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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변(哪邊)?

소요유 : 2013.03.07 16:10


법정의 책 무소유가 유지에 따라 절판이 되려 하자,
사람들이 이를 구하려고 법석을 떤 적이 있었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실상사 도법은 법정의 무소유를 비판하였다.

우리 집엔 무소유가 두 권이 있다.
처가 가지고 온 것 하나, 그리고 내게 있던 하나.
법정이 돌아가시자 나는 무소유를 다시 꺼내 읽었다.
갑자기 두 겹으로 울 두른 부자가 된 느낌이었으나 나는 불경스럽게도
이 책을 뒷간에서 다 읽어내었고나.
그 인연 따라 요즘에 일기일회(一期一會)란 그의 책을 읽고 있었다.
아직 다 읽지는 못하고 조금 남겨두었는데 아마도 내년이나 되어야 마칠 수 있겠다.
서울 집에 놔두고 어제부로 시골로 내려와 있으니 말이다.

도법과 법정은 가는 길이 달랐던 것이다.

세상은 온갖 추하고 더러운 것으로 일용할 양식의 본을 삼는다.
연꽃이 더러운 진흙에서 꽃을 피우듯,
오탁악세(五濁惡世)의 예토(穢土)를 살아가면서,
어찌 진흙을 외면할 수 있으랴?
아니 진흙의 더러움이 있기에 곧 연꽃을 피울 수 있는 것.
연꽃을 못 속 진흙에서 떠서 지상의 고운 흙에다 심으면 이내 죽고 만다.
도법은 한 때 선에 일로매진하여 단박에 부처가 되길 꿈꾸었다.
하지만 이 길을 마다하고 뛰쳐나와 온 몸을 더러운 진흙 밭에 부렸다.
(※ 참고 글 : ☞ 2008/09/30 - [소요유] - 낮도깨비)

하지만, 이 분도 최근 자승을 대하는 태도를 보니 상당히 의심스러운 부분이 많다.
오늘은 다른 이야기에 집중하여야 하니 이는 잠시 접어 두기로 한다. 

법정은 무소유란 책을 남겼지만 사실 그처럼 부자도 없다.
애써 부를 일구려 노력한 바도 없으시면서 ‘무소유’ 인세만으로도 거만금을 거둬들였다.
물론 그 인세는 장학 자금 등으로 사회에 모두 환원 되었지만 말이다.
그 뿐인가?
기백억 대원각 요정도 온전히 접수하여 지금은 길상사로 변신하였다.
따지자면 법정처럼 부승(富僧)도 없다.
그는 지금 한 올 연기가 되어 하늘가로 사라져버리고 없지만,
그가 주창한 무소유 그 본뜻은 여하간에,
그의 주위에 세간의 영화와 부를 불러들이지 않았던가?
이게 그가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그리 된 셈이다.

그런데 말이다.
만약 일개 필부가 하나 있어 ,
법정의 뜻을 본받아 그리 무소유를 주창하고 살았다면,
과연 그처럼 부를 일굴 수 있었으랴?
아마 지금쯤 삼시 세끼 밥을 고이 먹기도 힘들지 않았으랴?

맹자는 왕과 맞대면 하고 꾸짖으며, 천하를 거칠 것 없는 대장부로 살았다.
벼슬자리도 마다하고 마음껏 제 할 말을 다하고 살았음이다.
(※ 참고 글 : ☞ 2009/05/21 - [소요유] - 농단과 시장)
하지만, 그는 제법 그럴 듯하니 살림살이가 차고 넘쳤다.

만약, 여기 장삼이사 하나가 있어,
맹자처럼 호기롭게 세상을 거칠 것 없이 살았다면,
지금쯤 아마도 어느 누군가에게  맞아 죽어,
개골창에 해골을 누이며 썩어가고 있을 것이다.

장자가 복수가에서 낚시질을 하고 있었는데, 초왕이 대부 두 사람을 먼저 보내 이리 말한다.

“바라건대 나라 일을 보아주십시오”
장자는 낚싯대를 잡은 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말한다.
“내 듣건대 초나라에 신령스런 거북이 있어 죽은 지 이미 삼천년이라,
비단 상자에 넣어 묘당에 모셨다 하더이다.
이 거북은 차라리 죽음으로써 뼈다귀가 귀히 되길 바라겠소?
차라리 살아서 진흙탕에서 꼬리를 끄는 게 낫겠소?”
두 대부가 말한다.
“차라리 살아 진흙탕물에서 꼬리를 끄는 편이 낫지요.”
장자가 말한다.
“돌아가시오.
나는 장차 진흙에서 꼬리를 끌겠소이다.”

莊子釣於濮水,楚王使大夫二人往先焉,曰:「願以境內累矣!」莊子持竿不顧,曰:「吾聞楚有神龜,死已三千歲矣,王巾笥而藏之廟堂之上。此龜者,寧其死為留骨而貴乎,寧其生而曳尾於塗中乎?」二大夫曰:「寧生而曳尾塗中。」莊子曰:「往矣!吾將曳尾於塗中。」

장자는 법정이나 맹자 또는 도법과는 또 다른 경지를 노래하고 있다.

법정이나 맹자류는 세상에 벗어나 세상을 한껏 나무라고 경계하고 있음으로써,
그의 맑은 뜻을 지키며 애오라지 법답고, 실다운 삶을 살아간다.
도법은 그 진흙탕물에 들어가 함께 뒹굴고 아파하며 고락을 함께 한다.
하지만, 장자는 세상일에 관심이 없어 보인다.
아, 무위자연 여유롭게 소요유하고 있는 장자라니.
얼핏 이 장면에 이르면 양주(楊朱)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옛사람은 천하를 이롭게 할 수 있을지라도,
내 터럭 하나인들 덜어내 주지 않는다.
(또한) 온 천하를 맡긴다 하여도 취하지 않는다.
사람 하나하나가 제 털 하나를 덜어내지 않고,
천하를 이롭게 하려 하지 않는다면,
천하는 (절로) 다스려 진다.

古之人,損一毫利天下,不與也,悉天下奉一身,不取也。人人不損一毫,人人不利天下,天下治矣。

세상 사람들 중엔 가끔 맑고 향기로운 듯 세상을 걱정하지만,
양주는 외려 자신에 철저함으로써 세상을 화평하게 한다.

양주를 무단히 이기주의란 혐의를 덮어씌우기엔 온당하지 않은 구석이 보이지 않는가?
그러하기에 양주는 도가(道家)로 보아주어야 한다는 주장이 많다.
(※ 참고 글 : ☞ 2008/02/11 - [소요유/묵은 글] - 슬픔은 아름다운가 ?)

왜 아니 양주만 생각하고 말리,
저 장자의 말씀 앞에 서면 의당 허유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세이어영수지빈(洗耳於潁水之濱)의 고사에 등장하는 허유 말이다.
요(堯)가 천자의 위(位)를 은자(隱者)인 허유(許由)에게 물려주겠다고 하자,
허유는 귀를 더럽혔다고 영수(潁水)가에서 귀를 씻었다. 
이 때 소부(巢父)가 소를 앞세우고 지나고 있었는데,
그는 허유가 귀를 씻은 더러운 물로 소에게 물을 먹일 수 없다며,
강물 상류로 소를 끌고 올라가 물을 먹였다.
(※ 참고 글 : ☞ 2009/05/02 - [소요유] - 退已)

이제 여기에 이르러서는 마지막으로 유마를 등장시켜야 한다.
애초, 도법은 불도를 닦는 이이니 당연 유마를 그려 사모하지 않았으리오?

난, 도법에 귀의한다.
南無道法.
 
유마는 어떠한 분인가?
 
유마가 아프자 부처는 아난을 불러 그를 문병하도록 분부한다.
그러자 아난은 예전의 일을 상기하며 극구 사양한다.

예전에 부처가 아프실 때,
잡숫고 기운을 차리시라 아난은 우유를 얻으려 탁발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유마가 그 광경을  보고 아난에게 이리 타이른다.
“부처는 금강석 같은 몸으로 악을 끊고 선을 빠짐없이 지니셨는데 어떤 병이 있겠는가?
아난아, 부처를 비방하지 말라, 만약 외도가 이 말을 들었다면 어떻게 스승이라 여기겠는가?
제 병도 고칠 수 없는데 남의 병을 고칠 수 있겠는가?”
이 말을 듣자 너무 부끄럽고 죄송스럽기 짝이 없었습니다.
그러자 공중에서 이런 말이 들렸습니다.

阿難。如居士言。但為佛出五濁惡世。
現行斯法。度脫眾生。行矣。阿難。取乳勿慚。
世尊。維摩詰。智慧辯才。為若此也。
是故不任詣彼問疾。

"아난아, (유마) 거사의 말과 같다. 
다만 부처는 이 오탁악세에 나오셔서 실제 이법을 행함으로써 중생을 건져내기 위해서 행하고 계심이라.
아난아, 부끄러워하지 말고 우유를 가져가거라."
세존이시여, 유마힐은 지혜와 변재가 이처럼 대단합니다.
그러므로 그를  찾아 문병하는 것을 맡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이러하던 유마이건데,
그는 중생이 아프기 때문에 자신도 아프다고 이르셨다.

일체 중생이 병에 드니, 이런 고로 나도 병이 들고,
일체 중생이 병에서 나으면, 내 병도 멸하리.

以一切眾生病。是故我病。若一切眾生得不病者。則我病滅

도대체가,
세상에 이보다 더 절절 가슴 아픈 말씀을 나는 더는 들어보지 못했다.
南無維摩. 

유마는 비록 위격이 佛이 아니어나 佛과 다름이 없다.
대승불교는 보살의 삶으로써 여법(如法)하니 부처가 된다.
아니 중생을 여윈 부처란 애시당초 상정이 아니 된다.

이 더럽고 욕된 세상 외에 별 것, 별 다른 세상이 따로 있음이 아니라,
피고름 적나라한 이곳에서 당신도 아프다고 말씀하시고 계시다.

법정, 성철이 감히 따라올 수 없는 경지가 여기 있다.
도법이 제법 흉내를 내려하셨음이나,
지금 그는 진흙 구덩이에 빠져 겨우 콧구멍만 빠끔히 내고는 숨을 헐떡이고 있고뇨.

유마는 일체 중생이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는 병의 구덩이에서 건져내려고,
불신이 되고자 하였음이다.

欲得佛身斷一切眾生病者。

미륵이여, 천자들로 하여금 보리를 분별하는 마음을 버리게 하여야 합니다.
왜인고 하니, 
보리는 몸으로 얻을 수 없는 것이며, 마음으로도 얻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彌勒。當令此諸天子。捨於分別菩提之見。
所以者何。菩提者。不可以身得。不可以心得。

그러하기에 몸으로 아프지 않고, 마음으로 병이 들지 않으면,
부처는 거짓이다.

도법의 다음 말씀을 다시 새기며,
그를 용서하기로 한다.
아니 내가 감히 용서를 할 자격이나 있나?
나는 다만 내 몸 가축 하나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음이 아니더냐?
정작은 그를 애달피 사랑하고 있다 일러야 하리.
그의 세상을 향한 멱살잡이를 뜨겁게 응원한다.

아무렴,
아래 인용하는 말씀은 내가 늘 하던 말이기도 하다.
이 말씀의 진의를 깨닫지 못하면 억겁의 불사를 드려도 청맹과니 당달봉사를 면치 못한다.
그의 성불을 빈다.

도법 스님은 법정 스님이 대중과 부대끼지 않고 멀찌막이 떨어져 살면서 당신이 본 세상이나 생각을 아름다운 글로 풀어냈기 때문에, 수행자 삶은 마치 똥오줌은 없고 아름다운 꽃과 향기만 있어야 한다는 막연한 기대를 대중들에게 품게 만들었다고 말씀을 잇는다. “대중들은 수행자란 추한 똥도 역한 똥냄새도 없이 아름답고 향기롭기를 바랍니다. 법정 스님은 그렇게 사셨어요. 글에 드러나는 모습도 마찬가지고. 그러니까 ‘법정 스님만이 진짜 스님이야. 고결하고 향기로워. 스님은 그래야 해’라는 환상이 만들어졌죠. 그 틀에 맞추면 다른 스님들은 너무 아닌 거죠. 그래서 실망하고 불만을 갖고 화를 내잖아요. 성철 스님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저는 오년 동안 해인사 강원과 선방에서 살았는데, 솔직히 말씀드리면 성철 스님은 별로 매력 있지 않습니다. 물론 그 어른이 불교를 보는 안목은 저보다 훌륭하다고 할 수 있지만, 어떤 논리로도 수긍이 가지 않는 불합리한 점이 많아요. 다만 그 분이 깨달은 어른이고 선지식이니까 비록 제 이성과 사유로 이해되거나 수긍이 가지 않는다하더라도 제 능력으로 볼 수 없는 더 심오한 뜻이 있겠지 하는 차원에서는 모르겠지만, 승복되지 않는 점이 많아요. 그렇지만 그 분은 신화가 되셨잖아요. 세속을 멀리하고 은둔했기 때문에 세상에 오염되지 않아 청정하다는 환상이 만들어졌고, 그 어른이 검정고무신과 누더기로 상징되어지는 무소유도 본의가 어찌되었던 대중들한테 비쳐질 때는 법정 스님처럼 고결하고 담백한 꽃으로서 출가수행자라면 마땅히 그래야 한다는 환상을 떠올리게 했죠. 그렇지만 실제 삶에서 과연 그게 가능할까 하는 문제입니다. 어쨌든 그 어른들도 밥도 먹고 옷도 입고 불도 때고 사셨잖아요. 성철 스님은 해인사, 백련암에 사셨고 법정 스님은 송광사, 불일암에 사시다가 길상사에도 계셨는데, 해인사, 송광사, 길상사 이 절들이 돌아가니까 성철 스님이나 법정 스님 삶이 가능했죠. 그러면 백련암이나 불일암이 돌아가도록 하는 힘은 뭐겠어요? 들여다보면 돈 백 원 벌려고 땡볕에서 땀 흘리고 추위에 떨고, 이른 새벽에서 늦은 저녁까지 사하촌(寺下村) 거리에서 나무 팔고 감자 판돈이 들어와서 절이 운영된다는 말이에요. 또 절을 운영하려고 기복(祈福)이나 상업 수완을 끌어들이잖아요. 이곳을 저는 혼탁한 연못이라고 봅니다. 이 바탕에서 길상사도 돌아가고 불일암도 돌아가고 해인사도 돌아가고 백련암도 돌아가잖아요. 과연 그 분들 고결함과 향기로움이 혼탁함을 떠나서 존재할 수 있었겠어요? 그런데 현실은 모든 영광은 성철 스님이나 법정 스님한테 가고 모든 비난은 상업화되고 기복으로 몰고 가는 절을 운영하는 사람들한테만 쏟아지잖아요.” 침대에 사람을 맞춘답시고 팔다리를 잘라내는 테세우스 침대처럼, 누구라도 환상으로 만들어낸 기준에 맞지 않으면 멋대로 재단하고 도리질을 치는 세태를 꼬집는다. 똥냄새 없이 아름다운 연꽃이 피어나고 향기가 풍겨날 수 없는데, 똥냄새 없이도 꽃이 피고 향내가 날 수 있다는 환상을 만들어지면 결국 실제 삶이 왜곡되고 많은 사람들이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비판 없는 존경은 맹종일 수밖에 없고, 또 존경 없는 비판은 비난과 매도가 될 위험성이 높아 냉철한 비판과 진지한 존경이 늘 함께 가야만이 바람직하다는 말씀이다.

(출처: http://www.hyunbu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72978 )

저 두터운 글체의 내용을 대하자면 이제 또 다시 경허의 맏상좌인 수월(水月) 스님 일화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오늘은 연환쇄(連環鎖)일런가?
앞잡이가 뒤잡이를 연달아 꾀어 불러내고 있고뇨.

경허의 맏상좌 수월(水月)이 절 밑의 자갈밭을 일구어서는 헐값에 팔곤 했다.
그 때 대중이 나서 물었다.
“스님 왜 손해나는 장사를 하십니까?” 
그러자 수월은 이리 말했다.
“밭을 산 사람은 헐값에 밭이 생겨서 좋고,
 나는 그 돈으로 또 밭을 하나 더 일구니 이득이 아닌가!”

절 살림이든, 세간 살림이든 이리 삼년 아냐 단 이태만 지내도,
당장 가솔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배를 곯아야 하리라.

하지만 절 살림이 아무런 어려움 없이 굴러가는 까닭은,
대중들의 불사가 이어지기 때문이다.

수월은 저로 인해 천고의 영화를 얻었으되,
갖은 노역은 대중들에게 떠넘겼음이고뇨. 

법정의 무소유처럼, 그는 마음으로 무소유를 주창하셨지만,
현실에선 그 덕에 낙양의 지가를 높였다.
또한 도법의 따가운 주장처럼,
절 살림을 받쳐주는 수많은 신도들의 보시가 한 몫을 하지 않았음인가?

만약 이것을 사악하게 되 뒤집어 들기로 한다면,
우리는 병가(兵家)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저를 노려 의도적으로 고상한 척, 착한 척 위장하고,
인심을 사고, 돈을 끌어들여 취하고는 제 허갈진 배를 채운다.

내가 보기엔 당금의 절집들은 하나 같이,
이로써 떡을 빌고, 돈을 얻어다 쓰고 있다.

그럼 과연,
그대가 가는 길은 어느 나변(哪邊)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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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玄武 2013.03.10 12:17 PERM. MOD/DEL REPLY


    저는 도법스님과 생각이 같습니다. 법정스님 스타일은,
    요즘 정치한다고 세숫대야 드민 사람, 생각이 나게 합니다.
    빠가야로 좌측에 앉아서 더러운 정권이 나라 결 딴 내는데
    일조한사람 -마른자리만 골라 앉은 사람 같아서 당최 싫습니다.
    (중 늙은이가 저런 인간들 때문에 6월10일 명박산장 앞에 갈 수 밖에)

    행동을 해야지요. 누군가는 더러운걸. 치워야 할 터이고요.
    말씀만으로 세상이 돌아간다면 공, 맹시대 이후로 감옥은
    사라졌겠지요. 땡초가 불교를 농치면 달려가서 멱살이라도
    잡아서 석가의 말씀을 따르는 민중들을 바로 이끌어 주어야지요.
    요것도 체면하고 연관되나요? 이런 말씀은 참 잘 하시던데.
    (무지게를 보려면 비를 맞아야 하느니라.)

    자기 몸과 마음만 편하면 되는 사고, 이것이 제 눈에는 경, 중도
    구분 못하는 분으로 보이십니다. 한 알의 밀알이 안 썩는 경우겠습니다.
    아픔 때문인지, 두려워서인지 이불속에서만 만세를 부르고 있는 격이지요.

    이런 분들 때문에 천년 넘은 호국 불교가 고작 백년짜리 애송이에게
    상투 잡히고 끌려 다니는 모든 수모는 다 당하고 사는 것이지요.
    도 닦기 시작은 '벨' 버리기 인가봅니다. 그 버리는 벨 속에는
    애국과, 애족과, 형제애 까지 모조리 포함된 것일 테지요.

    굴러들어온 돌이 밖힌돌 뺀다더니. 딱 그 짝, 반만년의 도도한 역사를, 고작
    백년짜리가 목을 치는 현실을 외면하는 그들, 이는 곧 이과응보 자업자득,
    으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돌아가셔서 좋은 곳으로 가셨는지 알 수 없지만.
    권리만 있고 의무는 하나 없는 우리나라 지성이라는 족속들에게 생각이
    미치면 바로 열불로 연결이 되는군요. 나무관세음보살!


    bongta 2013.03.10 17:20 신고 PERM MOD/DEL

    도법의 "이 바탕에서 길상사도 돌아가고 불일암도 돌아가고 해인사도 돌아가고 백련암도 돌아가잖아요." 이 말씀과 유마의 "以一切眾生病。是故我病。若一切眾生得不病者。則我病滅。" 이 말씀이 저는 안팎 짝을 이루며 동일한 바탕에 서 있다고 봅니다.
    중생이 병이 들었는데 혼자 고상한 척 해보아야,
    보살도는 성취될 수 없지요.

    법정 스님의 일기일회를 읽다가 이런 글에 잠깐 멈춘 적이 있습니다.
    불일암에 거하시다가 설법 때문에 길상사로 내려오시면서 하신 말씀입니다.
    "이거 중노릇 이렇게 해야 돼?"
    정확한 말씀은 기억하지 못하겠으나 취지인즉슨 불임암에서 내려와 길상사에 때맞춰 오는 것이 번거롭다는 뜻으로 이해했습니다.

    그 때 저는 도법의 바로 저 말씀과 같은 생각을 떠올렸지요.
    도대체 중의 소임이 무엇이관대?
    저들이 시줏밥 공으로 처먹고 폼만 잡고 말 것인가?
    먹은만큼 중생 구제 위해 몸을 받쳐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주문이지요.
    그래서 상구보리 하화중생 아닙니까?
    언제까지나 상구보리 한다고 신도들이 바치는 공양 받아먹고,
    좌복에 가부좌 틀고 앉아 정재(淨財)를 축낼 것이냐 말입니다.

    도법은 저짓 하다가 회의가 들어 뛰쳐 나왔지요,
    그리고는 불붙는 세속 한 가운데로 뛰어 들었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법정을 미워하는 것이 아닙니다.
    외려 법정을 사뭇 존경하기도 합니다.
    이 혼탁한 불가에서 근래 법정만한 분도 더는 아니 계시지요.

    하지만 도법의 저 자비 실천행은 곱은 위대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다만 도법 스님이 요즘 자승을 앞에 두고 석연치 않은 짓을 하여 영 안타깝습니다만, 다시 훌훌 털고 지리산으로 돌아가시길 빕니다.

  2. 은유시인 2013.03.11 18:35 PERM. MOD/DEL REPLY

    나무아미타불~!
    여러 번 곰씹어봐야 할 정말 좋은 글입니다.

    bongta 2013.03.12 13:22 신고 PERM MOD/DEL

    어떤 사람이 들려준 이야기입니다. 어떤 농장에 갔는데 나무를 아주 잘 키웠기에 어떻게 하면 저리 잘 키울 수 있는가 물었답니다. 그러자 그이가 방법은 가르쳐주지 않고 "열심히 하면 됩니다." 이러더랍니다. 필시 노하우를 노출시키는 것을 꺼려 저리 선문답 같은 이야기를 꺼내들었을 것입니다. 말인즉슨 옳으나 구체적인 가르침이 없으니 역시나 제 문제는 제가 풀어야 하겠습니다.

    법정은 스스로 깨어나라고 이릅니다. 하지만 도법은 원리전도몽상에 빠진 이들을 구하려 진흙뻘에 뛰어듭니다.

    스스로 깨어날 수만 있다면 이보다 더 바랄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하지만 제 스스로 이게 아니 되니까 중생의 삶은 고단한 것입니다.

    도법은 저들 손을 잡아주며 함께 아파합니다.
    도법이 신통력이 놀라와 모든 이를 구해줄 수만 있다면 다행이겠으나,
    그리 할 수도 없을 뿐더러, 문제는 이리 구함을 받은 이가 도법의 공덕을 알기나 할까요?
    도법의 살이 터지고, 피가 흘러도 저들 중에 그 얼마나 이를 알 수 있을런지?
    하지만 시불망보라 도법은 다만 보살도를 행할 뿐인 것을.

  3. 주몽 2013.03.13 16:43 PERM. MOD/DEL REPLY

    법력이 다르면, 교화도 달라집니다.
    불가의 무상심심묘법으로 수행하지 않고 마음이 급해 유가의 유위법에 힘쓰니, 도법은 비구승이라기 보다는 수행법이 양명학에도 한참 멀고 외려 주자학에 가깝습니다.

    2000여년 전 총각도인이 누가에게 말하기를,
    "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25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26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30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31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도법은 도력도 없이 '혼탁한 연못'이니 어쩌구 중언부언할 것이 아니라, 올곧게 불가의 심심묘법한 수행에 힘써야 할 것 입니다. 수행은 말이 아니라, 몸과 마음의 올곧음 입니다.[도법은 본인의 수행력이 법정.성철 두 스님에 비해 어떠한지를 스스로에게 물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떤 청정 비구니 스님은 절을 3번이나 장엄하게 지은 후 모두 조계종에 스님을 보내달라고 해서 맡기고는 달랑 바루하나, 누더기 승복하나에 봇짐 싸들고 다 쓰러져가는 토굴 초가에서 주변 아낙네들에게 부처님을 법을 설하고 계십니다. 밥이 있으면 밥을 먹고, 죽이 있으면 죽을 드십니다.
    이곳에 새롭게 신도들을 모아서 절을 짓는 것이 비구니 스님의 마지막 소임이라고 하십니다.

    2000여년 전의 누가도 누가 시주를 하는지 걱정하지 말라고 느긋해 하는데, 21세기의 행동파 도법은 마음이 급해 말이 치성합니다.
    도법은 익어야 도력이 따르지, 공염불에 쌀이 저절로 익지는 않습니다.
    안타깝구나, 도법이여!
    승복을 입은채로 유위법을 따르고 있구나!


    나무봉타!


    bongta 2013.03.13 18:13 신고 PERM MOD/DEL

    저는 도법은 끝까지 세상을 드잡이질할 것으로 봅니다.
    그리고 그리 세상을 잡도리하는 그를 뜨겁게 응원합니다.
    도고마성이라 오히려 걱정인 것은 행여라도 그가 지쳐 쓰러질까 염려가 됩니다.
    그가 천하제일의 일등 싸움꾼이 되길 기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청정 비구니께서 절을 삼세번 아냐 일곱 번을 지어 바쳤다한들,
    도법의 싸움질에 비하면 시시한 짓이지요.
    물려준 사찰에 가보면 저녁나절에 아마도 치킨 집 오토바이가 나래비로 드나들 것이며,
    주지승은 주야불문 계집질에 눈깔이 벌겋게 충혈 되어 있을 것입니다.
    그런 절을 세상에 지어 내바칠 것이 아니라,
    기왕에 지어진 절 하나라도 더 까부시는 것이 법답고 실다운 일이라 할 것인데,
    저 청정 비구니승은 업보를 어이 하시려고 저리도 죄업을 태산처럼 쌓고 계신가 모르겠습니다.

    조만간 도법께 여기 농장에 있는 그라인더로 잘 벼려 大斧를 보내려고 합니다.
    우선은 청정 비구니께서 지어 넘겼다는 절부터 까부시고,
    천하의 절집들을 모조리 허물기를 부촉하려 합니다.

    절집 치고 유위법 소굴 아닌 곳이 없습니다.
    도법은 저 賊黨들을 하나하나 懲治하고 계심이니,
    護法神將 사천왕의 화신이 아닐런가 이리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여 봉타는 가까이 모시고 侍奉하지 못함을 못내 슬퍼하고 있습니다.

    나무주몽.

  4. 주몽 2013.03.14 14:57 PERM. MOD/DEL REPLY

    청정 비구니승이 삼세번 절을 지어, 청정한 마음으로 보시를 하였구나.
    항상 머무르는바 없이 법계에 공향하니,
    시정의 초가삼칸이 바로 법주사일 뿐, 떠나온 절은 비구니승이 알바 아니라네!

    토굴에서 신실하게 심심묘법에 뜸을 들이니, 법은 화려하고 높은 곳에 있지 않다네!
    히말라야의 왕자는 묘법을 연꽂에 부촉하고, 목수의 아들은 누가에게 법을 전한이래,
    10대 제자와 열 두 제자가 동서로 교화시키나, 바야흐로 도법만이 고군분투 하는구나!

    심심미묘한 능엄의 말씀을 사모한지 이미 반백년이나,
    항상 정법이 아닌 삿됨을 경계하라 부촉하시었네!
    비록 법을 성취하기가 지난하다고는 하나, 大斧를 휘둘러 무엇를 버히려심인가?



    나무봉타!





    bongta 2013.03.14 20:23 신고 PERM MOD/DEL

    예수는 본디 헐벗은 이라 성전 정화하시고자 다짜고짜 불같이 노하며 쓸어버리시고,
    부처는 은근짜이신지라 턱하니 법전으로 물러나 계시고,
    다만 사천왕 앞잡이 세워 호법케 하시노라.

    만약 사천왕의 외호가 아니 계셨으면 불당에 앉아 계신 철불은,
    진작에 검정 다리 밑 거렁뱅이 끼고 돌던 양은 냄비처럼 찌그러지고 깨졌을지라.

    도법은 제 한 몸 부수어 부처를 구하고,
    주몽께 꾸지람을 들어가며 성전을 정화하시누나,
    그렇다면 누가 부처며 법정이며, 성철이며, 사천왕이어든가?
    따로이 갈러 이름을 부른들
    길동만은 호형호부하지 못하노니.
    아, 가련타.
    봉타만이 길동의 거친 손을 어루만져 주는도다.

    북풍한설,
    부처, 성철, 법정이 난로 끼고 휘 둘러 앉아,
    고구마 구워먹으며 보살들 모아 놓고 희학질로 날샐 때,
    도법은 허물어져 가는 천왕각 기둥 받쳐 세우며,
    사추리로 요령 흔들고,
    엉덩이로 비파 켜며,
    악마구리를 막아내지 않았던가?

    無爲衣 입고 폼만 잡은 이가 진정 무위법을 알랴?
    有爲衣 걸치고 성전을 정화한 이가 하느님을 지킨 이가 아니런가?

    도법이 걸친 옷의 색깔은 검으나, 빨가 벗겨내면 옥기빙부(玉肌冰膚)일지나,
    부처, 법정이 입은 흰옷을 찢고 보면 누런 고름이 흘러 열댓 초롱은 받아내야 할지니.

    어찌 도법 없이 불법이 장구히 굴러 갈 수 있으리오?
    법륜은 부처가 굴리지만,
    法轂은 도법이라야 가히 감당할 수 있을 뿐.

    천하 사람은 도법을 제물 삼아서라야 비로소 법을 일용할 양식으로 삼으니,
    도법이야말로 쌀이요, 밥이요, 블루베리가 아니랴?

    나무마하보살주몽.

  5. 주몽 2013.03.15 21:11 PERM. MOD/DEL REPLY

    혼탁한 연못에서 길상사도 돌아가고,
    불일암도 돌아가고, 해인사도 돌아가고, 백련암도 돌아가게 하는 것이 법의 본질은 아닐진대,
    가엾은 도법은 무엇을 위해 法轂을 굴리려는가?

    차에 기름을 넣음은, 차를 타고 저 언덕에 오르고자 할 뿐이요,
    백원 벌기위해 땀 흘리고 추위에 떠는 중생들의 바램은, 오직 간절한 영혼의 떨림을 원할 뿐,
    지구가 자전하고 공전함은 힘써 돌리는 것이 아니라 그저 그럴뿐이며, 태양 또한 不仁하여 무엇을 베풀려고 하지 아니한다네!

    중국의 아쇼카왕 양무제의 유위법은 그저 '無功德!",
    성스러운 진리는 "廓然無聖"하여, 달마도 그저 "알지 못할 뿐!",
    도법이여, 法轂은 굴리지 않고 一葦渡江하여 위나라 숭산으로 간 달마의 본뜻은 이뭐꼬(是甚麽)?



    나무마하보살 봉타.

    bongta 2013.03.16 19:52 신고 PERM MOD/DEL

    불임암 따위를 돌아가게 하는 것이 불법의 대의가 아니기 때문에,
    암자를 때려 부수고, 사찰을 불사르자 이르는 것입니다.
    저런 요승들이 幻術을 부려 대원각을 접수하여 길상사를 짓고,
    삼천배를 하게 하여 백련암 등잔불 기름 값 버는 짓으로,
    우바새 우바이 선남선녀를 꾀는 적당의 소굴로 변한지는 사뭇 오래 전 일입니다.

    실제 법정은 길상사에서 이리 법문을 내립니다.
    제발 내가 법문 하기에 앞서,
    뭇 대중들을 향해 불사 일으키려 한다며 돈 내놓으라는 광고하지 말라고 사판승들에게 주문하지요.
    꼭이나 설법에 앞서 광고를 하고 마는 저들의 처지도 딱하지만,
    주머니 탈탈 털어낼 신도들은 또 무슨 죄업이 하그리들 많은지 걱정스럽습니다.

    이것은 꼭이나 절집만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개신교, 천주교 역시 신도들이 모이면 성금, 헌금 고지, 아니 종용하기 바쁩니다.

    이게 다 하늘 높이 내단 간판 ‘본질’을 세일하는 假僧, 蚞士들의 단수 높은 수작질입니다.
    무교회주의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도법보다 훨씬 앞서 이를 염려한 것이로되,
    도법일지라도 사찰을 떠날 용기는 아직 없을 것입니다.
    집도 절도 없으면 배를 쫄쫄 굶은 터인데,
    그도 맨 정신으론 그리 나아갈 수 없겠지요.

    說法, 법을 설하는 것이 아니라, 법을 빌어 밥을 구한지 사뭇 오래된 것은,
    제가 넘겨짚고 있는 것이 아니라 직접 겪고 아는 바입니다.
    모름지기 계정혜 삼학이 솥발처럼 바로 서야 법이 법다워지고 실다워지는 것이로되,
    법사는 혜만이 최고라 우쭐되고, 율사는 계가, 선사는 선이 최고라고 제각기 우깁니다.
    허나 이게 모두 뿔뿔이 나눠 갈라지는 것이 아니라,
    不二門을 지키는 삼색 삼장이 아니겠습니까?

    법이 유일무이 중하다면,
    어이하여 山門黜送, 褫奪度牒이 있겠음인가?
    마음속에 잔나비 수천이 들어앉아 있는 게 차별 세간의 모습일진대,
    법만 구함은 거죽으론 사뭇 그럴듯하나 공론에 불과한 것.
    하기에 律의 죽비와 定의 목탁 따위의 法具를 갖춘 것이 아니어든가?

    몸은 천근인데 짐짓 새털 같이 하늘을 날 수 있다고 뻥치고 폼만 잡다가는,
    죽어서 이내 도산, 화탕을 거쳐, 무간지옥에 빠지고 말리.

    영혼의 떨림을 남의 목소리에 의지해서 구할 일이 무엇인가?
    땡중에게 금가락지 빼내고, 집문서 바쳐가면 떨릴 영혼이라면,
    차라리 대추나무에 목매달고 바람에 흔들리면,
    제 넋은 물론이거니와 덤으로 칠대손 팔대조 삼혼칠백까지 자르르르 울리고도 남으리라.

    노래는 제 목청으로 불러야 하는 것이로되,
    어이 하여 이미자를 불러내고, 조용필에 의지해서라야 단꿈을 꾸려하는가?
    도법은 이미자를 무대에서 밀어내고, 조용필을 패대기를 쳐내서야,
    비로소 네 목소리를 찾을 수 있다고 외치고 있음이라.

    본질을 찾아 나선 이는 언제나 뿌연 안개 속을 헤매이다 지치고 말아,
    종내는 가상의 세계에 안주하고 마는 것.

    不二門이언데,
    본질이 별도로 따로 있음인가?
    본질을 별도로 구하는 이나, 따로 있다고 하는 이들은,
    광인이 아니면 모두 사기꾼인 바라.

    이미자, 조용필, 성철, 법정은 다 삼류 딴따라임이라,
    이들을 무대에서 밀어내어야 내가 주인공이 되는 법.
    도법은 천하에 이를 일깨우고 계신 것.
    천하가 칠흑처럼 어두운데 오로지 그만이 고고청청 홀로 어질고뇨.

    성철이 제 아무리 빼어나다 한들,
    삼천배 땀 흘리고 친견해서 무엇을 얻을손가?
    기껏해야 저 투박하고 쉰 목소리, 촌무지렁이 같은 면상 밖에 더 보랴?
    도법은 삼천배 하라 이르는 이 멱살을 잡아채 꺼꾸러뜨리고 있음이라.

    법정이 고은 말, 어여쁜 손짓으로 꾀임의 말을 던지나,
    이 모두 향이(香餌)에 불과한 것.
    수행은 모름지기,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야 하는 것.

    단하천연은 그래서 燒佛하여 禦寒하지 않았던가?
    할 수만 있다면 진작에 성철, 법정 모두 산 채로 불구덩이에 넣어야 했음이라,
    그래보았자 사리는커녕 비린 연기나 자욱했겠지만,
    한결 천하는 일찍 태평해졌으리.

    성철은 그래도 양심이 한톨 남아 죽어자빠질 때,
    生平欺狂男女群이라 자복하지 않았던가?
    법정은 무소유 책을 불사르라 하지 않았던가?

    도법은, 죽어 나가면서 처음으로 뱉어낸 저들 참회의 말씀을 깍듯이 따르고 있음이라.
    뗏목도, 불상도, 말씀도 다 부질없음이라.
    아아, 가여운 우리 도법.

    도부수 이규는 도끼를 휘두르며 파사현정하고 있음이라,
    그 누가 피칠갑 이규를 알아주랴?

    다만 도법과 봉타만이 이 소식을 전하노니.

    ‘본질은 따로 없음이라.’

    이 한 소식만 꿰어도 시방 억겁을 땡전 한 푼없이 自在涉하리.

    ***

    혜왕은 불사 많이 지었다고 침 질질 흘리며 떠벌리었으나,
    도법이 언제 높은 언덕에 올라 색색 깃발이라도 흔들었단 말입니까?
    도법은 사찰 때려부시기 바쁘니 색헝겊 내다걸 틈도 없습니다.

    달마를 불러내 도법 앞에 데려다 주면,
    당장 도법의 말잡이 구종을 자청하고 나섰을 것입니다.
    면벽구년 엉덩이 썩을 노릇도 다 부질없는 것이어늘.

    서쪽에 지는 해를 더 두고 볼 수 없으니,
    쥐새끼처럼 가라앉는 배를 먼저 탈출하였을 뿐인 것을,
    어찌 그리 공연히 서래의를 묻느라 분주한가?

    明槍易躲, 暗箭難防
    독전은 뽑지 않고들 그저 말놀음에 녹아 떨어지고들 있음이고뇨.

    南無摩訶菩提薩唾朱蒙

  6. 주몽 2013.03.18 21:25 PERM. MOD/DEL REPLY

    스님들이 고대광실에서 호의호식하는 것은
    초조가 면벽 9년하면서 공력을 모으고,
    혜가가 팔을 잘라 간절하게 법을 구한 연고인 것을......

    법을 팔아 호의하고, 불사 벌여 호식하니,
    어언 3,000여년 세월이 흘러,
    할배의 물건은 더 이상 팔 것이 없어 동나 버렸네.

    말법시대에 팔 물건이래야 중생들의 탐.진.치가 심어 놓은 래생에 대한 공포심일뿐,
    "맑고 향기롭게" 한 마디에 근심걱정 내려 놓으면서,
    의사들의 프로포플 주사는 탓하지 않고 , 하필 그깟 초 값과 향 값은 왜 따지는가?

    南無摩訶菩提薩唾棒打

    bongta 2013.03.20 12:35 신고 PERM MOD/DEL

    三武一宗를 두고 흔히 도교 때문에 불교가 된통 당했다고 하지만,
    기실은 불교 스스로 재앙을 불러들인 것이라,
    군역면탈, 파계, 장원 증가 등으로 한껏 놀아났던 바임이라,
    그 빌미는 스스로 만들었다 할 것이리라.

    실제 백장청규의 예가 있듯이,
    청정한 선종만은 회창 폐불 사건에서도 화를 면하지 않았음인가?

    이것은 기실 부처 재세 중에도 있었던 일이라,
    기수급고독원, 왕사성 따위들 모두 당대 최대일지니,
    그제나 오늘이나 집 중에 제일 큰 것은 교회고 성당이며 사찰이 아님인가?
    인민들은 오갈 데 없어 움집에 귀틀집에 가까스로 비나 긋고 사는 처지지만,
    저들은 금은으로 치장하여 호사스럽게 살고 있음이니,
    이 모두 인민의 뼈를 깎아 기둥을 삼고,
    살을 태워 향화에 대신하고 있음이 아니던가?

    헌즉 이제 와서 새삼 말세가 닥친 듯 부잡떨 이유가 없으니,
    본디 專宗者란 신도들 뼈골을 욹어먹음으로써 제 명을 부지하는 것임이라.
    이제 오늘 할배 물건이 동이 난 것이 아니라,
    원래부터 저들로부터 구할 것이 없었음이라.

    여기 시골 블루베리 농장 중에도 어떤 흉악한 녀석은 농장 개설한지 단 1년도 되지 않아,
    유명 언론사에 기백 주고 자작으로 'XX OOO 대상'을 타먹었음이라,
    그러한데 내가 만난 동네 주지는 고백하기를 모 종단에 기백 주고,
    'OO종 소속 사찰' 명패를 구매하였다고 하더라.
    열매도 채 달리지 않았는데 명품 농장이 되고,
    조그마한 개인 사찰이 일약 천년 고찰의 말사로 번신하는 이 놀라운 사역의 현장,
    이게 장사터, 종교 말고 또 어디에서 찾아볼 수 있는 異蹟이란 말인가?

    이러함이니 聖俗이 모두 브랜드 사서 땅 따먹기, 빵 빼먹기에 혈안이 되는 것은,
    일점 하나도 괴이타 이를 바 없음이라,
    이러할진대 밖에서 구하고 취할 것이 단 하나도 있겠음인가?
    지었다하면 동양 최대, 세계 최대 자랑하기 바쁜 사찰, 교회가 아니라,
    바로 내 몸이 聖殿임을 알아야 함이라,
    복덕은 부처가, 예수가 갖다 주시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짓고 내 삶으로써 증험하는 것일 뿐임인 것을.
    이게 부처가 고고성을 내지른 천상천하유아독존의 본의가 아니랴?

    하기사, 신도들 중에 타락한 땡추보다 곱은 더 더러운 이들도 있음이니,
    돈 주고 직임을 사고, 대외적인 신표로 위광을 더하고,
    영생에 이르는 티켓을 이로써 구매하고자 함이더라.
    먹사, 땡추는 업이 그러하다 하되,
    신도 놈은 이를 역으로 이용하고 있으니,
    이런 척살할 놈들이 천하에 따로 있을까나?

    프로포플은 상락아정(常樂我淨) 내 행복을 온전히 보장하지만,
    납촉, 향화는 우선은 내 주머니 헐어야 생색을 내는 것임이라,
    영험이라고는 쥐뿔도 없는 기껏 돌불, 철불에 천년 파리손이 되어 빈들,
    본디부터 천하고 박복한 신세가 펴질 까닭이 어이 있으랴?

    혹여, 퉁퉁 불어 터진 주지 놈이 염치를 알아 정랑으로 끌고 가서,
    아랫도리를 육송곳으로 가끔씩 찔러주면 혹 모를까?
    육시럴하게 높은 산골짝 허위허위 오르느라 홑적삼이 흠뻑 땀으로 젖어,
    육정은 봉긋 나빌레라 손짓을 하고 있을 새,
    촛값은, 나귀 좃으로 한 자 이상 건공중으로 자르르 띄워주면,
    얼추 프로포플과 셈이 엇비슷해지지 않으랴?
    이런 눈치도 모르고 허구헌 날 염불로 지새우는 우승은,
    암상이 발끈 난 계집의 타박을 삼태기로 들어도 더 이상 할 말은 없을 터.
    수원수구 누구를 탓하랴?

  7. 주몽 2013.03.20 14:50 PERM. MOD/DEL REPLY

    목수의 아들은, '성전은 기도하는 장소니 정결해야 된다'면서 가판대를 쓸어버리고,
    봉타 보살은 백장청규를 내걸고, '내 몸이 聖殿'이라고 법을 설하시는데,
    몽매한 중생들은 작복하는 법을 몰라 귀만 쫑긋거리며 두리번 거리네!

    블루베리는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평생 신맛만 보며 척박한 삶을 살아왔는데,
    몽매한 농부들은 모리배들이 말하는대로 '금 화분에 심어 황금 비료를 퍼 먹이네!
    나무에 시주를 하는 이유인즉슨, '크기는 주먹만하고 달콤한 열매가 달릴 것'이라고 믿어서라네!

    매년 아낌없이 예닐곱살 크도록 정성들여 온갖 시주를 하였건만,
    블루베리 나무는 시주한 보람도 없이 시름시름 앓다가 객사하였다네!
    중생들이여, '복도 내가 짓고 내 삶으로써 증험하는 것'이라는 봉타보살의 설법도 못 들었는가?

    나무봉타보살마하살!

    bongta 2013.03.20 17:28 신고 PERM MOD/DEL

    置答.

    나무주몽보살마하살.

  8. 주몽 2013.03.21 12:12 PERM. MOD/DEL REPLY

    삼배구고!

    나무봉타서가모니불.

    bongta 2013.03.26 18:07 신고 PERM MOD/DEL

    컴퓨터가 고장이 나니 마치 입굴폐관하듯 한동안 세간사와 절연을 하였습니다. 주몽님을 만나서 저는 행복합니다. 이리 따끔하니 일러주시고 어여둥둥 들까부르시며 무등도 태어주시니 잃어버린 삼촌이 환생하신 듯합니다. 그 옛날 삼촌 빽 믿고 고샅길을 씽씽 달려가던 아해 하나가 오늘 다시 철모르고 까불고 있습니다.

    나무자재보살주몽

  9. 玄武 2013.03.22 12:01 PERM. MOD/DEL REPLY

    맞습니다 맞고요, 나섰 다가는...

    손가락만 본다고 죽비 맞을 것 같고...

    죽비가 부러진다고 블루베리가 열매 맺는것도 아니고....ㅠ

    bongta 2013.03.26 18:08 신고 PERM MOD/DEL

    죽비이건 간시궐이건, 여기 시골엔 일단 블루베리는 올해 좀 열릴 것 같습니다.

  10. 물건너 고을 2013.03.26 20:58 PERM. MOD/DEL REPLY

    선생님 말씀 중에서
    저에겐 가장 반가운 말씀으로 들립니다.

    언제 틈을 내서 구경 가야하겠습니다.

    bongta 2013.03.27 12:24 신고 PERM MOD/DEL

    광림(光臨)하여 주시면 생광이겠습니다.
    다만 농원조성이 엉망이라 제가 한참 민망하리라 생각됩니다.

  11. 주몽 2013.04.05 19:36 PERM. MOD/DEL REPLY

    저두 요즘 한참 농장 조성 중이라 사람을 맞는 것이 참으로 민망스럽습니다.
    지난 주까지는 밭에 유황을 뿌리고 위에 파인바크를 옮겨 놓았는데,
    이번 주말부터는 중장비로 파인바크를 펴고 두둑 만들 준비를 해야 되겠습니다.

    4월 1일부터 비닐하우스를 짓고 그 안에 작은 관리사를 하나 짓고 있는데,
    이 번 주말에도 완공되기는 틀렸습니다.
    그저 작업하는 분들에게 힘써 주시기만을 당부드리고 있습니다.

    이렇게 진행하다가는 언제 묘목을 이식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주말마다 이틀식 일하다가는 어느 세월에 완성될지 몰라도,
    그저 그러려니 하면서 쉬엄쉬엄 진행할 생각입니다!

    bongta 2013.04.06 11:10 신고 PERM MOD/DEL

    토역일이라는 것이 머릿 속의 짐작과는 다르게 별별 일이 다 벌어집니다.
    더구나 저 같이 처음 해보는 푼수엔 더욱 어려움이 크지요.
    하지만 결과만을 조급히 구하는 바 없이,
    그냥 매 과정을 겪고 지켜보면 그 가운데 낙도 있더군요.

    저의 경우엔 혼자서 감내하였기에 처음엔 힘이 부치고,
    급기야 오대육신이 거덜나 나달 나달 헤지기까지 하였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제 물건들이 알아서 자리를 잡아 틀어앉고,
    숨을 쉬고 제 역할을 하며 자연 저를 돕고 있는 것을 부지불식간에 알아채게 되었습니다.

    人事는 시간이 역사하심에 따라 자연 흘러돌아드는 것이니,
    그려러니 따라가면 절로 시절 인연이 피고 맺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망갑을 바라보는 이 나이에 이런 역사를 일으킬 수 있는 것만으로도 복이라 생각합니다.

    주적골에 꽃향이 퍼지고 블루베리가 익어갈 때 주몽보살은 또 어떠한 꿈을 꾸시고 계실런가?
    그날이라한들 또 어찌 푸르지 않으리오.
    삼가 대정농원의 꽃다이 아름다운 앞날을 축수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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