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gta      

알 수 없다.

소요유 : 2017. 7. 16. 18:49


알 수 없다.


내가 불교와 관련된 이야기를 곧잘 늘어놓기에,

혹 나를 불교도라 여기는 이가 있을런가 모르겠다.

나는 불교도가 아니다.

이는 곧 불교를 좇지 않는다 또는 싫어한다는 말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이는 추종한다든가 좋아한다는 말도 아니다.

하니까 내가 불교도가 아니란 말은,

불교를 그저 어디 매임에 없이 투명하게 대한다고 여기면 족하다.


道高一尺魔高丈

(西遊記)


명나라의 오승은(吳承恩)이 지은 서유기에 나오는 말이다.

도(道)가 한 자면, 마(魔)가 한 길이라 하였다.

여기 나오는 尺, 丈에 대하여는 나의 다른 글을 참고하라.

(※ 참고 글 : ☞ 손과 발.)


수행이 깊어지면 갖은 마장(魔障)이 나타난다.

물리학에서도 속도가 빨라지면 마찰 저항이 커지게 되듯,

도학이나 종교 또는 삶에도 이와 비슷한 마찰력이 생기는 것이다.


도고마성(道高魔盛)


도가 높으면 마가 성한 법이다.


내가 도가 높은 이도 아닌데,

최근 마귀 사람 하나가 나타나 몇 몇 글에 어설픈 댓글을 달았다.

법 거량을 하는 것이라면 얼마든지 가하지만,

초반부터 내뱉는 말이 영 예의를 갖추지 않았다.

본디 법 거량엔 예의를 따질 일이 아니다.

하여 크게 괘의치 않았다.

하지만 내던지는 말의 내용으로 보아 전혀 닦인 이가 아님을 단박에 알 수가 있었다.

이런 이는 응대하지 않고 무시하는 것이 옳으나,

계면쩍어 할까봐 한 두 마디 내어 면치레 삼아 대접을 하였다.


손자 녀석 귀여워하다 보면,

무릎에 올라 수염을 잡아끌고,

급기야 오줌까지 깔기곤 한다.


자신이 무슨 방아 찧는 육조(六組)라고,

이제껏 읽은 것이 만화책 정도란다.

그럴 형편이라면,

어디 어두컴컴한 지하 만화방에 들어가,

사타구니 북북 긁으며, 오징어 다리나 씹으며, 죽칠 것이지,

여기엔 왜 나타나 까치발로 나대며 괴발개발 돼먹지 않은 환칠을 하는가?


내, 내게 욕을 하는 이의 댓글도 지우지 않고 그냥 내버려두는 성격이지만,

이런 담판한(擔板漢)에게 시간을 나눠줄 형편이 아니라,

만부득 산문(山門) 밖으로 내치고 말았다.


담판한이란 어깨에 판자를 메고 있은즉,

한쪽이 보이지 않는 외눈박이를 말한다.

이 말에 꼭 맞게 그는 사물을 제 우물에 갇혀 외곬으로 보고 있다.


개에게도 불성이 있다고 하는 불교지만,

일천제(一闡提, icchantika, 斷善根)라 하여,

성불할 성품조차 없는 중생도 있다고 가르치고 있다.


도고마성.

부처라고 마귀가 아니 따라 붙었을라고?


부처에게도 일생 마가 따라 다녔다.


부처에 대항했던 유명한 8대 세력들.


Mara (the Evil One), Alavaka (a child-devouring demon), Nalagiri (an elephant who tried to kill Him), Angulimala (a ... He had seduced her), Saccaka (the false teacher), two demons (in the guise of serpents), and Baka (a Brahmin)

(Buddhism and Society: A Great Tradition and Its Burmese Vicissitudes)


이들 외에 부처의 사촌인 데바닷타(提婆達多, Devadatta)에 이르러서는 더욱 흥미롭다.

애초 그는 석가모니 교단 안으로 들어왔으나, 후에 화합하지 못하고 권력투쟁을 벌이다,

떨어져 나와 별도의 교파를 이룬다.

나중 데바닷타는 물어 빠져 죽고, 그를 따르던 교파도 망하고 만다.


데바닷타의 할아버지는 사자협왕(師子頰王)인데,

그에겐 정반왕(淨飯王), 백반왕(白飯王), 곡반왕(斛飯王), 감로반왕(甘露飯王)의 아들들이 있었다.

데바닷타의 아버지는 감로반왕이고, 부처의 아버지는 정반왕이다.

그러니 부처와 데바닷타는 사촌 간이다.

부처를 오래도록 모신 아난(阿難)은 데바닷타의 친형제다.


데바닷타는 승단과 불화하고 별도의 세력을 규합하여 500여 인을 모았다.

특히 그를 도운 이들은,

구가리(俱伽梨), 건타표(乾陀驃), 가유라데사(迦留羅提舍)와 삼문달다(三聞達多)인데,

이들은 모두 석가족 출신이다.

한 때 이들 때문에 승단이 둘로 갈라지기도 하였다.

하지만 부처가 파견한 사리불, 목건련의 활약으로,

갈라섰던 이들을 다시 돌아오게 하였다.


나는 이 부분에 이르면 제환공이 생각난다.

그의 이름은 원래 소백(小白)이었는데,

나라가 어지로와지자 국외로 탈출한다.

이 때 공자 규(糾)도 역시 나라 밖으로 탈출하였다.

나중 이들은 왕권을 두고 서로 다투었다.

그들 주변에도 본국에서부터 함께 한, 

관중(管仲)과 포숙(鮑叔)을 중심으로 한 일단의 무리들이 따라 붙어 있었다.


부처와 데바닷타는 사촌 사이로,

그를 보위하던 핵심 무리들은 대개 석가족 출신이었다.

세속 권력은 아니지만,

종교 권력을 두고 형제 간 마찰이 일어난 것이다.

소백과 규가 왕권을 다투던 장면이 떠올라,

권력투쟁 관점에서 음미해보면 색다른 이해를 할 수 있게 된다.


아사세(阿闍世)는 마갈다국의 왕인 빈비사라(頻婆娑羅)의 태자인데,

데바닷타는 아사세의 지지를 이끄는데 성공하였다.

자신은 부처의 교단을 분열시키고,

아사세에겐 부왕인 빈비사라를 죽이도록 부추겼다.

급기야 아사세는 빈비사라를 죽이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데바닷타의 교단 분열은 실패하고 만다.

나중 일이지만 아사세는 참회하고 다시 부처께 귀의한다.


역사는 승리한 자에 의해 기술되기 십상이다.

경전엔 역시 데바닷타에 대하여는 악평이 많이 나온다.

하지만, 많지는 않지만 그에 대하여 찬탄하는 이야기도 간간히 실려있다. 


특히 대방등무상경(大方等無想經)엔 대운밀장보살(大雲密藏菩薩)이 부처의 묵인 하에,

데바닷타가 결코 악인이 아니라는 설법을 선덕(善德)에게 행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가 말한 것 중 몇몇을 여기 소개를 해본다.


「大婆羅門!若有人言:『提婆達多集地獄業。』當知即是菩薩業也!菩薩業者,即是神通,為化眾生,故在地獄,當知實亦不處地獄。


“대바라문들이여!,

만약 사람들이 말하길,

‘데바닷타가 지옥에 들 업을 많이 지었다’하는데,

이는 실제론 보살업임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신통력으로 중생을 위하여 지옥에 있는 고로,

이게 실제론 지옥에 있는 것이 아님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提婆達多,是大丈夫,如來所遊,在在處處,提婆達多,亦隨逐行。


“데바닷타는 대장부라, 

여래께서 가시는 곳 어느 곳이나,

데바닷타는 역시 따라 수행한다.”


그가 데바닷타에 대하여 무고함을 늘어놓자,

석가 역시 그의 말이 옳다고 찬탄한다.


爾時,世尊讚歎大雲密藏菩薩摩訶薩言:「善哉善哉!汝今快說,提婆達多真實功德,一切聲聞、辟支佛等,不能解了大乘方等功德勢力。汝將欲壞一切眾生所有疑心,是故開顯提婆達多菩薩功德。

(大方等無想經)


과연 데바닷타는 본디 악인이 아니고,

세(勢)가 딸리고, 운(運)이 없어,

역사의 뒷골목으로 밀려난 것인가?


알 수 없다.


오늘 산문(山門) 밖으로 쫓겨난, 그 역시,

데바닷타처럼 담판한이 아니고 세운이 없었을 뿐인가?


알 수 없다.


다만 하나 확실한 것은,

내칠 것을 모르고 여기에 들어온 죄가 있다는 점일 것이다.


뱀도 제가 들 혈자리가 있으며,

쥐새끼도 제 구멍을 찾아 드는 법인데,

사람인들 어찌 제 노닐 곳이 없으랴?

生穴을 못 찾고 死穴로 들어가면 죽는다.

제대로 찾지 못한 과오가 있다면,

그 책임은 온전히 자신이 지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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