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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토(解土)머리

소요유 : 2013. 2. 28. 11:10


사나흘 전 산에 오르다.
과연 날이 풀리고 있음인가?
엊그제만 하여도 얼음, 눈으로 덮여 있던 땅이 실실 녹아 물이 흐르고 있다.

약숫물을 받아 내려오는데,
꼬부랑 할머니가 지팡이로 땅을 툭툭 파고계시다.
가만히 보니 길가로 물길을 내고 있는 양 싶다.
잠깐 멈추어 서서 쳐다보니 어린 아이 흙장난 하듯 재미롭게 보인다.

아,
몸은 저리 고목처럼 늙으셨으시되, 
땅이 풀리니 마음에도 윤기(潤氣)가 괴어 흐르는구나.
사람 늙은이는 고목보다 나아, 물기가 아직도 남아 있음이고뇨.

그러한데 50미터 쯤 더 내려오자,
이번엔 조금 젊은 아주머니가 길을 가로막고 엎드려 작대기로 물길 내는 작업(?)을 한다.
신이 나서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나대는데 얼굴엔 홍조까지 띄고 있다.
마주 오며 곁을 지나던 아낙 하나가 나를 보자 낯을 찡긋, 싱긋 미소를 짓는다.
나 역시 웃으며 화답해준다.

그런데 다시 50여 미터쯤 내려가자,
이번엔 한 남정네가 엎드려 또 물길을 내고 있는 게 아닌가 말이다.
나뭇가지 부러진 것을 들고는 다리 밑으로 고랑을 내며 물을 빼내고 있다.

아, 땅이 풀리고 있음이고뇨.
해토(解土)
원래 해토는 집을 짓고 낙성시 토지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을 뜻하나,
우리네는 언 땅이 풀리는 모습을 일컫건 한다.

토극수(土克水)
본디 토(土)는 수(水)를 극하는 것인데,
화(火)기운을 받으면 토(土)가 마음을 풀고 수(水)를 놔 풀어준다.

인간세도 마찬가지임이라,
해원(解冤)이라,
꽁꽁 맺혔던 원망을 풀어내버리는 것을 해원이라 한다.

원래 해원굿이란 망자(亡者)를 위해 산자들이 받치는 굿을 이른다.
그런데, 이미 백골이 진토(塵土)된 이들에게 풀 것이 어디에 남아 있으랴?
해원굿은 망자의 이름을 빌어, 실인즉 살아남은 자들의 원망과 슬픔을 위무(慰撫)함에 다름 아니다.

진혼(鎭魂)굿이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죽은 사람의 넋을 달래어 고이 쉬게 하려 함이 아니다.
실인즉 저런 구실을 앞세워 남은 사람들의 안녕을 구하려 함이 아니었을까?

그런 의미에서, 해원굿, 진혼굿은 모두 헛굿이다.
해토라고 어찌 아니 그러하랴?
어느 날 찬바람이 불기라도 하면 토극수 다시 동토(凍土)로 돌아가느니.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지”

이 속담이 왜 생겼겠는가?

굿이 다 끝나고 나면 무당이 구경꾼에게 떡을 죽 돌린다.
이를 계면떡이라고 한다.

굿은 산자들에겐 해원이, 진혼이 문제가 아닌 것이다.
절실한 것은 따로 있음이다.
신딸 작두날 타는 구경이 첫째고, 계면떡 먹을 일이 둘째인 게다.
산자들의 잔치임이 여실하지 않은가 말이다.

게다가, 정작 무당, 땡추들은 이 날 수지맞는 날이기도 하다.

하여, 예로부터,

“굿 들은 무당, 재 들은 중”

이런 속담이 면면 내려오고 있는 것이리라.

그러함인가?

며칠 새 부쩍 늘어, 집 앞 사찰에 재를 지내는 독경 소리가 낭랑하고,
좀 있으면 어둑 저녁 제물(祭物)을 이고 지고 오르는 무당 치맛자락에,
야기(夜氣)가 숲속으로 딸려 올라가 어느 가여운 혼백 하나를 지피어 올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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