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우젓 도사
제가 사는 서울 동네 주변엔 사찰이 물 묻은 손에 깨알 붙듯 사뭇 많습니다.
어느 날 동네 구멍가게에 들렸더니,
거기 손님으로 드나드는 스님 네들 이야기를 주인아주머니가 들려줍니다.
“스님들이 새우젓도 사가고 멸치도 사가곤 해.
청정 스님 한 분이 있긴 한 데 드문 경우지.”
그러다 제가 인연 따라 어느 스님에게 컴퓨터를 가르쳐 주기 위해,
서울 명산에 위치한 한 사찰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중 되는 수업을 받고 입도한지 얼마 되지 않는 풋중인 데,
이제 본격적으로 공부를 하자니 컴퓨터와 인터넷을 다뤄야 하기에,
이런 생심을 낸 것입니다.
요사채를 빗겨 저쪽 한 구석에 해우소가 있는데,
이 젊은 스님은 이를 내치고는 그 옆 풀밭에 그냥 대차게 내깔기더군요.
“역시나 젊은 것은 좋은 것이야.”
저는 감탄을 했습니다.
저 역시 그를 따라 한 데에다 소피를 보려다가,
그래도 저 아랫동네에서는 제법 점잔빼는 위인인데,
항차 여기 산중 청정 도량에 들어와서 함부로 몸을 허물 수는 없다.
이리 생각하고는 화장실 안에 들어가서 일을 치렀습니다.
그리 하고 나오는데,
그 스님이 내깔긴 곳에 멸치가 수북하니 버려져 있는 것을 얼핏 보게 되었습니다.
필경 국물 우려내고 내버린 것일 것입니다.
순간, 저는 저 스님이 마냥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아,
도가 높아 저리 무애행(無涯行)을 하고 있음이고나!
나는 내심 이제부터 저이를 풋중이라 부르기로 작정했습니다.
별로 내키지도 않는 마음을 추슬러 그를 바삐 대하고는 하산하기로 했습니다.
그의 컴퓨터 모니터엔 월페이퍼로 멋진 만다라가 그려져 있었습니다.
내가 그에게 지그시 만다라에 대하여 일장 연설을 하고는,
인터넷이야말로 인드라망이자 그 현현이 만다라에 다름 아니다.
이제 그 길로 안내하고자 하니 서둘러 나를 따라 나서거라 이리 주문하였지요.
( ※ 참고 글 : ☞ 2008/12/12 - [소요유/묵은 글] - 아름품과 꽃바다(華嚴) )
그렇습니다.
마조가 좌복 일곱에 구멍이 나도록 참선을 하였지만 아무런 소식 한 자락 얻지 못하였지요.
스승 남악회양은 곁에서 벽돌을 갑니다.
마조가 놀라 무엇 하시냐고 여쭈니 남악은 색경을 만들려고 한다고 태연히 대답합니다.
순간 마조가 깨우침을 얻었다고 하지요.
계율 중에 불살생이 으뜸 계율인데,
절간에 멸치가 그득합니다.
언젠가 오대산 월정사에 가니 고양이에게 멸치를 잔뜩 주었더군요.
옛 속담에 눈치가 빠르면 절에 가서도 새우젓을 얻어먹는다고 했습니다.
제가 보기엔 월정사에서 제일 먼저 득도할 중생은,
하루에도 수많이 오고가는 선남선녀도 아니오,
좌복 헐고 앉아 하루 종일 폼 잡고 있는 스님 네도 아니고,
눈치 빠르게 멸치를 떡하니 앉은 채 받아먹는 저 고양이가 아닌가 싶더군요.
온 천하를 말발굽으로 밟아 죽이리란 예언을 받았던 마조.
“出一馬駒 踏殺天下人”
그 마조도 좌복에 앉아 마치 몽당 빗자루를 상대로 밤새도록 씨름하며 도깨비 놀음을 하듯,
젊은 청춘을 불사릅니다.
하지만,
이젠 (일부) 절간에 새우젓도 들이고 멸치도 예사로 들입니다.
마조가 과연 천하를 말발굽으로 모두 밟아 죽였는지는 몰라도,
지금 여기 우리네 예토(穢土)엔 수많은 새우젓 도사들이 진작에,
산중은 물론 여항(閭巷)의 고샅까지 들어와 온 천하를 짓밟고 있습니다.
저들은 구차하게 좌복을 구멍 낼 것도 없이 전격,
이 땅을 꽃비 아니 멸치 국물비 쏟아지는 불국토(佛國土)로 장엄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지금 무슨 말씀을 드리고 있는 것입니까?
말씀 하신 “깊은 진리”에 생각이 미쳤기 때문입니다.
“향엄은 무심이 던진 기왓장이 대나무에 부딪치는 소리를 듣고 깨우치고,
동산은 다리를 건너다 물위에 비친 자신의 그림자 보고 깨쳤으며,
의현은 옆방 사람의 중얼거림에 깨우쳤으며,
백장은 코를 잡아 비틀려 깨우쳤으며,
원효는 해골바가지에 든 물을 먹고 깨우쳤습니다.”
이들이 깨우쳤다는 것이 과연 깊은 진리였겠습니까?
기왓장, 그림자, 해골 ...
이 따위 것에 짐짓 놀라 깨우치는 그까짓 것이 과연 법(法,진리)이라면,
이게 그리 깊은 것이겠느냐 하는 것이지요.
아아,
사람들아,
저들이 깨우쳤다는 그 경지를 아지 못한다 할지라도,
하지만 분명한 것은 새우젓 처먹고, 멸치 우린 국물을 예사로 먹는 한,
절대로 저들이 한 소식 얻었다는 그 경지엔 한 발자국도 들이지 못할 것이리니.
진리란 깊은 것도, 먼 것도, 얕은 것도, 가까운 곳에 있는 것도 아니지요.
‘깊은’으로 수사(修辭)된 ‘진리’란 이미 진리가 아닙니다.
다만 새우젓이 짭짤하니 맛있고,
멸치 국물이 고소하니 달기에,
지례 짐작으로 진리란 깊은 것이야 이리 겁을 먹는 것이 아니겠는지요?
저 풋중의 정체를 나중에 알았습니다.
거기 이웃 사찰이 하나 있는데 여승이 주지로 있더군요.
그 여승은 도가 높다고 삼이웃에 알려져 있습니다.
제가 직접 뵈었는데 과연 그러해서 그런지 피부가 거의 투명하더군요.
면상(面相) 역시 가을 도토리 한참 갈아놓은 물처럼 차분히 가라앉아 정갈하시더이다.
한참 법거량 후 나중에 그 분이 제게 여기 신도가 돼 주기를 청하더군요.
저는 저 분의 높은 법을 허물까 저어되어,
저는 무도무법무교(無道無法無敎)한 중생이라며 그저 사양하고 말았습니다.
멀쩡한 스님 네를 파계시키면 3 아승지겁 지옥불에 빠진다고 하지 않습니까?
행여라도 연분이라도 나면 수미산 보다 더 큰 죄를 얻겠거니 싶더군요.
하하 농담입니다.
그만큼 도법이 크시고 세속 말로 매력적인 분이셨다는 말입니다.
그 분하고 법 수작(法酬酌)을 나누는 가운데 저 풋중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그 내력을 짚어보자니,
과연,
소피도 대차게 쏴주시고,
멸치도 엄청 먹어대시고도 남겠구나 하였는데,
저로서는 이 또한 인연이라,
하산하면서 속으로 이리 축원하였지요.
“성불하십시오.”
“성불하십시오.”
“성불하십시오.”
“손 곧춤”
그런데 말입니다.
成佛需三大阿僧祇劫
성불하려면 3대 아승지겁이 필요하다고 하지요.
하지만 묘법연화경엔
一稱南無佛,即已成佛道라고 하였지요.
부처님 한 번 명호를 외면 이내 부처가 된다고 말입니다.
자자,
이러하니,
과연 진리가 말씀대로 깊은 것입니까? 얕은 것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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