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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호지는 젊어서 읽으면 아니 되는가?

소요유 : 2015. 12. 3. 17:26


老不看三國,少不看水滸,男不看紅樓,女不看西廂


“나이가 든 이는 삼국지를 읽지 말고,

어린이는 수호지를 보지 말며,

남자는 홍루몽을 보지 말고, 

여자는 서상기를 보지 말라.“


또는 少不看紅樓,壯不看水滸,老不看三國

이리 정리된 속언도 돌아다닌다.

하여간 어쨌든 그 의미하는 바는 대략 다음과 같다.


나이가 많은 이가 삼국지를 읽으면, 간지(奸智)가 늘 염려가 있고,

젊은이가 수호지에 탐닉하면 혈기방정한 때라, 자칫 다투다 사고를 치기 쉽고,

남자가 홍루몽을 보면, 음란해질 우려가 있고, 

여자가 서상기(西廂記)에 빠지면, 애정의 탁류에 휩쓸려 나가기 쉽다.

이러하니 이를 경계한다는 말이다.


이를 간략히 정리한 글귀가 여기 있다.


三國亂思,西廂亂行,紅樓誨淫,水滸誨盜


삼국지는 간교한 지혜,

서상기는 난행,

홍루몽은 음란,

수호지는 도적질로 이끌 수 있다.


그러하니 이를 제대로 소화할 수 있는 나이가 아니면,

함부로 빠지지 말라는 경계(警戒)의 말씀인 게다.


그런데 나는 이를 거꾸로 생각해보고 싶다.

즉 앞에서 지적한 위험이란 것이,

실인즉슨 그 나이에 가장 치성한 경계(境界)이기도 하다.

이 때라야 바로 알맞은 연성(煉成)의 기회를 맞는 것이다.

가령 홍루몽을 통해,

남녀지간의 사랑과 운우지정(雲雨之情)의 지락(至樂)을 제대로 알 수 있다면,

그것은 다 쉬어 꼬부라진 노인네가 아니라 젊은 청춘이라야 걸맞다.

또한 수호지를 통해,

혈기 방장한 기상을 펼칠 수 있는 것은 젊었을 때라야 더욱 빛을 낼 수 있다.

이러한 것을 저 말씀들의 경계(警戒)처럼 조심만 하다가는,

진정 알맞은 때를 놓치고 말리라.


그런데 나는 여기서 다시 한 번 전전(轉轉)하여 말하노니,

저리 때를 나누어 논하는 짓도 엉터리라 생각한다.

아니 젊은이만 운우지정을 안다하겠음인가?

왜 아니 노인네는 그 지락(至樂)을 논하지 못할쏜가?

젊은이가 수호지를 읽든, 홍루몽을 몇 백번 베껴가며 읽든,

그에 빠져 혼을 잃고 와류(渦流)에 휩쓸려가지만 않는다면,

시시(時時)가 모두 꿀맛이요, 처처(處處)가 다 꽃동산일 뿐인 것을.


나는 이쯤에서 백장야호(百丈野狐)란 고사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스님(백장)이 당에 올라 설법을 하려는데,

노인 하나가 있어 대중을 따라 법을 듣다.

하루는 대중이 다 물러났는데 노인만 가지 않고 남아 있더라.

스님이 묻는다.


‘그대는 누구인고?’


노인이 아뢴다.


‘저는 사람이 아닙니다.

과거 가섭불 때 일찍이 이 산의 주지였습니다.

학인이 ‘대수행인은 인과에 떨어집니까? 아니 떨어집니까?’ 하고 묻기에,

제가 이리 말해주었습니다.

’不落因果 인과에 아니 떨어지노라.‘

이에 오백생 동안 여우의 몸을 받았습니다.

이제 청하오니 스님께선 한 말씀 내려주셔서,

여우의 몸을 벗어나게 해주십시오.’


스님이 말씀 하시다.


‘그럼 그대가 묻게나’


노인이 여쭙다.


‘대수행인은 인과에 떨어집니까? 아니 떨어집니까?’


스님이 말씀 하시다.


‘不昧因果 인과에 매(昧)하지 않는다.’


노인이 언하에 바로 크게 깨닫다.

예를 차리고는 아뢰다.


‘제가 이미 벗어버린 여우의 몸이 산 뒤에 있습니다.

감히 부탁드리거니와 죽은 중처럼 장례를 치러주십시오.’


스님이 유나(維那)에게 시켜 식후에 죽은 중 장례식이 있다 알리게 하였다.

대중의 의론이 분분하다.


‘대중 모두가 편안하고, 열반당에 병자도 없다.

이게 어찌 된 까닭인고? ‘


식후에 스님이 대중을 거느리고,

산 뒤 바위 아래 이르시다.

지팡이로 죽은 여우를 파헤쳐 꺼낸 후, 법식대로 화장하다.

스님이 저녁에 당에 올라 앞의 인연을 말씀 하시다.

이 때 황벽이 갑자기 일어나 여쭙다.


‘고인이 한번 잘못 대꾸하다 오백생 동안 여우의 몸이 되었는데,

만약 바로 대꾸하였다면 무엇이 되었겠습니까?’


스님이 말씀 하시다.


‘가까이 오거라 네게 말해주리라.’


황벽이 가까이 다가가자마자 스님을 한 대 때려버리다.

스님이 웃으시며 말씀 하시다.


‘오랑캐의 수염은 붉다더니, 과연 붉은 수염의 오랑캐가 있구나! ’‘


師每上堂。有一老人。隨眾聽法。一日眾退。唯老人不去。師問。汝是何人。老人曰。某非人也。於過去迦葉佛時。曾住此山。因學人問。大修行人還落因果也無。某對云。不落因果。遂五百生墮野狐身。今請和尚代一轉語。貴脫野狐身。師曰。汝問。老人曰。大修行人還落因果也無。師曰。不昧因果。老人於言下大悟。作禮曰。某已脫野狐身。住在山後。敢乞依亡僧。律送。師令維那白椎告眾。食後送亡僧。大眾聚議。大眾皆安。涅槃堂又無病人。何故如此。食後師領眾。至山後巖下。以杖挑出一死野狐。乃依法火葬。師至晚上堂舉前因緣。黃檗便問。古人錯祇對一轉語。墮五百生野狐身。轉轉不錯。合作個甚麼。師曰。近前來向汝道。檗近前打師一掌。師笑曰。將謂胡鬚赤。更有赤鬚胡。(指月錄)


삼국지니 수호지 따위를 읽어서는 아니 되는 때가 있다고,

말한 저들 중국인들은 지금쯤 모두 여우의 몸을 받아 몇 백생을 지나고 있으리라.

과연 그리 때 맞추어 읽으면 어둠에 빠지지 않고, 바른 도리를 깨우치게 되는가?

어림없는 소리다.


不落因果


‘인과에 떨어지지 않는다.’


이리 말하고 있는 한,

여우의 몸을 아니 받을 도리가 없다.


그럼,


不昧因果


‘인과에 어둡지 않다.’


이리 말하였던 백장 스님은 어떠한가?


그가 기껏 여우 몸을 한 노인 하나를 구해주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제자인 황벽에게 뺨 한 대를 맞고 말았지 않은가?


내 그대들에게 묻노니,

샛노란 제자에게 뺨을 맞지 않고,

바른 도리를 말하려면 어찌 하여야 하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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