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수(身數)
어디서 글 하나 읽다.
남에게 신수가 좋다라는 말을 들었다 한다.
그러면서 자신이 한의학을 아는 처지인즉,
그게 신수(腎水)라고 풀이까지 한다.
나는 이게 단박에 엉터리임을 안다.
제법 그럴싸하게 읊어대는데,
이내 한 편의 소설이 되고 만다.
기실, 사실과 소설 사이의 경계가 따로 있는가?
아무리 사실에 기반하지 않는 것이라 한들,
몇 번이고 굴러가면 실제 같은 그럴싸한 소설이 된다.
댓글 단 이들도 이 박자에 놀아난다.
신수의 뜻을 처음 알게 되었다며, 치사(致謝)를 한다.
말이 나온 김에, 신수가 무엇인가?
잠깐 살펴보고자 한다.
신수가 좋다 할 때,
이는 腎水가 아니고 身數를 가리킨다.
기초가 되어 있지 않기에,
대개 身은 알겠는데,
數는 무엇인지 요령부득(要領不得)일 터이다.
우리가 운수가 좋다 할 때,
이것 한자로는 運數로 쓰는데,
여기에도 數가 들어 있다.
身數나 運數에서의 數는 모두 지시 의미가 매한가지다.
數를 제대로 이해하자면,
먼저, 形, 相, 象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이에 대하여는 내가 기왕에 쓴 글이 있으니,
이를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참고 글
여담이지만, 관상은 觀相이지 觀象이 아니며,
관상대는 觀象臺이지 觀相臺가 아니다.
이게 왜 그런가?
이는 내가 제시한 앞의 참고 글을 읽어보면,
확연히 그 차이를 알게 될 것이다.
그러고 보니까 ‘상(象)과 수(數)’의 제하(題下)에 글을 하나 남겼어도 좋았을 터인데,
이것은 내가 별도로 다루진 않았구나.
차후, 기회가 있으면 자세히 살펴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자리에선 간단히 언급만 하고 지나치련다.
상(象)이란 구체적인 물형의 이면에 숨어 있는 원리를 추상화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한편 이를 숫자로 표시하기도 하는데 이를 수(數)라고 한다.
이 둘을 합하여 상수(象數)라고 하며,
이에 대하여 논한 이론을 상수론(象數論)이라고 한다.
상(象)이나 수(數)는 사람이 찾아낸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기실은 하늘(하늘, 바다, 산 ....)이 절로 드리운 것이다.
하여 천수상(天垂象)이라 한다.
하도낙서(河圖洛書)
(하도(河圖))
(낙서(洛書))
伏羲王天下,龍馬出河,遂則其文以畫八卦,謂之河圖
洛出書,神龜負文而出,列于背,有數至於九,禹遂因而第之,以成九類,常道所以次序
한 마디로 하도는 황하에서 용마가 나왔는데, 거기 그려진 그림이고,
낙서는 낙수(洛水)에서 신령스런 거북이가 등에 지고 나온 그림이다.
이것 그림을 보면 알 터이지만, 수로 되어 있다.
복희(伏羲)나 문왕(文王)은 이를 바탕으로 팔괘를 구성하였는데,
이로써, 세상의 이치를 바로 살필 수 있게 되었다고 저들은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數가 단순히 숫자를 가리키고 있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운수, 운명도 수로 풀 수 있고, 천지자연의 이치도 수에 기대어 살필 수 있다는 게,
저들의 주장인 것이다.
하니, 다시 되돌아와 신수(身數)가 좋다 할 때,
이는 곧 몸의 운수, 운명이 아주 잘 풀리고 있다는 말이 되겠다.
이것 그저 낯색이 훤한 모습을 두고 뱉어낸 말이라 할지라도,
그 저변엔 그대 당신의 명운이 지금 잘 돌아가고 있구나 하는,
믿음이 도도히 흐르고 있는 것이다.
얼굴 리프팅하고, 주사 바늘 꽂거나, 칼질하여,
거죽만 반질반질한 것을 두고 결코 신수가 좋다 말하여 줄 수는 없다.
기껏 하는 말이 ‘어머, 너 예뻐졌다.’ 정도에 그칠 뿐이다.
따지고 보면 이 얼마나 천박한 말이냐?
그렇지 않은가?
거죽으로 보기에 그저 예쁜 듯 보이는구나.
하고서는 그 다음으로 한 발짝도 더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는 것이다.
마음보가 고와졌다든가, 생각이 훌륭하다라든가, 머리가 좋아졌다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말이다.
아무리 고개를 외로 꼬고 궁리를 터도,
결코 ‘신수가 좋아졌다’ 이런 말을 거저라도 던져줄 수가 없는 것이다.
수(數)란 말이 나왔으니,
컴퓨터에 대하여도 잠깐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이에 대하여는 다음의 참고 글을 통하여 다룬 적이 있다.
참고 글
자세한 것은 이를 참고할 일이다.
하지만, 잠깐 이 자리에서 이는 감상을 하나 덧붙여 두고자 한다.
컴퓨터는 이진 체계를 따른다.
이들이 하도낙서와 같은 철학적 생각을 한 것은 아니로되,
이 체계를 기술적(技術的)으로 극미의 세계까지 밀고 나가,
오늘날 현대문명의 중요한 물적 토대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하지만, 나아가 급기야 정신세계까지 좌지우지하고 있는 단계에 이르고 있다.
내가 인공지능으로 만들어진 zenith란 바둑 프로그램을 구하여,
한번 두어본 적이 있다.
옵션을 최고 단위인 7단으로 놓고 두다 보면,
마치 인간처럼 중요 요처를 놓치지 않고 어김없이 찾아내어 두고 있다.
수(數)로 구축된 컴퓨터이건만,
이게 인간의 지능까지 넘보고 있는 것이다.
나는 앞서, 얼굴 성형수술을 한 여인네를 두고,
예뻐졌다라고 말하는 것이 천박하다고 일렀다.
헌데, 컴퓨터, 인공지능의 발달을 두고 보자면,
얼굴 성형도 나중엔, 신수(身數)의 영역까지 넘보게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하기사, 얼굴 성형 잘하면,
면접에 유리하여 취직도 잘 될 것이며,
배우 같으면, 낙양의 지가를 올려, 일등 배우로 성장할 수도 있겠다.
아니, 이미 그런 시대에 한참 전에 진입하고 있다.
용마(龍馬), 신귀(神龜)에 새겨진 수(數)를 보고,
복희씨나, 문왕은 팔괘를 구성해내었다.
그 이래, 이게 동양사회의 정신세계를 수천 년 지배해왔다.
敬勝怠者吉,怠勝敬者滅,義勝欲者從,欲勝義者凶,凡事,不強則枉,弗敬則不正,枉者滅廢,敬者萬世。藏之約、行之行、可以為子孫常者,此言之謂也!且臣聞之,以仁得之,以仁守之,其量百世;以不仁得之,以仁守之,其量十世;以不仁得之,以不仁守之,必及其世。
(大戴禮記)
“공손함이 거만함을 이기면 길하고,
거만함이 공손함을 이기면 멸하고 만다.
의로움이 욕심을 누르면 순종하고,
욕심이 의로움을 누르면 흉하다.
......”
이러함인데,
이젠 욕심이 의로움을 이긴즉,
얼굴에 칼질을 하여야 이문을 크게 남길 수 있는 세상으로 진입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즉,
‘신수가 훤하다.’
이런 말을 들어도,
얼굴 예쁘다는 말이구나,
이 정도외,
저 말의 샘, 속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용마나 신귀의 소식을 굳이 알아도,
아무런 소용이 없어진 것이 아니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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