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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법자연(道法自然)

농사 : 2016. 5. 25. 16:27


道法自然


‘도법자연’이란 말을 곧잘 접하게 된다.
그런데 이 말 뜻을 제대로 아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道法自然을 ‘道法’, ‘自然’ 이리 끊어 놓고는,
도법을 무슨 법술쯤으로 새기고,
자연은 말 그대로의 자연으로 새기니,
앞과 뒤가 잘 연결이 되지 않는다.
이것, 단순히 ‘명사+명사’의 결합으로 이뤄진 어정쩡한 말이 아니다.
‘주어+술어’로 구성된 완전한 문장이다.

道法自然 여기서 法은 동사이다.
그 뜻은 완전히 충분치는 않지만,
일단 본받다 정도로 새기면 그 본의에 가까이 다가설 수 있다.
그러니까, 道法自然은 道가 自然을 본받는다는 말이 된다.

道法自然은 본래 노자 도덕경에 나오는 말이다.

人法地,地法天,天法道,道法自然。

“사람은 땅을 본받고, 
땅은 하늘을 본받으며,
하늘은 도를 본받고,
도는 자연을 본받는다.”

여기서 法은 때에 따라서는,
모방한다, 흉내낸다, 따른다(follow)로 해석하여야 자연스러울 수 있다.
이 모두를 아우르는 말로서는 효법(效法)이란 별도의 단어가 있다.

人法地,地法天,天法道,道法自然。

道法自然이란,
도가 자연을 본받는다라는 뜻에 머물어 그칠 일이 아니라,
결국은 사람이 자연을 본받는다는 말이기도 하며,
천지 그리고 그 안에 제 존재를 기탁(寄託) 혹은 가탁(假託)하고 있는 모든 만물에게도 해당되는 말이기도 하다.

자, 이제 농부의 입장에서 보자면, 道法自然이란 말의 함의는
농사를 지을 때 작물을 잘 지으려면 자연을 본받아야 한다는 뜻에 이른다.
그런데, 오늘날 농부가 과연 그러하고 있는가?
오늘 나는 이리 묻는 것으로 글을 시작하고자 한다.

유스투스 폰 리비히(Justus von Liebig, 1803년 5월 12일 ~ 1873년 4월 18일)는,
식물이 자라는데 필수 요소인 질소, 인산, 칼륨을 찾아내었다.
이 이래 사람들은 작물에 이들 3요소를 집중 투입하여 농사를 짓는데 열중하였다.
하지만, 식물은 이 3요소 외에도 각종 미네랄이 필요하다.
농부들은 경쟁적으로 3요소 위주의 비료를 밭에 뿌려왔기 때문에,
식물은 건강을 잃고 약해졌다.
이에 따라 외부 충이나 균에 쉬이 노출되어 견디어내지 못하였다.
사람들은 이제 살충제, 살균제를 식물에 다량 뿌려 이를 막아내려 하였다.

내가 늘 강조하듯이 비료와 농약은 강하게 커플링(coupling)되어 있다.
비료는 그게 화학비료이든, 유기비료이든 과도한 투입은,
예외 없이 농약을 불러들임에는 차이가 없다.
비료 자체가 인간 욕심의 산물이기 때문에,
대개 시비(施肥) 행위는 도를 넘겨 행해지기 일쑤다.

거기다 욕심껏 소출을 보려고 개화촉진제, 인공수정, 성장호르몬 따위를 뿌려대며,
식물을 쥐어짜는데 혈안이 되어 있다.
이에 따라 토양은 해가 갈수록 황폐화되었고,
이럴수록 더욱 비료와 농약은 밭에 더 투하되어만 갔다.

그러니까, 사물을 N, P, K 삼요소로 환원하여 보는 사고방식은,
과학이란 이름을 빌어 우리의 삶까지 왜곡시키고 있는 것이다.
마치 칼날 위에 서서 춤을 추듯,
아슬아슬 곡예를 하고 있는 것이다.
아차하면 발을 베이고, 와르르 무너지고 말리라.
아직까지는 비료와 농약의 짝을 더 강하고 깊게 투하하여,
작물을 쥐어짜며 욕심을 만족시키고 있으나,
미구에 식물이 버티어내는데 한계를 드러내고 말 것이다.
게다가 이젠 GMO니 무엇이니 하며 괴물까지 만들어내고 있다.
종국엔 파국밖에 갈 길이 남아 있는 것이 없다.

道法自然

산에 자라는 작물에 비료가 보태지는가?
그들이 농약을 요구하는가?
나무 하나가 들어서면 수십 년, 수백 년 한 자리를 고수하며,
울울창창(鬱鬱蒼蒼) 절로 자란다.

내가 블루베리를 키우며, 처음에 우려했던 것 중의 하나는,
단작(單作)으로 연작(連作)하는 것에 대한 위험이었다.
흔히 배우길 연작의 해(害)를 말하며, 윤작(輪作)을 하라 이르지 않았던가?
일반 과수원에서 그리 농약을 많이 치는 이유 중에 하나가,
혹시 이 밀식 연작 때문이 아닌가 싶었던 것이다.
소채 농사가 아닌 과수인 경우엔 필연적으로 연작을 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병충해가 뒤따르지 않을 수 없겠단 생각을 한 것이다.

하지만, 산에 자라는 나무야말로 연작이 아닌가?
그러함에도 저들이 탈 없이 잘 자라고 있는 까닭은 무엇인가?

道法自然

도는 자연을 따르는 법.

나는 이를 본받기로 하였다.

풀이 자라면 자라는 대로,
어린 작물이 풀에 치이지 않을 정도로만 다스리고,
성목이 되면 게으름을 피우며 풀이 자라도록 놔두었다.
실제 지난해엔 풀이 성목 키높이까지 덮쳤는데,
올해 보니 블루베리 열매가 충실히 잘 달려 익어가고 있다.
풀로 덮힌 밭고랑을 걸으면, 
마치 융단을 깔아놓은 듯, 
흡사 구름 위를 걷듯,
온몸이 리듬을 타며 둥실 떠다닌다.

어린 묘목도 풀에 완전히 덮여 어디 숨었는지 찾지도 못할 형편이었는데,
그런대로 조금씩 자라고 있다.
개중에 죽어버린 것도 있지만,
이런 것은 건강하지 못한 묘목이니,
자연은 절로 강약을 이치껏 찾아내어 거르고, 치켜세우며 나아간다.
내가 노심초사할 일이 아니다.

결국, 우리 밭엔 블루베리만의 단작이 아니라, 수 많은 자생초와의 혼작(混作)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생물 다양성이 유지되고, 거의 산의 모습을 재현하고 있다.
게다가 비료와 농약을 쓰지 않기 때문에,
토양은 어느 특정 요소에 치중되지 않은 영양 요소의 균형이 잡혀있다.
또한 연작일지라도 수없이 많은 야초(野草)에 의해,
밭의 생태/환경학적, 토양학적 물질 자원의 역사적 교합, 조절 작용이 자연스럽게 이뤄진다.

道法自然

오늘날 상업적 농사에 노출된 이들은 설혹 유기농을 한다고 하여도,
여전히 비료를 탐하는 태도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
화학비료 대신 유기질비료라 하지만 이를 제 밭에 욕심껏 처넣기 바쁘다.
미생물이니, 액비니, 영양제니 하며 뒤이어 투입을 하는데,
마치 예전 여성 잡지 특집 부록과 같다.
저들은 특집이라며 부록을 심심치 않게 끼어주는데,
이게 본 잡지보다 외려 더 두껍고 화려하다.
그러함이니 비료도 해마다 양을 늘려 더 집어넣지만,
영양제니, 비대제, 광택제니 하며 비싼 약제를 추가로 넣기 바쁘다.
도대체가 이리 하지 않으면 불안한 마음이 진정되지 않는다.

사실 저들의 두려움을 이해할 수 있다.
농산물 시장 가격은 작물을 키우는 농부의 품삯도 되지 못할 때가 많다.
그러함이니 소출 증대에 힘을 쓰지 않을 도리가 없다.
시장에선 유기농이라 하여 관행농 이상의 대우를 해주지 않기 일쑤다.
몇몇 친환경 전문 단체에서 운용하는 곳 외에는 유기농이라 하여도,
농부는 제 자부심을 느낄 여유가 없는 것이다.

道法自然

저들은 이 말을 함부로 쓰지 말아야 한다.
말인즉슨 유기농, 자연재배니 하며 그럴싸한 척 하지만,
실제로는 자연을 거스르고 있다.
까짓 유기질비료 쓰고, 친환경 농약을 쓴다 하여도,
물량 투입으로 욕심껏 식물을 쥐어짜내려하는 데는,
결코 관행농과 다를 것이 없다.

道法自然

나는 이 말씀에 충실하면 여러 공덕을 지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선 비료, 농약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잘은 몰라도 이것 준비하는 비용이 만만치 않은 모양이다.
게다가 작업 인건비도 무시 못 한다.
자연을 따르면,
나처럼 한껏 게으를 수 있다.
비료를 넣으려 무거운 비료 들고 씨름을 할 일도 없으며,
농약 치느라 마스크 쓰고, 몇 씩 늘어서 긴 호스 끌고 난리를 칠 까닭도 없다.
액비 만든다고 무거운 통마다 가득 자료를 넣을 일도 없이 그저 마냥 한가롭다.

道法自然

무엇보다 자연스럽게 자라는 풀은 나무와 더불어 산을 지킨다.
토양엔 풀의 잔사와 나무의 낙엽이 쌓이고,
미생물은 이들을 분해하여 식물에게 되돌린다.
오늘날 농법은 풀은 제초제로 씨를 말리고,
볏짚은 원형 곤포(梱包) 사일리지를 만들어 밖으로 내간다.
이쯤 되면 이것은 약탈농법이라 하여야 할 것이다.

天澹泊不動,施而不求報,生長萬物,無所收取。

“하늘은 담박하니 움직이지 않으며,
베풀되 갚음을 구하지 않는다.
만물을 자라게 하지만,
거둬 취하지 않는다.”

인간에 의한 약탈(掠奪)이 일어나면 땅 속에 다툼이 생기고, 난이 일어난다.
난이 일어나면 지상부는 피폐하고 돌림병이 휩쓸고 지나가게 된다.

虎嘯而谷風至,龍興而景雲起,同氣共類,動相招致,故曰:『以形逐影,以龍致雨。』雨應龍而來,影應形而去,天地之性、自然之道也。
(論衡)

“범이 울부짖자 골짜기에 바람이 일며,
용이 움직이자 큰 구름이 솟는다.
같은 기운, 같은 종류의 것은 서로 움직이며 부른다.
고로, ‘형체 따라 그림자가 쫓고, 용 따라 비가 내린다.’ 했음이다.
비는 용에 응감하여 오고, 
그림자는 형체를 따라 간다.
이는 천지의 본성이요,
자연의 법칙이다.”

오늘날 산에는 범이 살지 않은지는 사뭇 오래 전 일이며, 
이젠 기후변화로 골바람조차 수상쩍기 짝이 없다.
한편, 모사(模寫)니, 시뮬라크르(simulacre)니 하며,
그림자만 세상을 정처 없이 떠돌고,
실체는 오리무중이다.
온 천하는 괴물만 그득하다.

(src : http://ent.zjol.com.cn)


우리 농원은 북악(北岳)보다 작지만,
범도 웅크려 자고, 용도 숨어 계시오다.
이 모두는 천지자연을 본받은 결과일 뿐,
나는 無爲로, 한 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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