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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시감(旣視感)

소요유 : 2010. 4. 4. 22:50


불어로는 dejavu라고 하는 기시감.
어떤 때, 어떤 장면에 임하여,
‘이미 본’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이를 윤회의 증거로 보는 사람도 있다.
그리 본다면 그것은 그의 소관사일 뿐,
나는 그런 확신을 가질 정도로 마음이 옅지 못하다.

정보 교란, 착오로 보는 사람도 있다.
뇌 정보 관리 측면에서 볼 때, 기억의 집적, 보관, 재생하는 과정 중에 있어,
무엇인가 오류가 생긴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이게 전자에 비해선 조금 더 그럴 듯해 보인다.

그러나 내 견해 아니 짐작이라도 좋은데 그것은 이러하다.
유사한 상황(situation)을 접하자,
기히 접했던 과거의 기억이 환기되는 것일 뿐,
이를 윤회의 증거라든가, 기억의 오류로 볼 필요는 없다고 본다.
설혹 이러한 따위가 진실이라 한들 우리들이 살고 있는 지금 이 땅의 형편에선,
그리 믿을 증거가 충분치 않다.
나는 어떠한 경우일지라도 증거가 충분치 않을 때는,
우리의 확신을 유보하는 겸양을 갖는 것이 덕스런 태도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사물의 이치라는 것은 동일한 상황이라면,
대개는 동일한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많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따라서 기시감을 느낄 때,
현재 맞이하고 있는 상황이 어찌 진행될 것인가에 대한 암시를 득(得)할 수 있다.

기시감(旣視感)이라는 것이 서양에서 들어온 말이지만,
기실 이는 암시(暗示), 예감(豫感), 예시(豫示), 예징(豫徵), 예조(豫兆), 징조(徵兆) 따위로,
우리네 사회에서도 이미 사용되어 온 폭이다.
다만 전자가 개인의 주체적 해석에 치우친 반면,
후자는 저러한 느낌이 외부에서 내게 주어지는 수동적인 것으로 처리한 차이가 있다.
또한 전자는 과거 해석 지향적이나,
후자는 미래 예정 지향적이다.
자신이 의욕한 것은 아니로되 자동으로 내 머릿속으로 떠오른 것이니,
이것이 하늘이 내게 응험(應驗)하신 것이오,
땅이 내게 응감(應感)하시온 것이 아니겠는가?
우리네 사고방식이란 늘 이리 조신하니 겸손하다.

나 역시 기시감을 느낀 적이 적지 않다.
내 처는 나보다 더 기시감이 좋다.
말하길 자신은 닭띠라 그러하다고 우긴다.
닭은 새벽을 미리 알리지 않는가 말이다.
늙은 닭은 봉이 된다든가 용이 되어 하늘로 승천하다는 말도 있듯이,
닭은 예로부터 영물(靈物)로 대하지 않던가?

나는 행여 미생지신(尾生之信)의 정도일까 마는 그런대로 약속을 내 얼굴인 양 잘 지킨다.
(※ 참고 글 : ☞ 2008/02/15 - [소요유/묵은 글] - 배반의 장미)
아니 그럴 까닭이 없지 않은가 말이다.
장차 어찌 어찌 하자고 미리 맺은 것인데,
무엇이 부족하다고 그 약속을 어기겠는가?
그게 단지 시간만 잘 지키어도 될 수준의 것이라면,
더더욱 어려울 것이 있겠는가?

반면 약속을 어기는 사람을 신뢰하지 못하겠다.
물론 살다보면 피치 못하게 약속을 어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 생긴다.
그럴 경우라면 사전에 상대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양해를 구한다면,
이 또한 무엇이 문제가 되겠는가?
그러한데도 이런 노력을 게을리 하여 약속 상대를 저버리게 된다면,
이는 몹시 고약한 노릇이라 할 것이다.

미생은 목숨을 잃었지만,
나는 상대에 대한 신뢰를 접는다.
미생에 비해 나는 아직 죽기에 조금 미련이 남은 폭일까?

흔히 장자방이라 불리우는 장량은 황석공을 만나,
황석공소서(黃石公素書)를 얻는다.
이 때 황석공은 약속 시간을 어겼다는 미명하에,
몇 번이고 장량에게 헛걸음을 시킨다.
장량은 황석공이 기인임을 알아보고,
첫 닭이 울 때 만나자는 약속시간을 어기지 않기 위해,
아예 한밤중에 길을 나서 기다린다.
이에 황석공의 신임을 얻고 뜻을 일으킬 수 있게 된다.
(※ 참고 글 : ☞ 2009/08/11 - [소요유] - 귀인(貴人))

그날,
나는 약속 시간을 지키기 위해 새벽 03:30에 일어났다.
오전 07:00 약속인데 아무리 먼 곳으로 간다한들,
이쯤이면 거의 장량의 행례(行禮) 수준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그 장소에 나갔는데 상대는 30분이나 늦게 도착했다.
그리 늦게 도착한 그는 아침을 먹지 않았다고 식사를 하고 오겠다고 한다.
그리고는 감감무소식이다.
그 후 4시간이나 늦게 연락이 왔다.
다른 일을 하느라고 늦어지고 있다고.

30분이나 늦게 도착한 그를 대하자,
나는 문득 이거 어디서 겪은 일이구나 싶었다.
약속을 거푸 깨면서도 이리저리 그럴듯한 변명으로 일관하던 당시의 某씨,
某씨의 인정에 끌려 설마설마하며 믿다가 낭패를 당한 경험이 있다.

그는 약속 전일에 말하길 자신은 남과 다르게 아침 일찍 일을 나선다고 했다.
그리고는 아침 07:00에 만나자고 자신 있게 말했다.
나는 이를 듣고 그에 대한 성실성을 다시 확인하는 신뢰의 표징으로 받아들였었다.

그가 늦게 돌아오자 나는 기시감을 혹 아느냐고 물었다.
그는 이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
알지 못하는 사람과 이야기를 더 나눌 기분이 아니다.
나는 그만 말을 그쳤다.

이쯤에서 나는 사마양저(司馬穰苴)의 이야기를 다시 새기지 않을 수 없음을 느낀다.
제(齊)나라에 장군 3인이 있었다.
이 자들은 공로가 있음을 기화로 나라로부터 대접을 잘 받았다.
그러자 이들은 안하무인 방자하게 놀아났다.
재상 안영(晏嬰)은 이들을 2개의 복숭아를 빌미로 모두 죽음에 이르도록 한다.
그러자 이웃 나라들은 이를 얕보고 쳐들어왔다.
안영은 이 때 전양저(田穰苴)란 사람을 천거한다.
제왕은 이를 장군으로 내세워 적군을 무찌르도록 한다.

전양저는 자신의 신분이 미천하므로,
혹여 인심이 복종하지 않을 것을 염려하여 감독을 하나 딸려 줄 것을 요청한다.
그 감독으로 선발 된 자가 장가(莊賈)란 이다.
전양저는 장가에게 내일 출정을 오시(午時)에 할 터이니,
시간을 엄수하여 군중(軍中)에 도착하라고 다짐을 두었다.
그러나 장가는 평소의 임금 총애만 믿고,
환송하는 친지들과 술판을 벌이며 약속시간을 어겼다.

전양저는 미시(未時)가 지나자,
군리(軍吏)에게 이리 분부했다.

“遂吩咐將木表放倒,傾去漏水”
“장대를 치워버리고, 누수를 쏟아버려라”

추상같은 이 말씀을 대하자,
나는 모골이 송연해지며,
한편으론 주먹이 절로 불끈쥐어진다.
아,
저리 가을 서리처럼 단호할 수 있음이라니,
절로 양저에게 고개를 숙여 존경심을 드리고 싶어진다.
여기서 장대란 그림자 길이를 재기 위해 새워둔 것이니 곧 해시계의 일종이며,
누수 역시 물로서 시간을 재기 위한 것이니 물시계에 해당된다.

뒤늦게 장가가 도착했다.

전양저가 묻는다.

“감군(監軍)은 어째서 늦었소?”

“오늘 원행을 떠난다고 친척과 친구들이 술로서 전송을 해주었기에 이리 지체가 되었소.”

이러자 양저가 말한다.
이 장면은 내가 감동을 크게 받은 곳이다.
하기에 다시금 가슴으로 새겨가며 읽어본다.

“무릇 장수된 자는 명령을 받은 날로부터 자기 집을 잊고,
군중에서 약속을 하면 자신의 가족을 잊으며,
북채를 잡으면 시석(矢石)을 무릅쓰고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는다.
금번 적군이 침범으로 변경이 소란한즉, 우리 임금께선 밤에도 잠을 이루지 못하시고,
음식을 잡수셔도 그 맛을 모르시고 계시다.
그래서 삼군을 우리 두 사람에게 내주시고,
속히 공을 세워 백성들의 위급을 구하라고 하신 것이다.
그러하거늘 어느 여가에 친구들과 술을 마시며 즐길 수 있음인가?”

이리 꾸짖고는 그 자를 참해버리고 만다.
약속을 어기면,
옛 사람들은 가차 없이 목을 쳐냈다.

‘當斬’

이 소문을 듣고는 적군들은 놀라 스스로 도망을 가버리고 만다.
이에 제왕(齊景公)은 전양저에게 사마(司馬) 즉 지금으로 치면 국방장관에 임명한다.
하여 이후론 전양저는 흔히 사마양저라 부르곤 한다.

도대체가 약속을 어기는 인간처럼 누추한 자가 또 있을까?
모름지기 남과 약속을 하는 자는,
목을 길게 늘여 사마양저의 추상같은 군도(軍刀)의 서늘함을 잊지 말아야 할사.

但問:「監軍何故後期?」莊賈拱手而對曰:「今日遠行,蒙親戚故舊攜酒餞送,是以遲遲也。」穰苴曰:「夫為將者,受命之日,即忘其家;臨軍約束,則忘其親;秉枹鼓,犯矢石,則忘其身。今敵國侵淩,邊境騷動,吾君寢不安席,食不甘味,以三軍之眾,託吾兩人,冀旦夕立功,以救百姓倒懸之急,何暇與親舊飲酒為樂哉?」莊賈尚含笑對曰:「幸未誤行期,元帥不須過責。」穰苴拍案大怒曰:「汝倚仗君寵,怠慢軍心,倘臨敵如此,豈不誤了大事!」即召軍政司問曰:「軍法期而後至,當得何罪?」軍政司曰:「按法當斬!」莊賈聞一「斬」字,纔有懼意,便要奔下將臺。穰苴喝教手下,將莊賈捆縛,牽出轅門斬首。唬得莊賈滴酒全無,口中哀叫討饒不已。左右從人,忙到齊侯處報信求救。連景公也吃一大驚,急叫梁邱據持節往諭,特免莊賈一死;吩咐乘軺車疾驅,誠恐緩不及事。那時莊賈之首,已號令轅門了。梁邱據尚然不知,手捧符節,望軍中馳去。穰苴喝令阻住,問軍政司曰:「軍中不得馳車,使者當得何罪?」答曰:「按法亦當斬!」梁邱據面如土色,戰做一團,口稱:「奉命而來,不干某事。」穰苴曰:「既有君命,難以加誅;然軍法不可廢也。」乃毀車斬驂,以代使者之死。梁邱據得了性命,抱頭鼠竄而去。於是大小三軍,莫不股栗。穰宜之兵,未出郊外,晉師聞風遁去。燕人亦渡河北歸。苴追擊之,斬首萬餘。燕人大敗,納賂請和。班師之日,景公親勞於郊,拜為大司馬,使掌兵權。

이리저리 생각의 끄나풀이 끊임없이 이어져 글이 어지러워졌다.
허나 꼭 이러한 이야기들을 하고 싶었다.
묵묵히 약속을 지키는 사람을 허술히 대하지 말아야 한다.
사마양저의 시퍼런 법도(法刀)는 늘 그대 목 가까이 있음이다.

자,
다시 돌아가 간단히 마무리한다.
하여간 여느 일반적인 해설과는 다르게,
나라면, 기시감이란 정보해석 프로세스에서,
노력의 절약이란 측면에서 보아주고 싶다.

먼젓번 일어난 일의 과정과 결과를 참고하며,
쉬이 이번 일의 앞일을 미리 짐작해볼 수 있다.
기시감이란 이리 새롭게 정보를 해석하는 노력을 아끼게 되는 공덕이 있다.

동양에서 많이 거론하곤 하는 징조(徵兆), 서징(瑞徵) 따위들.
이게 정치사회적 목적을 위해 동원된 혐의가 적지 아니 발견된다.
하지만, 이번 논의의 한계를 넘어서므로 여기서는 다루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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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은유시인 2010.04.05 15:38 PERM. MOD/DEL REPLY

    전, 약속을 잘 하지 않지만 약속하면 비록 작은 것일지라도 철저히 지키려 합니다.
    물론 지킬 형편이 되지 않으면 미리 양해를 구하곤 합니다.
    약속을 지키는게 그리고 양해를 구하는게 별로 어려운게 아니지요.

    그런데 희한하게도 대개의 사람들이 약속을 예사로 어깁니다.
    약속을 어기는게 마치 하나의 권위나 멋으로 여길 정도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거짓말을 그리도 잘합니다.

    그런 점들이 전 전혀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그런 사람들로 이루어진 세상이 그래도 잘 돌아가는 걸 보면 정신 없습니다.

    사용자 bongta 2010.04.06 00:28 신고 PERM MOD/DEL

    저는 말하곤 합니다.
    악인 하나가 악인 10, 100을 생산해낸다고.

    약속을 어기는 자 하나가 있으면,
    그 때문에 피해를 입은 자가 나타납니다.
    그러면, 그 피해자는 다음 번 약속에 임할 때,
    아연 긴장하게 됩니다.
    또 한 번 더 속을 수는 없다.
    이런 각오로 단단히 준비하는 사람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러자니 때로는 자신을 과장하게 되거나,
    때로는 상대를 먼저 속이며 미리 방패막을 쳐둘 수도 있지요.
    이런 무리가 따르는 일들이 사람들 간에 연쇄반응을 일으키며 퍼져나간다면,
    그런 사회는 얼마나 불행하겠습니까?

    그런데 제가 가만히 생각하자니,
    거꾸로 이런 악인들이 은인이기도 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왜 그렇습니까?
    선의가 결코 능사가 아니라는 깨우침을 얻게 만들어주니까요.
    이젠 악의가 선의보다 더 득책이 되겠지요.

    하지만, 늘 세상을 이 따위로 살면 그게 마냥 행복한 것만 아닐 것이기에,
    은인이라 한들 제법 고약한 은인이라 하겠습니다.

  2. 은유시인 2010.04.06 01:49 PERM. MOD/DEL REPLY

    요즘 가족계획이 아니라 자식을 많이 낳도록 권유하고 있습니다.
    산림은 점차 파헤쳐지고 생태계는 절단되어가는데
    왜 인구를 늘리려고 하는지 납득되지 않습니다.
    인구가 많을수록 국력이 증대한다는 논리인 듯합니다.

    갈수록 취직하기 힘들고
    사람 경시풍조가 만연해가는데
    후손을 남기는 것조차 두렵습니다.
    눈뜨고 코베어가는 세상이 아니라 문둥이 콧구멍속의 마늘까지 빼먹는 세상인데 말입죠.

  3. 사용자 bongta 2010.04.08 01:14 신고 PERM. MOD/DEL REPLY

    저의 생각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이 출산을 하지 않는 까닭은 나름 합리적 선택입니다.
    이런 것을 무작정 독려한다고 저들이 따르진 않을 것이지요.
    저출산은 거리를 쾌적하게 할 것입니다.
    사실 지금도 사람들이 너무 많아 문제지, 적어서 문제가 아닙니다.
    조금 욕심의 수준을 낮추면 설혹 인구감소로 국가 경제력이 수치상 조금 내려간다고 하여도,
    반대로 부동산 가격이 안정되고, 환경파괴도 적어지는 등 쾌적한 환경이 될 것입니다.

    저는 우리나라 인구가 더욱 팍팍 줄어들었으면 합니다.
    지금 한국의 인구는 숨이 벅차도록 많은 편입니다.

  4. 은유시인 2010.04.09 17:39 PERM. MOD/DEL REPLY

    전쟁이 일어나서라도 인구가 10%로 줄어들었으면 하는데...
    이런 생각 자체가 미친 짓일까요?
    지금 잠재실업자까지 합치면 실업자 수가 200만명이 넘습니다.

  5. 사용자 bongta 2010.04.12 21:37 신고 PERM. MOD/DEL REPLY

    사는 것이 무엇이관데,
    그저 밀어붙이는 것을 능사로 알고 있습니다.
    이게 국가 단위로 일어나고 있으니 문제지요.

    “인구가 줄면 경쟁력이 떨어진다.”

    이 도그마 하나를 앞장세우고는,
    국가에서 시민들을 채근하고 있습니다.
    즉, 국가 경쟁력을 위해 애 많이 낳자!

    저 역시 근본적으로 선생님과 마찬가지 생각입니다.
    인구가 적어지면 사람들이 느긋해지면서 여유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부동산 앙등 때문에 평생 마음 졸이며 살지 않아도 되고,
    국제 경쟁력 운운하며 반도체, 철강, 자동차 등 몇몇 산업을 위해,
    나머지가 대가없이 희생되는 폭력이 없어질 것입니다.

    제가 요즘 넷에 들어올 시간도 없군요.
    그래서 사뭇 늦었습니다.

  6. 은유시인 2010.04.14 23:41 PERM. MOD/DEL REPLY

    바삐 사시는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하시는 일이 잘 이루어졌으면 합니다.

  7. 은유시인 2010.04.25 02:12 PERM. MOD/DEL REPLY

    아직도 하시던 일이 마무리가 되지 않았나 보군요.
    저도 요즘 공연한 일로 바쁘답니다.
    몇가지 인쇄편집일을 하랴,
    앞전 13명을 동원하고 무더기 진정을 주도했던 두 놈이 저를 또 고소했네요.
    화요일에 출두해서 조사 받아야 합니다.
    구구절절이 거짓말만 늘어놓는 두 놈이 참으로 한심합니다.
    제가 잡혀들어가지 않으면 결국 두 놈이 또 거짓말을 늘어놨다는 결론 아니겠습니까?

    사용자 bongta 2010.04.25 23:57 신고 PERM MOD/DEL

    제가 지금 농원을 새로 조성하고 있는 중입니다.
    서울에서 거기까지 가려면 왕복 4시간이 걸립니다.
    그러자니 정작 일할 시간이 부족합니다.
    작업시설을 갖추는 일변 농사 준비도 하려니 바쁘군요.

    게다가 밭을 갈기 전에 빌려준 이가 남겨놓은 비닐을 거두는 작업에,
    지금은 온 시간을 빼앗기고 있습니다.
    지금 거두지 않고 적당히 처리하면 편하기야 하겠지만,
    그렇게 되면 대부분의 비닐이 땅에 묻힐 것이기에 힘을 내고 있습니다.
    만나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태워버리라고 말합니다만,
    제 생각엔 이는 땅을 대하는 바른 태도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시골에 내려가실 계획을 세우고 계시다면 다음 사항을 꼭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즉 시골이 공기 좋고 사람들이 순박하다는 것은 모두 옳은 것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오늘도 전일과 다름없이 어디선가 쓰레기를 태우는 냄새가 납니다.
    여기는 바로 지척에 한탄강이 있어 공기 순환이 잘 되는 편이지만,
    그래도 시도 때도 없이 무엇인가 태우는 냄새는 영 아름답지 못한 풍경입니다.
    왜 이런 것이 이제껏 여론을 환기하지 않았는지 의아합니다.
    군청이든 여러 매체에서 이게 옳지 못하다는 것을 계도하였으면 합니다.

    제가 사는 북한산은 이에 비추면 그야말로 낙원입니다.
    공기는 설악산 못지않게 좋고,
    조용하고 아늑합니다.
    시골에 내려가시더라도 평야 지대가 아니라 산을 등지고 있는 외진 곳이
    이런 면에서는 훨씬 좋을 것입니다.
    도시사람들이 정이 없다고 하지만,
    차라리 경우가 밝은 것은 시골 사람보다 곱절은 낫습니다.
    억지 부리고 욕심 사나운 것은 도대체가 대책이 없습니다.

    청경우독(晴耕雨讀) 또는 주경야독(晝耕夜讀)이라 하였은즉,
    농원조성이 완료되면 낮 농사일이 끝난 후,
    밤엔 한 철 열심히 공부에 매진할 생각입니다.

    지금 예상으로는 우천만 아니라면 향후 일주간 비닐을 거두고,
    이후 밭을 갈게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는 식재할 곳을 초다듬이 하여야 하는데,
    이게 큰일이지만 이 때쯤이면 잔일은 얼추 다 끝나기에,
    지금보다는 한결 어수선한 것은 가실 것입니다.

    저도 은유시인님을 가끔 생각합니다만,
    농원조성 첫해이기에 이리 바쁘지 이듬해부터는 한결 여유가 있을 것입니다.
    지금도 일변 힘을 들이면서도 일변 즐기면서 이 철을 건너고 있습니다.
    별별 이야깃거리가 머릿속을 지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녁에 컴퓨터 앞에만 않으면 이내 졸음이 쏟아져 글 하나 올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는 시간의 내력을 믿습니다.
    어느 날 문득 고개 들면 한철을 지나고 있을 터이지요.
    그 시간까지 저는 묵묵히 제 길을 걸어갑니다.
    그리고 오늘 홀로 느낀 것인데,
    태양의 위대한 힘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땅의 어짐도 바로 가까이 피부로 알게 되었습니다.
    무릎으로 기어가며 비닐을 줍는 것이 중노동이지만,
    이 사춤에 땅의 성질을 제대로 알게 되더군요,

    비닐을 방치하고,
    쓰레기를 태워도,
    소출을 내놓는 땅의 인자함.
    정말 미안한 가운데 식물을 품고 기르는 토지의 덕성은 참으로 놀랍고 경이롭습니다.

    그나저나 쟁송이라는 것이 이겨도 여간 힘든 것이 아닌데,
    저리 시달리고 계시니 안타깝습니다.
    모쪼록 좋은 결과 있으시길 바랍니다.

  8. 은유시인 2010.05.04 12:59 PERM. MOD/DEL REPLY

    농원조성이 아직도 멀었는지요?
    괜히 저까지 가슴이 울렁거립니다.
    그만큼 기대에 찼다는 얘기인데....
    농원이 완성되면 한번 놀러가도 되겠는지요?

  9. 사용자 bongta 2010.05.06 12:42 신고 PERM. MOD/DEL REPLY

    농원이라고 하기보다는 사실 과원(果樹園)이라 하여야 옳을 것입니다.
    묘목을 일부 심고 나머지는 삽목을 길러 식재할 예정입니다.
    지금 삽수는 충분히 키우고 있으나 밭은 폐비닐 제거 작업 때문에,
    아직 이랑도 내지 못하였습니다.
    따라서 금년엔 별로 볼 것도 없습니다.
    최하 향후 2~3년은 지나야 그런대로 과원다운 모습이 갖추어질 것입니다.
    그 때라면 선생님을 모시는 것이 저로서도 충분히 흥분이 되는
    경험이 될 것이기에 기다려집니다.
    하지만 대접할 것이 없어 죄송하지만 지금 오셔도 얼마든지 환영합니다.

    오늘로서 파묻힌 비닐제거 작업이 끝났습니다.
    팔목, 무릎이 편치 않을 정도로 고생을 하였습니다.
    다만 또다른 이웃에게 빌려주었던 곳엔 잔 비닐조각이 널려 있어,
    이를 제가 주어내려면 이틀 정도 시간이 더 걸릴 것입니다.
    이게 끝나면 밭갈이에 바로 들어갈 것입니다.

    저희 밭이 인접 밭보다 높은데,
    그 법면(法面)에 폐비닐이 켜로 버려져 있더군요.
    제가 이 바쁜 와중에 참을 수 없어,
    아래 이웃 밭으로 내려가 이들을 캐어내었습니다.
    만약 매년 이 지경으로 폐비닐을 버려나간다면,
    십년도 되지 않아 법면은 두꺼운 비닐코팅을 한 양 변하고,
    토양은 숨도 쉬지 못하고 죽어갈 것입니다.

    흔히 순박하고 인심 좋은 시골사람으로 묘사되고 있지만,
    폐비닐을 마구 버리는 이들을 옳은 농사꾼으로서는 보아줄 수 없더군요.

    저는 서두르지 않고 일을 즐기면서 하렵니다.
    기실 비닐제거작업도 힘이 몹시도 들었습니다만,
    의외로 좋은 경험이 되었습니다.
    덕분에 저희 땅에 대한 성질을 충분히 알게 되었으며,
    지모(地母)의 무한한 인자함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10. 김금순 2012.01.17 18:06 PERM. MOD/DEL REPLY

    내머리 사용설명서란 책을보며 데자뷰에 많은공감이느껴져서‥깊고 색다른 느낌의 설명에 감사드려요^^

  11. 김금순 2012.01.17 18:07 PERM. MOD/DEL REPLY

    내머리 사용설명서란 책을보며 데자뷰에 많은공감이느껴져서‥깊고 색다른 느낌의 설명에 감사드려요^^

  12. 김금순 2012.01.18 16:41 PERM. MOD/DEL REPLY

    내머리 사용설명서란 책을보며 데자뷰에 많은공감이느껴져서‥깊고 색다른 느낌의 설명에 감사드려요^^

  13. bongta 2012.01.18 21:52 PERM. MOD/DEL REPLY

    나이가 들어가면서는 데자뷰가 많이 늘어나지요.
    이게 매뉴얼처럼 혹간 살아가는데 길잡이가 되어 도움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삶이란 남이 제시한 매뉴얼에 의해 수동적으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기실은 내가 걸어간 자취가 남에게 참고는 될 수 있습니다.

    선후가 뒤집히면 곤란하다는 생각을 해보는 것입니다.
    남의 매뉴얼 따라 내 삶을 꾸려나간다면 그것을 내 삶이라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내가 비록 노래를 못 불러도 남이 내 대신 내 노래를 불러줄 수는 없지요.
    나는 내 목청으로 내 노래를 불러야 하지 않겠는지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내머리 사용설명서", "인생 사용설명서" 따위의 책 제목이 한참 못 마땅하군요.

    감히 인생을, 머리를,
    사용설명서란 이름이 암시하듯,
    테크닉으로 저울질 하는 것 자체가 천박하게 느껴지는군요.
    제가 여기에서 얼마전 명심보감을 조금 비판적으로 다루었습니다만,
    보감만 하여도 참아줄 수 있지만, 사용설명서란 말은 독자를 아주 우롱하는 화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책들을 읽지는 않았지만 읽지 않아도 뻔히 내용을 짐작할 수 있겠습니다.
    단편적인 경귀들을 나열하며 독자들을 은근히 협박하거나 놀리며,
    그럴싸하니 점잔을 뺄 것이 틀림없습니다.

    이런 테크닉에 빠지면 삶이 파편화되고, 제 주체성을 잃게 됩니다.
    어렵더라도 스스로의 주인이 되는 태도를 갖추는 것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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