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깨도 잠을 자고 싶다.
내가 시골에서 우연치 않게 알게 된 이가 있다.
그는 양계장(肉鷄)을 한다 하였다.
덴마크식 현대 축산 운운하며 그가 들려준 이야기가 있다.
온도*습도
이 적산치(積算値)를 잘 조절하면 단위 면적당 입식 수를 크게 늘릴 수 있다 한다.
무창계사(無窓鷄舍)
그러니까 창문도 없이 계사를 짓고서는,
전열등 그리고 커다란 환풍기로써 온습도량을 조절한다는 것이다.
이러면 빽빽하니 닭을 밀식하여도 죽지 않는다 한다.
그런데, 이게 동물이니까,
우리의 감성에 바로 다가와 소름을 돋게 하고,
이내 치를 떨게 된다.
도대체가 밤에 잠을 자지 않으면,
동물이 산다한들 살았다 할 수 있겠음인가?
재우지 않아 단기(短期) 증체(增體)가 가능하다한들,
동물들은 대사 기능이 헝클어지고, 호르몬 조절 장애가 일어나,
필경은 몸이 병들고, 마음에 상처가 깊을 것이다.
그러하니 저 닭들은 생체 자체가 고통이요, 슬픔이요, 분노의 당체가 되어 있으리라.
아마도 이미 저들 몸은 독이 번져 나가,
차마 사람이 취하기 두려운 상태가 되어 있을 것이다.
헌데 식물의 경우라면 어떠할까?
예민한 감성을 가지지 못한 이라면,
식물의 경우엔 그냥 지나치는 이가 적지 않을 것이다.
잎들깨를 키우는데,
밤에 불을 켜두면 늦은 철까지 다수확이 가능하단다.
아닌 게 아니라, 전봇대 등불 밑에 자라는 들깨는 씨앗을 맺지 못한다.
식물은 씨앗을 맺지 못하면, 성체를 키우는데 가용 자원을 돌릴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밤에 불을 켜두면 잎들깨의 꽃봉오리 생장을 억제하여,
들깨잎 생산량을 늘일 수 있고, 수확 일수도 늦게까지 연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시설 재배 농가에선 이런 연구 결과를 토대로 야간 조명 시설을 갖추고,
재배하는 곳이 적지 않다고 한다.
듣건대, 들깨 말고, 딸기의 경우에도 이 짓을 하는 농가가 있다 한다.
이리 키우는 것을 두고, 친환경 재배라 선전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하니까, 요즘엔 친환경, 유기농이라는 것이 마치 전가의 보도인 양,
농부들이 어깨를 으쓱, 우쭐거리며 내뱉는 거죽 닦아 세우는 말이 되고 말았다.
화학비료를 쓰지 않으면 친환경이고, 농약을 치지 않으면 유기농인가?
아무리 그렇다한들,
저리 식물을 고통 속으로 몰아넣고 키운다면,
저것은 착취농, 약탈농이라 불러야 하리라.
이름을 더럽히지 말라.
마치 저 양계업자의 짓처럼,
식물들도 밤에도 불을 환하게 켜놓고 재우질 않는 것이다.
그러니까 돈이 된다면,
동물이든, 식물이든 잠을 재우지 않고 쥐어짜겠다는 것이다.
예전 개발독재시절 동대문 재단사들 역시 야간에도 불을 밝히고,
잠을 줄이며 자본과 정권에 동원, 착취되었다.
이게 조금 나아지는가 하였지만,
요즘은 비정규 노동자가 양산되어,
여전히 자본으로부터 유린되고 있다.
이러함이니,
동물, 식물에 이르러서는 더 이상 일러 무엇하리오.
좁은 우리에 돼지를 가두고, 똥구덩이 위에 소를 키우고, 닭의 부리를 자르고, ...
아, 인간이 하는 짓거리는 악랄하고도 무섭구나,
도대체 이 죄업을 어찌 감당하려는지
大王!非時食於世間不為罪,於勝者之教是有罪。大王!害植物於世間不為罪,於勝者之教是有罪。水中笑戲於世間不為罪,於勝者之教是有罪。
(彌蘭王問經)
“대왕이시여!
때 아닌 때 밥을 먹으면 세간에선 죄가 되지 않으나,
부처의 가르침에서는 죄가 됩니다.
대왕이시여!
식물을 해치면 세간에선 죄가 되지 않지만,
부처의 교시에 따르면 죄가 됩니다.
대왕이시여!
물속에서 시시닥거리며 놀면 세간에선 죄가 아니 되지만,
부처의 계율로는 죄가 됩니다.”
(※ 勝者 : 所以勝者是佛
승자는 부처를 가리킨다.
즉 깨달은 이.)
깨우침이 없은즉,
마음껏 돈을 탐하며,
동물, 식물에 무차별적, 무한으로 해를 가한다.
그러고서도 이것을 죄라 여기지 않는다.
하지만 승자(勝者) 즉 부처의 관점에서 보면 죄가 된다.
이 말은 무슨 말씀인고 하니,
아직 세상의 일에 어두운 세간 사람들은 무엇이 죄가 되는지 모르고 있으나,
일체법(一切法)을 모두 이긴(勝者), 즉 모두 깨우친 부처의 눈으론 죄가 된다는 뜻이다.
동대문 평화시장 쪽방에서,
낮밤 가리지 않고 착취당하던 우리의 어린 노동자들이 있었다.
당시는 무력으로, 꾐으로, 애국이란 이름으로 정당화 되었다.
하지만, 이게 바르다 하는 이는 오늘날 아무도 없다.
비록 부패한 자본, 욕심 사나운 정권은 다시 교묘한 술수를 부려,
비정규직을 양산하여 다시 한껏 착취하고 있지만,
이들조차 대놓고 옳다고 말은 하지 못하고 있다.
정신이 바로 박히면,
한 때 죄가 아니라 생각하였던 것도,
언젠가 죄임이 온 천하에 밝혀지고 만다.
동물을 현생 지옥, 그 고통의 도가니 속으로 몰아넣고, 돈을 챙기며,
식물의 사지를 찢어발기고, 철사 줄로 묶으며, 불을 밝혀 씨앗을 맺지 못하게 하여,
제 욕심을 끝 간 데 없이 채우려 들면서도,
이게 죄임을 정녕 모르겠음인가?
아, 언젠가 그대가 깨우친 승자(勝者)가 될 때,
그대의 죄가 수미산보다 더 큰 것임을 알게 되리라.
현대 농학이든 과학이든,
철학이 없으면 그저 맹목(盲目)에 불과하다.
따라서 농학은 반드시 농철학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쉼 없는 반성적(反省的) 성찰(省察)을 통해,
바른 생명의 도리를 찾아가야 한다.
무릇 생명(生命)을 상대로 하는 업(業)은,
삼가고, 공경(감사)하는 마음을 본(本)으로 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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