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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귀인(逢貴人)

소요유 : 2011.05.17 15:46


원래 시스템은 외부 자극이 있을 때라야 이에 상응하는 반응이 발현된다.
다시 말하면 외부 자극이 없다면 반응 역시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하니 반응이 없다면 시스템의 성격을 파악하거나 그 기능을 적절히 평가하기도 어렵다.
공학적 시스템이라면 유사한 다른 시스템이나,
이미 성질이 알려진 그 구성 element들을 기초로,
자극이 없는 상태 하에서도 계(界) 전체를 정량적으로 시뮬레이션할 수 있다.
하지만 시스템이 인문학적 내용을 대상으로 한다든가,
인간 자체라면 자극 부재 상태 하에서 반응 양식을 추정하는 것은 상당히 어렵고,
하였다 하더라도 불안정하거나 위험하다.

나는 이번에 이웃 할머니의 패륜적 행동을 당하자,
오피니언 리더 격인 이웃 사람 몇 몇을 우정 찾아 나섰다.
(※ 참고 글 :  ☞ 2011/05/12 - [농사] - 급수공덕(汲水功德) - (2))
이미 대책을 세우고 그들을 만났음이니,
무엇인가 사태의 반전을 기대하는 바 그리 크지 않았다.
다만 적실하니 저이의 패악질을 만 천하에 알리고 여론을 환기하고 싶은 것이 주목적이었다.
하지만 그 외 망외의 소득이 있었다.

즉 나의 이야기를 듣고 반응하는 사람들의 모습들을 나름대로 평가하는 것이었는데,
이 또한 나름 재미가 있었음이니 나는 처에게 이리 말했다.

“비상한 사태라야 비상한 반응이 나타난다.
일상에선 낯 펴고 다 허허 웃으며 의젓하니 살아가지만,
막상 위태스러운 상황, 급박한 사태에 이르르면 그 때라서야 진면목이 비로소 드러난다.”

그렇다.
나는 한 분 한 분 만나며,
은밀히 그들의 그릇 크기를 삼가 거량한다.
그 분들에게는 죄만스럽기 짝이 없는 노릇이나,
사태의 흐름이 자연 이리 되도록 흘러갔을 뿐,
작정하고 나서서 이를 기획하고 꾸민 것이 아닌즉 용서 바란다.

여기 연천군에 들어와 여러 사람을 만났지만,
대개는 무지하거나, 교활하고, 간사하기 일색이었다.
하지만 몇 분 고마운 사람을 만나뵈었다.

겨울에 얼음이 얼지 않았으면 않았지,
내가 그 분들에게 은혜를 입었음인즉 그를 쉽게 잊지는 않을 것이다.
그 중 한 분의 이야기가 여기 있다.

내가 할머니에게 우물을 빌렸음이나,
그이의 고약한 성정을 모르지 않는 바라,
내심 마음이 온전히 놓이지 않았다.
해서 밭 한쪽 편에 큰 웅덩이를 팠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제2의 우물을 준비하기 위함이었다.
웅덩이 판 자리는 예전에 한전에서 무단히 전봇대를 세울 때,
지하에 물이 제법 많이 흘렀던 것을 목격하였기에,
어림짐작으로 그 자리를 겨냥하여 굴삭기를 수배하여 팠다.

그런데 웅덩이 개구부가 사뭇 넓어 안전사고의 위험이 있었다.
위험 표지판을 세우고,
막대기를 박고 둘레를 빙돌아가며 비닐 끈을 쳤다.
그래도 개구부가 훤히 뚫렸음이니 위험이 완전히 가신 것은 아니다.

그러한데 근처를 지나던 이웃 분이 위험하시다며,
개구부를 가로 지를 나무 등속과 위를 덮을 판자를 우정 가져다 주셨다.
내가 송구하니 몸 둘 바를 모르며 치사(致謝)를 드리자,
그는 조금 허술하니, 더 갖다 쓰라며 트럭까지 내주시며 자재를 추가로 빌려주셨다.

각다귀들이 들끓는 이 동토(凍土)에도 이런 기인이사(奇人異士)가 숨어 계셨음이라,
나는 그날 신수가 트여 봉귀인(逢貴人)하였던 게라.
그날 이후 이 분의 고마움을 잊지 못하여,
이제껏 귀한 인연을 이어간다.

그 분을 만나 이번 일을 상의 드렸더니,
역시나 사태를 바로 적실하니 뚫어 풀어주시고,
염려해주시는 말씀을 전한다.

곁에 있다가 냄새나는 똥물을 뒤집어 쓸 이유가 없다.
하기에 대개는 그저 의례적인 몇 말을 던지고는 오불관언하기 십상이다.
이게 그르다고 할 바도 없다.
사람은 대개는 그리 자기 삶도 부지하기 어렵게들 살아가고 있음인 것.

하지만,
닭이 백이로되, 잘 살피면 그중 하나는 꿩이 숨어 있음이라,
꿩이 천이면 이 또한 기중 하나의 봉황이 날고 있음이라.

수덕(水德)을 못 배워,
이리 실덕(失德)한 주제에 어찌 남만을 탓하고 있으랴.
이 가운데 봉황을 만나 뵙고 있음이니 실로 화중복(禍中福)이 아니던가?

有翼亦難飛
有足亦難走

우리가 살면서,
날개가 있음에도 날기 어렵다든가,
다리가 있음에도 제대로 걷지 못하는 때에 봉착하곤 한다.

이 때,
불현듯,
귀인(貴人)이 나타나셔서 우리를 부축하고,
밝은 길을 일러주신다.

하기에,
사람의 길이란 바른 길을 추구해야 한다.
세상이 아무리 험하고 어렵더라도,
하늘은 뒤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계심이라.

天網恢恢 疎而不失(천망회회 소이불실)

하늘이 펼친 그물은 얼핏 성긴 것 같아도,
하나도 놓치는 바 없음이다.
 
내 상서(相書)를 펼쳐,
여기 비추어 그자의 모용(貌容)을 다시 점검해본다.

惡頑, 俗濁 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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