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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분서(江陵焚書)

소요유 : 2015. 12. 7. 13:33


강릉분서(江陵焚書)


양원제(梁元帝)는 참으로 엉뚱한 황제다.

그는 어려서 병으로 눈 하나를 잃었다.


양원제는 책 읽기를 좋아하고 문학을 사랑한 군주로 알려져 있다.

46세, 책을 모은지 40년 만에 8만 권을 모았다 한다.

자칭 韜於文士 愧於武夫라 일렀다.

이는 문사이길 감추고, 무부임을 부끄러워 한다는 뜻이다.


강릉(江陵)이 포위되었을 때,

그러던 그가 동합죽전(東閤竹殿)에 들어가, 

고선보(高善寶)에게 14만권의 책을 불에 태울 것을 명령하였다.

그러면서 이리 외쳤다 한다.


文武之道,今夜盡矣!

讀書萬卷,猶有今日,故焚之。


‘문무지도가 오늘 밤에 다하였구나!

만권 책을 읽었는데 오늘에서야 그것들을 살라버리는구나!’


무릇 진시황의 분석갱유(焚書坑儒)가 안타까운 일이지만, 

양원제의 소서(燒書) 또한 중국 아니 인류문화의 큰 재앙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나중 기회가 있으면 분서갱유에 대하여는 별도로 할 말이 있을 것이다.)


그의 문화에 대한 열렬한 사랑은 국가가 존망이 위기에 처해 있을 때도 변함이 없었다.

적군이 성하(城下)에 임했는데도,

대신들에게 노자 도덕경(道德經)을 강의하였다 한다.

그런 그가 어이하여 책을 불태웠을까?


명말청초(明末清初)의 사상가인 왕부지(王夫之)는 그를 두고 이리 말하였다.

흔히 양원제가 이제 나라가 망하면 읽을 형편이 아니 되니 무용지물인 바라,

그리 해서 불태워버리게 되었다고들 하나 자신(왕부지)은 그리 보지 않는다 했다.


책을 너무도 사랑한 이, 광적으로 좋아한 이의 입장에서 보자면,

그의 행동을 헤아려 볼 수 있다.

그가 애통하게 생각한 것은 책 그 자체가 아니다.

난세엔 문화(財)는 필연적으로 유린당하고 만다.

마치 사랑하는 연인들이 위기를 맞아 함께 자살하는 것과 같다.

즉, 양원제는 자기 목숨을 보전할 수 없음을 알았다.

이 때 차라리 십만이 넘는 책과 함께 배장(陪葬) 즉 순장(殉葬)하길 원했던 게이라.

그래 책을 태워버렸던 것이다.

그는 사랑하였던 책이 적의 수중에 넘어가,

유린당하는 것을 참을 수 없었던 것이다.

황제가 여인을 사랑하여,

죽을 때 여인을 함께 순장하라 외치는 것과 마찬가지로,

양원제는 책을 사랑하였음인지라, 책을 순장하라 부르짖었던 것이라.


하온데, 진정 사랑하는 여인을, 그리고 책을 순장하는 마음은,

지고지순 순정(純情)의 발로임이런가?


이쯤에서 나는 또 다른 이야기 하나를 떠올리고 만다.

우선, 이를 마저 소개해본다.


실은 이 고사는 별도로 다루어야 하겠지만,

함께 엮어 음미하는 것도 괜찮으리라. 


결초보은(結草報恩)


진(秦)의 두회(杜回)는 키가 일장(一丈)을 넘는 거인이다.

게다가 뺨은 쇠로 만든 발우 같았고, 주먹은 구리쇠로 만든 주먹과 흡사했으며,

힘은 능히 천균(千鈞)의 무게를 들었다. 

그는 무게가 120근이나 되는 개산대부(開山大斧)를 무기로 사용했다.


이 두회가 진(晋)의 장수 위과(魏顆)와 싸우게 되었다.

위과는 두회의 용맹에 밀려 싸움 판판이 깨졌다.


위과는 잠도 못자고 고심참담, 도무지 꾀를 낼 수가 없었다.

전반측후반측 삼경이 들어서야 자리에 쓰러져 혼몽히 잠이 들었다.

잠결에 누군가 속삭인다.


“청초파(靑草坡), 청초파, 청초파”


꿈속에서 누군가 이리 말했는데, 이게 무슨 뜻일까 ?

아무리 생각해도 그 뜻을 알지 못했다.


위과는 동생 위기(魏騎)에게 이를 말했다.


“십리 길을 가면 보씨(輔氏)의 못에 청초파라는 둑이 있는데,

그를 말하는 것이 아닐런지요 ?

어쨌거나, 이는 神人이 나타나 秦이 청초파에서 패할 것을 일러준 것이 아닌지요 ?

좌우간 저는 청초파에 미리 가서 매복을 할 터이니,

형님은 秦軍을 유인해서 그리 끌고만 오십시오.”


날이 새자,

위과는 이 작전대로 秦軍을 청초파로 유인했다.


청초파에 이르르자,

그리 용맹무쌍하던 두회는 갑자기 기름칠을 한 신발을 신고,

얼음판을 걷는 듯 비틀거렸다.


위과가 자세히 보니,

저편에서 베 도포를 입은 한 노인이 

마치 농부처럼 둑 위의 풀을 한 묶음씩 갈라 잡고,

두회가 움질일 때마다 그 발을 묶는 것이었다.

그러나 다른 사람과 두회의 눈에는 그 노인이 보이지 않았다.


위과, 위기 두 형제는 이에 쏜살 같이 달려들어,

두회를 사로잡았다.


그날 밤, 노인이 위과의 꿈에 다시 나타났다.


그 꿈에서 노인은,

자신은 조희(朝姬)의 아비 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사연인즉 이러하다.


조희는 위과의 아버지인 위주(魏犨, = 魏武子)의 애첩이었다.

위주는 조희를 몹시 사랑했다.

위주는 전쟁터에 나갈 때마다  그의 아들인 위과에게 말하길,


“내가 이번 싸움에 나가 죽거든 너는 조희를 좋은 곳에 개가시키어라.

결코 조희에게 적막한 일생을 보내지 않게 하여야 한다.

그래야만 내가 죽어도 눈을 감을 것이다.”


이리 일렀었다.


하지만, 정작 위주가 병이 들어 죽게 되었을 때는 그 태도가 일변했다.


“조희는 내가 사랑하고 아끼던 여자다.

내가 죽거든 나와 함께 묻어다오.

그녀는 반드시 나를 위해 순사(殉死)할 것이다.

그러면 나는 땅속에 묻혀 외롭지 않으리라.”


위주는 말을 마치자 이내 죽었다.


그러나 위과는 그 아버지 장사를 치룰 때,

조희를 함께 순장시키지 않았다.


이에 동생인 위기가 묻는다.


“형님은 어째서 아버지 유언을 저버리십니까?”


조용히 위과가 말한다.


“아버지는 평소에 말씀하시길, 

자신이 죽으면 조희를 개가시켜 주라고 말씀하셨다.

임종 때 하신 말씀은 정신이 없을 때 하신 것이다.

효자는 부모님이 평소에 하시던 말씀을 따르는 법이다.

숨을 거두실 때 정신없이 하신 말씀을 어찌 따를 수 있으리오.”


이 결초보은(結草報恩)의 고사는 흔히 보은의 사례로 인용되곤 한다.

하지만 여기 이 자리에선 나는 “죽어 가는 사람의 말씀”에 주목하고자 한다.


흔히 하는 말에 이런 말이 있다.


鳥之將死,其鳴也哀;人之將死,其言也善。


“새는 죽을 때 소리가 슬프고, 사람은 죽을 때 말이 선하다.”


이 말씀 말이다.

죽는 마당에 누가 거짓을 말할 것이냐 하는 뜻이겠지만,

나는 이 말을 사뭇 경계한다.


죽음이란 극적인 사건에 임하여,

그 자리에 권위를 부여하고픈 인간의 나약한 태도가,

죽는 이의 말씀까지 그리 귀하고 선하게 대한 것은 아닌가?

나는 이리 의심을 한다.


그 한 가지 반증으로서 나는 위주의 말들을

상기하지 않을 수 없음이다.


위주의 사정과는 다르지만, 

억울한 이가 이를 하소연 할 길이 없자 죽음으로서 항변하는 경우도 있다.

이 때 대부분은 사자를 동정하고,

그의 평소 주장을 진실로 받아들이고자 하는 정서가 

남은 자리에 처연히 흐르게 된다.


“죽음으로서, 자신이 결백을 증명하다.”

사뭇 비장미 넘치는 정경이다.


하지만, 그게 결백의 증거가 될런지,

부끄러움의 징표가 될런지

장면과 상황에 따라 다를 뿐,

일률적으로 함부로 재단하기는 어렵다.


위주는 평소 이리 말했다.


吾若戰死沙場,汝當為我選擇良配,以嫁此女,勿令失所,吾死亦瞑目矣。


“내가 만약 전쟁에서 죽으면, 너는 마땅히 좋은 짝을 구해 이 여인을 개가 시키거나.

분부를 소홀히 하지 말아야, 내 죽어 눈을 편히 감으리.”


그러던 그가 병이 중해 죽을 때는 이리 말하였다.


此女吾所愛惜,必用以殉吾葬,使吾泉下有伴也。


“저 여인은 내가 아끼고 사랑하던 바라, 반드시 내 무덤에 순장시키어라.

내 저승에서 짝으로 삼으리라.”


아, 사랑한다면서 어찌 한 사람이 두 소리를 할 수 있음인가?

과연 어떠한 것이 사랑의 본 모습인가?


人之將死,其言也善。


‘사람이 장차 죽으려 할 땐 그 말이 선하다.’


여기서 善은 통상 선하다라고 새기지만,

나는 이 새김에 문제가 있다고 본다.

善은 是나 正이 아니다.

즉 善이란 글자는 자신의 주관적 감정, 판단엔 충실할는지 모르지만,

그게 곧 객관적으로 옳거나 바르다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

그저 그 당시 자신의 생각에 충실하다 정도로 새기면 족하다 생각한다.

그러니까 그의 느낌, 감정, 생각이 그러하다는 것은 인정해줄 수 있지만,

그렇다 하여 그게 곧 온당함 또는 의로움을 확보해주는 것은 아니다.


내가 직접 겪은 일이다.


어느 날, 손님 한 분이 내게 말한다.


“실업 수당을 준다는데 이게 말이나 됩니까?”


또 다른 어느 날, 내가 머리를 깎으러 동네 미장원에 들렸다.

주인이 내게 묻는다.

청년에게 수당을 준다고 하는데 이거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 주인은 평소의 나를 신뢰하여 묻는 것이로되,

미장원 안에 있는 다른 아주머니를 의식하여,

나의 객관적인 의견을 구하고 있는 것이다.


또 언젠가는 이런 장면을 보았다.

시리아 청년이 방송에 나와 난민을 도울 것을 호소하였다.

그 청년이 택시를 탔는데 택시 운전수가 이리 말하더란다.


“한국의 고아나 불쌍한 사람을 돕지는 못할망정,

시리아까지 도울 일이 있는가?”


실업자에게 실업 수당을 준다는 것이 어찌 이상한가?

가난하고 외로운 이에게 도움을 주는 일이 왜 문제가 되는가?

그대 또는 가족은 실업자가 되지 않으리란 보장이 있는가?

설혹 그런 보장이 되어 있다한들 어려운 사람을 돕는데 왜 인색하여야 하는가?


이러함이온데, 

나와 남이 차별되고,

한국인과 외국인이 차별되며,

나아가 사람과 동물 사이에 건널 수 없는 커다란 협곡이 가로 질러 있음인가?


저들이 비분강개하며 그럴 듯이 핑계를 대나,

내가 보기엔 모두 욕심이 태심(太甚)할 뿐,

다른 이유는 다 구차스럽구나.


한편, 여기 유가의 친친(親親)과 묵가의 겸애(兼愛) 사이의 큰 간극을 다시 상기하게 된다.

유가는 사랑에 등급을 두어 차별을 하였으나,

묵가는 무차별적 사랑을 주창하였다.


헌데, 유가엔 절제(節制)가 있으니,

맹자의 다음 글을 다시금 상기하지 않을 수 없다.


老而無妻曰鰥。老而無夫曰寡。

老而無子曰獨。幼而無父曰孤。

此四者,天下之窮民而無告者。

文王發政施仁,必先斯四者。

詩云 哿矣富人,哀此煢獨。

王曰 善哉言乎!

曰 王如善之,則何為不行?

王曰 寡人有疾,寡人好貨。

對曰 昔者公劉好貨,詩云 乃積乃倉,乃裹餱糧,于橐于囊。思戢用光。弓矢斯張,干戈戚揚,爰方啟行。故居者有積倉,行者有裹糧也,然後可以爰方啟行。王如好貨,與百姓同之,於王何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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王曰 寡人有疾,寡人好色。

對曰 昔者大王好色,愛厥妃。詩云 古公亶甫,來朝走馬,率西水滸,至于岐下。爰及姜女,聿來胥宇。當是時也,內無怨女,外無曠夫。王如好色,與百姓同之,於王何有?

(孟子)


“늙었으되 처가 없으면 환(鰥)이라 이르고,

늙었으되 지아비가 없으면 과(寡)라 이르며,

늙었으되 자식이 없으면 고(孤)라 이르며,

어리되 아비가 없으면 독(獨)이라 이릅니다.

이 넷은 천하의 궁민(窮民)이라 어디 하소연하려도 할 곳이 없습니다.

문왕은 정치를 하시되 어짐을 펴셨습니다.

반드시 이들 넷을 먼저 돌보아야 합니다.

시에 이르되 ‘부자들은 괜찮지만, 외로운 이들은 애달프구나. 하였습니다.

왕께서 말하시다. ‘좋은 말씀이십니다.’

맹자가 말하다.

‘왕께서 이를 좋게 여기신다면, 어찌 행하지 않으십니까?’

왕이 말하시다.

‘과인에겐 병통이 하나 있습니다. 과인은 재물을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맹자가 대답하다.

‘옛날 공유란 이도 재물을 좋아하였습니다.

시에 이르길, (곡식을) 노적하고, 창고에 보관하고, 말리고, 저장하고,

전대와 주머니에 담아 두었네.

병기를 모아 나라를 빛내려고,

활과 화살을 펼쳐들고, 방패와 창과 도끼를 메고, 이에 바야흐로 길을 떠나시네.

그런고로 남아있는 사람에게 노적가리와 창고에 보관한 곡식이 있고,

길을 가는 이에겐 말린 식량이 있었습니다.

그런 연후라야 길을 떠났습니다.

왕도 재물을 좋아하시는데, 백성과 그를 함께 하시면,

왕께서 무슨 어려움이 있겠습니까?’

왕이 말씀하시다.

‘과인에게 병통이 하나 있습니다.

과인은 여인을 좋아합니다.‘

맹자가 대답하여 말하다.

‘옛날 대왕도 여인을 좋아하여 그 비를 사랑하였습니다.

시에 이르길, 고공단보가 아침에 말을 달려 서수 물가를 따라 기산 아래 이르렀네.

이에 강녀와 함께 살으셨네.

이때에는 안으로 홀로 사는 여자가 없었고,

밖으로는 혼자 사는 남자가 없었습니다.

왕께서 여인을 좋아하시길 백성과 함께 하시면,

왕께 무슨 곤란이 있으시겠습니까?’”


이 맹자의 말씀은 사뭇 곡진하기도 하지만,

문장이 아주 유려하여 가히 본받을 만하다.


왕 혼자 재물도 좋아하고, 여인도 좋아한다는데,

이게 개인의 한낱 기호에 그치는 문제라면, 

그 누가 있어 이에 시비를 걸랴?

허나, 그게 따지고 보면,

모두 백성들로부터 거두고, 그로부터 근거를 둔 것이 아니든가?


제 욕심은 그리 아끼면서,

남의 처지는 하나도 돌보지 않는다면,

이 어찌 안타까운 노릇이라 하지 않을쏜가?


無惻隱之心 非人也


‘측은지심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다.’ 


맹자의 준엄한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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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요유 : 2015. 12. 7. 13:3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