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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와 풀강아지

소요유 : 2018. 9. 3. 11:48


고양이와 풀강아지


농장 안에 들고양이가 스물 하고도 일곱여 마리가 더 살고 있다.

여기저기 하우스 안에 똥 싸고, 물건 어지럽히며 말썽을 피우고 있다.

청소하고, 정리를 하여도 그 뿐, 이틀이 지나지 않아 다시 엉망이 되고 만다.

아, 저들을 어찌 할 것인가?


어린 아이 하나가 구석에 엎어져 자는 듯 가만히 숨어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자는 닷, 죽어있는 닷, 아지 못할세라,

살그머니 다가가 건드려 보았으나,


미동도 하지 않는다.

그는 이미 죽어 있었다.

수습하여, 땅에 묻어주었다.


그 동안 사라진 고양이가 두엇 되고,

죽은 것을 수습한 것이 이로써 셋이다.


먹이를 주면 우르르 몰려 고개를 박고 먹어대기 바쁘다.

그런데 어미는 멀찌감치 떨어져 이들을 지켜볼 뿐, 먹지 않는다.

몰래 녀석에게 별도로 주어 보지만, 이내 새끼들이 몰려들어 탐을 내니,

어미는 이 역시 양보하고 만다.

아, 눈물이 난다.


어느 날 밤.

하우스 바닥에 하얀 한 무리가 맷방석(方席)처럼 깔려 있다.

밤에 피는 박꽃을 잔뜩 모아놓았다한들,

저리 하얗치는 못할 것이다.

흠칫 놀라, 저것이 무엇인가?

하며, 의아한 가운데,

어둠 속을 헤치고 자세히 들여다보니,

어미 곁에 모인 일단의 새끼들이다.

다 큰 새끼들이건만,

어미 품을 파고들어 한데 모여 있는 것이다.

제대로 먹지도 못하여 이미 나달나달해졌을 터인데도,

제 몸을 헐어 새끼에게 내어주고 있는 것이다.


天地不仁,以萬物為芻狗;聖人不仁,以百姓為芻狗。天地之間,其猶橐籥乎?虛而不屈,動而愈出。多言數窮,不如守中。

(道德經)


“천지는 불인하다.

만물을 풀강아지로 여긴다.

성인은 불인하다.

백성을 풀강아지로 여긴다.


천지간은 풀무와 같지 않은가?

비어 있으나 굽힘이 없고,

움직임은 더욱 더해진다.

말이 많으면 자주 궁해지고,

그저 속에 감춘만 못한 게야.”


짚을 묶어 만드는 풀강아지는 제사 때 한 번 쓰고 버린다.

제웅 같은 것을 말한다.


(※ 제웅

짚으로 만든 사람 모양의 물건. 음력 정월 열 나흗날 저녁에 제웅직성이 든 사람의 옷을 입히고 푼돈도 넣고 이름과 생년을 적어서 길가에 버림으로써 액막이를 하거나, 무당이 앓는 사람을 위하여 산영장을 지내는 데 쓴다. - 국어사전)


하니까,

천지는 만물을 자애로서 기르는 것이 아니라,

그저 불인(不仁)하니 놔둘 뿐,

어디 특별히 누구를 가려 편애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 다른 말로 하면 작위적(作爲的)이지 않다는 말이다.

하지만, 無爲而無不爲인 바라,

무위이나 결코 하지 않음이 없다란,

노자의 핵심 사상의 다른 표현임을 이해하여야 한다.


하늘에 복을 빌며,

나만, 우리 가족만 잘 되길 빈다한들,

제대로 된 하늘이라면 이를 들어줄 리 만무하다.

만약 들어준다면,

그 따위 신이란 얼마나 편협된 것이냐?

그대에겐 신이지만,

그 밖의 이에겐 악마일 뿐인 것을.

그러함이니,

이런 따위의 신을 믿느니,

차라리, 내가 만든 활, 창, 칼에 의지함만 못하리라.

최소 내 활, 창칼은 남을 위한다는 위선을 떨지는 않는다.


너만을 위한다는 신은 위선의 당체다.

신은 예수가 나옴으로서 진짜배기가 되었을 뿐,

그 이전까지 신은 다 엉터리일 뿐이다.

다만, 하지만, 아직도 불인(不仁) 또는 무작위(無作爲)의 경계와는 상거(相距)하여 있다.


萬物為道一偏,一物為萬物一偏。愚者為一物一偏,而自以為知道,無知也。

(荀子-天論)


“만물은 도의 한 부분이고,

일물은 만물의 한 부분이다.

어리석은 자는 일물과 한 부분을 위하고는,

스스로 도를 안다고 하는데,

무지스러운 일이다.”


순자 역시 바로 이를 제대로 지적하고 있었다.

팔공산 갓바위에 올라,

파리 손 되어 네 가족만을 위해 복을 구한다한들,

천지는 불인한 것 내지는 무작위를 본령으로 하는데,

그로써 네 가족을 구할 수 있으랴?

다만 기름진 땡중 뱃가죽을 더욱 찰지게 할 뿐,

아무런 공덕이 없음을 알아야 한다. 


문재인을 보라.

서민을 위한다면 표를 훑어가며 대통령이 되었지만,

그가 지금 하는 일을 보라.

이정미 환노위에서 몰아내고, 의료민영화 추진,

그리고, 은산분리, 개인정보 완화에 열불을 내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오죽하면,

그를 두고 ‘착한 박근혜’란 말이 나오겠는가?


天地不仁이기 때문에 천지요 신이라 할 만한 것이다.

누구를 위하겠다며, 누구를 파는 순간,

差之毫厘,繆以千里。

한 터럭 차이가 천리의 어긋남을 만드는 것이다.


서민을 위하겠다고 말하는 순간,

이미 천리 길 어긋남이 예비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함이니 거짓 위선은 불인(不仁)하지 않고, 유인(有仁)함을 앞잡이로 내세워,

그대의 혼을 앗아가고, 넋을 후리는 법이다.

나는 이미 그의 유인(有仁)함에,

장차 야밤에 담장을 넘는 도적처럼 다가올 그의 변절을 읽고도 남음이 있었다.


大道廢,有仁義;智慧出,有大偽;六親不和,有孝慈;國家昏亂,有忠臣。

(道德經)


“대도가 폐하여 짐에 인의가 있는 것이며,

지혜가 나올 때, 큰 거짓, 위선, 사기가 따르는 법.

육친이 불효할 때라야, 효도의 자애로움이 있으며,

나라가 혼란스러울 때라야, 충신이 나오는 법.”


이 천하의 절창(絶唱)을 그대 듣고 있음인가?


다시 돌아온다.

그런즉 나는 기도를 믿지 않는다.

살면서 천지신명에게 한 번도 빌어본 적 없다.


‘누구를 위해 기도를 하였다.’

‘내, 너를 위해 항상 기도한다.’


기독교 신자들이 툭하면 뱉어내는 이 말,

나는 이 말을 결코 믿지 않는다.

부질없는 짓이다.

평소 이런 말을 자주 하는 이를 의심하라.

정작 상대가 곤란에 빠져 있거나, 힘이 들 때,

그는 저 멀리 도망가 있기 십상이다.


기도,

이것 아주 싸게 치는 짓이거든.

도대체가 돈이 드나, 책임을 질 일이 있나?


어떤 이가 하나 있다.

폰에 기록된 지인이 천이 넘었다 한다.

헌데, 이이가 사업에 실패하자,

단 한 사람에게서도 전화가 오지 않았다 한다.

이 자가 얼추 기운을 차리자,

처음 한 일은 이제까지 가지고 있던 폰을 버리고,

새로 폰을 장만하는 것이었다 한다.

천 사람을 모두 잊고,

다만 자신만을 남겨 두고 싶었다 한다.


누구도 믿지 말 일이다.

하늘도, 성인도 믿지 말라.

항차 사람을 믿으리?


나는 그저 내 양심대로 살 뿐이다.


이는 하늘이 본디 흉하기 때문이 아니다.

天施地化

하늘은 그저 자연이 되가는 대로 풀어내놓고, 땅은 변화를 주관할 뿐,

인은(仁恩)

어짐과 은혜로 만물을 대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하기에 천지의 위격(位格)을 잃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성인(聖人)은 몰라도,

일반 개개의 인간은 평소 인의(仁義)로 너를 만난다 우쭐대지만,

형편이 여의치 않으면 바로 불의(不義)와 소리(小利)에 기대어,

그대를 버리고 저 멀리 달아나기 바쁜 법이다.


헌즉, 天地不仁이라,

천지는 불인한 것이니,

不貴望其報라,

그 갚음을 바랄 바 없다.

헌즉, 선악 그 어떠한 기대도 하지 말아야 할 일이다.


성인(聖人)이 과연 있는지 몰라도,

혹 있다면, 그 역시 聖人不仁인 바라,

불인을 본으로 한다.

不貴望其禮意이라,

행여라도 성인에게서 그대를 알뜰히 살필 예의를 바랄 일이 아니다.


그런즉, 사람이라면, 마땅히,

人能除情欲,節滋味,清五臟,則神明居之也。할 일이다.

즉 정욕을 버리고, 자미를 탐하는 것을 절제하고,

오장육부를 깨끗이 비울 일이다.

이 때라서야 신명(神明)이 깃들 것이다.


허나, 이러하였음이라,

自知者不怨人,知命者不怨天;怨人者窮,怨天者無志。

(荀子)


스스로를 아는 이는 다른 사람을 원망치 않으며,

천명을 아는 이는 하늘을 원망하지 않는 법.

그러함이니, 그저 내 양심을 믿을 뿐인 것임이라.


헌데,

저 어미 고양이 하나 있어,

천지간에 오로지 인애(仁愛)를 펴고 있음이고나.


도대체,

녀석은 어찌 천지불인조차 뛰어넘고 있음인가?

눈물이 난다.


하지만,

실로 저 인애(仁愛)가 있음으로 인해,

고양이들은 세세년년(歲歲年年),

이 진저리쳐지는 삶의 질곡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음이 아니더냐?


애초 고양이가 새끼들을 데리고 농장 안으로 들어왔다.

하여 받아들였다.

다 클 때까지 지켜 보기로 하였다.

헌데, 새끼들이 다 컸는데,

또 다시 어린 새끼들이 나타났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한 해에 한 배만 낳는 것이 아닌가?

고양이는 한 해에 서너 차례 출산할 수 있다고 한다.

아, 다정(多情)이 병이구나.


소싯적, 박종화의 다정불심(多情佛心)이란 소설을 읽은 적이 있다.

노국공주를 그리 사랑하던 공민왕.

공주가 세상을 떠나자, 공민왕은 황폐해지고 만다.

사랑은 찬란하니 아름답지만, 영원하지 않다.


多男子則多懼,富則多事,壽則多辱。是三者,非所以養德也

(莊子)


"자식이 많으면 걱정이 많고,

부자면 일이 많으며,

오래 살면 욕을 많이 본다.

이 셋은, 덕을 기르는 것이 아니 된다."


요(堯)임금이 화(華) 지방의 벼슬아치를 만나게 되었는데,

그가 요임금에게 이 셋을 축수하자,

요임금이 모두 물리치며 한 말이다.


이명박은 지금 옥에 갇힌 신세가 되어 있다.

그리 부를 탐내 종일 바쁘더니만, 종내 욕을 보고 있음이다.


헌즉 또한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傳曰:喜名者必多怨,好與者必多辱,唯滅跡於人,能隨天地自然,為能勝理,而無愛名;名興則道不用,道行則人無位矣。夫利為害本,而福為禍先,唯不求利者為無害,不求福者為無禍。《詩》曰:「不忮不求,何用不臧。」

(韓詩外傳)


"이름 떨치기를 즐기면 반드시 (남으로부터의 ) 원망이 많고,

교제하는 것을 좋아하면 반드시 욕을 많이 당하게 된다.

남에게 족적을 남기려하지 말고, 자연을 따르면 ......

이익은 해악의 본이고,

복은 재앙을 이끈다. ....."


불쌍한 일이다.


나는 그들에게 한 줌 사료를 내어주고 만다.

이 짓 역시 궁극엔 죄를 더하는 것인 바라,

내가 살아있는 한,

더는 숨을 곳이 없고나.


저 가혹한 칠흑 동굴 속에 갇힌 유정물(有情物)이란?


도대체가,

이 얼마나 태심(太甚)하니 안타까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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