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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우젓 도사

소요유 : 2010. 9. 10. 15:10


제가 사는 서울 동네 주변엔 사찰이 물 묻은 손에 깨알 붙듯 사뭇 많습니다.
어느 날 동네 구멍가게에 들렸더니,
거기 손님으로 드나드는 스님 네들 이야기를 주인아주머니가 들려줍니다.

“스님들이 새우젓도 사가고 멸치도 사가곤 해.
청정 스님 한 분이 있긴 한 데 드문 경우지.”

그러다 제가 인연 따라 어느 스님에게 컴퓨터를 가르쳐 주기 위해,
서울 명산에 위치한 한 사찰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중 되는 수업을 받고 입도한지 얼마 되지 않는 풋중인 데,
이제 본격적으로 공부를 하자니 컴퓨터와 인터넷을 다뤄야 하기에,
이런 생심을 낸 것입니다.

요사채를 빗겨 저쪽 한 구석에 해우소가 있는데,
이 젊은 스님은 이를 내치고는 그 옆 풀밭에 그냥 대차게 내깔기더군요.

“역시나 젊은 것은 좋은 것이야.”

저는 감탄을 했습니다.

저 역시 그를 따라 한 데에다 소피를 보려다가,
그래도 저 아랫동네에서는 제법 점잔빼는 위인인데,
항차 여기 산중 청정 도량에 들어와서 함부로 몸을 허물 수는 없다.
이리 생각하고는 화장실 안에 들어가서 일을 치렀습니다.

그리 하고 나오는데,
그 스님이 내깔긴 곳에 멸치가 수북하니 버려져 있는 것을 얼핏 보게 되었습니다.
필경 국물 우려내고 내버린 것일 것입니다.

순간, 저는 저 스님이 마냥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아,
도가 높아 저리 무애행(無涯行)을 하고 있음이고나!

나는 내심 이제부터 저이를 풋중이라 부르기로 작정했습니다.
별로 내키지도 않는 마음을 추슬러 그를 바삐 대하고는 하산하기로 했습니다.

그의 컴퓨터 모니터엔 월페이퍼로 멋진 만다라가 그려져 있었습니다.
내가 그에게 지그시 만다라에 대하여 일장 연설을 하고는,
인터넷이야말로 인드라망이자 그 현현이 만다라에 다름 아니다.
이제 그 길로 안내하고자 하니 서둘러 나를 따라 나서거라 이리 주문하였지요.
( ※ 참고 글 : ☞ 2008/12/12 - [소요유/묵은 글] - 아름품과 꽃바다(華嚴) )

그렇습니다.
마조가 좌복 일곱에 구멍이 나도록 참선을 하였지만 아무런 소식 한 자락 얻지 못하였지요.
스승 남악회양은 곁에서 벽돌을 갑니다.
마조가 놀라 무엇 하시냐고 여쭈니 남악은 색경을 만들려고 한다고 태연히 대답합니다.
순간 마조가 깨우침을 얻었다고 하지요.

계율 중에 불살생이 으뜸 계율인데,
절간에 멸치가 그득합니다.
언젠가 오대산 월정사에 가니 고양이에게 멸치를 잔뜩 주었더군요.
옛 속담에 눈치가 빠르면 절에 가서도 새우젓을 얻어먹는다고 했습니다.
제가 보기엔 월정사에서 제일 먼저 득도할 중생은,
하루에도 수많이 오고가는 선남선녀도 아니오,
좌복 헐고 앉아 하루 종일 폼 잡고 있는 스님 네도 아니고,
눈치 빠르게 멸치를 떡하니 앉은 채 받아먹는 저 고양이가 아닌가 싶더군요.

온 천하를 말발굽으로 밟아 죽이리란 예언을 받았던 마조.
“出一馬駒 踏殺天下人”
그 마조도 좌복에 앉아 마치 몽당 빗자루를 상대로 밤새도록 씨름하며 도깨비 놀음을 하듯,
젊은 청춘을 불사릅니다.

하지만,
이젠 (일부) 절간에 새우젓도 들이고 멸치도 예사로 들입니다.
마조가 과연 천하를 말발굽으로 모두 밟아 죽였는지는 몰라도,
지금 여기 우리네 예토(穢土)엔 수많은 새우젓 도사들이 진작에,
산중은 물론 여항(閭巷)의 고샅까지 들어와 온 천하를 짓밟고 있습니다.
저들은 구차하게 좌복을 구멍 낼 것도 없이 전격,
이 땅을 꽃비 아니 멸치 국물비 쏟아지는 불국토(佛國土)로 장엄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지금 무슨 말씀을 드리고 있는 것입니까?

말씀 하신 “깊은 진리”에 생각이 미쳤기 때문입니다.

“향엄은 무심이 던진 기왓장이 대나무에 부딪치는 소리를 듣고 깨우치고,
동산은 다리를 건너다 물위에 비친 자신의 그림자 보고 깨쳤으며,
의현은 옆방 사람의 중얼거림에 깨우쳤으며,
백장은 코를 잡아 비틀려 깨우쳤으며,
원효는 해골바가지에 든 물을 먹고 깨우쳤습니다.”

이들이 깨우쳤다는 것이 과연 깊은 진리였겠습니까?

기왓장, 그림자, 해골 ...
이 따위 것에 짐짓 놀라 깨우치는 그까짓 것이 과연 법(法,진리)이라면,
이게 그리 깊은 것이겠느냐 하는 것이지요.

아아,
사람들아,
저들이 깨우쳤다는 그 경지를 아지 못한다 할지라도,

하지만 분명한 것은 새우젓 처먹고, 멸치 우린 국물을 예사로 먹는 한,
절대로 저들이 한 소식 얻었다는 그 경지엔 한 발자국도 들이지 못할 것이리니.

진리란 깊은 것도, 먼 것도, 얕은 것도, 가까운 곳에 있는 것도 아니지요.
‘깊은’으로 수사(修辭)된 ‘진리’란 이미 진리가 아닙니다.
다만 새우젓이 짭짤하니 맛있고,
멸치 국물이 고소하니 달기에,
지례 짐작으로 진리란 깊은 것이야 이리 겁을 먹는 것이 아니겠는지요?

저 풋중의 정체를 나중에 알았습니다.
거기 이웃 사찰이 하나 있는데 여승이 주지로 있더군요.
그 여승은 도가 높다고 삼이웃에 알려져 있습니다.
제가 직접 뵈었는데 과연 그러해서 그런지 피부가 거의 투명하더군요.
면상(面相) 역시 가을 도토리 한참 갈아놓은 물처럼 차분히 가라앉아 정갈하시더이다.
한참 법거량 후 나중에 그 분이 제게 여기 신도가 돼 주기를 청하더군요.
저는 저 분의 높은 법을 허물까 저어되어,
저는 무도무법무교(無道無法無敎)한 중생이라며 그저 사양하고 말았습니다.
멀쩡한 스님 네를 파계시키면 3 아승지겁 지옥불에 빠진다고 하지 않습니까?
행여라도 연분이라도 나면 수미산 보다 더 큰 죄를 얻겠거니 싶더군요.
하하 농담입니다.
그만큼 도법이 크시고 세속 말로 매력적인 분이셨다는 말입니다.
그 분하고 법 수작(法酬酌)을 나누는 가운데 저 풋중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그 내력을 짚어보자니,
과연,
소피도 대차게 쏴주시고,
멸치도 엄청 먹어대시고도 남겠구나 하였는데,
저로서는 이 또한 인연이라,
하산하면서 속으로 이리 축원하였지요.

“성불하십시오.”
“성불하십시오.”
“성불하십시오.”

“손 곧춤”

그런데 말입니다.
成佛需三大阿僧祇劫
성불하려면 3대 아승지겁이 필요하다고 하지요.

하지만 묘법연화경엔
一稱南無佛,即已成佛道라고 하였지요.
부처님 한 번 명호를 외면 이내 부처가 된다고 말입니다.

자자,
이러하니,
과연 진리가 말씀대로 깊은 것입니까? 얕은 것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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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여해 2010.09.11 03:19 PERM. MOD/DEL REPLY

    오늘도 선생님의 좋은 말씀의 글귀를 읽습니다

    흙 냄새가 솔솔 풍기는 하우스안에서 저에게 들려주시던 말씀도 간간히 들어 있어 조금의 이해가 쉬웠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선생님의 글귀는 슆게 이해하기는 아직은 저에겐 어려습니다 ^^
    일러주신 봉도표 한장한장을 보고 있으면 얼마나 많은 열정을 여기에 담으셨는가를 먼저 일깨워줍니다 과연 저는 무엇을 하였는가 ....책몇권보고 칼보다 무서운 이 시장을 싸워 보겠다고 불나비 처럼 덤비고 있으니 참으로 저 자신이 한탄스럽습니다 저 나름은 책도 보고 분석도 해보고 하는데 그 실력은 깨 밭에 깨알처럼 작은것 같습니다
    죽음의 산이 계속해서 쌓여 간다면 이 시장은 계속해서 유지가 되겠죠 저 역시 그속에 의 일부분이 되고 또 다른 이가 저를 덥고....
    가슴아픈 현실속에서 저는 오늘도 책상앞에서 글귀를 보면서 한자한자 보고 또 보고 하고 있습니다 그깨달음을 얻기 까지는 계속 행해 지겠지요
    공부중 선생님의 많은 가르침 부탁드립니다

    선생님 가을 볓이 아직은 따갑습니다 건강 잘 챙기길 기원하겠습니다
    그럼 안녕히 계세요 꾸벅~

  2. 사용자 bongta 2010.09.11 20:01 신고 PERM. MOD/DEL REPLY

    흔한 말로 우보천리(牛步千里)라 합니다만,
    이게 사실 말은 그럴듯하지요.

    하지만 우보(牛步)는 곧잘 와행(蝸行)이 되곤 합니다.
    소도 느리지만 달팽이는 더욱 더 느리지요.

    게다가 호시우보(虎視牛步)라고 떡하니,
    호랑이처럼 날카롭게 살피면서 소걸음으로 나아가라고 이르지요.
    이 정도면 과히 기린아(麒麟兒) 수준이지요.
    현실에선 쥐걸음도 어려운데 그럴 듯한 것은 죄다 모아 꾸미고 있는 것입니다.
    이게 좋게 생각하면 격려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만,
    저는 공연히 겉멋 들린 자들의 허세라는 생각이 들곤합니다.

    저라면,
    다 필요 없고 너 자신의 길을 알아보라고 이르겠습니다.
    그리고 그 길을 가라.

    선생님,
    역시 제 길을 찾아 드시기를 바랍니다.
    남이 가는 길은 역시나 내 길이 아닌 것,
    사람은 저마다 제 길이 따로 있지 않겠습니까?

    사내대장부는 제 목청으로 제 노래를 부르는 것,
    彼丈夫也, 我丈夫也.
    그대가 장부면 나 또한 장부인 것.

    먼 훗날,
    어느 가을,
    월명산공(月明山空)
    막걸리 한잔 들이키며,
    삼삼 옛 적 기억에 젖을 때,
    오늘이 저 달처럼 떠오를 수만 있다면,
    이 또한 가연(佳緣)이라 한 터.

    선생님의 장도(壯途)를 축원드립니다.

  3. 은유시인 2010.09.17 23:17 PERM. MOD/DEL REPLY

    이번 추석 때 서울 가는 김에 선생님께 한 번 들를까 했으나
    서울행은 취소되었습니다.
    나중에 평일에 다녀올까 싶습니다.
    함께 가기로 한 형님이 사정이 생겨서요.

    "성불하십시오."

  4. 사용자 bongta 2010.09.18 15:23 신고 PERM. MOD/DEL REPLY

    편하신 시간 뵙겠습니다.

    "성불하십시오."

    이 말씀 들으니 생각 하나가 머릿속을 지납니다.
    해서 본글로 글 하나 올리겠습니다.
    제가 지금 외출 중이라 이따 오밤중이나 내일 올리겠습니다.

    "성불하십시오."

    이 말이 자칫 오해를 불러 일으키기도 한다는 이야기인데,
    선생님의 이 자리 말씀하고는 아무런 관련없는 독립된 글이니 그리 아시길.

  5. 여해 2010.09.24 23:24 PERM. MOD/DEL REPLY

    추석 명절은 잘 보내셨는지요?
    윗글을 보니 먼저 다녀 오신것 같은데 농장에서 혼자 지낸듯 하신데 ...^^
    그런데 혹 이번 비로 여기저기서 피해가 있던데 농장엔 별다른 피해는 없는지요
    별 탈 없었으면 합니다
    이런 비로 인해 앞 마당 물골이 더욱 깊게 파졌지나 않으신지.. 여전히 말썽이 생기지나 않은가 비가 올때 생각이 나곤 합니다 가까운 곳이라면 제가 보기 좋게 해드렸으면 좋았을텐데^^
    정리 되면 사진 한번 올려주세요


    제법 날씨가 아침 저녁이면 쌀쌀합니다 대구지역에서 이러하면 계신곳엔 더욱 날씨가 쌀쌀하지 않은가 합니다
    건강 조심하시고요 하시는 농장일 잘 되시길 기원하겟습니다 블루베리 멋지게 커가는 모습 간혹 사진 올려주세요 ^^
    선생님 그럼 안녕히 계세요
    꾸벅~


    **봉도표 공부 차근차근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 뜻을 헤아릴려니 아직까지는 제 실력으론 어렵습니다 한자 한자 더욱 열심히 해볼려고 노력 중입니다

  6. 사용자 bongta 2010.09.26 17:51 신고 PERM. MOD/DEL REPLY

    안녕하십니까?

    여기 물골은 일러 주신 대로 조치를 할 요량입니다만,
    아직은 급하지 않고 그냥 그리로 손이 미치면 그 때 가서 고치게 되겠네요.
    아무리 덮어도 물골은 제 자리를 벗어나지 않는다는 말씀,
    - 이게 아주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그리고 뗏장으로 해결하는 방법을 챙겨 들었으니,
    이를 중심으로 서서히 해결책을 도모하겠습니다.
    여긴 별반 피해가 없었으나 거기 대구 쪽은 어떨까 싶군요.

    제가 밭일을 하면서 절(節)자 하나를 화두 삼아 가만히 즐겼습니다.
    ‘추석 명절 ...’
    이리 주신 말씀을 고리로 하여 명절의 ‘절’에 눈길이 가더란 말입니다.
    이게 마디 절 아닙니까?
    죽절(竹節) 대나무의 마디와 같은 것,
    일반 나무도 실은 마디가 있습니다.
    가지가 나오는 부분, 옹이가 마디에 해당되지요.
    줄기가 죽 길게 뻗치면 그만일 터인데 마디가 꼭 있게 되지요.

    저는 이 마디가 시간의 기호라고 생각합니다.
    광대무변 막측(莫測)한 공간에 죽 한 금(마디)을 긋자 시간이 시작되는 것이지요.
    만약 나무에 마디가 없다면 아마도 그 나무는 시간을 초월하여 영원히 살거나,
    아니면 아예 세상에 나타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역으로 마디를 가진 것은 생명을 갖게 되지요.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시간이 시작되자 끝을 예비하게 되며,
    모든 생명은 죽음을 피할 수 없게 됩니다.
    그러한즉 마디는 시간이며 곧 생이자 죽음입니다.

    나중에 시간이 나면 자세히 의론을 펴보지요.
    다만 여기서는 봉도표와 관련해서 잠깐 말씀드리면,
    주가의 흐름을 봉도표가 잘게 토막을 쳐서 마디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입니다.
    주역은 삼라만상의 현상을 64토막(마디) 쳐서 궁구해보겠다는 것이고,
    문방구에서 사온 30cm 자는 세상을 30cm로 토막 쳐서 재단합니다.
    저는 공간을 토막 치는 순간 시간이 생겨났다고 생각해보는 것이지요.

    그런데 토막 치기 전 세상의 본질은 이 때 현실과 이별하게 됩니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세상이 주역의 64괘로 분절될 수 있는 것입니까?
    이는 오로지 복잡다기한 세상을 이리 나누어 잠정 요리해보겠다는 것일 뿐.
    전격 세상의 본원적 실상과 만나야 하지만 이게 불가능하니까,
    차선으로 괘를 만들고, 자를 만들고, 봉도표를 만든 것 아닙니까?

    주역도 대단하고 봉도표도 녹록치 않은 것이지만,
    저는 이게 다는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것들은 모두 생멸문(生滅門)을 여의지 못한 것,
    그래서 요전에 그 방법을 권해드린 것인데,
    저로서는 이게 ‘본원적’인 그곳 세상에 들어가는 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그외 세상을 호렸던 삼원정공의 시테크는 엉터리라는 것,
    크리스탈(오실레이터) 따위들이 마디와 관련되어 잠자리 떼처럼 의식 가운데를 날아다닙니다.
    이들은 나중 기회를 보아 정리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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