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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보봉(千步峯)

소요유 : 2010. 3. 31. 23:07


요즘엔 빈 땅이 없다.
무엇인가 맨땅이 보이면 콘크리트를 처바르든, 아스콘을 씌워서는 포장(鋪裝)을 하고 만다.
집안도 마찬가지인 것이 아파트는 더 말할 것도 없지만,
정원을 갖춘 커다란 저택이 아닌 한 한 뼘 마당도 시멘트로 봉해버리고 말기에,
도대체가 흙냄새를 맡을 수 없다.
그러하기에 어지간한 도시에선 흙땅을 밟아보기 매우 어렵다.

예전엔 도시라하여도 집 안 마당은 맨 흙땅으로 놔두는 것이 예사였다.
부엌에서 마당으로 또는 대청마루에서 마당으로 나아갈 때,
거긴 흙땅이기에 디디는 발걸음에 부드러운 완충(緩衝)적인 효과가 있었다.
그런데 가령 부엌에서 마당가로 또는 마당에서 부엌으로 드나들 때,
문지방을 경계로 첫 발이 내딛게 되는 직하처(直下處)는 봉긋하게 솟아있게 마련이다.

신발 밑에 묻은 흙이 그곳에 떨어져 조금씩 붙어나며 쌓여지기 때문이다.
오래되면 다니기가 불편할 정도로 높게 고봉을 이루게 된다.
그리되면 부삽 등으로 까내곤 한다.
하지만 식구가 많다든가,
외부 손님이 많이 드나드는 집구석이면,
오래지 않아 다시 천보봉이 높게 솟았다.
흔히 이 천보봉이 높은 집터는 기운이 왕성하다고 여긴다.

오늘 나는 천개의 천보봉을 다스렸다.
새로 지은 비닐하우스 땅이 고르지 않아 쇠스랑, 입식 호미 따위로 다듬었다.
조성한지 며칠도 되지 않았지만 곳곳에 봉긋하니 천보봉이 솟아올라 있다.
과연 누가 천보봉을 만든 것인가?

천보는커녕 일보도 딛지 않은 곳도 많지만 그새 제법 딱딱하니 굳어 있다.
내가 이들을 일일이 깎아내며 씩씩거리자니 기심(機心)이 솟구치며,
잔뜩 기계를 구입하고 싶은 유혹에 든다.
(※ 참고 글 : ☞ 2010/03/07 - [소요유] - 기심(機心)과 중기(重機))

오늘 아침 한쪽에 치워둔 차광막을 들추니 무엇인가 풀썩거린다.
잠시 머뭇거리는 사이 그 안에 숨어 있던 고양이가 쏜 활처럼 날아올라 냅다 달아난다.

천보봉을 만든 것이 저 들고양이들이었을까?
알 수 없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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