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gta      

달걀 까는 중늙은이

소요유 : 2010. 8. 30. 19:08


농원 근처 이웃집에 묶인 개들 중에 하나가 나를 보면 반가와 날뛰는 데,
그럴 때마다 그의 목에서 거의 쇳소리가 난다.
마치 감기에 걸린 듯 바람이 좁은 틈을 지날 때 나는 소리가 난다.

며칠 전,
달걀 삶은 것을 주다가 그 집 안주인을 만났다.

“저 강아지 목에서 쇳소리가 나요.
짐작하건대 아마도 목줄이 작아져 눌려서 그러는 것 같습니다.
한 구멍 늘려 주었으면 합니다.
내, 예전에 보니 개들에게 목줄을 어렸을 때 매어주고는,
그냥 내버려두는 경우가 많더군요.”

“우리는 안 그래요.”

“네, 그러겠지요.
꼭 부탁드립니다.”

내가 앞서 먼저 손가락을 넣어보니 거의 빈 틈이 없다.
그런데 얼핏 보니 폭이 큰 것이 마치 방앗간 피대(皮帶)줄을 잘라서 만든 것 같았다.
게다가 끝이 가는 비닐 타이로 묶여져 있어 그냥 풀기도 어려워 보였다.
해서 이것저것 장비가 많은 그 집 주인이면 잘 할 것이라 여겨 부탁을 했다.
하지만 실인즉 이런 것을 시키는 숨은 뜻은,
그리 직접 해보아야 다음을 또한 기약할 수 있기 때문에,
우정 그리 가르치는 것이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도 손을 댄 흔적이 없다.
나는 내가 직접 해주기로 마음을 먹는다.
목줄이 워낙 두꺼우니 송곳이나 펀칭기구를 준비해야 했다.
서울 집에는 이런 것들이 있으나 여기 농원엔 미처 없다.
나는 다른 것을 사는 김에 함께 인터넷에 주문을 할까 하다가,
한시라도 빨리 해주려고 시내로 나가는 길에 철물점에서 사왔다.

타이, 송곳, 버너(송곳을 달궈 구멍을 내려고) 등속을 들고 녀석에게로 갔다.
강아지들이 먹이를 주는 줄 알고 난리다.
문제의 녀석을 잡고는 털에 가린 목줄을 가까스로 풀어보니,
다행이 구멍이 여럿 뚫려 있다.
사제가 아니라 파는 물건이었는데 그동안 목털에 파묻혀 잘못 알았던 것이다.
한 금을 늘려주고 채어주었는데도 별 티가 나지 않는다.
그 동안 어지간히 밭이 조여져 있었던 것이리라.

내가 소싯적에 회사 다닐 때,
넥타이를 제일 싫어했다.
서양 복식 중에서 제일 나쁜 것은 넥타이가 아닐까 싶다.
멀쩡한 목을 왜 조여 매는가 말이다.
과시 점잖지 못한 미련한 짓이다.
아침마다 넥타이를 맬 때마다,
아, 넥타이 매지 않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고 나는 외쳤다.
그러던 것인데 다행히 나는 일찍 넥타이로부터 해방되긴 했다.

목을 통해 날숨, 들숨,
그래 바로 이 생명의 기운인 숨이 드나들지 않던가?
사람이라면 단 일각이라도 이게 조여진 채로 견디어 낼 수 있겠는가?
그래 그럼 동물이라고 별다른 차이가 있겠는가?

사람들아,
그대가 즐거움과 환희 앞에 놓여 있을 때,
뒤로 물러나와 홀로,
그대 목을 가만히 쓰다듬어보라.

서늘한가?
거기, 가을바람이 쏴 하니 지나가는가?

오싹,
거기, 퍼렇게 벼린 예도(銳刀) 하나가 싹 하니 지나는가?

싸늘하니,
목덜미에 바람 기운이 지날 때면,
목줄, 올가미로 조여진 채 종평생(終平生) 신음하는 이웃 친구들을 생각하라.

시린 바람,
요즘 새벽녘엔 여긴 바람이 차다.

녀석들이, 빈손으로 내가 왔다가니까 실망이 큰 모양이다.
출타하는 김에 달걀 한 판을 샀다.
그런데 평소보다 한참이나 싸다.
점원에게 물어보니 오늘 개업기념 세일중이란다.
그런가 하면서 나는 한 판을 더 샀다.

내가 개업기념일엔 바가지를 주던데 하고 말하니,
점원이 바가지 대신 커다란 세숫대야만한 플라스틱 함지를 주겠단다.
어제 송곳 사면서 바가지도 하나 샀었기에,
별 생각 없이 한마디 던졌던 것인데,
뜻밖에 횡재를 했다.

농원에 돌아와서 나는 달걀 60개를 다 삶아버렸다.
혹시 체할까봐 조금씩 여러 번 나누어서 주어왔는데,
오늘은 기분이니 한 개씩 더 보급해주련다.
마치 지리산 빨찌산의 보급투쟁처럼,
나는 배급, 배당이란 말보다 보급이란 말을 써본다.
저들은 지금 허기진 유격대,
그러나 안타깝게도 총, 칼 하나 없이,
목이 쇠사슬에 묶인 가여운 빨치산들인 것임을.

나 또한 가관이다.
삶은 달걀 60개를 방금 얻어온 플라스틱 함지에 넣고 껍질을 벗기고 앉았으니,
이건 뭐 황순원의 독 짓는 늙은이도 아니고,
딱 걸신들린 중늙은이 행색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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