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gta      

세난(說難)

소요유 : 2009. 7. 15. 11:40


바둑을 배울 때,
행마, 포석, 전투, 끝내기 등 각론별로 공부를 하기도 하지만,
정석을 익히는 것도 중요한 과정 중에 하나이다.

정석사전을 펼쳐들고, 정형화된 수순을 따라가자면,
선인들이 갈고 닦은 정화(精華),
말 그대로 활짝 핀 아름다운 꽃을 보는 양,
혹은 고수들이 고심참담 혈로를 뚫어가며 기록한 고련(苦鍊)의 응결체를 대하는 듯,
적이 놀라울 때가 많다.

가만히 마음을 가다듬고 익히다보면,
나의 행마술은 절로 가지런히 정돈되고,
기리(棋理) 또한 제풀로 환해진다.

하지만,
대사천변(大斜千變)이라도 만나,
혼이 냅다 뜨고, 어지러워 길을 잃기라도 할라치면,
도대체 기사(棋士)들은 얼마나 총명한 이들일까 감탄하게 된다.

정석 책에 까만 손때가 묻도록 몇 번이고 익혀
뿌듯한 자신감이 뭉긋뭉긋 솟아오를 즈음이면,
바로 어제까지도 판판 깨지던 상수(上手)를 이제는 아래로 젖히게 되리란,
달콤한 공상에 젖어 하늘 높이 달떠 기고만장하게 된다.

하지만,
막상 그들과 바둑을 두게 되었을 때,
정석이라는 게, 실상은 기대와 다르게 별반 효험이 없기 일쑤이다.
정석을 아무리 달달 외운다한들,
상대가 그 수순대로 두어오지 않는 바임에랴,
도대체가 한 수라도 비끗 달리 두어오면,
그 뻔한 자신의 평소 실력이,
장바닥에 내팽개쳐진 촌닭처럼,
여지없이 다시 까발려져 바둑판 위를 처참히 나뒹군다.

모름지기,
정석이란 상대도 그리 따라 두어야,
그럴 듯이 판이 짜여지지, 도중에 한 수라도 달라지면,
너나 나나 피차 밑천 다 들어낸 그저 천둥벌거숭이에 다름 아니다.

“정석은 배워라, 하지만 배운 후에는 다 잊어 버려라.”

그러하니,
이런 가르침이 있는 게다.
기리(棋理)를 득(得)해야지,
수순(手順)을 외우는 것이 능사가 아님이다.

태권도, 합기도 등에서 대련할 때도 마찬가지다.
내가 펴서 떨친 수에 상대가 배운 법수대로 응하고 따라야,
그럴 듯 허공중에 한 떨기 꽃이 펴오르지,
그러하지 않으면 그저 뒷골목 아해들의 괴발개발 싸움처럼 엉망이 되고 만다.

***

고물할아버지.
그와 만나면 마치 체통(篩筒)에 물을 붓는 것 같다.
말이 막히면, 이내 엉뚱한 다른 말을 끄집어낸다든가,
화를 내며, 내가 지금 막 혈압이 오르면 쓰러지고 말텐 데,
더 다가서려느냐 하는 듯, 손으로 과장되게 머리를 짚어가며,
내 말 길을 의뭉 떨며 막아버린다.
(※ 참고 글 : ☞ 2009/07/05 - [소요유] - 북두갈고리)

한비자(韓非子)의 세난(說難)에 나오는 말이다.

凡說之難 在知所說之心 可以吾說當之

무릇 설득의 어려움이란,
설득할 사람의 마음을 제대로 짚어,
나의 설득하는 바를 그의 마음에 제대로 맞추는데 있다.

여기서, 한비자 그가 상대로 하고 있는 것은 물론 군왕이다.
제 아무리 변술(辯術)이 뛰어난들 왕에게 받아들이지 않으면,
아무런 가치가 없다.
왕의 처분이라서야 비로소 도모하여 꾀한 바, 뜻을 이룰 수 있다.
그가 말한 설득이란 결국은 왕이 품고 있는 마음에,
나의 변설을 맞춰 꿰는 것을 말하고 있음이다.

같은 책 외저설좌하(外儲說左下)에는 또 이런 가르침이 펼쳐지고 있다.

范文子喜直言,武子擊之以杖 “夫直議者不為人所容,無所容則危身,非徒危身,又將危父。”

범문자는 직언하기를 좋아했다.
범무자(父)는 몽둥이로 그를 때리면서 이리 타일렀다.

“대저, 직언이란 남이 받아들이지 않는 법이다.
소용이 없으니 외려 몸이 위태로워질 뿐이다.
단지 네 몸이 위태로워지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또한 장차 네 아비인 나도 위태로워진다.”
 
子產者,子國之子也。子產忠於鄭君,子國譙怒之曰 “夫介異於人臣,而獨忠於主,主賢明,能聽汝,不明,將不汝聽,聽與不聽,未可必知,而汝已離於群臣,離於群臣則必危汝身矣,非徒危己也,又且危父矣。”

자산은 자국의 아들이다.
자산은 정나라의 임금에게 충성을 다했다.
하지만, 자국은 노하여 말한다.

“대저, 많은 신하들과 다르게 홀로 임금에게 충성하려고 한다면,
그 임금이 현명하다면 너의 말을 들어 줄 것이다.
하지만, 현명하지 못하다면 들은 척도 하지 않을 것이다.
들어줄 것인가, 아니 들어줄 것인가 아직 아지도 못하면서,
너는 많은 신하들과 떨어져 외톨이가 되는 것이다.
뭇 신하들과 등지게 되면 너의 몸은 반드시 위태로워진다.
또한 단지 너만 위험해지는 것이 아니라,
네 아비도 덩달아 위태로워진다.”

아,
정녕 이러 하다면,
설득이란 얼마나 어려운가?
제 몸까지 위태로워질런데,
항차, 상대의 의중에 따라 정해지고 말 나의 설득이란 얼마나 허망한가?

실제 나는 저 고물할아버지가 쇼를 하는 것이 아니라,
저러다 진짜 쓰러지기라도 한다면,
된통 봉욕을 당하고 말겠구나 하는 생각도 갖는다.

그래도 설득을 하는 것은 무엇인가?
약소국 한(韓)나라의 공자인 한비자는 저물어가는 나라를 구하기 위해,
국왕을 설득했지만 번번이 채택이 되지 않았다.
(이설(異說)에 따르면, 작전상 거짓 허물을 짓고 적국 秦으로 들었다는 설도 있음.)
하지만 말더듬이임에도 불구하고 한비자는 지치지 않고 말을 해야 했음이니,
이로서 나라를 구하고 뜻을 펴려했음이다.
아, 가여운 한비자라니.

나는 이제 세난(說難)으로 다시 되돌아와 선다.

凡說之難:非吾知之,有以說之之難也;又非吾辯之,能明吾意之難也;又非吾敢橫失,而能盡之難也。凡說之難,在知所說之心,可以吾說當之。所說出於為名高者也,而說之以厚利,則見下節而遇卑賤,必棄遠矣。所說出於厚利者也,而說之以名高,則見無心而遠事情,必不收矣。所說陰為厚利而顯為名高者也,而說之以名高,則陽收其身而實疏之,說之以厚利,則陰用其言顯棄其身矣。此不可不察也。

무릇 설득의 어려움이란,
나의 지식으로 상대를 설득하는 게 어렵다든가,
또한 내가 변론으로써 뜻을 밝히 펴는 게 어렵다든가,
또한 종횡무진으로 내 뜻을 다 펴는 게 어렵다는 따위의 것이 아니다.

무릇 설득의 어려움이란,
설득할 사람의 마음을 제대로 짚어,
나의 설득하는 바를 그의 마음에 제대로 맞추는데 있다.

명예를 중시하는 자를 위해 설득을 하려 할 때,
두터운 이익으로써 설득을 하게 되면,
절개가 낮고 비천한 모습을 보이게 되어 필히 내침을 받아 멀리 경원 당한다.

반대로, 큰 이익을 탐하는 자를 설득하려 할 때,
명예를 들어 설득을 하게 되면,
사정을 모르는 벽창호구나 하고 여겨, 거둬 쓰지 않을 것이다.

상대가 내심으로 은밀히 큰 이익을 구하고 있으면서도,
거죽으로 고고한 척 의뭉을 떨고 있는 자에게,
명예를 들어 설득을 하려들면,
겉으로는 받아들여지지만,
실인즉 내심으로는 멀리해 이내 소원해질 것이다.
그렇다고 큰 이익을 들어 설득을 하게 되면,
속으로는 그 말을 거둬 수용하면서도,
겉으로는 그를 내칠 것임이라.
그러하니, 이런 사정을 잘 살피지 않을 수 없음이다.

일찍이 진시황은 한비자의 글을 읽고는,
이 자와 교분을 맺을 수 있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고 말했다.

나 또한,
한비자를 고전 중에 등장하는 다른 어떤 이보다 사무쳐 사랑한다.

그런 한비자였지만,
아시는가?
저리 설득의 어려움을 절절히 펴며,
천하 누구보다도 이를 깊이 연구하였던 그,
그 한비자의 말로를.

그는 동문수학하던 이사(李斯)의 시기를 받아,
끝내는 독약을 먹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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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요유 : 2009. 7. 15. 11:4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