건 강아지 주인이라는 자와 통화를 했다.
“나는 개 주인이 아니다.”
“그렇다면, 고물할아버지의 말은 무엇인가?”
“나는 주인 아니라, 이웃이 이사 가면서 맡으라고 한 것을 ... ~횡설수설~
그것을 고물할아버지가 달래서 주었을 뿐이다.”
“그러면 이사 간 사람 연락처를 알려 달라.”
“나는 모른다.”
“연락처도 모르는 사람의 개를 대신 떠맡았단 말인가?”
“하여간 나는 모른다.”
나는 수십 년 전으로부터 날아와 다시 재현된 이 장면 앞에 버려진,
당시의 슬픈 촌부가 되고 만다.
지켜보는 이로서가 아니라,
지킴을 당하는 이로서,
나는 하나의 풍경이 되어,
까마득히 어두워 보이는 숲속에 잠긴다.
타깃을 돌려 잡히는 기막힌 연출 수법.
그리고 팔랑개비처럼 흩어지는 저 갈가마귀들의 둔주(遁走).
나는 창황중에 다시 낙수(落穗)를 줍는다.
그러나, 그것은 이삭이 아니라 커다란 슬픔 한 덩어리.
“고물할아버지는 평소에 강아지에게 물도 주지 않는 사람인데,
그냥 달라고 할 까닭이 있는가?
혹시 돈을 주지는 않았는가?”
“돈은 주지 않았다.
대신 노인정에서 지금 기르고 있는 큰 개(시베리안 허스키)를 샀다.”
“그게 무슨 말인가?”
“큰 개를 사서 노인정에서 잡기로 했다.”
짐작이 선다.
큰 개를 노인정 사람들에게 팔고,
흥정에 유리하도록,
덤으로 강아지 하나를 자진하여 떠맡은 것이리라.
어차피 강아지는 자신이 먹이 하나 주지 않아도,
객들이 건사하니까 하나도 어려울 것이 없다.
고물할아버지 입장에서는
큰 개를 쉽게 팔고자 작은 강아지를 우정 거저 떠맡은 것이다.
그런데, 이 가여운 녀석이 매일 울며 난리를 치니까,
돈도 받지 않고 인수한 것이 은근히 억울했던 것이 아닐까?
게다가 오십보백보인 저들,
집안 식구들이 나서서,
잠을 못잘 정도로 시끄러우니 도로 갖다 주라고 질책을 한 것이 아닐까?
아마도,
페인트공이라는 전 주인은
혹여 전신(前身)이 야바위꾼이 아니었을까?
저들이 둔갑술(遁甲術)을 부리는 것인가?
주인은 뜬금없이 둘로 늘어났다가,
갑자기 이 세상에 부재한다.
증발된 양심과 함께 알리바이(부재증명)가 성립된다.
도망간 바람잡이처럼 그들은 이 땅에 거주하고 있다는 증표, 그 주.소.를 결코 남기지 않는다.
인간존재증명의 흔적, 이를 저들은 스스로 지우며 살아간다.
허공중에 팔랑거리며 허화(虛華)처럼 흩어진 저 미망(迷妄)들.
가히 현란(眩亂)한 환술(幻術)을 보는 듯,
나는 허공 가운데 떠서,
그저 망연(茫然)히 어지러움증을 느낀다.
아니 앓는다.
큰 개는 어찌 될 것인가?
이 이야기는 다음에 하기로 한다.
도도처처(到到處處)가 지옥이다.
인간세(人間世)는 동물의 지옥이다.
거기 사는 인간이라고 꽃방석에 앉아 살고 있다 할 수 있는가?
인간들이 저 야바위꾼처럼 아무리 손속이 좋고,
촌부처럼 그저 착하기만 한 동물들을 날로 벗겨 먹는다 한들,
저들의 분노와 슬픔, 그 항거의 증표들,
소해면상뇌증(광우병), 구제역, 조류독감 ...
(※ 참고 글 : ☞ 2008/05/16 - [소요유] - 광인현상(狂人現象) - 광우병(狂牛病)과 마녀(魔女)사냥)
그리고 그 이상의 끔찍한 것으로 준비하고 있을 미지의 것들을,
그러나 필연 마땅한 것이라 하여도 하등 잘못이 없을 것들을,
인간이란 족속들이 언제까지고 막아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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