굉장히 좀
굉장히 좀
여성 기자의 말을 들었다.
‘굉장히, 좀 유리한 증거가 될 것이다. ....’
이 말 중심으로 앞의 말도, 뒤의 말도 장황하게 늘어지는데,
실상 요점은 한 줌에 불과하다.
말을 듣는 이들은,
이제나 저제나 언제 나올까나 하며,
사실 관계에 집중하고 있다.
하지만, 이이는 말을 한 곳으로 바로 몰아가지 않고,
주저리주저리 말거품만 일으키고 있다.
밥술 입에 떠 넣을 때, 숟가락이 입 안으로 바로 들어가지 않고,
주둥이 근처만 건드려 밥알이 지저분하게 입 주위에 머물고 있다.
젊은 여자일 터인데, 마치 폭싹 삭은 늙은이 밥 떠먹듯,
말이 골대 앞에서 전열을 흩뜨리고 있는 것이다.
‘굉장히’와 ‘좀’은 서로가 서로를 등지고 있는 말이다.
그런데 이게 동시에 한 말('증거')을 꾸미고 있는데 동원되고 있다.
함께 또는 낱낱으로라도, 이 두 말을 자주 쓰는 이들의 공통점은,
말에 자신감이 결여되었을 때일 경우가 많다.
과장 또는 애매함의 당의정(糖衣錠)으로써,
자기 말의 불확실성을 감춘다.
마치 쓴 약의 거죽을 설탕 코팅으로 싸서,
환자를 속이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자신만 모르고 있는 것이다.
조금이라도 섬세한 촉각을 가진 이라면,
바로 화자(話者)의 수준을 가늠해낼 수 있다.
이런 어설픈 태도를 고치는 일은 실로 간단하다.
‘굉장히’, ‘좀’이라는 말을 의도적이라도 사용하지 않는 것이다.
이 말을 쓰지 않게 되면, 처음엔 주춤거리게 되지만,
차츰 실질 내용에 집중하게 된다.
이리 훈련이 되면, 말이 간략해지고, 핵심으로 질러 이르게 된다.
그 뿐인가?
취재시부터, 사실 관계를 파는데, 충실하게 된다.
행동이 태도를 만들기도 하지만,
거꾸로 태도가 행동을 규율하기도 하는 법이다.
그 후엔,
필요에 따라,
‘굉장히’, ‘좀’이란 말을,
제대로 쓰여야 할 때와 곳에,
맞춤 맞게 끌어다 쓰게 될 것이다.
‘굉장히’, ‘좀’
이 말 자체는 아무런 하자가 없는 말인데,
어찌 쓰임에서 배척되어야 하리.
저리 훈련되고 나서야,
그 쓰임의 허술함을 여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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