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고 간장
몽고 간장.
내 소싯적 신당동 중앙시장 변두리에 몽고 간장이 있었다.
어린 내 눈에 집채만 하게 커다란 양조 간장통이 공장 안에 들어차 있었는데,
거기 간장을 사러 심부름을 다니곤 하였다.
내가 들어서면 묘령의 처자 하나가 응대를 하였다.
그를 두고 몽고인이라는 소문이 있었다.
이 집 간장은 조선간장이나 진간장하고는 달라,
맛이 삼삼 칠칠 묘했던 기억이 있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몽고 간장하고 같은 집인지는 잘 모르겠다.
창녕에 연고를 두고 적산 공장을 불하 받았다 하니,
내 소싯적 서울에 있던 몽고 간장하고는 다르지 않을까 싶다.
아니 다른 곳이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내 유년의 기억 하나가 어처구니없는 일로 행여 다칠까 저어되는구나.
여기 생각 하나를 꺼내든다.
用師者王,用友者霸,用徒者亡
“스승을 쓰면 왕자(王者)가 되고,
벗을 쓰면 패자(霸者)가 되며,
무리를 쓰면 망한다.”
무릇 자고로 용인(用人)엔 세 가지 경계(境界)가 있다 하였다.
우선, 소위 양사익우(良師益友)임이라,
좋은 스승과 덕을 보태는 벗은,
인생에 있어 길잡이가 되고 도움을 준다.
탕왕(湯王)과 이윤(伊尹), 주문왕(周文王)과 강태공(姜太公)은 사도(師道)의 전형이며,
한고조(漢高祖)와 장량(張良)은 사우(師友)지간,
유비(劉備)와 제갈량(諸葛亮)은 우도(友道)로 서로 존숭했다.
이제 하나하나 살펴보고자 한다.
용사자왕(用師者王)
왕이 신하를 스승으로 대하였다 함은 곧 겸손하여, 현명함을 존숭하였다 함이라,
천하(天下)를 얻고 큰 공을 세워 대업을 이루는 바탕이 된다.
용우자패(用友者霸)
왕이 거느리는 사람들을 형제나 벗으로 대우하였다 함이니,
이는 유방(劉邦)이 소하(蕭何), 한신(韓信) 장량(張良)을 거느린 예라 하겠다.
용도자망(用徒者亡)
여기서 徒란 남이 말을 하면 탈이 날까 두려워 그저 그런가 하며 따르는 그 무리를 뜻한다.
사람을 무조건 따르고, 소위 좋은 사람이란 평을 듣기만 하는 사람이 있다.
이런 이는 자기 판단이 없으므로 남에게 이용당하고 끝내 실패하고 만다.
산호만세(山呼萬歲)
왕 앞에서 만세를 외치면 그저 기분이 좋을 터.
무작정 만세만 부르는 이를 신하로 두고 어찌 천하를 경영할 수 있으랴?
연소왕(燕昭王)이 왕위에 오를 당시는 제나라가 침략을 한 후였기에,
나라가 극도로 피폐한 상태였다.
소왕은 천금을 뿌려 천하의 인재를 초빙하였다.
이로써 설치(雪恥)하려 하였다.
이 때 왕은 곽외(郭隗)라는 현자에게 국가 대계를 어찌 세울 것인가 의견을 청하였다.
(※ 참고 글 : ☞ 2008/08/10 - [소요유] - 곽외(郭隗))
곽외가 이리 말하였다.
“왕업을 이루려면 현자를 스승으로 삼으시고,
패업을 이루려면 현자를 벗으로 삼으십시오.
허나 망국의 군주가 되시려면 현자를 노복으로 삼으십시오.
만약 절개를 굽히고 현자를 존숭하여 받들면,
재주가 자신보다 백배나 뛰어난 인물이 모여 들 것입니다.
만약 허심으로 스승의 교도를 받아들이면,
재간이 자신보다 열 배는 뛰어난 사람들이 모여 들 것입니다.
만약 독단전횡을 일삼으며 턱짓으로 사람을 대하면,
그저 잔심부름꾼처럼 고역을 견디는 인물들만 올 것입니다.
만약 사람을 대함에 포악스러워 화를 내며 욕을 일삼으면,
그저 굽실거리며 예예하며 따르는 노예 같은 인물들만 모일 것입니다.
남보다 앞서 일을 하고, 나보다 늦게 쉬며,
남보다 먼저 가르침을 구하면, 남은 가르침을 구할 기회를 잃게 됩니다.
또한 가르침 구함을 그치지 않습니다.
이것이야말로 고대로부터 왕도를 시행하는 방법이라 하겠습니다.
이는 인재를 초빙하는 법이기도 합니다.
군왕이 널리 국내 인재를 선발하려면, 친히 예방하여 합니다.
천하 모든 사람이 이를 알게 되면 현사들이 연나라로 달려 올 것입니다.”
실제 이 이후, 악의(樂毅), 추연(鄒衍), 극신(劇辛) 같은 이들이 몰려왔다.
28년 후, 연나라는 부유해졌고, 병사들도 강해졌다.
소왕은 악의를 상장군으로 삼아 초, 진, 조, 위, 한 등의 나라와 함께 제나라를 쳤다.
제나라는 대패하였으니 제민왕(齊閔王)은 국외로 도망을 가고,
온 나라 땅이 다 결딴이 나고 기껏 거화(莒和)와 즉묵(即墨) 땅만 남았다.
천지의 도법이란 본디 이러한 것임이라.
日中必移,月滿必虧;先王之道,乍存乍亡。(史記)
“해가 하늘 한 가운데 있더라도 필경은 옮겨 가는 법이며,
달이 가득 차 만월을 이루더라도 마침내는 이지러지고 만다.
선왕의 도도 어느 때 급자기 일어났다 없어진다.”
여담이지만, 여기 日中必移를 하나로만 새길 일이 아니다.
하늘 한가운데서 서쪽 하늘로 지기만 하는가?
거꾸로 서쪽 함지(咸池)로 떨어졌다가는 동쪽 부상(扶桑)으로 떠오르기도 하는 법.
月滿必虧도 마찬가지로,
차면 이지러질 뿐인가?
이지러진 것이 차오르기도 하는 법.
한문이란 은유, 상징에 이리 은휘, 생략을 통해 그 뜻을 깊은 곳에 품어 안고 있다.
눈이 푸르고, 마음이 깊은 이는 이를 절로 알 수 있으리니.
사람의 도법이란 것도 이러함이라.
泰則驕,逸則奢,驕奢既起,惡則隨之,此所以召禍也。福則反是,所以積善得長享也。
“태평하면 교만해지고, 한가하면 사치스러워지는 법.
교만하고 사치하며 악이 그를 따르는 법이라, 화를 부르는 까닭이 되느니라.
복이 뒤집혀 버리노니.
소위 선을 쌓으면 오래도록 누리게 되는 법이니라.”
대개의 사람 인성이란 것은,
어려움에 처하였을 때는 두려워 근심하지 않는 자가 없으며,
뜻을 얻어 만사가 잘 풀리고 있을 때는 방일하여 성질대로 막나가고 만다.
고금의 영웅호걸일지라도,
처음엔 번영하나,
나중까지 잘 버티는 이는 드문 법이다.
통계를 보면 하나의 기업이 있어 백 년은커녕 삼사십 년도 버티는 경우가 드물다.
헌데 저 몽고 간장은 백 년이 넘었다 한다.
이게 조상의 음덕인지,
아니면 富益富貧益貧 사회 구조적 모순 때문인지 아지 못하겠다.
子云 君子辭貴不辭賤,辭富不辭貧,則亂益亡。故君子與其使食浮於人也,寧使人浮於食。
(禮記)
“공자가 말씀 하시다.
군자는 귀함을 사양하고, 천함도 사양하지 않으며,
부함을 사양하고, 가난함도 사양하지 않는다.
그런즉 어지러움이 더욱 없어지게 된다.
그런즉, 군자는 식록을 인물보다 넘치게 하기보다,
차라리 인물을 식록보다 넘치게 한다.”
인물이 가진 것보다 모자라면,
사치하거나 교만하게 되는 것이 人之性 사람의 특성이라 하였다.
허나 군자는 이를 경계하여 使人浮於食 식록보다 인물됨이 넘치게 한다 하였음이다.
禮生於有而廢於無。故君子富,好行其德;小人富,以適其力。淵深而魚生之,山深而獸往之,人富而仁義附焉。富者得埶益彰,失埶則客無所之,以而不樂。夷狄益甚。諺曰:「千金之子,不死於市。」此非空言也。故曰:「天下熙熙,皆為利來;天下壤壤,皆為利往。」夫千乘之王,萬家之侯,百室之君,尚猶患貧,而況匹夫編戶之民乎! (史記)
“예절은 있어야(재물) 생기고, 없으면 폐해진다.
고로 군자가 부하면, 그 덕을 베풀고, 소인이 부하면 그 힘을 쓴다.
못이 깊으면 고기가 거기에 살고,
산이 깊으면 짐승이 그로 몰려든다.
사람이 부해져야 인의가 보태진다(인의를 행하게 된다).
부자가 세를 타면 더욱 빛나고,
세를 잃으면 사람이 떠나가 즐겁지 않다.
이는 오랑캐의 경우 더욱 심하다.
속담에 이르길,
‘천금 부자의 자식은 시장에서 형벌을 받아 죽지 않는다’ 하였는데,
이는 빈말이 아니다.
고로, 천하가 기뻐하는 것은, 모두 이익을 위해 몰려오기 때문이며,
천하가 혼란스러운 것은, 모두 이익 따라 몰려가기 때문이다.
무릇 천승(千乘)의 왕, 만가(萬家)의 제후, 백실(百室)의 대부는 모두 가난해질까 걱정한다.
그러함이니, 항차 호적에 겨우 적을 올린 필부는 어찌하겠는가?”
군자는 부귀빈천에 무관하게 인의를 펴고 덕을 베푼다.
하지만 대개는 부자가 되어야 겨우 인의를 펴거나,
제 힘을 부린다.
그러함인데 이제 부자가 되어서도 인의를 펴지 못하고,
외려 교만하고 사치하다면 이 어찌 모자란 모습이 아니랴?
또한 부자에게 외려 감세를 하고,
노동자의 임금을 깎으려 드는 정부는 얼마나 어처구니가 없는가?
저들은 한참 경제개발한다고 나설 때인 70~80년만 하여도,
적하이론(滴下理論)을 펴며, 아랫목이 뜨거워야 윗목이 덮혀진다며,
노동자의 피땀을 재벌을 위해 양보하라 하였다.
그런데 이제까지 떡 한 조각 나눠먹었다는 증거를 찾기 어렵다.
그러함에도 아직도 철지난 저 적하이론을 펴고 있다.
그런데 현실은 어떠한가?
요즘엔 떡볶기, 빵집까지 저들 재벌들이 치고 들어오며 잠식을 하고 있다.
시장은 물론 골목길까지 처들어오고 있다.
골목길엔 이젠 그 흔한 구멍가게도 다 재벌들이 접수하지 않았던가?
사마천(司馬遷)은 오랑캐의 경우엔 이런 짓이 더욱 자심하다고 개탄을 하고 있음이다.
오늘날 시민들은 이런 사회를 일러 ‘헬조선’이라 자조(自嘲)하고 있다.
오죽하면 풀 한포기 자라지 못하는 오랑캐의 땅 동토(凍土)보다 사뭇 못한,
헬(hell) 지옥의 나라라 부르랴?
저 몽고 간장 공장의 노동자 하나.
가난하여 이런 어질지 못한 자의 밑에 노동자로 있으면서,
온갖 수모를 당하고, 인내하고 있었던 안타까움이란 얼마나 눈물겨운가?
凡編戶之民,富相什則卑下之,伯則畏憚之,千則役,萬則仆,物之理也。夫用貧求富,農不如工,工不如商,刺繡文不如倚市門,此言末業,貧者之資也。 (史記)
“무릇 호적부에 겨우 이름을 올린 백성은,
부유함이 열 배 넘으면 자기를 낮추며,
백 배 많으면 두려워 꺼리며,
천 배 넘으면 부려지게 되며,
만 배가 넘으면 종이 된다.
이게 사물의 이치다.
대저 가난하여 부를 구함에는,
농업이 공업보다 못하며,
공업은 상업만 못하며,
무늬를 수놓는 것은 저잣거리 문에 기대는 것만 못하다.
이는 상업이 가난한 이들의 수단꺼리임을 말하고 있다.”
그러니까 저 몽고 간장 공장의 노동자께서는,
어쩔 수 없이 종처럼 부림을 당하셨음이라.
사마천은 이러할 때는 말업(末業)인 상업이야말로 가난을 벗어날 자량(資糧)이라 하였다.
그런데 과연 그러한가?
IMF 환란이후 기업에서 쫓겨난 사람들은 거리에 차고 넘친다.
그게 오늘날까지 이어져 자영업자 비율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편에 속한다.
2011년 OECD 국가의 자영업자 비율은 16.1%, 한국은 28.2%
(KB금융지주)
이 땅에서 개인에겐 상업은 사마천이 이야기하였던 부를 일굴 자량이 아니라,
과포화상태라 붉은 핏빛의 거대한 대해에 불과하다.
말 그대로 말업(末業)에 처하여 있다.
공자는 故君子與其使食浮於人也,寧使人浮於食。이리 말씀하시고 계시다.
인물됨보다 돈을 더 넘치게 하기보다는,
차라리 돈보다 인물됨이 더 넘치게 하는 것이 좋다.
아, 이 얼마나 곧은 말인가?
허나 이 땅에선 이 또한 얼마나 한가한 말씀인가?
내가 동네에서 만나는 폐지 줍는 할머니는,
주야장천(晝夜長天),
정부 하는 대로 믿고 기다릴 일이지,
저리 데모나 한다고 난리다.
기층민들의 의식 역시 이리도 한가하구나.
(※ 참고 : 위 用人 관련 자료는 다음 사이트로부터 일부 도움을 받고, 필자의 의견을 보태 재구성하였음.
http://tw.aboluow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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