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gta      

민들레

소요유 : 2010. 5. 6. 23:27


지난 일요일부터 밭 앞 있는 집에서 사육하던 강아지 하나가 보이질 않는다.
다섯 마리 중 나를 가장 반겨 맞던 그가 사라졌다.
저 멀리 내 차를 용케도 알아보고 꼬리를 흔들며 열렬히 마중하곤 했다.
내심 저 녀석만이라도 어찌 구해볼 도리가 여름 전에 생기길 꿈꿨는데,
이게 어차피 무망한 노릇이긴 해도 그리 함께 명운을 아파했었다.

그 역시 떠날 때는 말없이 사라져버렸다.
(※ 참고 글 : ☞ 2009/07/13 - [소요유] - 개망초(自註))

나는 들꽃을 한줌 꺾어 그가 떠난 개집 앞에 놓아두었다.
묻지 않아도 필시 이미 죽고 말았을 그에게 이 따위가 위로가 될 수는 없겠지만,
차라리 이는 나의 무력(無力)에 대한 미안함을 들어내었다 함이 옳으리라.

밭에 비닐을 거두면서 미쳐 동면에서 깨어나지 않은 개구리들을 발견하곤,
차후 밭갈이를 하여도 안전할 곳으로 옮겨 주곤 했다.
그러나 며칠 전 삼지창으로 일하다 개구리 하나를 다치게 했다.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도대체 어찌하여 생명은 다른 생명을 앗아야 명을 부지할 수 있음인가?

싯닷타의 사문출유(四門出遊) 이야기를 보면,
새가 벌레를 먹는 것을 보며 결국 출가를 결심하게 된다.
그가 깨달음을 얻었다고 하지만,
또 다른 사문유관(四門遊觀)의 중 하나인 죽음을 극복하진 못하였다.
그가 과연 깨우친 것이 맞는가?

태자인 싯닷타가 출가하려하자 부왕은 이를 말렸다.
하지만 싯닷타는 늙지 않고, 병들지 않고, 죽지 않고, 이별이 없는 것을 보장해준다면,
출가를 단념하겠다고 말한다.
또는 다음 세상에 다시 생을 받아 태어나는 일만 없게 해주기만 해도 출가를 단념하겠다고 한다.

그런데, 과연 석가가 출가하여 늙지 않고, 죽지 않고 병들지 않았던가?
그도 늙었고, 병들고, 죽어갔다.
다만 다음 생을 받지 않았는지는 그 누구도 모를 뿐인 것을.

나는 감히 해탈을 꿈꾸지 않는다.
다만 약한 이와 함께 아파할 뿐이다.
석가보다 차라리 유마(維摩)가 훨씬 인간적이지 않는가?
중생이 아프기에 함께 아파한 유마.
생노병사를 여의지도 못하면서 각자(覺者)라는 칭호를 받는 석가보다,
유마의 불이법(不二法)이야말로 해탈의 진면목이 아닐까?

사정이 이러한데,
나는 이 좁아터진 시골에 들어온 지 얼마도 되지 않아,
사기꾼, 욕심쟁이, 무지렁이를 만난다.
석가는 사문에서 노병사(老病死)를 보았지만,
나는 이곳 시골에서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을 대한다.
좋은 공부 터자리인 셈이다.

내가 근 2주간에 걸쳐 비닐제거 작업을 벌이고 있자니,
이런 졸장부들로부터의 시달림을 마음에 두고 있음이 다 부질없다는 생각이 든다.
이웃 중 한분은 나를 지켜보았는가 보다.
어제 그가 밭으로 올라오더니 한 말씀 하신다.

“대단해, 정말 대단하이.”

일부 농부들이 무농약, 친환경 운운하며 광고를 하지만,
씻지도 않고 먹을 과일을 과연 선전에 걸맞게 재배하고 있는가?
모두 다 그런 것은 물론 아니겠지만,
이곳에서 내가 목격한 바로는 이게 그리 믿을 만하지 않았다.

불신의 세태, 불안한 세상이다.
청정지역 민통선 운운의 선전도 그곳에서 농사를 짓는다는 사람을 만나고는,
과연 그렇겠구나 하는 막연한 환상을 깨버렸다.
그는 비닐을 밭에서 그냥 태워버리고 독한 농약을 거침없이 사용한다.

또한 홈페이지에 무농약/친환경이란 선전 문구를 걸어두고는,
실제는 농약을 거침없이 치고 심지어는 제초제도 치는 사람들을 나는 알고 있다.
이것을 소비자는 사서 선전을 믿고는 씻지도 않고 먹는다.
건강을 도모하려다 오히려 돈 주고 독을 먹는 격이다.
이쯤이면 이것은 거악(巨惡)이다.

나는 선전이 아니라, 실천궁행(實踐躬行)으로 그를 대신하고자 한다.
그 첫출발을 땅을 깨끗이 하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감히 단언하거니와 가근방에 나처럼 땅을 정(淨)히 대하는 사람은 없으리라.
이웃에 빌려주었던 아래 쪽 일부 밭은 관행농법에 의해 비료, 농약 따위에 노출되었기에,
나는 이곳엔 향후 최소 3년 이상은 과수를 심지 않고 풀만 자라게 할 예정이다.
이리 정화한 후 서서히 과수를 심을 요량이다.

그만은 내 말의 믿음을 증언할 수 있으련만,
그는 지금 사라지고 없다.
그 강아지가 말없이 떠난 자리.
유독 바로 그 앞에만 민들레가 노랗게 피어났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노란 꽃이 상장(喪章)이 되어 그를 조상하고 있음이다.
노란 민들레꽃보다 더 여리고 가여운 그 강아지,
지금쯤 바르도(bardo) 길을 아장아장 걷고 있으리.

‘안녕, 잘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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